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자의 슬기

태양이 빛나는 것을 누가 막으랴. /가난한자의 슬기

Margaret K 2007. 5. 10. 01:44

태양이 빛나는 것을 누가 막으랴.


“오래지 않아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부인에게 말했던 프란치스코는 며칠 후 저녁때 레오 형제와 함께 그 앓는 아기를 다시 보러 갔다. 그리고 전에 성 다미아노 수녀원에서 클라라 자매가 주었던 꽃씨 주머니를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꽃을 아기 방 창문 아래에다 심을 테다. 이것은 그들의 눈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 줄 것이고, 오두막집이지만 곁에 꽃이 피면 그들은 더욱 좋아할 것이다. 어린 시절에 꽃을 보았던 사람은 아주 다르니까.’


프란치스코는 레오의 뒤를 따라 숲을 지나는 동안 이러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 대자연 속을 지날 때 그들은 언제나 침묵 중에 걸어가는 습관이 있었다. 어느덧 급류가 흐르고 있는 계곡 아래 비탈길까지 이르렀다. 그곳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이 넘치는 아늑한 곳이었다. 물은 바위 위를 튀어서 새하얀 물보라를 공중에 일으키며 기뻐 뛰고 있었다. 그러면서 근방에 있는 숲속까지 시원하게 해 주었다. 바위 사이에 여기저기 몇 그루의 노가주나무가 자라나 물거품 위로 불쑥 나와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그 급류로 가까이 가면서 외쳤다.


“우리 자매인 물이여, 너는 너의 정갈함으로 하느님의 순수하심을 노래하고 있구나.”


레오는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건너뛰며 빠르게 강을 건넜으나 그를 따르고 있는 프란치스코는 더디었다. 레오는 강 저쪽에서 프란치스코를 기다리면서, 잿빛의 커다란 바위틈을 빠져나와 황금빛 모래 위로 급하게 흘러가는 정갈한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란치스코가 가까이 왔을 때까지도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이 광경에서 떠날 수 없다는 듯이 그대로 서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슬픈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형제는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모양이군요. 하고 프란치스코가 말을 건넸다.


“아, 만일 우리들이 이 물과 같은 순결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다면 우리도 자매인 물의 넘치는 기쁨과 저항 할 수 없는 정영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며 레오는 감회에 젖어 있었다.


무한한 순결 속에 그침 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는 우울하게 서 있었다.


“갑시다.”


프란치스코는 레오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들은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프란치스코는 레오에게 물었다.


“형제는 마음의 순결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한 과실을 지니지 않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레오는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형제가 슬퍼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란 항상 자신을 꾸짖어야 할 과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예,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내가 마음의 순결을 보존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때 실망하게 됩니다.”하고 레오가 말했다.


