가난한자의 슬기

새벽이 밝아오는가? /가난한자의 슬기

Margaret K 2007. 5. 10. 01:40

새벽이 밝아오는가?


봄이 되어 길이 트이기 시작하자. 프란치스코는 레오 형제의 간절한 청에 못이겨 클라라 자매에게 가려고 길을 나섰다.


은둔소에서 지낸 이번 겨울은 일생 중에 가장 햇빛을 받지 못했던 어두운 겨울이었다. 그렇지만 산을 떠나면서 그는 작별을 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될 수 있는 한 빨리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항상 동반하는 레오와 함께, 벌써 파란 싹을 피우고 있는 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언덕길을 내려가, 얼음 녹은 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언덕을 넘어, 다미아노 수녀원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프란치스코가 왔다는 소식에 클라라는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몹시도 야위고 한없는 고통을 담은 얼굴에 병색마저 도는 것을 보자 클라라는 동정심과 슬픔에 사로잡혔다.


“오, 사부님, 얼마나 괴로우셨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에게 오시기를 그토록 지체하셨습니까?” 클라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슬픔은 나를 짓누르고 마비시켜 버렸습니다. 나는 혹독한 고통을 당했고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 왜 그렇게 괴로워하십니까? 사부님께서는 스스로 고통을 가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사부님의 평화와 기쁨이 필요합니다.”


‘주께서 나에게 이렇게 큰 수도 가족을 맡기지 않으셨다면, 또 내가 내 형제들을 자기 성소에 충실하도록 보호할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그렇게 슬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클라라는 너무 괴로운 이야기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예, 그것은 저도 이해가 갑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어했다. 그의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으므로 그렇게 털어놓고 이야기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제 우리 성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어떤 형제들은, 보다 잘 조직되고 능력 있고 잘 갖추어진 수도생활 양식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들도 이런 양식을 채택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자기가 남보다 작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훌륭한 지위를 마련할 것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성 교회가 인준한 이러한 수도생활 양식을 양보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주께서 나를 부르신 것은 위력이 있는 수도회를 세우거나 이단자를 대항해서 싸우는 기관이나 대학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수도회는 어떤 명분이 뚜렷한 일을 해야 하거나, 방어해야 하므로 잘 조직되어 있어야 하고, 효율적이 되기 위해서는 강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우리들 작은 형제들에게 성교회 안에서 어떤 것을 만들어 내거나 개혁하거나 방어하기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복음의 양식을 따라 생활하도록 친히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생활하는 것, 단순하게 생활하는 그것입니다. 단지 생활하는 것뿐이지만, 그러나 온전히 생활해야 합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을 따르면서, 지배욕, 설비를 위한 온갖 걱정, 위력, 모든 개인적인 원의까지도 내어버리는 것입니다. 지난겨울 산 위에서 묵상하는 동안 이 점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습니다. 복음의 양식으로 생활하는 우리 작은 형제회를 다른 수도회의 조직적 원칙에 적용시킨다면 그와 동시에 우리 형제회의 양식이 파괴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복음의 양식을 따른 생활은 외적으로 어떤 규정을 짓거나 한정을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생활이 진정으로 복음적 생활 방식으로 사는 생활이라면 그 생활 자체에서 규칙이 자유로이 솟아오르고 그 안에서 발견되어야 합니다. 어떤 형제들은 더 명확하고 한정된 규칙을 나에게 요구합니다. 그러나 나는 벌써 그들에게 말한 것, 즉 교황 성하께서 작은 형제들의 생활과 규칙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준수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온전히 인가하신 그것밖에는 다른 것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날까지 여기에 아무것도 첨가하거나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은 주님과 같이 가난하고 겸손하게 살면서 모든 피조물에게 하느님의 왕국을 전하며 만일 어느 곳에서 그들을 박해하고 쫓아내면 다른 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서든지 환영하면 주는 음식을 그대로 먹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이렇게 생활한다면 유능한 수도회를 세우지 않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그들은 가는 곳마다 자유롭고 정다운 형제들의 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복음의 자녀들이 될 것이며, 그들의 앞길은 넓게 열려 있을 것이므로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고, 성령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실 것입니다.”


