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10월 16일 연중 제29주일

Margaret K 2022. 10. 17. 08:01

2022년 10월 16일 연중 제29주일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마태오 28,16-20)

  

Go, therefore,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teaching them to observe all that I have commanded you.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으로 모든 민족들이 밀려드는 환시를 본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으라고 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무한한 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힘을 가지고만 있을 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렸을 때 성당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일을 해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우리가 자주 하는 이 말을 멈춰야 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여기서 더 하는 것은 욕심이야.’, ‘남들 정도만 하면 되지.’ 등의 말은 우리가 할 일을 더 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돈을 많이 벌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또 높은 지위에 오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중요한 것은 많이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봉사, 희생, 사랑도 그렇습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은 계속해야 합니다. 쉽게 포기하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그 모든 것을 하지 않고 소홀히 한다면, 분명히 직무 유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일을 더 우선시하면서 우리는 이 직무 유기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하느님에 관해 관심도 없고 인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이 자기만 생각하는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결을 요구하는 보잘것없는 과부는 재산관리에 있어서 억울한 상황에 있습니다. 물론 고약한 재판관이 일 처리를 피합니다. 이 과부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 또 재판관이 왜 자기 임무를 유기했는지, 그 과부를 억울하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러한 것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약한 재판관도 끊임없이 성가시게 졸라대는 바람에 그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가시게 구는 과부의 요청은 난관을 극복하는 신앙생활의 집요한 노력으로 상징합니다.

기도는 늘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긴 요청에 굴복한다면 진실되고 의로우신 하느님이 신자들의 기도를 안 들어 주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말하는 기도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나중으로 미뤄서도 안 됩니다. 이렇게 포기하고 미루다가는 하느님으로부터 은총과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일 역시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선한 일이란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반대로 악한 일이란 인간의 존재 의미의 실현을 방해하는 것이다(빅터 프랭클).

  마지막 심판 때 믿음이 있다고 인정받으려면?

-전삼용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h8yqYkQsaak

다큐멘터리 작가 박지현의 "참 괜찮은 태도"에서 소개된 사연입니다. 

2008년 청주 여자교도소로 촬영하러 갔을 때였습니다. 교도관이 말했습니다. 딱 한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고.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녀는 어느 날 남편이 외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륜상대자는 바로 그녀의 친구였습니다. 충격을 받은 그녀는 남편을 죽이고 자수했습니다. 교도소에 들어온 그녀는 모범적이고 성실한 사람으로 통했고 몇 년 후 가석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유를 얻은 첫 날 그녀는 남편의 외도 상대였던 친구를 죽이고 다시 자수했습니다. 

  

    문득 그녀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한참 후인 2020년 장동익을 인터뷰하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는 부산 낙동강 변사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22년간 억울하게 옥살이해야만 했습니다.  

 

    이 사건은 1990년 1월 부산 낙동강 근처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특진에 눈이 먼 경찰은 무고한 시민 두 명을 용의자로 추정해 무자비한 고문 끝에 허위자백을 받아냅니다. 두 명은 사건 당일 현장에 없었지만 계속되는 고문과 폭행을 견디다 못 해 허위자백을 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들은 복역하던 중에 모범수로 감형되어 21년 5개월을 살고 출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019년 뒤늦게 사건이 주목받으며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되었다고 인정했고 부산고등법원에서 재심이 열렸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장동익입니다.  

 

    살인 누명을 쓰고 20년 넘게 감옥살이를 한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을 어린 딸은 어느덧 커서 어른이 되었고 멋진 아빠가 되기를 꿈꾸었던 서른셋의 그는 어느덧 50세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가 무죄판결을 받는 것을 보지 못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왜 하필 나일까?'라는 생각을 수천 번도 더 했다는 그는 재심이 결정되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용서해야겠다. 마음속에 품고 있어 봐야 나 자신이 힘드니까 놓아야겠다.'

