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11월 8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Margaret K 2022. 11. 8. 06:39

2022 11 8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루가 17,7-10)


When you have done all you have been commanded, say,
‘We are unprofitable servants;
we have done what we were obliged to do.’”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티토에게, 건전한 가르침에 부합하는 말을 하고 모든 면에서 선행의 본보기가 되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쓸모없는 종으로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말하라고 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주변에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있습니다. 확진된 적 없는 사람을 만나기가 더 힘든 것 같습니다. 하긴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확진 경험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확진 경험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분명히 ‘코로나가 맞다’라고 생각해서 병원에 가보고, 자기 진단키트로 검사를 해도 늘 ‘음성’입니다. 혹시 ‘슈퍼항체 보유자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매일 미사와 안치 예식으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데 3년째 코로나 팬데믹 안에 살면서도 아직까지 확진 없이 건강하게 있다는 자체를 떠올려 보니 거의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는 “대인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이 확진되지 않더라.”라고 농담하기도 하지만,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지 않았던 저였기에 이렇게 확진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큰 감사의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이를 그렇게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대신 ‘내가 건강해서.’, ‘내가 조심해서.’라는 이유를 붙이면서, ‘나 때문에’라는 생각만 했었음을 반성합니다.

그 누구도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음을 이번 팬데믹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겸손해야 하는 이유고, 또 감사할 이유가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게 됩니다. 즉, 우리는 주님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님의 뜻에 따라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 뜻보다는 내 뜻을 더 내세우면서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 시대에 대한 이해를 먼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온종일 밭에서 힘 빠지게 일하고 돌아와서 또 집안일을 해야 하고 배고픔을 참고 먼저 주인의 밥상을 차려야 하는 종이 등장합니다. 이를 보면 그가 노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노예는 이런 일들을 하기로 하고 고용된 것으로 자기 할 일을 하는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고 주인은 주인대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현대와 같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런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분명히 악덕 주인일 것이고 신고 대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는 이와 같은 주인과 종의 관계는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 너무 흔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을 배경으로 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지금 하는 하느님의 일 모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하지 않고, 내 일이 바쁘다고 하지 않고, 내키지 않는다고 하지 않고, 내게 물질적인 이득이 없다면서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하느님의 일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하고 있었을까요? 주님 뜻보다 내 뜻을 더 내세우는 사람은 당연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시련이란 꼭 방해 거리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우리의 발아래 놓으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C.F 블렌차드).

 그리스도인이 십자가의 순종 중에서도 항상 기쁠 수 있는 이유

-전삼용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youtu.be/RK38LtRWiVo

영화 ‘폭풍의 시간’을 조금 각색한 줄거리입니다. 1989년 폭풍우가 심하게 치던 어느 날, 엄마는 일을 나가고 혼자 남겨진 니코는 자신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녹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집 앙헬의 집에서 크게 다투는 소리를 듣고 조심스럽게 앙헬의 집으로 가봅니다. 그곳에는 앙헬의 부인 힐다가 쓰러져 있었고 칼을 든 앙헬을 본 니코는 도망치다 차에 치여 죽고 맙니다. 

  

    25년 뒤 자상한 남편 다비드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예쁜 딸 글로리아와 함께 베라라는 여성이 니코가 살던 집으로 이사 옵니다.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오래된 티브이와 비디오카메라를 발견합니다. 베라는 호기심에 비디오를 틀어보고 니코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25년 전 오늘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도망치다 사망했던 아이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꺼둔 비디오가 작동하면서 베라와 니코가 서로를 보고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니코는 앙헬의 집에서 크게 다투는 소리를 듣고 나가려고 합니다. 니코가 안쓰러웠던 베라는 니코에게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며 밖에 나가면 죽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니코는 뛰어나가고 연결이 끊깁니다. 

  

    베라는 자상한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고 절망에 빠집니다. 그런데 어떤 형사가 다가와 혹시 힐다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 묻습니다. 그녀는 지금은 역사가 바뀌어 앙헬이 붙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래는 니코의 죽음으로 앙헬이 그 자리에서 붙잡혀서 자살하고 아내의 시신은 도축장에 묻을 것이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이렇게 경찰과 베라는 시신을 찾아내고 다른 여자와 살고 있던 앙헬을 체포합니다. 그리고 그 경찰은 말합니다. 자신이 니코라고. 생명을 구해줘서 감사하다고. 