듣고 있던 클라라는 크게 감동되었으나 간신히 자기의 감정을 억제했다.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는 클라라의 내면에서 깊이 메아리치며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프란치스코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활기에 넘쳐 있었다. 허약하고 야위고 아무 볼품도 없는 사람이 그때는 초월적인 앎다움으로 빛났다. 그가 하는 말에는 힘이 있었고 위엄이 있었으며 위대한 정열이 그를 일으키고 비추어 주어 어느 한 예언자가 이야기하는 있는 것 같았다.


클라라는 그의 말에 감탄하고 동의하며 만족해하면서도 그 순간에 자신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을 잊어버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가 위해해 보이는 그만큼 그가 당하고 있는 고통 역시 뚜렷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의 마음이 가벼워질 것을 알고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어떻게 하면 프란치스코를 다시 평화의 길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완전히 자기 이야기에 빠져 눈이 아픈 것도 배가 고픈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다시 소생한 것 같았다. 생기있는 정열에 모든 고통이 사라져 버린 듯했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는 그 주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을 보기 위해 기쁘게 온 세상을 돌아다닐 계획을 세우며 자기의 허약한 몸은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체력은 그를 태우는 불길을 지탱해 주지 못했다.


그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갑자기 심한 피로가 덮쳐옴을 느꼈다. 피로와 함께 그의 영혼이 약해져 가는 듯이 느껴졌다.. 그때 검은 구름이 그의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한참동안 침묵이 흐른 다음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마치 자녀들로부터 버림받은 아버지와 같습니다. 그들은 이제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 때문에 부끄러워합니다. 나의 단순함은 그들을 창피스럽게 만듭니다. 클라라 자매, 주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자 클라라는 조용히 대답했다.


“모든 자녀들이 다 사부님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항상 사부님의 손을 잡고 계십니다.”


“하느님! 고독 중에 당신께 나아가는 지금 저는 참으로 무섭고 떨립니다. 만일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기만 한다면.....”


그는 한숨을 쉬었다.


“아마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하고 클라라가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클라라는 다시 말을 이었다.


“복음에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린 것에 비길 수 있습니다’하신 말씀을 사부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밀이 자랄 때 가라지도 나타났습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그 가라지를 뽑아 버릴 것인지 물었을 때,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느님은 우리처럼 두려움이나 자존심을 가지신 분이 아니시고, 우리와 같이 참을 수 없는 분도 아닙니다. 기다릴 줄 아시는 하느님, 오직 그분만이 기다릴 줄 아십니다. 무한히 착하신 아버지로서 기다리십니다. 하느님은 참을성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십니다. 그분은 항상 바라고, 끝까지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기 밭에 많은 오물이 가득 쌓여 있다하더라도, 비록 보기에는 흉하지만 마지막 날에 가라지보다 밀을 더 많이 거두게 되면 개의치 않으십니다. 우리들은 가라지가 어느 날 밀로 바뀌어지고 황금색 밀알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농부는 자기 밭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깥 모양만을 보시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시간과 자비로써 인간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모든 존재에게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모두에게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짐승들의 때는 사람의 때와 다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다르게, 모든 것 위에,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하고, 또 모든 것을 능가하는 하느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장은 우리의 심장과 같은 리듬으로 뛰지 않습니다. 그분은 당신 나름대로 활동하시며, 세세에 걸친 그분의 영원하신 자비는 절대로 낡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하느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때에만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클라라 자매의 말을 옳습니다. 나의 근심과 초조는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잘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하느님을 발견치 못하고, 하느님의 시간 속에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감히 하느님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꼭 같은 마음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하고 클라라가 말했다.


“하느님의 시간 안에 사는 것을 배우는 거기에 슬기의 비결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하고 프란치스코가 말하자


“그리고 무한한 평화의 샘도 있습니다” 하고 클라라가 덧붙였다.


또 다시 새로운 침묵이 흐른 다음 클라라가 말을 이었다.