    박 작가가 처음 그를 봤을 때 몇 분동안 말을 잇지 못했던 것은 그의 평온한 표정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억울하다고 내 과거를 망가뜨린 사람을 원망해봐야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않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나를 괴롭힌 사람을 위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저지른 짓에 면죄부를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장동익의 말처럼 마음속에 품고 있어 봐야 나 자신이 힘드니까 나를 위해 용서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용서하되 잊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박지현 작가가 처음 만났던 남편과 친구를 살해한 여성은 자신이 심판관이었습니다. 자신이 심판관이 되면 판사는 의미 없어집니다.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 때 그 사람을 역시 무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장동익씨는 심판을 심판관에게 넘겼습니다. 심판관이 그의 피해를 다 보상해 줄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자신이 심판관의 지휘에 서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래도 판사와 하늘이 올바른 심판을 내려줄 거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불의한 재판관에게 과부가 끊임없이 올바르게 판결해달라고 청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치지 않고 청하면 불의한 재판관도 올바르게 판결해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칫 믿음이 어떤 것을 들어줄 때까지 청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믿음이기는 하지만 오늘 복음은 그런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은 '심판'에 관한 내용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 바로 앞에는 노아의 홍수와 소돔의 멸망과 같은 심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무언가를 얻을 때까지 꾸준히 청하면 믿음이 있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나의 심판을 심판관에게 맡겨야만 믿음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입니다. 바리사이는 하느님 앞에서 이미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 심판해 놓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의미 없는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세리는 자기 심판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으로 심판받는 사람은 세리가 되는 것입니다. 

  

    "개는 훌륭하다"에서 강형욱 조련사가 역대급 분노를 표출한 적이 있습니다. 자기 반려견끼리 싸우는데 보고만 있는 보호자가 있었기때문입니다. 보호자는 개들끼리 싸워서 서열을 정리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개들끼리 서로 판사가 되라는 의미이고 이는 자기가 판사의 권위를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개가 주인 앞에서 서로 싸우면 주인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심판하면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다시 말해 이웃을 판단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이웃을 심판하는 사람이 될때 종말이 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끝맺으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루카18,8)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말씀을 선포하시오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qnqB9agsPTU

 -조재형신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았습니다변호사는 강도상해죄로 기소된 탈북민을 변호하게 되었습니다변호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형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피해자의 상처는 피고인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남편이 폭행 한 것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피해자의 상해에 대한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가 탈북민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밝혀냈습니다피고인에게는 어린 아이가 있다는 것도 이야기하였습니다이렇게 많은 방법을 찾아서 피고인의 형량을 감량시키려 했지만 배심원들은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하였고징역 4년을 만장일치로 선고하였습니다그러나 재판관은 피고인에게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 유예 3년 4개월을 선고하였습니다판결 이유는 탈북민이기에 대한민국의 법을 잘 모르고처음 범죄행위를 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피고인이 5년간 숨어 있다가 스스로 경찰서로 찾아와서 자수하였다는 것입니다형량의 감량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자수였습니다변호사들은 형량 감량의 이유를 외부에서 찾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피고인 본인의 자수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언젠가 하느님 앞에 서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자비를 베풀어 주실까요제가 사제로 살았던 저의 성과와 업적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신앙인으로서 했던 봉사활동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도스토예프스키는 양파 한 뿌리라는 소설에서 아주 작은 선행만으로도 하느님께로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평생 인색하게 살았던 할머니가 지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할머니의 수호천사는 할머니가 젊은 과부에게 양파 한 뿌리를 주었던 것을 찾아냈습니다하느님께서는 할머니에게 양파 한 뿌리를 주었고할머니는 양파의 뿌리를 잡고서 하느님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그러자 지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할머니의 다리를 잡고 같이 가려고 하였습니다양파의 뿌리가 끊어질 것 같아서 할머니는 다리를 잡고 있던 사람을 걷어찼습니다그러자 그만 양파 뿌리가 끊어졌고 할머니는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능력과 업적 그리고 선행과 봉사만으로는 하느님께 가는 것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우리의 허물과 잘못도 크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무엇으로 우리는 하느님 품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드라마에서 피고인이 자수했던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면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양털처럼 희게 해 주십니다우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십니다하느님께서는 회개하였던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예수님께서는 회개하고 눈물을 흘렸던 베드로 사도에게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되찾은 동전되찾은 양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하늘나라에서는 성한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 때문에 더 기뻐한다고 하셨습니다돌아온 아들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비유입니다우리가 욕심이 가득하고자신 밖에 모르지만 자녀들의 청을 기꺼이 들어줍니다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한다면 언제든지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그것을 우리는 자캐오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자캐오는 예수님을 집으로 모셨습니다그리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빚진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하였습니다예수님께서는 자캐오와 그 가족들이 구원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믿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고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목이 마르면 물을 마십니다물을 마시면 갈증이 풀린다는 것을 알고믿기 때문입니다믿음은 관념이 아닙니다믿음은 생활이고실천입니다모세는 손을 들어 기도하였고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꾸준히 계속하십시오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타이르고 꾸짖고격려하십시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습니까하느님께서는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예전에 자수하여 광명 찾자.’라는 표어가 있었습니다어둠 속 그늘에 살기보다는 자수하여 희망의 빛 속에서 살라는 표어였습니다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받는 존재입니다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 나누기 - 연중 제29주일-하느님 바라기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19년 10월 20일 연중 제29주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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