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자의 슬기

어두운 밤에 홀로 /가난한자의 슬기

Margaret K 2007. 5. 10. 01:35

어두운 밤에 홀로


기도실 맞은편에는 형제들의 집이 있었다. 집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나뭇가지를 진흙에 이겨 지은 움막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여섯 사람만 들어가도 꼭 차게 되는 집이었다. 벽으로 트인 좁은 입구로 겨우 햇빛이 들어오고 바닥은 맨 바윗돌이며 가구라고는 앉을 수 있는 돌로 된 자리와 회양목 나무로 만든 큰 십자가, 그리고 한 모퉁이에 불을 피우는 큰 돌들이 있을 뿐이다. 이 움막은 형제들의 부엌도 되고 식당도 되며 형제들이 모이는 장소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형제들은 그곳에서 거주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숙소는 거기서 그리 멀지 않는 가파른 아주 깊숙하게 파진 바윗돌 틈으로 들어가 있는 자연 동굴이었다. 돌벽 속 어두컴컴한 구멍 속으로 들어가려면 깊은 계곡을 따라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어린양과 같이 유순하고 가벼워야만 한다.


프란치스코와 레오가 이 은둔소에 온 후에도 형제들의 생활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하기야 그들은 언제나 순박한 생활을 해왔었다. 전에 프란치스코 자신이 특별히 은둔소 생활을 쉬해 쓴 규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그 규칙에 프란치스코는 아래와 같이 명하였다.


“은둔소에서 수도자로 살기를 원하는 형제들은 세 사람, 많아도 네 사람은 넘지 말아야 합니다. 그중의 두 사람은 모든 형제들을 위하여 필요한 양식을 준비하는 등 물질적인 것을 돌보며 어머니 노릇을 하면서 다른 이들을 자기 자녀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직책이 바뀔 때까지 다른 두 사람이 온전히 기동에만 전심할 수 있도록 마르타와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차례대로 두 형제가 작은 공동체의 물질적인 것을 돌보고 다른 형제는 자유롭게 묵상에만 골몰했다. 그곳은 올라가기에 매우 험하고 또 내려갈 때에도 급하고 위험하며 가파르고 거친 곳이었기 때문에 정신을 양성하게 단련시키며 정화시키고 유순하게 하는 이 훈련에 육체는 복종했다. 이러한 묵상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요술쟁이나 곡예사의 기질을 가져야 했다. 거친 바위 위를 손을 짚고 기어 다니면서 옷이 너덜너덜하게 떨어지는 것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프란치스코는 곡예사도 역시 하느님을 찬미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육신과 영혼을 한 열성 안에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여 정신의 진정한 평화 가운데 일치를 찾는 그 묘기는 위대한 슬기이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안락도 광채도 전혀 없는 이 생활은 어떤 허식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인간은 진리 자체에 결합하게 되었고, 말과 행동은 검소하며 감정도 가라앉고 더욱 소박하게 되었다. 그것은 무슨 독서나 자기 자신에 애하여 몰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험난한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가난해지고 모든 일에 어렵고도 거룩한 순종을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힘든 배움터에서 이렇게 인간은 훨씬 더 순박해지고 실제적이 되는 새로운 방법을 체득하는 것이다.


은둔소에 있는 책이라고는 전례서, 성경, 미사경본, 성무일도서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모든 형제들 앞에 한 권씩밖에 차례가 안 갔다. 그러나 이 책 안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에서는 복음의 진정한 뜻과 복음의 본질적인 신선한 맛을 찾아볼 수가 있었다. 수많은 다른 서적들로 해서 불안하게 되거나 신경을 쓰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각자 자기 능력에 따라 생활하는 것보다 더 구원의 말씀을 깨닫고 맛들이게 해 주는 것은 없었다. 말하자면, 사나운 날씨에 방비할 아무것도 없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게 되면 정말 지붕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처럼, 인간적인 어떤 도움이나 일상생활을 든든히 밑받침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주여, 당신은 내 바위시오, 내 피난처이시나이다. 라는 말의 진실성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에 인간은 마치 낭떠러지 위 바위틈에 돋아난 가냘픈 야생초 줄기와도 같이 떨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어려움 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날이 저물어 작은 기도소에 모여서 끝기도의 후렴 ‘주여, 당신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 주소서’라는 구절을 외울 때 그 구절은 실제로 형제들의 간절한 기도가 되었다. 이렇게 모든 기도 양식은 현실적인 맛을 지니고 있었으며, 하느님이 따로 계시고 현실의 것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현실의 모든 사건 한가운데 현존하고 계셨다.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은둔소의 생활이 좋다는 것을 몇 번이나 체험하였다.


그가 여기에 온 지도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아직도 평화를 되찾지 못했다. 아침 일찍 레오 형제가 드리는 미사에 참여하고 은둔소로 물러나 말할 수 없는 고뇌에 잠겨 오랫동안 기도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서 멀리 떠나가 버리신 것 같았으며, 그는 혹시 자기 힘을 너무 과대평가하지는 않았는지 자문해 보면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시편의 기도를 외었다.


