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자의 슬기

들에는 종달새 노래 /가난한자의 슬기

Margaret K 2007. 5. 10. 01:42

들에는 종달새 노래


성주간을 맞이하였다. 모든 신자들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신비를 장엄하게 지내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일을 중지하고 논쟁도 그쳤다. 사람들은 전례적 기도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이것 역시 일이나 논쟁과 마찬가지로 생활의 일부를 차지하는 것이지만 보다 더 심오한 부분인 것이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씻겨져야 한다. 인간이 새롭게 되고 젊어지고 부활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신체적인 욕구라고도 할 수 있다. 가장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까지도 사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신자들을 열심히 주님의 성혈을 마시고 새로운 순결과 새로운 열성으로 가득차게 되는 것이다. 그때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다시 푸르름을 입고 새 봄을 맞이한다.


은둔소에서도 빠스카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도 역시 자신들을 새롭게 할 필요를 느꼈다. 성 목요일에 프란치스코는 만찬을 함께 하기 위해 형제들을 초대했다. 형제들은 모두 성체를 영함으로써 미사의 희생에 일치하고, 그 다음에 함께 모여 형제애를 나누는 식사를 하기로 했다.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을 초대하면서, 이 사순절 동안 공동체에서 떨어져 있었던 루피노 형제를 특별히 생각하였다.


레오는 프란치스코의 초대를 전하기 위해 루피노 형제를 찾아갔다.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전하시오. 나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그를 따르지도 않을 것이고 여기 내 방에만 머물러 있겠소, 프란치스코의 변덕스러운 생각을 따르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더 확실한 구원의 길이라고 주께서 직접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말을 듣고 대단히 마음이 아팠다. 그는 루피노를 오게 하려고 즉시 실베스텔 형제를 다시 보내 보았으나 루피노는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거절하였다.


그래서 그가 없는 채로 미사를 시작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부재는 프란치스코를 매우 괴롭게 했다. 거양성체 전에 프란치스코는 급히 루피노를 부르러 세 번째로 형제를 보냈다.


“그에게 가서, 적어도 그리스도의 몸을 뵈옵기 위해서라도 오라고 하시오.”


그러나 루피노는 자기가 걸터앉아 있는 그 바위와도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영성체가 끝난 다음 프란치스코는 슬픔을 참을 수 없어 밖으로 나가 울었다.


“주여, 저의 순박한 양을 언제까지 그릇된 길에서 헤매게 하시렵니까?” 그는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루피노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자신이 직접 찾아갔다. 루피노는 프란치스코가 나타난 것을 보자 흠칫 놀랐으나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루피노 형제, 어찌하여 이토록 내 마음을 아프게 합니까? 세 번이나 불렀지만 모두 다 거절을 하였습니다. 오늘 같은 날에 어째서 그러는지 이야기 좀 해 보시오.”


프란치스코는 애원하였다. 그를 나무라는 투는 전혀 없었다. 어머니와도 같은 애틋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그 순간 그의 전 존재는 루피노를 향하고 있었다. 형제의 얼굴의 작은 표정 하나까지, 숨을 죽여 가며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 형제의 마음을 풀어 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루피노는 반은 퉁명스럽고 반은 거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려 드렸습니다. 나는 당신의 그 환상을 따르는 것보다 은수자들의 생활을 따르는 것이 더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내가 당신의 말을 듣는다면 나의 묵상은 계속해서 분심이 될 것입니다. 지난날 당신이 나를 여기저기 강론이나 나환자 간호를 위해 보냈을 때도 그랬으니까요, 아닙니다. 주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는 모든 인간과 모든 것들로부터 멀리 떠나 고독 속에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주께서 자기 형제들과 함께 빠스카 만찬을 들기를 간절히 원하신 오늘, 우리와 함께 지내는 기쁨을 거절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나는 분명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혼자 있고 싶습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는 조용히 말했다.


주님은 당신의 형제들이 있는 그곳에 계십니다. 자, 루피노 형제, 간절히 부탁하니, 사랑이신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나를 기쁘게 해 주십시오. 모든 형제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제들은 당신 없이 식사를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좋아요, 당신이 그렇게까지 내가 가기를 고집한다면 가겠습니다.”


