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자의 슬기

마지막 별 /가난한자의 슬기

Margaret K 2007. 5. 10. 01:36

마지막 별


그로부터 며칠 후 안젤로 형제가 은둔소로 찾아왔다. 그의 방문을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그 형제는 클라라 자매의 부탁을 받고 프란치스코에게 클라라의 곁으로 가 주시기를 청하러 온 것이었다. 다른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다만 클라라 자매가 프란치스코를 꼭 만나 뵙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사실 그때 클라라는 성 다미아노 수녀원 깊숙이 있으면서도 사부의 영혼 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그를 만나보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형제들은 프란치스코가 쉬기 위해 산으로 갔노라고 했으나 그녀는 그보다 다른 일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의 마음을 알고 있었으며, 공동체 안의 큰 무리가 프란치스코에게 가혹한 걱정을 끼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클라라는 사부의 마음이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클라라의 이름은 듣는 순간 프란치스코의 눈은 빛났으나, 밤하늘의 번갯불처럼 금방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그의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머리

속에 되살아났다.


주께서 손수 일으켜 주신 복음적 이상이 한 점 흐림 없이 빛나던 행복했던 시절의 그의 마음속에 클라라의 이름이 깊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클라라의 이름이 깊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클라라는 이 생활의 숨은 광채를 깊이 감지하여 사방에 찬연히 빛내고 있었다. ‘오프레 두지’귀족 가문의 딸인 그녀가 아직 젊은 처녀로서 프란치스코를 찾아왔던 것은 지극히 순수한 복음의 순박함에서였다. 프란치스코는 클라라를 주님께 봉헌하였고, 클라라는 거룩한 가난에 성실히 머물고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안젤로 형제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 클라라 자매로 인하여 주는 찬미 받으소서. 하고 외쳤다.


그리고 즉시 이어서 ‘주께서 세우시고 또 수도회의 거룩한 형제들로써 끊임없이 건설하시는 이 수도회를 파괴하고 문란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덧붙이고 싶었으나 억제하였다.


이 말을 들어야 할 사람들은 그곳에 없었고, 또 저주를 하기에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는 안젤로 형제에게 말하기를 “우리 자매 클라라에게 가서 나는 지금 자매 곁으로 갈 형편이 되어 있지 않다고 전하고, 그 점을 잘 이해해 달라고 해 주십시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자매를 강복합니다.”


그러나 며칠 후 프란치스코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클라라를 잊어버리지 않고 있으며 또 클라라가 마음을 써 주는 것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레오 형제를 클라라에게 보냈다.


레오 형제가 오는 것을 보자마자 클라라는 “우리 사부님께서는 지금 어떻게 지내십니까?”하고 물었다.


“사부님께서는 항상 눈병과 위장병과 간의 질환으로 많이 고생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특히 그의 영혼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하고 레오 형제가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레오 형제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기쁨을 온전히 잃어버리셨습니다. 당신 영혼이 쓰라림을 당하고 있다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사부님의 이상을 반대하는 자들이 그들의 행위가 사부님께 얼마나 큰 괴로움을 주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들은 사부님의 생명까지 위험 속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래요, 우리 사부님은 지금 위험 중에 계십니다. 하고 클라라가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손은 그를 떠나지 않고 친히 그를 인도하고 계?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불 속의 금과 같이 정화시키시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사부님께서는 태양보다 더 찬란하게 다시 돌아오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의 영혼 속에 주님께서 일어나시리라는 것은 이 땅에 새벽이 찾아오는 것보다 더 확실합니다. 그러나 이 지독한 시련의 쓰라림이 그의 마음속에 뿌리를 박지 않도록 보호해 드리고 도와 드려야 합니다. 싹이 돋아나는 것과 열매를 맺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열매에 쓴 맛이 없도록 지켜야 합니다. 쓴 맛은 열매가 익는 것을 방해하고 후에는 열매를 좀먹어 버립니다. 레오 수사님,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만일 사부님께서 여기에 오셔서 며칠 동안 지내실 수 있으면 좀 좋아지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그 은둔소에서 나오시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 보십시오.”


은둔소에 돌아오자 레오 형제는 즉시 작은 기도실 옆에 앉아 있는 프란치스코를 찾아가 클라라 자매의 간곡한 청을 전했다.


“우리 클라라 자매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만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자매는 이 순간에 내 얼굴을 보지 않는 게 좋습니다. 내 얼굴에서는 어려움과 슬픔밖에 볼 수 없을 테니까요” 하고 프란치스코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사부님, 자매는 약간의 빛을 사부님에게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할 것은 그 반대의 일입니다. 나는 그녀의 영혼에 어려움과 두려움을 던져 줄까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레오 형제, 당신은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생각들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어떤 때 나에게는 내가 아버지 곁에서 장사하고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또 세상 사람들과 같이 아내를 얻어 자녀를 거느리고 살면 더 좋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어떤 소리가 끊임없이 귀에 속삭여 옵니다. 그래, 내 머리 속에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서도 클라라 자매에게 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것은 떠돌아다니는 생각이 아닙니까?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괴롭힌다 해도 사부님에게는 아무 힘도 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부님께서는 그러한 생각에 이끌리거나 흔들리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 그러나 레오 형제의 생각은 잘못입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있고, 지금도 얼마든지 아들딸을 낳고 살 수 있습니다. 라고 프란치스코는 단언했다.


“사부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놀랍니까?”


“내가 사부님을 성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만이 거룩하십니다. 하고 프란치스코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비천한 죄인일 뿐입니다. 레오 형제, 잘 알아 두십시오. 나는 다만 하나의 비천한 죄인일 뿐이라는 것을... 나의 영혼이 캄캄한 중에도 오직 하나 남아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무한하신 자비입니다. 나는 내 하느님이 무한하신 자비를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레오 형제, 나의 이 어두운 밤 속에 이 마지막별이 꺼지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묵묵하였다.


잠시 후 프란치스코는 일어서서 숲속으로 들어갔다. 레오는 그이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프란치스코는 거기서 흐느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