“아 래오 형제, 나를 믿으십시오. 형제는 영혼의 순결에 대하여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눈을 하느님께로 향하고 하느님을 찬미하십시오. 그리고 하느님께서 모든 성덕 자체이시라는 것을 기뻐하며,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감사하십시오. 작은 형제, 바로 이것이 마음의 순결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가 이렇게 하느님께로 향하게 되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느님과의 일치에 있어서 어떠한 상태에 도달해 있는가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완전하지 못하다고, 또 자기에게서 죄를 발견했다고 슬퍼하는 것은 아직도 인간적인 감정이며, 너무나 인간적인 것입니다. 형제의 시선을 높이 올려야 하며 훨씬 더 높이 올려야 합니다.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은 무한하시며 그의 광채는 무궁무진하십니다. 마음이 순결한 사람이란 생활하시고, 진실하신 주님을 끝없이 흠숭하는 자입니다. 마음이 순결한 자는 하느님 자체이신 생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온갖 비천함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영원하신 기쁨과 무한한 순결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모든 것에서 이탈하고 동시에 충만해 있습니다. 그에게는 하느님이 하느님이신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로써 그는 온전한 평화를 얻고 또한 충만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자신이 그의 모든 성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노력하라고 하셨고, 성실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레오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성덕은 자기 자신이 실현하는 것도 아니고 또 자신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성덕이란 먼저 자기를 발견하여 비우고 다음에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하느님의 그 충만하심을 받아들이려고 자신을 개방하는 그 만큼 하느님께서는 그를 채워주러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허무를 받아들이며,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창조하실 수 있는 자유로운 자리가 더욱더 마련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주께서는 누가 당신의 영광을 빼앗아 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주님이시고 오직 한 분이시며 그분만이 거룩하십니다. 하느님은 가난한 이를 붙들어 주시고 그 비참함에서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시기 위해 당신 백성 으뜸들과 한자리에 있게 하시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그의 영혼의 천국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레오 형제, 하느님의 영광을 관상하고, 하느님이 하느님이신 것을 초월하시는 하느님의 완전무결하심을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의 영원한 젊음을 찬미하며, 하느님 그 자신으로 인하여 감사드리고, 하느님의 변함없으신 자비로 인하여 감사드리십시오. 이것이 주님의 성령께서 끊임없이 우리 안에 불어넣어 주시는 사람의 가장 깊은 요구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만이 마음이 순결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순결은 애써 노력하고 긴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게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레오가 다시 물었다.


“단순히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 쓸어버려야 합니다. 격심한 실망감마저도 버리고 자리를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가난하게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를 누르고 있는 것, 우리 잘못에 대한 무거운 짐까지도 모두 버려야 합니다.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창공에 도취되어 있는 종달새처럼 자기 자신을 망각하게 됩니다. 그때에 모든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고, 완덕에 대한 갈망은 오직 하나, 하느님만을 원하는 순수한 원으로 바뀌어집니다.”


레오는 사부 앞을 걸어가면서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걸어 갈수록 차차 마음이 가벼워지고, 큰 평화로 넘치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작은 농가 앞에 다다랐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부인은 즉시 그들을 알아보고 나와서 맞아들었다. 집 문턱에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부인의 얼굴을 빛나고 있었다.


“아, 수시님.”


그녀는 감격어린 목소리로 프란치스코에게 말했다.


“제 예감에 오늘 저녁에 수사님께서 꼭 오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기다리고 있던 참입니다. 저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기는 많이 나았습니다. 며칠째 음식을 조금씩 먹고 있습니다. 수사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감사를 받아야 하실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프란치스코는 감격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와 레오는 나지막한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가 아기가 누워있는 침대를 들여다보았다. 아기는 프란치스코를 향하여 귀엽게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아주 황홀해 했다. 아기는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때 할아버지가 자기의 다리를 붙잡고 종종걸음을 치는 큰 애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키가 훤출하게 크고 조용한 얼굴에 두 눈은 평온한 빛으로 가득했다.


“안녕하십니까. 수시님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어린 아기 때문에 몹시 걱정했었는데 지금은 건강해졌습니다.”


“참 기쁜 일입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노인은 다시 조용하고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아, 항상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권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지요, 우리는 항상 희망의 덕이 부족합니다. 젊었을 때 저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가끔 하느님께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하느님께서 내 청을 들어 주시지 않는 듯이 보이면 나는 불안해했고 화까지 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느님께 아무것도 따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런 태도가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았으니까요. 하느님은 태양과 같으십니다. 태양은 나타나 보이든 안 보이든 언제나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태양이 빛나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느님의 넘치는 자비는 더욱 더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선 자체이시기 때문에 선밖에는 원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태양과 다른 점은 태양은 우리가 없어도 빛나고 또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선량하심이 인간의 마음을 통하여 빛나기를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감탄할 만한 일이고 또한 무서운 일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량함은 그토록 위해한 것입니다.”


