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자의 슬기

가난한 자의 탄식 /가난한자의 슬기

Margaret K 2007. 5. 10. 01:38

가난한 자의 탄식


며칠 후 프란치스코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숲속에서 기도를 하고 돌아오자 한 젊은 형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평수사로서, 어떤 허락을 청하기 위하여 찾아 온 것이었다.


그는 책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책 몇 권을 가질 수 있는 허락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그는 특히 시편 집을 가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는 책을 자유롭게 소유하고 있으면 신심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벌써 윗사람의 허락은 얻었으나 프란치스코의 허락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는 그 형제의 말을 들으면서, 말하고 있는 그 형제보다 더 멀리 많은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형제의 말이 메아리같이 귀에 울려와, 학문과 책의 매력에 현옥되어 있는 형제회의 어떤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얼마 전에 그들 중 한 사람이 아주 비싸고 훌륭한 총서를 소유하고자 허락을 청하지 않았던가? 신심이라는 구실을 책의 소유를 허락하여, 형제들을 그들 성소의 겸손과 순박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개혁자들은 프란체스코ㅗ도 이것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 젊은 형제에게 허락을 준다면 권위를 내세우는 형제들을 그것을 틀림없이 나쁘게 이용할 것이다. 정말로 그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자기 마음속에 거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으나 억누르려 노력했다.


그는 사지의 반응을 기다리며 눈치를 살피고 있는 이 형제 앞에서 천리만리 도망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시편 책을 가지고 싶습니까? 그러면 기다려요, 하나 찾아다 주겠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외치고는 은둔소의 부엌으로 달려 내려가 아궁이에서 재를 한 움큼 움켜쥐고 되돌아왔다.


“여기 시편 책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 재를 형제의 머리 위에다 문지르면서 말했다.


그 형제는 예기치 못했던 이 일에 놀라고 당황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확실히 그는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머리를 숙이고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프란치스코 자신도 첫 반응이 지나자 이 침묵 앞에서 당황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로서는 그에게 딱딱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너무 무뚝뚝했을 것이다. 이제는 천천히 똑똑하게 그리고 자기가 왜 그렇게 했는지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 싶었다.


자기는 분명히 학문이나 일반적인 소유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씨시의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인 자기로서는 어떤 것을 소유하고서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음을 그에게 설명해 주고 싶었다.


각자가 자기의 소유를 만들려고 애쓰는 곳에서는, 참된 우애가 있는 형제들의 공동체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드러나게 어떤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것을 방어할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전에 형제들의 지나친 가난에 대하여 놀라시던 아씨시의 주교님께도 이같이 설명해 드렸던 것이다.


“주교님, 만일 우리들이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 그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 군대가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주교님은 성직자들이 흔히 자기들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군인으로 변해야 했던 것을 자신의 경험으로 알고 계셨으므로 프란치스코의 이 말을 잘 이해하셨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이 수련자의 손에 든 시편 책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프란치스코는 이 모든 중대한 설명이 이 젊은 형제가 청했던 요구에 어울리지 않으며 그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으리라고 느꼈다. 프란치스코는 이때처럼 자기의 무능함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마침내 프란치스코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형제를 이해시켜 보려고 희망을 가지고 말했다.


“당신이 시편 책을 갖게 되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되겠습니까? 안락의자나 옥좌에 앉아서 무슨 위대한 고위 성직자처럼 다른 형제더러 당신의 시편 책을 가져다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 형제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프란치스코는 소유에 대하여 자기가 생각하는 것, 즉 소유로 인하여 모든 인간관계가 그릇되고 타락하여 종과 주인의 관계로 떨어지게 되며, 이런 비극이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그 재산 때문에 빚어진다는 것을 유머로 표현했지만, 그는 프란치스코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으로 행사하기 위하여 많이 소유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 중대한 일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지금 자기 앞에 이런 중대한 일을 깨달을 수 없는 가엾은 아이를 대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프란치스코는 그에 대하여 한없이 측은한 마음이 들어, 어머니와 같이 그의 손을 잡고 바위 곁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작은 형제여, 들어 보시오. 내가 젊었을 때의 일을 당신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때 나 역시 책으로 인해 유혹을 받고 그 책들이 나에게 슬기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몹시 가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책들은 슬기를 줄 수 없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까? 슬기와 학문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마귀라도 전에는 천국의 것을 다 알고 있었고 지금은 혼자서 전 인류가 합친 것보다 이 지상의 것을 더 많이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시련이 닥칠 때, 유혹과 슬픔 속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책이 아니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뿐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괴로운 듯이 덧붙여 말했다.


“지금 나는 가난하고 못 박히신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는 즉시 생각에 잠겨 눈을 감고 깊이 명상에 젖어 있었으므로 그 형제가 자기 옆에서 일어서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눈을 떴을 때 그는 자기가 혼자임을 알고 놀랐다. 그 형제는 프란치스코를 떠났던 것이다.


며칠이 지났다. 프란치스코는 날씨가 자꾸 흐려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을이었다. 울긋불긋하게 물든 잎사귀들은 하늘높이 햇빛을 받아 색색으로 춤추고 맴돌면서 바람에 휘날렸다. 그리고 숲들은 차차 빛을 잃고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에 소나무만이 여기저기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첫 추위는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올 것을 알렸다. 그리고 어느 12월 아침, 은둔소는 눈 속에 파묻혀 아침을 맞이했다.