“가령 여기 공동체 안에 어떤 자매가 잘못해서든지 혹은 조심이 부족해서든지 무엇을 깨뜨렸다고 나에게 말한다면 틀림없이 나는 그에게 주의를 주고 우리 관습에 따라 어떤 보속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수녀원에 불을 질러 수녀원 전체가 다 타버렸거나 혹은 거의 다 탔다고 한다면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사건은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니까요. 수녀원을 파괴시킨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깊이 걱정하기에는 진실로 너무나 큰 사건입니다. 하느님 자신이 세우신 것은 어떤 피조물의 뜻이나 일시적인 기분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훨씬 튼튼한 것입니다.”


“아! 만일 나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프란치스코는 한숨을 쉬었다.


“사부님께서 이 산을 향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장님과 같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나의 손을 잡고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뵈올 때 장님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고 클라라가 대답했다.


“아! 나는 지금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사부님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클라라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예,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정원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벌판에서는 당나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는 말을 계속했다.


“주께서 나에게 맡기신 이 큰 수도가족의 장래가 나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거나 내가 그것을 전적으로 맡아 걱정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일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자매가 그것을 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평화의 씨앗처럼 내 안에 자라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프란치스코는 며칠 동안 성 다미아노 성당에 머물면서 클라라의 보살핌 덕분으로 조금 기력을 회복했다. 이 수녀원의 평화 속에서, 또 움브리아의 따스한 봄빛 속에서 프란치스코의 근심과 불안은 사라진 듯했다. 그는 종달새의 노래 소리를 즐겨 들었다. 그는 깊고 끝없는 창공을 바라보며 그 속으로 사라진 종달새를 찾았다. 밤에는 정원 구석에 있는 오두막집에서 지내고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작은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수없이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이때처럼 아름답게 보인 적은 없었다. 마치 처음으로 별들의 아름다움을 별견한 것만 같았다. 별들은 밤의 깊은 침묵 가운데에서 밝고 선명하게 빛나면서, 하나같이 하느님의 시간에 속해 있으며, 개인적인 활동이나 원의 없이 다만 하느님의 리듬 속에 순종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아무것도 그들을 흐리게 할 수 없었고, 그들은 하느님의 평화 가운데 머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프란치스코는 다시 은둔소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산 위에 두고 온 형제들, 특히 큰 위험중에 있는 루피노 형제를 생각하였다.


벌써 부활절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형제들은 다시 만나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지내기 위해 서둘러 은둔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떠나려는 순간에 클라라가 프란치스코에게 말했다.


“사부님,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작은 것입니다. 우리 자매들이 지난 가을에 받아 둔 꽃씨인데, 참 예쁜 꽃이고 아주 쉽게 자라니, 가셔서 그 산 위에 심으십시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가 꽃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것이 그의 마음속에 있는 고통의 씨앗을 뽑아 버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프란치스코는 꽃씨 주머니를 받으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매는 나를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가서 이것을 심겠습니다. 하고 했다.


프란치스코는 레오와 함께 클라라와 그 자매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돌아오는 길은 프란치스코에게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의 걸음은 가벼웠으며,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그의 마음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계속 고통당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으나 전과 같이 그렇게 혹독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자주 클라라의 말이 생각났다.


“수도원을 파괴시킨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깊이 걱정하기에는 참으로 너무나 큰 사건입니다.”


이 말은 그의 영혼에 약간의 평온함을 가져다주었다.


얼마동안 걸어온 프란치스코와 레오는,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 밑으로 기어오르는 은둔소를 향해 나 있는 작은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어디서나 봄은 찾아와 있었다. 큰 나무들은 새싹을 내밀고, 연초록과 황금색의 작은 잎사귀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은 새들의 노래 소리와 어울려 즐거워하고 있었다. 나무 밑 축축하고 훈훈한 땅 속에서는 이끼와 죽은 잎사귀들과 오랑케꽃의 향그러운 내음이 풍겨왔다. 빨갛고 작은 시클라멘은 어디에나 즐겁게 피어 있었다.