할아버지 무릎에 기대어 이 말을 하고 있는 프란치스코와 레오를 바라보고 있는 두 아이의 큰 눈에는 놀라움과 기대가 가득차 있는 듯 했다. 그들은 듣고 있다기보다는 보고 있었다. 그렇게 쳐다보는 것이 아이들의 듣는 방법이었다. 프란치스코의 얼굴과 이야기하는 말씨는 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프란치스코에게서 넘쳐나는 생기와 다정함은 그들의 마음을 한없이 기쁘게 해주었던 것이다.


“자 우리 모두 기뻐합시다.” 프란치스코는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작은 동생이 나았으니 기뻐해야지요.”


그리고 아기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고 있는 큰 아이에게 말했다.


‘이리 오너라. 얘야, 너에게 보여줄게 있단다.


그는 아이의 팔을 잡고 마당 모퉁이로 데리고 갔다. 모두들 그를 따라 나왔고, 그 아래 동생도 무엇을 하나 보려고 얼른 따라 왔다.


“내가 꽃씨를 가지고 왔는데, 이 꽃은 참 예쁜 꽃이란다. 그런데 어디에다 심을까?”


프란치스코는 꽃씨 주머니를 아이에게 내보이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사방을 들러보았다. 마침 담 밑 창문 아래에 옛날에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던 여물통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돌로 된 긴 여물통이었는데 오래되어 그 안에는 흙과 마른 나무 잎사귀와 잡초들이 많이 돋아나 있었다.


“이 여물통이 꼭 알맞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즉시 거기에 있는 잡초를 뽑아내고 흙을 파서 꽃씨를 뿌렸다. 그들 모두의 눈은 보이지 않게 떨어지는 꽃씨를 보려고 애를 쓰면서, 바빠 왔다 갔다 하는 프란치스코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소년이 호기심에 끌려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걸 심어요?”


프란치스코는 씨뿌리기를 계속하면서 “왜냐하면, 나중에 꽃이 햇빛을 받고 피어나서 아름답게 웃는 것을 보면 너도 같이 웃을 것이고, 하느님은 참 예쁜 것을 만드셨다고 말할 테니까” 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 작은 꽃의 이름은 뭐에요? ‘ 하고 소년이 또 물었다.


“아, 그것은 잘 모르겠는데, 네가 좋다면 ‘희망’이라고 부르자, 너 그 이름을 외우겠니? 이것은 희망의 꽃이다.”


작은 소년은 감탄하여, 똑똑한 발음으로 희, 망, 하고 외웠다.


그때 아이들의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키가 작고 뚱뚱한 그는 회색 겉옷을 입고 있었는데, 열어젖혀진 옷깃 위로 얼굴은 검게 타 있었고 다리는 뽀얀 먼지로 뒤덮이고 걷어붙인 소매 아래로는 튼튼한 구릿빛 팔이 보였다. 그는 하루 종일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미소를 가득히 머금고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수사님들? 오늘 저녁에 오시기를 참 잘하셨습니다. 오늘은 마침 제 일이 일찍 끝났습니다. 그런데 수사님들 우리 아기를 보셨지요.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요,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그는 단순하면서도 강했다. 그의 피로함도 이러한 힘 있고 조용한 인상을 지워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정중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거절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다정하게 형제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였다.


“수사님들, 오늘 저녁 식사는 여기서 하시겠지요?”


그리고는 물러가려는 듯이 “잠깐만 제 얼굴에 물을 좀 끼얹고 오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잠시 후, 씻고 돌아온 그는 형제들에게 식사하러 들어오기를 청하였다.


식사는 짙은 수우프와 약간의 채소뿐인 매우 간단한 것으로서 프란치스코가 좋아하는 그건 가난한 사람의 식사였다.


식사 후 그들은 모두 집 뒤에 있는 뜰로 나갔다.


