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자의 슬기

아무것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가난한자의 슬기

Margaret K 2007. 5. 10. 01:43

아무것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은둔소의 형제들 중 프란치스코가 평화를 되찾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형제들은 사부의 마음속에서 고통이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이 평화는 그 고통의 모양이 바뀌어진 것일 뿐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이제 고통에 짓눌려 있는 그런 인상을 주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다시 밝게 열려 있었다. 낮에는 노래를 부르는 소리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형제들을 즐겁게 했다. 프란치스코는 깊은 심연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프란치스코는 사람이 죽지 않고 갈 수 있는 한도까지 멀리, 하느님께 가장 가까이 갔었다. 그는 밤에 혼자서 천사와 씨름을 했다. 그리고는 승리하여 지금 형제들에게 돌아온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상대할 수 없는 이와의 투쟁에 의하여 신비스런 표시를 지니게 되었다. 그의 시선에서 빛나고 있던 광채는 그의 표정에서 사라지고 모두 그늘져 덮여 있었으나, 하느님 스스로 그의 영혼 속에서 더 편하게 머무르시기 위하여 깊이 파고들어가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 신중한 표정은 지워질 수 없었다.


소나무 밑 숲속으로 통하는 작은 길에 살아 있는 듯 한 봄빛은 숲을 지나면서 약해져 아주 부드럽게 느껴졌다.


프란치스코는 그곳에 와서 수렴하고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는 아무 형식 없이 주로 듣는 것이었다. 그는 그곳에 와서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만족하였다. 프란치스코는 마치 사냥꾼처럼 망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 주위에 있는 것들과 생명체에 대하여 아주 작은 움직임에까지도 주의하여 어떤 현존의 표시를 발견하기 위해 기다리며 오랜 시간을 살아 왔다.


한 마리 새의 울음소리, 나뭇잎의 살랑거림, 다람쥐의 줄타기와 느리고 조용한 생명의 발생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신비스런 뜻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깊은 침묵을 지키면서 큰 존경심을 가지고 겸손하게, 아무것도 내버리지 않고 흐리게 하지 않으며 동시에 듣고 깨달을 줄 알아야 한다.


바람이 소나무 숲을 부드럽게 스쳐가며 아름다운 노래를 가늘게 불렀다. 프란치스코는 바람이 자기에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은 프란치스코의 친한 친구가 되었다. 바람 역시 지붕도 없이 항상 방황하며 사라져 가는 것, 이 세상의 이방인이며 나그네가 아닌가? 가난한 중에 가난한 바람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부유한 창조의 씨앗을 지니고 다닌다. 바람은 지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지만, 가는 곳마다 씨를 뿌리며 지나간다. 씨가 어디에 떨어질지 걱정하지도 않고 자기 일이 맺어 놓는 열매도 모르고 있다. 그는 심는 것으로 만족하고 풍성히 심는다. 바람은 아무 곳에도 애착하지 않고 무한한 공간과 같이 자유롭다. 성서의 말씀과 같이, 바람은 주님의 성령의 모상으로서 자기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프란치스코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 자기 안에 주님의 성령과 그 거룩한 활동을 자기 몫으로 가지고 싶은 원의가 커짐을 느꼈다. 이 원의가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무한한 평화가 넘쳤다. 그의 영혼의 모든 갈망은 이 숭고한 원의를 통하여 진정되었다.


어느 날 저녁 실베스텔 형제가 애긍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농가의 어머니가 위독하게 앓고 있는 아기에 대해 근심하는 것을 위로해 주느라 늦게 왔다는 이야기를 프란치스코에게 했다. 아기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무엇이든지 넘어가기만 하면 다 토해 버려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몹시 약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기를 구하기 위해 아무 손도 쓰지 못한 채 날마다 약해져 가는 아기를 들여다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어머니에게 있어서 가슴을 찢는 듯 한 고통이었다. 2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병으로 한 아기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절망하며 울고 있었다. 참으로 마음 아픈 정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불쌍한 부인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실베스텔의 말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간단히 말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 그는 혼자서 들과 숲을 지나 그 집을 찾아 나섰다. 그 작은 농가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낮은 초가지붕에, 가장 가난하고 가장 초라하게 보이는 집이라고 실베스텔 형제가 얘기했기 때문이다.