이 모든 것 역시 태초부터 하느님의 시간 속에 살며 휴식하고 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땅 속의 생명과 함께 하늘의 별도 하느님의 시간 속을 벗어나지 않는다. 숲 속의 커다란 나무들은 창조 첫날과 같이 하느님의 입김으로 잎사귀들을 피우는 것이다. 그 때와 똑같이 가볍게 흔들이면서....


그러나 홀로 인간만이 태초의 시간에서 벗어났다.


인간은 자기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자기의 길을 걷고자 한다. 그때부터 인간은 휴식을 모르게 된다. 그저 권태와 불안으로 초조한 가운데 죽어 갈 뿐이다.


프란치스코와 레오가 걸어온 오솔길이, 그 산 언저리에 사는 농부들이 짐수레를 끌고 오르내리는 길을 가로지르는 곳까지 이르렀을 때, 그 마을에 사는 한 농부가 마침 큰 흰 소 두 마리가 끄는 달구지를 몰고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작고 뚱뚱하고 붉은 얼굴에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한 눈매를 가진 바오로였다. 그는 은둔소의 형제들이 애긍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주 들르는 한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형제들에게 매우 헌신적이었고 충직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자기가 버는 것보다 좀 지나치게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 어떤 갑작스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에 대비하여 부인이 그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마을에 내려갈 기회만 있으면 마치 잔치에 가는 것처럼 기뻐하였다.


“안녕하십니까?”그는 두 형제를 알아보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예, 안녕하십니까. 바오로씨?” 그를 알고 있는 레오가 인사를 받았다.


“수사님들을 만나게 되면 나는 항상 유쾌하답니다.”소를 멈추게 하면서 농부가 말했다.


“바오로씨, 지금 마을에 내려가시는 길입니까?” 레오가 묻자 그는


“그렇죠, 이 소의 발에 신을 신겨야 하고 짐수레도 좀 고쳐야 하거든요”하고는 어깨를 치켜올리며 덧붙였다. “그리고 나도 술맛을 좀 보아야 하니까요.”


그는 밝은 표정으로 익살스럽게 말했다.


착하고 아주 순박한 농부의 말에 프란치스코는 웃으며 재미있어했다.


“바오로씨, 참 솔직해서 좋군요. 좋은 포도주를 좀 마시는 건 해롭지 않겠지요.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너무 지나치지는 마세요.”


프란치스코가 이렇게 말하자 농부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프란치스코를 주의깊게 바라보더니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프란치스코 수사님이 아니십니까? 저기 은둔소에서 애긍을 청하러 온 수사님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예, 제가 바로 프란치스코입니다” 하고 프란치스코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아, 그렇다면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그만큼 착하게 되도록 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신뢰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에게 실망을 주면 안됩니다.”농부는 프란치스코의 어깨를 정답게 치면서 매우 친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오로씨, 하느님만이 착하신 분입니다. 나는 하나의 죄인일 뿐이지요. 잘 들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도 내가 받았던 것과 같은 은총을 받았더라면 그는 성덕에 있어 나보다 백 걸음이나 앞섰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의 말에, 농부는 농담처럼 물었다.


“나도 성인이 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바오로씨, 바오로씨도 나와 똑같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이 사랑을 믿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아! 우리들은 그런 모든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멉니다. 우리들을 좀 찾아봐 주십시오. 우리들에게는 그런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다시 뵙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소 잔등을 치며 다른 손으로는 형제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떠나갔다.


프란치스코와 레오는 곧 작은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첫 번 언덕위에 다다랐다.


산은 다시 푸르름을 되찾아 파아란 하늘 아래 그지없이 맑고 깨끗한 빛에 싸여 있었다. 그 주위에 올리브 나무로 덮인 작은 계곡들은 메마른 산비탈 사이로 난 작고 푸른 길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갓 피어난 수선화들이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다.


멀리 지평선에는 하늘을 배경으로 산맥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고 메마르고 둥근 거대한 산등성이 위로 햇빛이 가득 내려비치고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갑자기 외쳤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그리고 또 며칠만 있으면 이 모든 것 위에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이 찬란히 빛날 것이다. 레오 형제, 오묘한 신비 속에 빠스카의 알렐루야를 노래하자고 하는 온갖 창조의 무한한 속삭임을 듣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