루피노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후닥닥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시 투덜거리면서 “그러나 나는 나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되돌아오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프란치스코는 아주 평온한 얼굴을 보여 주었다. 루피노를 자기 곁에 앉게 하고 마치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며, 루피노가 몸만 와 있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실제로 와 있는 것같이 대해 주었다. 또한 그를 나무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더욱이 프란치스코는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교훈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비천함을 잘 알고 있는 때문이었다. 그리고 특히 그는 너무나 단순하였다. 그의 말, 그의 태도는 결코 외적인 것만이 아니었고 내적인 깊이와 열심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충만한 생활과 선량함도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고유한 리듬을 따라서 밖으로 풍겨 나오는 것이었다.


루피노는 자기를 그렇게 맞아 주는 데 감동되었다. 그는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그 생각은 하느님께서 일으켜 주신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것을 끝까지 따라야만 한다.


그는 아주 무뚝뚝한 표정으로 형제들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그의 표정은 어둡게 닫혀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떠나가는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한 번 뒤돌아볼 것을 기대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 순간에 루피노가 만일 뒤를 돌아다보았다면 자기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프란치스코를 보았을 것이다. 넓게 벌린 두 팔은 그를 떠나보낼 수가 없었고, 그가 길을 꺾어서 돌아갈 때까지 따라가며 지켜 주었다.


그러나 루피노는 사라져 버렸다.


프란치스코는 오랫동안 그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슬픔에 잠겨 힘없이 팔을 떨어뜨렸다.


그는 루피노를 형제들 가운데 데리고 올 수 있었기 때문에 한 순간 즐거웠으나 이 즐거움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보았다. 자기 아이가 자기에게 등을 돌리고 자기를 버리고 갔다. 이런 일이 앞으로 얼마나 더 계속될 것인가?


프란치스코는 밖으로 나가 바위 위에 앉았다. 숲속에서는 뻐꾸기가 울고 공기는 훈훈하고 황금빛으로 빛났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에게는 태양도 보이지 않고 뻐꾸기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루피노 형제와 다른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에 떨고 있었다. 다른 모든 형제들을 생각했다. 첫 동반자들 중의 하나인 루피노까지 그렇게 쉽게 자기를 떠나갔다면 자기를 거의 알지도 못하는 많은 형제들에게서 어떻게 성실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클라라가 치료해 주었던 그의 영혼의 상처는 갑자기 다시 열리어 피를 쏟았다. 십 오년간 노력하여 격려하며 교훈한 것이 지금 이 결과를 위해서였던가? 이제까지 수고한 것이 헛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실패다. 견디기 어려운 실패다. 자기 개인의 명예를 위한 그런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께 범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명예에 관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 이튿날인 성 금요일, 프란치스코는 그날 하루를 고독 속에서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지내기로 했다.


그는 이 묵상을 하기 위해서, 자기 영혼에 넘치고 있는 고난에 맞게 험악하고 거친 자리를 택했다. 주께서 느끼셨던 그러한 감전에 들어가기를 갈망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외우시던 시편을 천천히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각 구절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이 자기 마음 속 깊이 느껴지게 했다. 언제나처럼 주의 말씀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처음 이 시편을 외울 때에는 슬픔과 무거움을 느꼈지만, 마지막에는 그 시편 말씀이 그를 구해 주었고 이끌어 주었다.


“내 하느님, 내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자신이 완전히 고독을 이렇게 표현하신 주님의 그 감정을, 프란치스코는 이때처럼 강하게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괴로워하시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지금처럼 이 말씀을 깊이 알아들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몇 달 동안 그는 하느님의 얼굴을 찾고 있었다. 몇 달 동안 하느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수도회에서 떠나신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왔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의 고통이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즉, 하느님께서 부재하시는 듯 한 느낌,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선을 향한 의지가 가혹한 힘의 장난에 의하여 부서지고 밀려나게 되는 터무니없는 사건과 운명이 전개되는 실패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편의 말씀은 서서히 프란치스코 안에 침투되어 들어갔다. 그 말씀은 그를 자기 자신에게로 내던지지도 않았고 고통 안에 가두어 두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시 안의 더 깊은 곳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통으로 향하게 하였다.


