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3년 2월 6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Margaret K 2023. 2. 6. 06:23

 

2023년 2월 6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마르코 6,53-56)

Whatever villages or towns or countryside he entered,

they laid the sick in the marketplaces

and begged him that they might touch

only the tassel on his cloak;

and as many as touched it were healed.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는데,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고, 보시니 좋았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마을에 들어가시기만 하면 병자들은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한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20년 넘게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12월, 몸의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 힘든 것입니다. 3~4시면 저절로 일어났는데, 그 시간에 눈은 떠지지만 ‘조금만 더’를 마음속으로 대뇌이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면 아침 6시입니다. 사실 새벽에 하는 것이 많기에, 이렇게 늦게 일어나면 바빠집니다. 그러면서 20년 넘게 유지하고 있었던 새벽 기상이 왜 이렇게 힘들어졌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12월에 외부 강의가 많아서 피곤하다는 이유로 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많은 거리를 걷고 또 헬스도 했는데, 이 모든 것을 피곤하다며 쉬다 보니 일어나는 힘도 줄어든 것입니다. 하긴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정신력은 체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의지력이라고 말하는 추상적 능력의 출처는 바로 체력에 있다는 것입니다.

피곤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운동하지 않아 체력이 떨어지면서 의지력을 비롯한 정신의 힘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피곤하다고 또 시간이 없다고 줄였던 운동이었는데, 사실은 나의 피곤을 없애고 또 시간도 벌어주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요?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피곤해서 쉰다고 그리고 바빠서 쉰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쉰다고 해서 피곤과 바쁨이 실제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과 함께하면서 세상일에 대한 피곤을 줄이고, 더 맑고 건강한 정신으로 시간을 벌어 더 많은 일을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코 신앙생활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주님과 만남의 끈을 놓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대게 해주십사고 사람들은 청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과 함께해야 한다고, 어떻게든 예수님과 만남의 끈을 연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받았습니다.

피곤하다고, 바쁘다고, 너무 고통스럽다고 그 밖의 이유를 들어 주님에게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의 삶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빠도 운동을 해야 더 많은 일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주님 안에서 더 많은 일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스트레스는 ‘여기’에 있으면 ‘거기’ 있길 바라거나, 또는 현재에 있으면서 매리에 있길 바라기 때문에 생깁니다. 이 괴리감 때문에 당신의 마음이 갈라지게 됩니다(에크하르트 톨레).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좋하셨다

-이기우신부-

https://www.youtube.com/watch?v=gnE74esMYPs

 

​-조재형신부-

과달루페 성지순례 마지막 날에 ‘나눔’이 있었습니다. 한 자매님은 작년에 하느님의 품으로 떠난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신앙으로는 아들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하느님의 품으로 옮겨감이라는 것을 믿지만, 현실에서는 아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다들 이번 순례가 얼마나 좋았는지, 이번 순례를 통해서 많은 것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마지막에 저의 차례가 있었습니다. 보통은 다들 수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순례에서는 지난 2020년에 하느님의 품으로 떠난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 팬데믹이 심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가서 어머니의 장례미사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뉴욕에서 기도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나눔을 하면서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모든 어머니가 그런 것처럼 저를 무척이나 사랑하였고, 자랑스러워하였던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 생각에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런 저의 마음을 보듬어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천국에서 저를 위해서 기도하신다는 생각이 들었고, 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번 성지 순례를 통해서 따뜻함, 순수함, 사랑, 너그러움을 마음에 담아 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에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상상과 생각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빛을 만들고, 땅을 만들고, 하늘을 만들고, 물을 만들고, 해와 달, 별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정도는 되셔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정도는 되셔야지 만물의 주인이시고,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 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의 옷깃만 스쳐도 병이 낫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정말 장난이 아니십니다. 어디가 아픈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언제부터 아픈지 말을 하지 않아도, 그냥 예수님 곁에서 옷만 만져도 모든 병이 저절로 치유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니, 그 정도는 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과 예수님께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넘치는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작은 것들을 하고도,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광개토왕비, 진흥왕 순수비’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업적과 명예가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큰 잘못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분들의 업적과 자랑도 아닙니다. 그저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잘못들은 다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너희 죄가 진흥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하얗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뉘우치고, 하느님께, 예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지난 모든 것은 덮어주고 당신의 나라에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 안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생각합니다.

가슴이 따뜻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계산하고 따지기 보다는 순수한 삶을 살아야 갰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이웃을 너그럽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이영근신부-

오늘 독서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이고, 복음은 예수님의 일행이 호수를 건너 온 곳, 곧 겐네사렛 땅에서의 ‘새로운 창조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도 새롭게 창조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마르 6,56)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이 새롭게 창조된 사람입니다.

그들은 ‘열 두 해 동안 하혈증을 앓고 있던 여인’(마르 5,5-25)처럼, 믿음으로 예수님께 접근해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이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권능으로 새로 태어난 이들입니다.

곧 ‘믿음’으로 창조된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요한 20,27)

사실 손을 댄 이는 우리지만, 만지신 분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우리를 매만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더듬은 것입니다.

당신 손으로 우리의 발을 씻어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쪼물딱거리시고,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을 낫게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손을 대었을 뿐, 우리를 붙잡으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우리를 당신 심장으로 끌어당기신 분은 그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알아본 이들’이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이 계신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 그들은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분의 옷자락에 손이라도 대게 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청을 들어 주셨고, 과연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는 이들의 표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중재하는 이가 되어야 하고, 또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이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와 그들을 위해 간청하고, 또한 직접 예수님을 만지며 그분 사랑의 손길을 반겨 맞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옷을 만지듯, 말씀 속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만져야 할 일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지고,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흘러들게 해야 할 일입니다(민수 15,37-41 참조)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코린 1,18)

그렇습니다.

‘말씀’이 구원이 흘러나오는 예수님의 옷자락입니다.

 

사실 오늘도 우리는 옷자락이 아니라 당신 몸을 통째로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몸을 받아먹습니다.

그러니 사랑의 전류가 만땅 충전된 몸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마르 6,56)

 

주님!

당신은 옷자락뿐만이 아니라 당신 몸을 통째로 내어주십니다.

손을 내미는 이는 제가 아니라 당신이며, 저를 붙드신 분도 당신이십니다.

손을 대기만 하면 먼저 어루만지시고, 찾기만 하면 먼저 찾아오시는 분도 당신이십니다.

하오니, 주님!

제 마음이 항상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