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자의 슬기

더 깊은 암흑으로 /가난한자의 슬기

Margaret K 2007. 5. 10. 01:39

더 깊은 암흑으로


겨울에 산속의 은둔생활은 몹시 힘든 것이다. 고독은 더욱 심해지고 또한 두렵게 느껴진다. 모든 생명의 그림자가 사라진 그곳에 인간은 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오직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뜻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춥고 침울한 날 은수자는 하루 종일 자기 방에 갇혀 있어야 한다. 밖에 길이라고는 모두 눈에 덮여 버렸거나 아니면 차가운 비가 계속 내린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홀로 있을 뿐 어떠한 기교도 있을 수 없다.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한 책도 없다. 격려해 줄 사람도, 바라볼 사람도 없다. 거기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게 되고, 하느님 아니면 마귀에게로 이끌리게 된다.


그는 기도한다. 그리고 때로는 밖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귀도 기울여 본다. 그러나 그것은 새 소리도 아니고 눈 위를 몰아치는 겨울바람 소리뿐이다. 추위에 떨며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구걸하러 나간 형제가 무엇을 좀 갖다 주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은 추울 때 짐승처럼 오르라들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묵상하는 대신 불평을 하고 욕설을 하게 된다. 겨울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에게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들의 지붕은 추운 바람을 막기엔ㄴ 너무 낡고 앏다. 날카로운 북풍은 안으로 들어와 심장까지 파고들어 비참히 떨게 한다.


아무리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고 고생하며 바위와 같이 굳게 어려움을 대항하려 해도, 물어뜯는 듯 한 추위는 그보다 더 강하고 돌까지 깨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슬며시 유혹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올바른 판단력에서 나오는 것같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렇게까지 고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쓸데없이 추위와 배고픔을 완고히 견디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이 험악한 동굴에서 은둔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일까?”


그러나 열심한 영혼에게는 성덕 자체처럼 보이는 아주 좋은 의미의 유혹이, 더 고결하고 더 순수한 모양을 갖춘 유혹일 일어날 수 있다.


은둔소에 살고 있는 모든 형제들 가운데서 루피노 형제는 가장 프란치스코를 따랐던 사람이었다.


그는 몇 달 동안 프란치스코가 아무 반응도 없고 힘도 없고 기쁨도 없이 비탄에만 잠겨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프란치스코에 대해 크게 동정하는 마음을 가졌으나 결국은 자신이 불안해지고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가 잠겨 있는 이 비탄과 극도의 쇠약 상태는, 루피노에게는 거북하게 느껴졌고 부당하게 보이며 조금씩 의심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내가 믿고 있는 대로 프란치스코는 정말 하느님이 사람일까? 그를 따르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닐까? 그의 성덕을 너무 빨리 믿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경우에 그에게 도전하기 위해 참된 성인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자는 나 자신이 아닐까?


그때 한 악신의 사자가 빛의 옷을 두르고 와서 루피노의 귀에다 속삭였다.


‘루피노 형제, 베드로 베르나르도네의 아들과 함께 무엇을 하겠느냐, 그는 개혁자인 체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는 많은 사람을 속였고 자신도 속였다. 보아라,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그는 활기도 없고 의지도 없는 불쌍하고 나약한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은 신음하며 슬프게 탄식하고 있는 거야. 그의 교만이 큰 상처를 입고 이제 잘못을 깨닫고 있는 거야, 나를 믿어라.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나는 미리 선택되고 간선된 사람을 알고 있다. 베르나르도네의 아들은 지옥에 떨어질 사람이고, 누구든지 그를 따르는 사람은 속은 자다. 아직도 시간이 있으니 정신을 차려라. 그리고 그 개혁자는 자기 멸망의 길로 가도록 벼려 두어라. 그의 이야기는 듣지도 말고, 내가 너에게 말한 것도 그에게 이야기하지 말라. 그리고 그가 특히 너를 유혹할 것이니 그에게 아무것도 질문하지 말라. 그러나 단순하고 대담하게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너에게 보여 줄 이 완덕의 길은 영원을 위한 약속이니, 완덕으로 향한 너의 길을 따르라. 내가 묵상하는 옛 은수자의 생활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이것은 확실한 길이고 이미 인정된 축복의 길이다. 그러니 옛날 은수자를 본받을 것이지 복음이라는 구실로 모든 것을 개혁하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들과는 상종을 말라.’


루피노의 눈에는 악신의 사자가 두른 빛의 만또가 훌륭하게 비쳤다. 루피노는 현혹되어 황홀하게 느꼈다. 하느님 자신이 자기에게 신비스런 목소리로 말씀해 주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루피노는 공동체에 나타나지 않았고, 옛날 은수자와 같이 완전한 고독 속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살기를 원했다. 특히 프란치스코를 만나는 것을 피했다. 그는 프란치스코에 대한 모든 신뢰를 잃어버렸다. 우연히 멀리서 프란치스코가 오는 것을 보면 즉시 다른 길로 돌아가 버렸다.


형제들은 모두 다른 형제들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프란치스코도 형제들도 처음에는 루피노의 태도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깊은 묵상에 잠겨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형제들 각자에 대한 주님의 특별한 계획을 존중하도록 형제들에게 가르쳤고 자기 자신도 영혼들 안에 일어나는 하느님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극히 조심했다.