그는 이제까지 이 고통의 외적인 것밖에는 관상하지 못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 고통의 내면을 알아보았고, 거기에 참여하였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이 고통을 개인적 경험으로 체험한 것이다. 적어도 이번만은 완전히 그리스도와 같이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모든 것에 있어서 주님을 본받기를 갈망해 왔었다. 회개했을 때부터 쉼 없이 노력해 왔었다. 그러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보다 더 주님을 철저하게 닮은 적은 없었다. 그는 어디까지 가게 될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인간은 진실로 자기가 체험한 것밖에는 모른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맨발로 지팡이도 전대도 식량자루도 여벌옷도 없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시작이며, 그 길에 들어서는 것에 불과하다. 끝까지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손이 자신을 가혹한 고독의 심연으로 이끌어 가시도록 맡겨 두어야 하며, 사람의 아들의 그 가혹한 죽음을 맛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번 성 금요일은 프란치스코를 몹시 지치게 했다. 그는 이날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밤은 그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마치 고된 일이 끝났을 때 자기의 경작지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과 같은 조용하고 깊은 평화를 그는 맛보았다. 땅은 뒤집어엎어지고 흙덩이는 부서진 채 아무런 반항 없이 그저 양순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벌써 서늘한 공기가 땅에 스며들었다. 프란치스코는 은둔소로 돌아오면서 차츰 평화로 넘침을 느꼈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리스도는 죽으셨다. 그분은 완전히 포기 가운데 성부께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실패를 받아들이셨다. 그의 인간적 생명, 인간적 명예, 인간적 고통, 이 모든 것이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제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실제로 느끼며 체험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만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였다. 그의 전 존재는 오직 이 하느님의 실존 앞에 엎디어 있었다. 그는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을 예배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것도 거절하시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셨으며 죽음까지도 받아들이셨다. 극도의 가난과 모든 것을 맞아들이는 자세로 죽음을 받아들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를 영광으로 이끌어 가셨다.


멀리 산 위로 태양이 천천히 넘어가고 있었다. 햇빛은 프란치스코가 걷고 있는 숲을 비추었다. 나무들은 석양에 반사되어 빛나는 긴 줄무늬를 이루가 있었다. 깊은 고요가 천지에 깃들고 바람 한 점 없이 위엄에 깃든 평온한 시간이었다.


“하느님이 계시다. 그것만이 충분하다.” 프란치스코는 혼자서 속삭였다.


이러한 깨달음 속에 프란치스코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붉은 소리개 한 마리가 공중을 떠돌고 있었다. 홀로 조용히 하늘을 날았다.


“하느님 홀로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다. 하느님이 하느님이신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땅에서 말하는 것 같았다.


프란치스코는 자기 영혼이 날개처럼 가벼워지면서 동시에 든든해짐을 느꼈다. 그는 다시 되풀이했다.


“하느님이 계시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 단순한 낱말들이 이상한 광채로 그를 가득 채웠다. 그 말은 그에게 끝없이 메아리쳐 울렸다. 프란치스코는 귀를 기울였다. 한소리가 그를 불렀다.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자비로운 음성으로 마음속에 울려왔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아. 내가 하느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너의 걱정을 그쳐라. 내가 너를 양들의 목자로 세웠다고 해서 너는 내가 목자들의 으뜸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단 말이냐? 이 어리석은 사람아, 내가 너를 택한 것은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재주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내가 네 안에 행한 은총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내가 목자이고 주이다. 그러한 일은 내가 할 일이니 너는 걱정하지 말아라.”


“하느님, 하느님 당신은 보호자이시며 수호자이십니다. 위대하시고 감탄할 만한 주님이시여, 당신은 우리 위에 충만하십니다. 아멘, 알렐루야.”


프란치스코는 조용히 말했다.


그의 영혼은 평화와 기쁨으로 넘쳤다. 그는 행복스럽게 걸어갔다. 걷는다기보다는 춤을 추는 듯했다.


그는 멀리 마을이 보이는 언덕에 이르렀다. 주위의 언덕들과 지평선까지 펼쳐진 푸른 들이 내려다보였다. 그는 그 경치를 관상하기 위해 잠깐 멈추어 섰다.


한 언덕 위롤 소떼를 몰고 돌아오는 사람의 모습이 아주 자그마하게 보였다. 개들이 그 주위를 돌고 있는 모양 같은데 잘 알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가축들 가운데 한 마리가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갔다가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하여 빨리 이끌려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사람은 소리치고 개들은 짖었을 것이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진 높은 곳에서는 아무것도 들이지 않았다. 벙어리 무대였다. 그것은 다만 자연의 고요한 생명 안에 흡수되어 흐르고 있었다.