  

    니코는 베라의 말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구해 준 베라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그림으로 그리고 베라가 이사를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경찰이 되어서 말입니다. 베라는 바람을 피우는 다비드와 헤어지고 니코와 결혼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니코의 25년간의 삶은 어땠을까요? 죽을 뻔한 자신을 구해준 베라에게 고마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라가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경찰이 되어서 정의를 바로잡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되어 베라를 기다렸습니다. 25년 뒤에 자기가 살던 집으로 이사 올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은 베라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괴롭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베라를 만날 것에 기대에 차 있었습니다. 결국 베라를 만나서 그 행복을 나눕니다. 

  

    누군가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감정에 순종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할 때는 그러면 나처럼 행복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순종이 비록 십자가의 길이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행복에 참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순종하라고 하시면서도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라고 하십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도 그분의 기쁨에 벌써 참여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이 에사우의 옷을 입고 에사우로 20년간 살며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기쁠 수 있었던 이유와 같을 것입니다. 언젠가 만나게 될 에사우에게 환영받기 위해 에사우가 살았을 법한 삶을 살며 많은 열매를 맺으며 에사우가 기뻐할 것에 자신도 기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도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그리스도의 감정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조사회로서의 교회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MJZj4rLo2VI

 -조재형신부-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국에서 하던 일이나대학에서 배웠던 일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한국에서 작곡을 공부했고미국에서도 뮤지컬을 공부했던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한국에서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쳤지만 미국으로 이민 와서는 전공했던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남미에서 의류 사업을 하기도 했고핸드폰 대리점을 하기도 했고주유소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감사할 일은 그래도 아이들이 잘 자라주는 것이고성당에서 지휘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그런가하면 한국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분도 있습니다오히려 자기의 전공을 살리는 분도 보았습니다간호사로 미국에 와서 일을 하였지만 더 공부하여 의사가 된 분도 보았습니다감사할 일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아프리카와 남미로 의료 선교 활동을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저도 미국에 와서 한국에서는 안 하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신문을 만들고 홍보를 다니는 일입니다덤으로 한인 공동체의 미사를 도와주기도 하고동북부 엠이를 위해서 봉사하기도 합니다감사할 일은 아직 건강하고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일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가장 좋은 일은 보람이 있으면서 수입도 좋은 일입니다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수입도 좋은 일입니다그 다음에 좋은 일은 보람은 있지만 수입은 적은 일입니다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수입은 적은 일입니다그래도 견딜만한 일은 보람은 적지만 수입이 괜찮은 일입니다원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가족들 돌 볼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은 되는 일입니다가장 안 좋은 일은 보람도 없는데 수입도 적은 일입니다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생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지난 3년 동안 신문사에서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 어르신이 있습니다보수가 많지는 않지만 어르신께서는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주십니다자식들이 용돈을 드리고정부에서 연금도 나오지만 어르신은 가족을 돌보듯이 저와 신문사 직원을 위해서 아낌없이 도와주십니다제가 외부에 일이 있어서 식사를 못하면 조금 서운해 하십니다저도 부르클린 한인 성당 미사를 2년 째 다니고 있습니다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좋아하고신자들과 함께 만나는 것을 좋아하기에 계속 하고 있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바오로 사도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대 자신을 모든 면에서 선행의 본보기로 보여 주십시오가르칠 때에는 고결하고 품위 있게 하고 트집 잡을 데가 없는 건전한 말을 하여적대자가 우리를 걸고 나쁘게 말할 것이 하나도 없어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하십시오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며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을 보았습니다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여름날에 성당에 와서 창문을 닫고하수구에 쌓인 오물을 꺼내는 형제님을 보았습니다아침 일찍 와서 큰 솥에 육수를 끓이고친교실 청소를 하는 자매님도 보았습니다미사가 끝나면 성당에 남아있는 주보를 정리하고화장실 청소를 즐겁게 하는 수녀님도 보았습니다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말없이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사제인 저는 그분들의 신발 끝을 풀어드리기에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 10)

-한상우신부-


점점 높아지는
우리들을
봅니다.

우리에게 없는
겸손된
마음입니다

아무리
높아져도
십자가 아래있는
우리들입니다.

사람이 누군지를
묻습니다.

쓸모없는 종을
성장시키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쓸모가 있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우리를
그 자체로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사랑을 내어주시며
구원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언제나 하느님께서
삶의 중심이 되는
우리의 여정입니다.

하느님께
뿌리를 두는 삶이
바로 겸손한
우리들 삶입니다.

일을 시작하시는 분도
일을 마치시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밀고 끌고 가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피었다 지는
꽃같이
머물렀다 가는
삶같이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우리들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뜨겁게 인정하는
우리들 삶입니다.

쓸모없는
종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위령 성월의
고운 빛깔입니다.

쓸모없는 종을
받아주시길
겸손되이
청합니다.

말씀 나누기 - 연중 32주 화요일-사랑 받을수록 겸손해지는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0년 11월 10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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