낮의 폭염은 가시고 해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러나 찬란한 태양광채는 아직도 그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있는 건너편 언덕 주위에는 검게 단장한 큰 사이프러스 나무 몇 그루가 길고 좁다란 그림자를 들판에 드리우며 금빛과 오렌지 빛과 장미 빛으로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온화하고 조용한 저녁이었다. 가족들은 함께 사과나무 밑 풀밭에 나와 앉아서 모두 프란치스코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얼마 동안 침묵이 흐른 후 아버지가 말을 시작했다.


“제 아내와 저는 얼마 전부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좀 더 완전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들은 아이들을 버리고 수사님들과 같은 생활을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프란치스코는 간단히 대답했다.


주께서 불러주신 여러분의 신분 안에서 거룩한 복음의 가르침을 준수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하고 아기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예를 들면, 주께서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당신들 중에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말씀을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공동체에 대하여 하신 말씀인데 가정도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은 모든 가족들이 자기에게 순종하므로 제일 높은 사람처럼 생각되겠지만 그럴수록 가장 낮은 자처럼 행동해야 하며 자기 가족의 종과 같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서로 자기가 그 입장에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여 그만한 친절로써 서로를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모두 사람에 대해여 양선하고 자비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들 중에 누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도 화를 내지 말고 매우 인내롭고 겸손하게 타일러 주며 온유하게 참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복음을 따라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진실로 주님의 영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일을 하려고 꿈꿀 필요는 없습니다. 항상 복음의 단순함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특히 이 단순함을 진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다시 계속했다.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복음 안에 주께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도와 성무일도를 길게 외우고 육신을 거슬러서 절제와 고행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대하여 모욕적인 것 같은 말 한 마디를 듣거나 어떤 하찮은 것을 빼앗기게 되면 즉시 불쾌해하고 마음의 안정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실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며 자기의 뺨을 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를 들 만한 것이나 실천에 옮길 만한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복음 안에 서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복음적 성덕을 가지지 않고는 진실로 복음적인 덕 한 가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거스르게 되면 다른 모든 것을 다 거스르게 되고 마침내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겸손하지 못하면서 거룩한 복음적 가난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먼저 자모이신 성 교회와 모든 피조물에게 복종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진실로 겸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 대한 큰 신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어린이와 같은 정신이며, 평화, 자비, 기쁨의 정신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오랫동안 이 점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순박하고 마음이 열려있는 그 사람들은 기쁜 마음오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벌써 밤이 다가와 어둠은 굵은 매듭이 많은 나뭇가지에 걸려 사과나무를 어두컴컴하게 둘려싸고 있었다. 공기는 어느덧 조금씩 서늘해져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기대어 웅크리고 있던 두 아이들은 때때로 천진스럽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뒤틀기도 했다. 프란치스코는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서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시원한 밤 공기를 마시며 걸어가는 것은 상쾌했다. 어두워지는 검푸른 밤 하늘에 별들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와 레오는 이윽고 숲속으로 들어섰다. 달이 떠올랐다. 달빛은 나무 꼭대기에서부터 긴 나뭇가지와 잎들 사이로 흘러 귤나무와 고사리 잎새, 그리고 은구슬을 뿌리고 있는 나무 밑 작은 풀까지 비추고 있었다. 숲속은 어디든지 달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푸르고 부드럽게 감싸 주는 듯한 달빛은 끝없는 길을 저 멀리까지 보이게 해 주었다. 고목 둥치의 이끼와 바위옷은 별가루가 떨어진 것같이 반짝였다.


레오에게는 오늘 저녁 숲 전체가 빛과 어두움의 조화를 이루며 이처럼 아름답게 꾸미고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나무 껍질, 고사리, 박하, 그리고 보이지 않는 수없는 꽃들의 향기를 강하게 느꼈다.


프란치스코와 레오는 말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무성한 수풀 사이에서 갑자기 여우 한 마리가 그들 앞으로 뛰어나왔다. 여우는 달빛이 가득한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었는데 그 적갈색 털은 달빛을 받아 타는 듯이 붉게 빛났다. 그리고는 작은 소리를 지르며 금방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숨어 있던 생명들이 잠을 깨었다. 여기 저기서 부엉이가 울고, 앞으로 두껍게 덮여있는 나무 밑에서는 살랑거리는 소리가 끝없이 들려왔다.