작은 마당에는 햇빛이 가득히 비치고 있었고, 잘 얻어먹지 못한 강아지가 프란치스코를 보고 짖어대면서 그 축축한 콧잔등으로 자꾸만 프란치스코의 손을 문질렀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문은 열려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늘 하는 대로 주께서 가르쳐 주신 ‘이집에 평화가 있기를’ 하는 인사를 하면서 문지방을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부인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문간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자 프란치스코는 즉시 그 부인이 이기 어머니인 것을 알았다. 아직도 젊은 부인이었으나 너무나 큰 슬픔과 비탄에 잠겨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바로 아기 어머니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실베스텔 형제로부터 부인의 아기가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기를 보러 왔습니다. 하고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바로 프란치스코 수사님이시군요. 하며 부인은 즉시 긴장을 풀었다.


“실베스텔 수사님께서 수사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좀 들어오시지요. 수사님.”


그리고는 허물없이 프란치스코를 방안 아기가 누워 있는 곳 가까이로 안내했다.


작은 아기는 눈을 뜨고 있었으나 얼굴은 백지장 같이 희어서, 생명이 있는 것같이 보이지 않았다. 프란치스코는 자애롭게 아기를 들여다보며 아기를 웃게 하려고 손짓을 해 보았으나 아기는 웃지 않았다. 아기의 큰 눈은 깊이 들어가 눈언저리에는 파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하느님께서 이 아기를 데려 가시려는 걸까요?” 부인은 비탄에 잠겨 말했다. “그러면 아기를 2년에 둘씩이나 잃어버리는 게 됩니다. 아, 안됩니다. 수사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어머니의 슬픔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프란치스코 자신도 몇 달 동안 이와 같은 슬픔을 맛보았으므로 누구보다도 이 부인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프란치스코 역시 자녀를 잃어버리고 자녀들이 날마다 쇠약해져 가는 모습을 보아 오지 않았던가. 그는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부인의 고통을 애처롭게 느끼며 깊이 동정하였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 프란치스코는 말했다.


“가엾은 어머니, 무엇보다도 신뢰를 잃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신뢰 이외에는 모두 잃어버려도 괜찮습니다.”


그는 그 자기에서 단순히 무슨 말을 해야 하겠기에 하는 것도 아니었고 또한 그저 입으로만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서 체험을 통해 우러나온 말이었다.


이 부인은 그것을 즉시 느꼈다. 틀림없이 여러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말들을 이 부인에게 했을 것이지만 이와 같은 방법이 아니었다. 부인은 지금처럼 그 말에 감명을 받은 적이 없었다. 지금 프란치스코의 그 말은 어떤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것이라 느껴졌다. 이렇게 진지하고 위엄이 있는 말투로 이야기하려면 아마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체험이 있고 많은 고통을 당해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으려면 절망적인 상태를 거쳐 그르칠 수 없는 참된 깊은 실현성을 지닌 단단한 땅을 되찾은 경험이 있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아기의 침대 곁에 있는 창문을 통하여 뒤뜰이 내다보였다. 꽃이 만발한 사과나무 그늘 아래 할아버지가 무릎 위에 작은 사내아이를 안고 이야기를 들여 주고 있었고 그 옆 풀밭에서는 작은 소녀가 고양이를 데리고 놀고 있었다.


“저기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두 아이들은 부인의 아이들입니까?”


프란치스코는 창문을 내다보면서 물었다.


“예, 저 아이들은 우리 큰 아이들입니다.”하고 부인이 대답했다.


