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자의 슬기

평화를 잃고 /가난한자의 슬기

Margaret K 2007. 5. 10. 00:17

평화를 잃고


불을 뿜는 듯 태양이 작열하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을 몇 시간 동안이나 걸어온 프란치스코 형제와 레오 형제는 이윽고 숲속으로 향하는 좁은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타는 듯 한 햇빛 아래 갈색을 툭툭한 수도복을 입은 그들은 찌는 더위에 지칠 대로 지쳐 간신히 걷고 있었다. 거기에는 너도밤나무와 떡갈나무 숲들이 그늘을 지어 주기는 했으나 가파른 오솔길은 경사가 심해 기어올라야 했으며 더구나 맨발로 걸어가는 그들은 걸음마다 돌에 미끄러지곤 하였다.


비탈이 몹시 가파른 곳에 이르자 프란치스코는 멈추어 서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앞서 가던 레오 형제도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다보며, 존경과 사랑이 넘치는 음성으로 물었다.


“사부님, 여기서 조금 쉬어 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요, 레오 형제, 좀 쉬어갑시다”하고 프란치스코는 대답했다.


두 사람은 작은 길 옆에 있는 커다란 떡갈나무 등걸에 나란히 기대어 앉았다.


“사부님, 몹시 피곤해 보이십니다.


“그래요, 사실 몹시 피곤합니다. 형제도 역시 피곤하겠지요. 그러나 저 위 산속에 있는 은둔소에 가면 다 풀릴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내 형제들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 떠나왔습니다.”하고 프란치스코는 말했다.


프란치스코는 무릎을 세워 양팔로 끼고 앉은 채 눈을 감고 침묵을 지키며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를 조심스럽게 살펴본 레오는 겁에 질렸다. 프란치스코의 얼굴은 여위었고 수척했을 뿐 아니라 몹시 쇠약해 있었고 깊은 슬픔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전에 그렇게도 빛나던 그의 얼굴에는 한 점의 빛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고뇌와 고통의 그림자가 구석구석 스며 있었고, 그것은 영혼의 밑바닥까지 뿌리를 뻗어 서서히 갉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마에는 굵은 주름살이 깊게 그어져 있었고 입은 쓰라린 고뇌로 굳게 다물어져 있어 얼굴은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 듯이 보였다.


빽빽한 떡갈나무 잎새에 숨어 있는 산비둘기가 두 형제의 머리위에서 애처롭게 울고 있었으나 프란치스코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완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고 하였으나 이 생각들은 그를 자꾸만 뽀르찌운꿀라로 향하게 했다. 그의 마음은 아씨시 가까이 있는 그 작은 땅과 손수 수리한 성 마리아의 작은 성당에 가고 있었다. 15년 전 주께서 그에게 몇몇 형제들과 같이 복음적 생활을 시작할 은총을 주신 곳이 바로 그곳이 아니었던가? 그때는 모든 것이 움브리아의 불처럼 빛나고 아름다웠다. 형제들은 진정한 우정을 가진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 형제들 사이의 관계는 단순하고 순박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순종하였다. 그들은 오직 지극히 높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한 복음생활을 따르려는 한 가지 열망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주님 자신이 이 작은 형제들을 강복해 주셨다. 그리하여 이 작은 형제들의 공동체는 모든 신자들 가운에서 급속도로 성장해 갔다. 그러나 지금 이 모든 것은 파괴의 위협을 받고 있다. 형제들 가운데 서로 단순하게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없고 극심한 분쟁이 일어나며, 서로 비난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늦게 입회하였으나 설득력이 있고 영향력이 많은 몇몇이 일어나 지금의 회칙이 공동체의 요구에 맞지 않는다고 부끄럼 없이 떠들어댔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 이 많은 형제들로써 한 수도회를 이루려면 조직적인 체계와 계급제도로 강하게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오래 된 다른 큰 수도회의 법을 참고로 해야 하면 작은 형제들의 수도회도 부동산을 소유하여 넓고 지속성 있는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교회 안에서도 겉모양을 보고 수도회를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덧 붙였다.