프란치스코는 하늘을 바라보며 멈추어 섰다. 밤 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박혀 반짝이고 있다. 별들도 살아 있는 것같이 보였다. 말할 수 없이 맑고 안온한 밤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숨을 크게 들어쉬면서 숲의 향그러움을 마셨다. 그의 주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 보이지 않는 오며한 생명들은 그에게 있어 암흑이나 불안의 세력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밤이 무서움이나 불투명한 성질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오히려 빛이 되어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착하심을 투명하게 나타내 보여 주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는 다시 즐겁게 길을 가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하느님의 양선하심, 위대하고도 강한 하느니므이 양성하심에 사로잡혔다.


“주여, 당신은 선이시며 모든 선이시며 지상 선이시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가장 감미로운 맛이옵나이다.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시오며, 위대하시고 감탄하올 주님이십니다.”하고 그는 되풀이했다.


그는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 곡에 맞추어 이것을 노래하였다. 그리고는 땅에서 나무 토막 두 개를 주워, 바이올린을 켜며 다니는 사람 모양으로 하나는 왼쪽 어깨에 걸고 다른 하나는 오른손에 잡고서 바이올린 켜는 흉내를 내었다. 레오는 그를 바라보았다. 프란치스코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걸으며 노래하며 반주하는 몸짓까지 해 가며 길을 갔다. 레오는 따라가기가 힘이 들었다.


문득, 프란치스코는 걸음을 늣추었다. 레오는 사부의 변한 얼굴을 놀라서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변해있었다. 그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그것은 비탄에 찬 것이었다.


‘아, 내 사랑의 사랑 때문에 당신이 죽으셨으니 당신 사랑의 사랑 때문에 나도 죽을 수 있게 하소서’하고 그는 울부짖었다.


레오는 프란치스코가 그 순간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를 뵈옵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께서 오랜 시간 동안 임종의 고통을 겪으시며 십자가상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오고가는 투쟁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진맥진해 계심을 프란치스코는 보았다. 그의 기쁨은 거기에까지 비약했던 것이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나무토막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마침내 깊은 밤 숲속에 맑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은 선이시며 모든 선이시며 위대하시고 감탄하올 주님이시옵고 자비로운 구세주이시나이다.”


기쁨 중에 일어난 이 갑작스런 행동은 레오를 놀라게 했다.


십자가상의 주님의 모습이 프란치스코의 기쁨의 원천, 지극히 순결한 기쁨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음을 레오는 감지했다. 그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운 모습은 그의 걸음을 비추어 주었고 그에게 창조의 신비를 드러내 보여 주었으며, 이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죄악과 비열함이 하느님과 완전히 화해되고 모든 사물의 근원이 지극히 선하신 분으로 가득차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프란치스코의 얼굴은 어린이와 같은 표정으로 다시 빛났다. 그의 눈에는 모든 창조가 지금 막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순수함으로 넘치고 있는 듯이 보였고, 존재의 신비로움은 그 시초의 싱싱한 맛을 하느님께 바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들이 숲속의 빈터를 지나서 숲 기슭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 살고 있던 사슴떼가 일어났다. 사슴들은 머리를 쳐들고 서서 자유롭게 노래하며 지나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때 레오는 어떤 특별한 시간에 살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참으로 오늘 저녁 이 숲은 어떤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 모든 나무들과 짐승들, 그리고 별들까지도 형제처럼 우정에 찬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자연은 오랫동안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수천 년 동안 기다렸을 것이다. 이 저녁, 이 자연은 그 신비스런 본성에 의하여,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와야 할 사람을 알아보았다.


지금 프란치스코는 자연 속에 있으면서 자연에게 그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