“그 아이들은 건강해 보입니다.” 프란치스코가 말하자 부인은 “예” 하고 약간 표정을 달리하며 말했다. “그 아이들의 건강은 아주 좋습니다. 나는 사실 불평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예,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하고 프란치스코가 받아서 말했다. “부인께서는 하느님께 감사하시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정말입니다”하며 부인은 말을 이었다. “그러나 건강하고 잘 자라는 아이가 열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내가 잃어버린 안 아이의 자리를 채울 수 없습니다. 한 아이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 하나하나는 항상 독특한 존재입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없어진다면, 남아 있는 애들을 다 모은다고 해도, 아무리 수가 많더라도 그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 때문에 고생할수록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애정을 쏟는 것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초가지붕 밑에서 쥐가 종종걸음을 치며 달려갔다. 밖의 작은 뜰에서는 할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이야기 중의 제일 감동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더욱 엄숙하고 신비스러워졌다. 그리고 얼굴에는 극적인 표정을 띠고 있었다. 소녀는 갑자기 고양이를 내버리고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와서는 아양 섞인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졸라대었다.


“다시 시작해, 할아버지, 다시 시작해요, 앞의 이야기를 못 들었어.”


그러자 남자 아이는 소녀의 팔을 떠밀면서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그냥 계속해요.”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못 들을 척 아주 조용히 자기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기는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손을 들어 아기를 강복하고 조용히 물러나왔다.


“아기를 자게 둡시다. 곧 다시 아기를 보러 오겠습니다.”


“지금 애기 아빠는 밭에 나가고 없습니다. 밤이 되어야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가시기 전에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십시오.”


“아니, 부탁입니다. 그대로 두십시오. 하고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지금 방해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의 즐거움을 망쳐 주게 될 테니까요.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이야기를 듣지 못한 어린시적은 햇빛 없는 아침과 같고 뿌리 없는 어린나무 같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 어머니께서 해 주셨던 이야기를 저는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순수한 프로방스 사람이었으므로 프랑스의 전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긴 겨울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우리는 어머니 곁에 들어앉아서 (원탁의 기사)에 나오는 요술사 매를랭과 요정 비비안느가 살았던 브로셀리 안느 숲속의 놀라운 이야기를 무서워하면서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어떤 때는 멋진 수염을 가진 샤를마뉴 대왕과 그의 용감한 기사 롤란드와 올리비에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샤를마뉴 대왕이 말을 타고 귀족들에게 호위되어 가는 아름답고 감미로운 그 나라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것들은 나의 한 부분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울려오는 것을 듣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이 지상의 보잘것없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런 것들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아무것도 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정들까지도... 그들은 하느님의 딸들입니다.”


부인은 프란치스코의 엄숙하면서도 매우 부드러운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특별히 그녀에게 감명을 준 것은 프란치스코는 말 속에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끝없는 선량함, 그의 전 존재에서 빛나며 사방으로 펴져나오는 그의 선량함이었다. 프란치스코를 바라보며 듣고 있는 동안 세상은 그녀에게 다른 의미와 깊이를 지니고 나타났다. 세상은 넓고 깊다. 세상은 감추어진 조화로 충만하다. 아무것도 지나친 것이 없고 모든 것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다 같은 근원적 선량함 속에 뿌리박고 있음을 믿을 수 있었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현존하신다. 놀라운 요정의 이야기 속에도 계신다.


부인은 이러한 것들을 느끼며 프란치스코에게 말했다.


“저녁에 한 번 더 찾아오셔야겠습니다.”


“오래지 않아 다시 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는 숲과 밭을 지나 떠나갔다. 이제 그의 마음속에 이 어머니의 고통을 받아가지고 가는 것이다.


은둔소에 돌아와서 밤이 깊도록 오랫동안 기도했다. 그것은 그의 습관이었으나, 그날 저녁에는 자기가 방문했던 불쌍한 이들에게로 생각이 쏠렸다. 그는 주님께서 그들의 가난을 없이해 주시기를 청하지 않고, 가난과 함께 기쁨을 주시기를 청했다. 가난과 기쁨이 함께 있는 곳에는 탐욕도 없고 인색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도 지치고 실망해 있는 그 불쌍한 부인이 확실히 자기에게 어떤 도움을 기대하고 있음을 되새겼다. 또한 그와 같이 지치고 비탄에 잠긴 다른 모든 어머니들도 생각했다. 이 세상의 고통은 마치 밤과도 같이 밑도 없고 끝도 없이 무한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