프란치스코가 슬프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형제들에게서 복음적 가난이나 순박한 맛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프란치스코에게는 그들이 주께서 일으켜 주시고 도와주신 이 사업을 파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것은 그에게 전율을 일으키는 고통이 되었다. 또 어떤 형제들은 복음적 자유를 한갓 구실로 삼거나 혹은 자신을 낮추는 듯이 핑계를 대면서 더 나쁜 악취미와 많은 변덕과 환상을 일으켰다. 그들의 행동은 신자들 사이에 비난거리가 되었고 다른 형제들에게 신임을 잃게 만들었다. 이것 역시 주님의 사업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는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작은 형제들이 너무 많아.”


그리고는 이 하찮은 생각들을 쫓아버리려는 듯 급히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저 산 위에 올라가서 참된 복음의 보금자리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산 위에는 공기도 훨씬 맑고, 형제들은 하느님께 더 가까이 머물고 있겠지요.”


“우리 형제 베르나르도와 루피노와 실베스텔은 사부님을 다시 뵙게 되어 기뻐들 하겠습니다. 하고 레오가 말했다. “나도 그들을 만나면 참으로 즐거울 것입니다. 그들은 나의 첫 동반자들이었고 나를 성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하고 프란치스코가 말했다.


레오가 앞장서 갔다. 프란치스코는 간신히 뒤따라가면서 지난 몇 달 동안 뽀르찌운꿀라 수도원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형제들을 자기 성소로 돌아오게 하려고 수없이 노력했던 것이다.


지난 성령강림절 총회 때는 모두 다 모였었다. 그 때 프란치스코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명백히 말했으나, 공동체의 일부가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곧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들을 설득시켜 보려고 무척 애를 썼으나 허사였다. 그때 3,000명의 형제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프란치스코는 마치 자기 아들을 빼앗아 가려는 사람 앞에서 어머니처럼 용맹하게 타협 없이 외쳤다. “복음을 합리화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을 실천하거나 내어버리거나 할 뿐입니다”라고.


그의 첫 제자들, 성실한 동반자들은 기뻐하였고, 프란치스코가 이 수도회의 지도권을 다시 잡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체력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팔레스티나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건강은 이미 완전히 쇠약해저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불만을 품고 있는 형제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지휘자로서 튼튼하고 굳센 기질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수도회의 보호자인 우골리노 추기경이 엘리아 형제를 추천하였기에 프란치스코는 동의하였으나 염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프란치스코는 간이 나쁘고 위장병을 앓고 있는데다가 또 동방의 타는 듯 한 햇살과 그의 눈물로 인하여 눈병까지 앓고 있었기 때문에 기도하며 침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무서운 슬픔이 그를 억눌러 마치 영혼에 달라붙은 녹과 같이 밤낮으로 끊임없이 그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었다.


형제들은 분열되고 수도회의 앞날은 어둡게만 보였다. 그리고 또한 형제들이 신자들 앞에서 행한 악한 표양과 추문도 들려왔다. 수도회의 지도자인 엘리아 형제도 우쭐하여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새로운 개혁자인 양 행동하였으므로 프란치스코의 슬픔은 나무도 커, 전과 같이 활짝 핀 얼굴로 형제들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형제들에게서 떠나 멀리 산 위 숲속으로 숨어들어가는 것이었다. 몇 년 전 아펜니네 산줄기에 자신이 손수 만든 은둔소 중 한 곳에 들어가 있은 작정이었다. 그곳에는 적어도 침묵과 고독이 있을 것이고 나쁜 표양에 대한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 주께서 자기를 불쌍히 여기시어 당신 얼굴을 보여 주실 때까지 기도하며 재를 지킬 계획이었다.


언덕에 이르자 형제들의 소박한 은둔소를 감추고 있는 숲으로 뒤덮인 작은 산을 마주보게 되었다. 아펜니네 산 언덕 푸른 숲의 피라미드를 관상하기 위해 거기에 잠깐 멈추어 섰다.


산비탈을 덮고 있는 푸른 숲은 언덕의 거칠고 사나운 성질을 다 덮어 주고 있었다. 다른 비탈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부서진 바윗돌로 해서 훨씬 더 험한 길이 있다는 것을 프란치스코는 잘 알고 있었다. 산 저쪽 시야가 닿는 맨 끝에는 하늘이 말할 수 없이 맑게 빛났다.