인간의 분주함도 바로 이러한 조화 속에서 정확한 몫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었다. 프란치스코는 말했다.


“하느님, 당신만이 위대하십니다.”


그리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날은 저물어 가고 안개는 계곡을 덮고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태초에 밤이 있기 시작했을 때부터 밤은 이러했을 것이라고 프란치스코는 생각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영원한 모상이었다.


은둔소 가까이에 이르자 레오가 그를 맞이했다.


“사부님께서는 오늘 저녁 퍽 명랑해 보이십니다.”


“오늘 저녁 내 안에는 밝은 하늘이 크게 열렸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종달새가 주님의 승리를 끝없이 노래하고 있습니다.”하고 프란치스코가 대답했다.


한 시간 후 프란치스코는 은둔소의 작은 기도소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자기 소매를 끄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뜻밖에도 루피노의 얼굴이 그를 향해 있었다.


“오 루피노 형제!” 프란치스코가 외치자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하며 루피노는 미소를 가득히 머금었다. “사부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이 아니고, 원하시면 며칠 안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제든지 형제가 원하는 때이면 좋습니다. 하고 프란치스코는 말했다. “내가 항상 형제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요. 그런데 루피노 형제, 당신은 기쁨을 다시 찾은 것 같습니다.”


“예, 사부님, 그래서 지체 않고 오늘 저녁 그것을 말씀드리려온 것입니다. 다른 것은 이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펄쩍 뛰면서 외쳤다.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그리고 루피노 형제를 포옹했다.




예배할 줄 안다면


은둔소의 부활절 예절은 기쁨 중에 거행되었다. 루피노 형제는 다시 공동체로 돌아왔고, 이전보다 훨씬 더 즐거워 보였다. 그는 어디서든지 봉사할 기회를 찾았다. 날마다 쓸 물을 준비하기 위해 아침 일찍 샘으로 물을 길러 나가는 일은 이제 그가 도맡았다. 그는 부엌일과 여러 가지 일들을 거들어 주었다. 그리고 애긍을 얻으러 가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런 행동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변화되어 보였다. 작은 공동체의 분위기는 큰 행복감으로 부풀었다.


부활 후 수요일, 루피노 형제는 프란치스코를 붙들고 자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부님,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사부님을 뵈러 왔습니다. 저는 아주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이제 돌아왔습니다. 지금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저는 제 성소의 뜻을 완전히 잃어버릴 뻔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좀 해 줘요” 하고 프란치스코가 부탁했다.


루피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는 할 말이 너무 많아 무슨 말을 먼저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두 형제는 말없이 은둔소에서 그리 멀리 않은 소나무 숲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마른 솔잎이 깔려 있는 길 위로 송진 냄새가 따뜻한 공기에 실려 은근히 번져왔다.


“저기 않습니다. 그게 이야기하기 쉬울 테니까.”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두 사람은 땅바닥에 앉았다.