자연은 바뀌어 갔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에게는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어떤 그 무엇이 자신 안에 응고되어 있었다. 시간과 계절은 돌아가는데, 프란치스코는 자연과 존재의 움직임 속에 들어 있지 않고 시간 밖에서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형제들은 프란치스코가 가을에 단풍잎으로 덮인 오솔길을 홀로 걷고 있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듯이 이번에는 눈 덮인 하얀 길을 잃어버린 평화를 찾아 거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이처럼 오랜 동안, 형제들의 시선을 멀리하며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옛날 아씨시의 작은 성당-성 다미아노 성당이나 뽀르찌웅꿀라-에서 드리던 그런 기도가 아니었다. 이제는 기도를 하도록 그리스도께서 영감을 주지 않으셨으며, 텅 빈 것 같은 너무나 큰 공허만이 남아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았다.


은둔소를 떠나 형제들 가운데로 가야 할 것인가?


그렇게 되면 자기의 슬픔과 고뇌를 어떻게 형제들에게 감출 수 있을 것인가? 그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 것인가?


은둔소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그러면 주께서 맡겨 주신 형제들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는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대하는 것과 같이 형제들 하나하나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침묵과 사직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형제들이 동요되고 방향을 잃게 될 것인가? 또한 자신들의 성소까지 영원히 떠나 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때때로, 자기 아디들을 떼어 가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심한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마침내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과실, 특히 자신의 교만을 꾸짖었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하느님 앞에서 고독 속에 잠겨 있으면서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그는 자주 식사도 잊어버렸고 작은 공동체의 성무일도에도 늦게 도착했다. 그리하여 형제들은 그를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시작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나았다. 그렇지만 형제들과 함께 있을 때 프란치스코는 자기를 괴롭히는 그 심한 고통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으며 형제들 각자에게 주의 깊게 친절을 보여주고 섬세한 오의를 베풀었다. 그러나 형제들을 사부께서 잠겨있는 그 슬픔을 모두 함께 느끼고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산마을에서 애긍을 얻어 돌아오는 형제에게 항상 친절한 말로 대하였다. 그러나 눈물로 문질러지고 충혈된 눈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극도로 여윈 모습은 더욱 감출 수가 없어 모든 형제들은 그가 쇠약해져 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몹시 추운 어느 날 레오는 프란치스코를 찾으러 눈 속으로 갔다.


바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그는 바위인지 사람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마치 화석과 같았다.


그의 주위에 눈과 서리로 덮인 큰 소나무는 창공에 반짝이며 거대한 눈꽃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육중한 순은으로 된 가지 달린 거대한 촛대를 보는 듯했다.


레오는 프란치스코를 일으켜, 길 잃은 불쌍한 아이를 데리고 가듯이 팔을 잡고 천천히 은둔소로 모시고 갔다.


곳곳에서 큰 눈뭉치가 높은 소나무 가지 위에서 떨어져 흰 가루를 뿌리며 흩어졌다. 세찬 추위는 모든 것을 꽁꽁 얼어 붙이고, 눈얼음의 무게에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만이 툭툭 고요를 깨뜨리며 들려왔다. 겨울의 창백한 태양은 눈 위로 비스듬히 비치어 눈부시게 반사되어 있었다. 이 반사 때문에 프란치스코는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아픈 눈은 이 빛을 견디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마치 포근한 보금자리를 쫓겨나온 부엉이처럼 햇빛 아래 어리둥절해 있었다.


레오는 형제들이 불을 피워 놓은 움막으로 프란치스코를 인도했다. 프란치스코는 아궁이 앞에서 무릎 위로 양손을 끼고 앉아 오랫동안 불을 관상하며 아무 말도 없었다. 때때로 오한이 나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불꽃이 너무 강하지 않을 때는 불꽃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불꽃이 튀어 타다 남은 다른 가지에 옮겨 붙어 다시 불길이 일며 춤을 추다가 다시 잠들고, 또 가지를 맴돌며 거의 껴져 가다가 다시 불꽃을 탁탁 튀기며 일어났다.

때때로 레오가 불꽃을 다시 살리기 위해 마른 잔가지를 한 줌씩 집어넣곤 했다. 불꽃은 다시 환하게 일어나, 프란치스코는 그 눈부신 불꽃을 피하기 위하여 눈을 감거나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레오는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앓고 있는 아이에게 하듯이 순박하고 천진스런 이야기를 했다.


프란치스코는 들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기가 너무 기진하여 아무 힘도 쓸 수 없음을 느꼈다. 움직이지도 않고 그대로 앉아서 아궁이 속의 불에 시선을 떨어뜨리고만 있었다.


불꽃은 천천히 사그라들어 푸른 색, 녹색, 북은 색, 주황색 등 수 많은 작은 불꽃으로 나누어져 장작 둘레에서 반짝였다. 가냘픈 비명을 지르며 작은 불꽃들은 장작 주위를 가볍게 스쳐갔다.


밖에서는 바람이 요란스럽게 휘몰아치고 있었고 질풍 속에서 떨며 신음하고 있는 나무들 소리가 들려왔다.


프란치스코는 이 보잘것없는 불 앞에서 묵상했다.


이전에 형제들이 숲속에 우거진 나뭇가지를 치러 갈 때, 그 나무가 다시 무성해질 수 있도록, 나무 그루터기까지 자르지 않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시킨 적이 있었다.


지금 그 나무들은 잘 보존되어 있는지, 어느 날엔가 다시 무성하게 자랄 수 있을는지, 프란치스코는 근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