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1일 수요일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루가 1,39-45)
Blessed are you who believed
that what was spoken to you by the Lord
would be fulfil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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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아가서의 저자는, 연인이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온다고 노래한다(제1독서). 엘리사벳은 자신을 찾아온 마리아를 보고,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하고 외친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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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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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담긴 컵에 빨간색 잉크 두 방울을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요? 컵에 담긴 물이 빨간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빨간색 잉크 두 방울을 바다에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요? 바닷물이 빨간색이 변할까요? 아니었습니다. 어떤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똑같은 양의 잉크를 섞어도 공간이나 부피에 따라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바다는 부피가 너무 커서 잉크를 섞었을 때의 변화가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요? 마음의 크기가 적은 사람은 어떤 말과 행동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크기가 큰 사람은 말과 행동에 어떤 변화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마음의 크기는 주님과 함께하면서 커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을 실천하면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키워가면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면서, 우리 마음의 크기가 커져서 세상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기준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게 바다와 같은 큰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바다가 모두를 포용하듯 사람들을 인정하고 지지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바다와 같은 큰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포용하셨던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잉태하신 분이 뱃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엘리사벳을 찾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교통이나 치안이 좋은 시절이 아니었는데, 당신 아들의 날을 준비할 엘리사벳 뱃속의 세례자 요한을 만나러 가십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찾아가는 것, 그만큼 큰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엘리사벳도 놀라 말합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43)
이 넓은 마음은 엘리사벳의 말처럼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라고 믿으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도 성모님과 같은 마음의 크기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내 마음의 크기를 넓혀야 합니다. 작은 것에 흔들리지 않는 바다와 같은 마음을 주님 안에서 키워야 합니다.
대체 어디를 걷고 있는가? 그곳이 다른 누군가의 길은 아닌가? 그렇기에 걷기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제 자신만의 길을 걸어라. 그러면 멀리까지 갈 수 있다(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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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신부-
장흔 고르넬리오 신부님의 장례미사엘 다녀왔습니다. 신부님을 생전에 뵙지는 못했지만 뉴욕 맨허턴의 신자들과 따뜻한 사랑으로 함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신부님의 장례미사에는 신부님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많은 교우들이 신부님께서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배웅하였습니다. 천상에서 신부님의 가족들이 기뻐하며 환영할 것 같습니다. 한국 가톨릭 미술의 선구자였던 아버지 장발 루도비코, 한국의 정치인이었던 큰 아버지 장면 요한 총리, 춘천교구 교구장이었던 사촌 장익 십자가 요한 주교님이 장흔 고르넬리오 신부님을 기쁘게 맞이할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가 하느님 품으로 가면 어릴 때 사탕을 주셨던 할아버지, 휜 수염이 멋있으셨던 외할아버지, 용돈을 주셨던 외할머니, 그리운 부모님, 먼저 하느님의 품으로 갔던 큰 누님, 작은 형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위안을 받는 것은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지상교회, 정화교회, 천상교회가 있습니다.
장례미사에서 반가운 분들을 보았습니다. 부르클린 한인성당 성가대 단장을 만났습니다. 오랜 시간 평화신문에 글을 주셨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뉴욕에 처음 왔을 때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던 부부도 만났습니다. 장흔 고르넬리오 신부님께서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 같았습니다. 장례미사를 마치고 함께 식사하면서 신부님과의 인연을 들었습니다. 부부는 신부님께 혼배성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신부님께서 교리를 가르쳐 주셨다고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니 악은 피하고 선을 베풀면 좋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름다운 만남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형의 축복을 가로챘던 야곱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형을 만났습니다. 형은 지난날의 모든 것을 잊고 동생을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이집트의 상인들에게 팔았던 형제들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이라면서 형제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우리가 용서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평화가 가득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만남을 보았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입니다. 엘리사벳이 살던 동네는 아인카렘(포도밭의 샘)입니다. 몇 번 가보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동네입니다. 마리아는 며칠을 걸어 아인카렘을 찾아갔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엘리사벳이 잉태했음을 알려 주었고, 마리아는 축하해 주기 위해서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마리아의 태중에도 아이가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몇 달 동안 아인카렘에 머물렀고, 엘리사벳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지게 된 기쁨을 전하였을 겁니다. 마리아는 성령의 인도로 아이를 가지게 된 놀라움을 전하였을 겁니다. 오늘의 복음은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엘리사벳의 진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응답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나이다. 주님께서는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 과연 만대가 나를 복되다 할 겁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제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결정하기에는 어려운 일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몇몇 친구에게 전화하거나 만나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친구들은 언제나 따뜻하게 저를 대해주고, 제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런 친구가 있기에 저는 더욱더 힘을 내서 사제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까운 이웃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고,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대하면 우리는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고민과 갈등을 들어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나의 모습을 따르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의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나의 길을 따르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곧 성탄이 다가옵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사랑으로 오시니 감사합니다. 그 사랑은 세상의 어둠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그 사랑은 가난한 이, 외로운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 사랑은 절망하고 있는 사람,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행복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주님, 오늘 나의 삶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도록 용기와 힘을 주소서. 주님의 그 사랑을 저 또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깨어 기도하고 기쁘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탄 축제를 준비하고 기다리게 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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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역동성을 지니고 계십니다!