루피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12년 전, 저를 형제들 가운데 받아 달라고 사부님께 청하러 왔을 때, 저는 사부님께서 실천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거룩한 복음 생활은 하고 싶었었습니다. 그때 저는 대단히 진지했습니다. 복음을 따르기를 진정으로 원했습니다. 형제들과 같이 사는 처음 몇 년 동안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지나갔습니다. 저는 이 새로운 생활이 저에게 요구하는 것을 열심히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저도 모르게 복음적이 아닌 어떤 상태로 이끌리고 있었습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저는 감수성과 제가 받은 교육을 통하여, 또 제 안에 살아 있는 기질 때문에, 이 귀족 가문에 애착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귀족들 사회에서 명예를 부여하는 가치 기준에 따i라 느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께로 온 후 극도로 가난하고 겸손한 생활양식에 적응에 가면서 저는 이 모든 가치 기준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진실로 제 존재랄 것이 사라진 것을 믿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것뿐이었습니다. 생활 양식과 맡은 일에 있어서는 많이 바뀌어졌습니다. 저에게는 큰 변화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깊이 인식하지는 못했어도 제 영혼의 가장 중요하고 큰 부분은 옛날 상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있을 때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나 물건을 계속 집에서 하던 대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부친의 성 안에서는 문간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것, 부엌에서 일하는 것, 일터에서 일하는 것 등은 일꾼이나 하인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작은 형제가 된 후에도 저는 문지기 일을 맡거나 부엌일을 하는 것, 애긍을 얻으러 가거나 나병환자를 간호하러 가는 것 등을 옛날의 사고방식대로 천한 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저는 자신을 낮추기 위해서 이러한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를 낮춘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렇게 하여야 복음적인 겸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형제회에 입회할 때 이러한 정신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몇 해가 지났습니다. 저는 설교에 재능이 없었으므로, 천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런 일들을 자주 맡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의무였기에 해야만 했습니다. 제 임무를 통하여 저는 낮추어졌고 정말로 굴욕을 느꼈습니다. 그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니, 마침내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설교하러 가는 형제들이 저를 자기들의 하인과 같이 취급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천한 가문의 출신이고 나이도 저보다 적은 형제들이 설교하러 간답시고 나에게 공동체의 일상적인 일들을 맡겨 두고 나가는 것을 볼 때 이러한 감정은 자꾸만 커 갔습니다. 어떤 때 그들 중의 누가 저에게 주의를 주거나 아니면 단순히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만 해도 화가 나고 불쾌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마음속에서 끓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지나면 조용해져서 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좀 더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기계적으로 그렇게 해 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했습니다. 그것이 수도생활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재단된 옷일 뿐이었습니다. 입을 수도 없으면서 입겠다고 애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는 그런 일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저의 생활, 저의 참된 생활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즉 제 자신을 다시 찾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제가 해야 할 일을 빨리 끝내고 고독 속으로 피해 가려고만 서둘렀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자유로움을 느끼고 다시 기운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제 임무를 깨달아 또 다시 형제들의 하인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허약해졌습니다. 그렇게까지 긴장한 것은 제가 어리석었던 탓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것은 해야 할 임무이기 때문에 했지, 마치 고생스런 삶을 사는 노예와 같이, 마음으로부터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자 식욕도 잃게 되었고 잠도 이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피곤한 몸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형제들에 대하여는 반감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주인이고 저는 그들의 노예라고 생각되었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누구도 참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내적으로 반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저는 천진스럽게도 주님께서 저에게 완전한 고독 속에서 당신께만 속해 있기를 원하신다고 진실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은둔소에 물러가 있을 허락을 사부님께 청했던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바로 이 자리에서 그 지긋지긋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제 생활입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는 조용히 대답했다.


“형제가 이야기한 이 모든 것에 대해 놀라지 않습니다. 어느 날 형제가 원하지 않는데도 내가 형제를 설교하려 보냈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형제를 자신 밖으로 나오게 하고 싶었고, 내 생각에는 형제 자신을 가두어 두고 있는 그 고독에서 나오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 그 일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할이만큼 모든 것이 밝게 보입니다.”


‘주께서 형제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께서는 우리를 각자를 이처럼 불쌍히 여기십니다. 우리들이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는 그 순간, 우리는 하느님의 시간에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합니다. 마치 철늦은 비가 길의 먼지를 잠 재우듯이 이러한 방법으로 하느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저는 지금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어떻게 형제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까?”


프란치스코의 질문에 루피노가 대답하였다.


“성 목요일, 우리들이 다 같이 식사를 할 때, 한 형제가 우연히 사부님의 말씀, 즉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기르고 사랑한다면 형제들은 더욱 자기의 영신적 형제들을 사랑하고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씀을 꺼내지 않았습니까? 나도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을 자주 들었었지만 주의하여 듣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이 말씀이 저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습니다. 그 말에 감동되어 나중에 돌아와 오랫동안 그것을 묵상했습니다. 가정에는 보통으로 여러 가지 일이 있는데, 하인들이 없는 가정에서는 어머니 자신이 부엌일도 하고 밥상도 차리고 집안에 소용되는 모든 것을 걱정하며 또 항상 방해를 받으면서도 그 일에 정신을 쏟고 있지 않은가 하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아무것도 자기를 해친다고 생각지 않으며 자기를 천한 지위로 낮춘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어머니는 자기를 하인처럼 여기지 않으며 자식들과 남편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서 섬길 용기와 힘이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때로 어머니도 피곤할 때가 있을 것이고 더러는 견디기 어려운 피로를 느낄 때도 있겠지만 항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가정이 있는데, 그 어머니는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피로한 가운데서도 행복과 평화가 넘쳐 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러자 저는 명백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복음적인 것이 아닌, 저의 사고방식에 따라 이끌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때 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는 일이 바뀐 것만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제 영혼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저의 시야는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주어진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즉시 형제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뛰어나갔습니다. 그 후 빛은 제 안에서 계속 증가되어 가고 있습니다.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새장에서 풀려 나온 새가 가볍고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프란치스코가 그에게 말했다.