그러나 어느 날 숲속의 작은 길을 돌아오다가 프란치스코는 루피노와 마주치게 되었다.


루피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만남에 놀라 마치 겁에 질린 짐승처럼 황급히 돌아서서 숲속으로 피해 들어갔다.


프란치스코는 깜짝 놀라 몇 번이나 그를 불렀으나 허사였다. 이렇게 루피노가 피하는 것을 보고 프란치스코는 깨닫기 시작했다. 루피노형제를 그렇게 도망치게 하는 것은 주님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형제로부터 분리시켜 놓는 마귀의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오랫동안 기도한 후에 프란치스코는 레오를 보내어 루피노를 찾아오게 하였다.


루피노는 레오에게 대꾸하였다.


“내가 프란치스코 형제와 같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이제 그를 따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의 환상에 싫증이 났습니다. 지금 나는 프란치스코 형제의 어리석음을 따르는 것보다 나를 더욱 확실하게 구해 줄 수 있는 은둔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루피노 형제, 그것은 무슨 뜻이죠?”


레오는 자기 귀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내 말이 형제에게 이상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형제가 믿고 있는 것 같은 그러한 하느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제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몇 달동안이나 그는 활기도, 용기도, 의지도, 기쁨도 없이, 비통하게 기운 없이 걸고 있습니다. 그래 그것이 진정 성인의 태도란 말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속이고 우리도 속였습니다. 형제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나에게 순종의 이름으로 겉옷도 없이 발가벗은 몸으로 아씨시 성당에서 설교하라고 시켰던 일을... 그래 형제는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믿습니까? 그것은 다른 모든 것 중에서도 야만스런 변덕이며, 자신의 변덕스런 생각일 뿐입니다. 이제 나에게 그런 때는 다 지나갔습니다. 이제 강론이나 나환자들을 간호하기 위해 나를 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께서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셨으니까요.”


깜짝 놀란 레오가 말했다.


“그런데 누가 형제에게 그런 생각을 일으켜 주었습니까? 만일 사부님의 영혼과 육신이 당하시는 그러한 시련을 하느님께서 단일 초 동안만이라도 형제에게 보내셨다면 형제는 즉시로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반항했을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그처럼 큰 고통 가운데 견디어 나가시기 위해서는 진실로 하느님께서 힘을 주셔야만 하고 하느님의 힘을 지녀야만 했습니다. 이것을 좀 생각해 보십시오.”


“모두 다 신중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느님 친히 나에게 말씀하셨으니, 나는 이제부터 베드로 베르나르도네의 아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완전히 아연실색한 레오는 부정했다.


“어쨌든 형제는 우리 사부님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형제가 멸망으로 달려가는 길이니까요. 그리고 우리 사부님께 이 얼마나 치명적인 타격입니까? 루피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간청하니 그러한 생각에서 떠나 우리에게로 돌아오시오. 우리들은 모두 형제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마귀는 그것을 잘 알고 악착스럽게 형제를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오 형제, 저리 가십시오.”


루피노는 퉁명스럽게 말을 중단시켰다.


“더 이상 나에게 귀찮게 굴지 말아요, 내가 갈 길은 주님 자신이 보여 주셨으니까요. 나를 가만히 놔 두시오. 내가 부탁하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레오는 프란치스코에게로 돌아와 그 이야기를 했다. 프란치스코는 루피노 형제가 커다란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을까 심려했다.


그는 며칠 후에 다시 루피노를 찾으러 레오를 보냈다. 그러나 레오는 그의 변함없는 고집으로 거절을 당하고 아무 성과도 없이 돌아와야 했다.


“아, 이것은 나의 잘못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레오에게 말했다. “내가 형제를 충분히 돌보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고통당하신 것처럼 나도 그들을 나에게로 이끌면서 고통당해야 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죽기에 이른 고통과 수남 때에 자기 제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레오가 말했다. “사실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프란치스코는 말했다.


“성경에 ‘내가 칼을 들어 목자를 치리니 양떼가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에게 이것을 허락하셨으니 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은 체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얼마 동안 침묵에 잠겨 있었다. 레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갑자기 프란치스코가 입을 열었다.


“아, 레오 형제, 지금은 정말 암흑의 시기입니다. 정말 무서운 때입니다. 나는 이렇게 지독할 줄은 몰랐습니다. 레오 형제, 나를 좀 혼자 있게 해 주십시오. 나는 하느님께 간구해야겠습니다.”


레오는 물러갔다.


프란치스코는 기도했다.


“주여, 당신은 저의 등불을 꺼 버리셨습니다. 저는 지금 주께서 제게 맡겨 주신 형제들과 함께 암흑에 싸여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무서운 존재가 되었고, 저와 가장 가까이 있던 이들까지 저를 피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제 친구들과 첫 동반자들을 저에게서 멀리 떠나 버리게 하셨습니다. 오! 주여, 제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밤은 꽤 오래 되지 않았습니까? 마음속에 새로운 불을 밝혀 주십시오. 제에게 주님의 얼굴을 보여 주시고 저를 따르는 이들이 어둠 속을 걷지 않도록 저의 얼굴에 새로이 주의 새벽빛을 비춰 주십시오. 저를 따르고 있는 그들을 위해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멀지 않은 곳에서 눈뭉치가 높은 나뭇가지 위로부터 떨어졌다.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둔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나서 천지는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