“친지들도 나 보기가 역겨워서 멀리 가게 만드셨습니다. 빠져 날 길 없이 갇힌 이 몸, 고생 끝에 눈마저 흐려집니다. 야훼여, 내가 날마다 주님을 부르옵고 이 두 손을 당신 향하여 들어 올립니다. 어찌하여 내 영혼 뿌리치시고 이 몸을 외면하시옵니까? 당신 앞에 두려워 몸 둘 바를 모릅니다.”(시편 87).


그러나 ‘오, 하느님, 영원하신 하느님, 나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라는 구절을 외울 때 그의 기도는 더욱더 열절 하였다. 그의 영혼은 이러한 애원 속에 잠겨 있었고, 그 기도로써 자기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려는 간절한 원의를 표현하였다. 지금 그는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괴로움 속에서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회개한 후 계속해서 선하신 하느님께로 향하였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실패에 부딪쳤다. 평화와 선만을 지향하며 가난하고 겸손하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따르기로 노력했는데, 그의 길에 가리지가 싹트고 번성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자주 밤늦게까지 기도에 잠겨 있었다. 이렇게 기도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굵은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밤은 벌써 깊어 무겁고 캄캄했다. 갑자기 번개가 번쩍이고 머리서 천둥소리가 으르렁거리더니 조금씩 가까이 와 금방 은둔소 바로 위에서 뇌성이 요란스럽게 터졌다. 뇌성이 터질 때마다 마치 산 위에 폭탄이 터지는 듯 한 거대한 폭음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하늘에서 아마포를 찢는 듯 한 날카로운 소리를 내더니 곧 산 위에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하늘이 금방 떨어져 모든 것을 흔들어 놓는 소란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밤중에 홀로 프란치스코도 떨고 있었다. 그것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 일어나는 공포심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무엇인가를 원하고 계시는데 혹시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였다. 그날 저녁 하느님의 말씀은 폭풍우 속에 있었다. 그러나 알아들을 줄 알아야 했다. 프란치스코는 귀를 기울였다.


이 밤 번쩍이는 빛 속에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목소리는 무엇으로 알아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세상만사의 헛됨을 고하며, 육신의 것은 마치 아침에 피었다가 뜨거운 바람에 그날로 말라 버리는 풀과 같다고 말해 주는 것이었다.


멀리 높은 산 뒤로 물러가면서 계속 반복하여 으르렁거리는 천둥소리는 더욱 무겁고 위엄이 있었다.


이 소리는 또한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하느님을 둘러싸고 있는 그 영광은 지극한 것이니, 아무도 죽지 않고는 또한 물과 불을 거치지 않고는 그 영광을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이었다.


불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리하여 물과 불이 범벅이 되었다. 처음에는 굵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다가 급류처럼 억세게 쏟아지며 바위 위에 부딪쳐 흐르고 작은 개울이 넘쳐흘러 계곡으로 콸콸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마치 큰 세례를 베푸는 것과도 같았고 또한 대 정화에로 초대하는 것과도 같았다.


프란치스코는 들으면서 묵상했다. 그는 바위틈의 피신처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보고 듣기만 했다.


지금은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도 아니고 또 형제들을 모아 놓고 충고를 할 때도 아니다. 어떤 활동을 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여기 움직이지 않고 있는 요지부동의 산처럼 그대로 서서 번개가 번쩍이는 무서운 밤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과 불을 받으며 자기를 정화시키도록 내맡길 뿐이었다. 그 목소리는 신비스럽고 알아듣기 힘들었다.


비는 그쳤다. 산 위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였다. 하늘 저 멀리 몇 개의 창백한 별들이 떨고 있었다. 바람은 별을 꺼버리려는 듯했다. 밤은 아직도 어둡고 캄캄하여, 잘 알고 있던 바위와 나무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암흑 속에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었다. 보통 때는 잘 구별되던 것도 다 지워져 버려 끝없이 캄캄한 속을 방황하게 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지워져 버림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고, 없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와 대화를 하겠다고 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자기에게 친밀한 모든 것의 모습도, 목소리도, 그 이름까지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까지도 물러가 버린 듯 한 어둡고 텅 빈 곳에 깨어 있다는 것은 몹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프란치스코는 가난을 원했다. 자신의 말처럼 가난을 자기 여왕으로 택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는 가난했고,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비참할 이 만큼 가난했다.


이전에 그가 산으로 은신했을 때 모든 것은 하느님에 대해서, 또 그분의 위대하심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원시적인 자연은 하느님의 위엄에 대하여 쉽게 묵상할 수 있게 해 주었으므로 이 자연을 통하여 인도되도록 내맡길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뒤로 물러가 버린 썰물이다. 그는 마치 물 밖에 대던져진 생선처럼 숨 가쁘게 가슴을 헐떡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