“형제는 이제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진정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작은 형제가 무엇이며 복음에 따라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즉 모든 권리 행사를 자유로이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노예와 같은 정신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지셨던 가장 고상한 정신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소수의 사람만이 이것을 찾습니다. 이것은 은총이며 주께서 형제에게 주신 지극히 큰 은총입니다. 형제가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이 세상의 주인들은 권력과 지배욕에 의해 모든 것을 행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 역시 종의 지위를 자유롭게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같은 지배의 정신으로 사는 것이 됩니다. 그때 이 종의 신분은 그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고 그에게 원한을 품게 만듭니다. 이러한 짐은 참된 주님의 짐이라 할 수 없습니다. 복음에 의한 가난이란, 자기를 맨 끝자리에 두고 노예가 되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주님의 영혼과 정신으로써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모든 것이 변화합니다. 주님의 성령이 함께 계시면 마음에 원한이 생기지 않습니다. 원망할 여지가 없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을 때에는 나환자를 보는 것을 아주 싫어했었는데, 주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어 나를 그들 가운에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게 하신 후부터는 그들 곁에 갈 때 예전에 고통으로 여겨지던 것이 내 영혼과 육신의 감미로움으로 변했습니다. 주님의 성령은 고통의 신이 아니라 감미로움과 즐거움의 신이십니다.”


그러자 루피노가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 온 경험으로 보아 사람이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환상을 일으키기 쉬운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파렴치하게 자기의 본성적 감정을 주님의 감도하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환상을 일으키기란 아주 쉬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상이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확실히 그것을 드러내 보여 주는 표시가 있습니다.”


“무슨 표시입니까?”루피노가 물었다.


“그것은 영혼의 불안입니다. 물이 흐려지면 물은 그 자체가 순수하지 못함을 드러내 보이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불안이 넘치고 있으면 자기 행동에 영감을 주고 있는 근원이 순수하지 못하고 혼탁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의 성령에 의해서가 아니고 다른 것에 의하여 깊이 빠져 들어갑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 만족하고 있는 동안에는 자기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 진실로 하느님의 영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쉽게 자기 악습을 성덕인 듯이 높이 올리고, 사리사욕 없는 고상한 목적을 위한다는 구실로 자기 자신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는 자는 어떤 반발이나 반대를 받으면 그 가면이 떨어져 불안해지고 화를 내게 됩니다. 그 사람 뒤에서 ‘영신적’ 가면을 쓰고 있던 자신이 ‘육적’ 인간으로서 나타납니다. 즉 살아서 자기를 방어하기 위하여 밖으로 손톱을 곤두세우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안과 공격적인 태세는 인간이 주님의 성령에 의하여 인도되지 않고 다른 것에 의해 인도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은둔소의 종소리가 댕댕 울리기 시작했다. 성무일도를 드릴 시간이었다. 프란치스코와 루피노는 일어나 기도소를 향해 걸었다. 그들은 자유로운 사람으로 평온하게 걸어갔다.


갑자기 프란치스코가 루피노의 팔을 잡으며 멈추어 섰다.


“형제여, 당신에게 할 말이 있는데 들어 주십시오.‘


프란치스코는 잠시 침묵하며 시선을 땅으로 향하고 조금 주저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루피노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형제는 지배욕과 명예욕을 이기고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한 번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열 번, 스무번, 백번, 이기고 일어서야 할 것입니다.”


“사부님, 사부님은 저에게 두려움을 일으켜 주시는군요. 저는 과연 그런 싸움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고 루피노가 말했다.


“그러나 형제는 싸움을 함으로써 그것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예배함으로써 그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오직 하느님만이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깊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사실만으로 즐거워합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 그것만으로 그에게 충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자유롭게 해줍니다. 알아듣겠습니까?” 프란치스코는 부드럽게 말했다.


“예, 사부님, 알아듣겠습니다. 하고 루피노가 대답했다.

그들은 다시 이야기를 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기도소까지 몇 걸음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 프란치스코는 다시 말했다.


우리들이 예배할 줄 안다면 진실로 우리를 불안하게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큰 강물과 같이 평온하게 이 세상을 지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