늣여름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큰 산봉우리 뒤로 태양은 사라지고 서쪽 하늘에 비친 햇살도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 어느새 기온은 서늘해졌고 푸르스름한 안개가 보랏빛 계곡 뒤로 유유히 가볍게 떠가고 있었다.


 두 형제는 굽이진 오솔길을 묵묵히 걷고 있었다. 꾸부정한 허리에 땅을 내려다보며 걷고 있는 프란치스코의 모습은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과도 같았다. 40세도 채 안된 그가 이렇게 허리가 굽어 있는 것은 나이 탓이 아닐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큰 죄인으로 느껴 본 적이 없었으나 그것은 자기 죄의 무거움으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수도회를 전반적으로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수도회 전체에 대한 문제 때문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그를 고심하게 하는 데는 어떤 추상적인 관념보다 더욱 무거운 무엇이 있었다. 이렇게 무거운 걸음, 거의 비틀러 기다시피 하게 하는 것은 자기 형제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개별적인 걱정 때문이었다. 그는 형제들을 생각할 때 -형제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들 각자가 지닌 모습과 기쁨, 그리고 그들 고유의 고통을 모두 자기 것으로 여기어 되풀이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시간에 자기의 많은 아들들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그들 각자에 대한 독특한 느낌과 함께 아주 깊고 무겁게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어머니 피카 부인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되는 특별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기르고 사랑한다면 영신적 형제들은 더욱더 사랑하고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하고 프란치스코는 자주 말하곤 하였다.


아직 세속에 있던 젊은 시절에도 그는 감수성이 특별했고 동정심이 강했다. 모든 살아 있는 것, 젊음, 고상함, 아름다운 것, 기사들의 용맹함이나 사랑의 흐름을 엮은 시, 자연의 아름다움, 행복한 우정 등, 이 모든 것에 감동되었었다. 이 감수성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누가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라고 하며 무엇을 청할라치면 전신이 다 떨리는 것처럼 느꼈다. 그의 회개는 그의 인간성과 용기를 고스란히 보존한 채 다만 그것을 정화시키고 깊게 한 것이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허영심을 깨닫게 하셨으며 그는 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조심스럽게 응답했다. 또 나환자에 대한 부르심에도 응했다. 아씨시 마을에서 나환자를 만났을 때, 몹시도 싫었지만 그를 포옹하였다.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들었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부르심은 그의 눈에 생기를 돋구어 주었고, 예수님은 그에게 “프란치스코야, 네가 보는 바와 같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내 집을 고쳐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감수성은 이와 같이 깊어져 갔고 그럼으로 해서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이미 날이 저물었다. 바위 위로 기어오른 소나무와 느릅나무 밑에는 벌써 어둠이 깔렸고, 숲속에서 올빼미가 울기 시작했다.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레오 형제가 말했다.


프란치스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밤이 되면 은둔소의 형제들이 자기의 슬픔을 알아차리지 못할 테니 그것이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졸졸 소리를 내고 있는 샘을 지났다. 그 샘은 형제들이 날마다 물을 길러 오는 곳이었다. 이제 목적지까지 그렇게 멀지 않았다. 아직도 돌팔매로 두 마장쯤 남은 거리에 왔을 때 프란치스코의 마음에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그는 어는 집에 들어가든지 항상 주께서 복음 안에서 가르치신 대로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 인사를 해야 할 것인가? 자기가 가지지도 않은 것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부정직한 일이 아닌가? 자기 마음속에 평화라고는 한 점도 없으면서 어떻게 평화의 사도처럼 행사 할 수 있단 말인가?


프란치스코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검은 장막으로 둘러 있고 다른 쪽에는 오솔길 같은 작은 때 모양의 검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별들은 하나 둘 불을 켜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자기 영혼의 밤에는 별도 없다. 그러나 복음을 따르고 주님이 요구하신 것을 하기 위해서는 밝아오는 날을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내 그들은 은둔소의 작은 기도소가 있는 언덕 위에 이르렀다. 레오 형제는 벌써 돌아서서 프란치스코의 뒤로 물러섰다. 그때 프란치스코는 소리를 높여 밤의 침묵을 깨뜨렸다.


“주님의 이름으로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숲속의 메아리가 대답했다.


“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