-양승국신부-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 옛날 아인카림 엘리사벳 집의 마당에서 벌어진 일은 참으로 기구하고 혹독한 사건이었습니다.
고작 13~14살의 앳된 나자렛 산골소녀, 정식 결혼도 하지 않은 사촌 마리아가 친척이라고 자신을 찾아왔는데, 아이를 가져 슬슬 배가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리아를 바라보는 엘리사벳의 상황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녀도 마리아보다 6개월 앞서 아기를 가졌는데, 주변 사람들의 놀라움, 그리고 수군거림이 끝도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엘리사벳 소식 들었는가? 노인네들이 참 대단하네 그려. 세상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저 연세에 임신을 하다니! 저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별 생각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아인카림에서 있었던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은 참으로 기구한 만남, 난감한 만남, 정말 이해하지 못할 만남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슬픔과 서러움에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엘리사벳 두 사람 사이에는 성령께서 현존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기구한 만남이 즉시 기쁨과 축복의 만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순응한 두 사람이었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기쁨으로 충만한 엘리사벳의 외침을 들어보십시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기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복음 1장 42~45절)
성령께서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역동성을 지니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종종 체험하는 결코 원치 않는 만남, 부담 백배인 만남, 호의적이지 않은 만남도 성령께서 현존하시고 동반하시면 기쁨과 축복의 만남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직면하는 기막히고 참담한 현실도 성령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견딜만한 현실, 이겨내고 극복할만한 현실로 변화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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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반영억신부-
합동판공성사의 일정이 끝났지만 여전히 고해소를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맑고 밝은 영혼들을 만나게 되면 피로를 잊게 됩니다. 어둠을 벗어버리고 밝은 빛을 비출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도구 역할을 하면서 신부 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무릎을 꿇고, 허물로 누벼놓은 날들에 주님의 자비를 전달할 수 있음이 큰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이런 기쁨은 언제라도 차지해야 하겠습니다.
마리아가 길을 떠납니다. 서둘러 떠났습니다. 꼭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되었으면 지체없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루카1,36).는 천사의 말 한마디가 그를 움직였습니다. 경청의 결과입니다. 손과 발을 서둘러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서둘러 떠나는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신앙의 결단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곧바로 순종한 성모님의 마음을 닮아야 하겠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을 때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차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1,42-45). 마리아가 행복한 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는 행복합니다.
믿음은 곧 행복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의 근원이요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히브12,2).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하고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11,27-28)고 하셨습니다. 결국,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는 것이 곧 행복입니다.
그래서 성 요한 비안네는 “박해와 모욕을 당할 때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습니다. 그때에 하느님은 저를 위로해 주셨고, 제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허락해 주셨습니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내 행복은 오직 하느님 곁에 있는 것, 내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일 뿐입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행복은 다른 사람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믿고, 믿는 만큼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하느님을 뵈려고 애쓰고, 하느님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할 때가 행복의 순간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을 차지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오늘 나는 어디서 행복을 찾고 있는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이 유혹하며 손짓하지만, 그것을 거절하며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며 주님을 삶의 첫 자리에 모시는 것을 행복으로 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품고 사셨던 성모마리아와 함께 주님만이 내 행복의 전부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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