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Margaret K 2022. 7. 16. 06:28

2022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그는 부러진 갈대도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도 끄지 않으리니.
(마태 12,14-21)

 

A bruised reed he will not break,
a smoldering wick he will not quench,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미카 예언자는 불의를 꾀하고 잠자리에서 악을 꾸미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는,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사하라 사막에서 12년 동안 살았던 ‘사막에서의 편지’라는 책으로 유명한 카를로 케레토(1910~1988) 은수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교수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교수직을 접고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기도하고, 그 지역 유목민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며 홀로 지냈습니다. 그가 먹는 음식은 직접 짠 염소젖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은수자로 최선을 다해 살았던 그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고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은수자로 사는 자신보다 어머니가 훨씬 더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가족을 돌보느라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낼 수가 없었고,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약된 환경 안에서도 사랑의 실천을 적극적으로 하셨습니다. 즉, 그보다 더 거룩하셨습니다.

거룩함은 모든 것을 떠나 오롯이 하느님과 함께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룩함의 핵심이 사랑이기에,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이는 하느님의 거룩함을 나눠 받게 됩니다.

가정, 직장, 신앙 공동체 모두가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줄 장소였던 것입니다. 장소 탓만 해서는 안 됩니다. 즉, 누구 때문에 자기가 거룩해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하게 이르십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종은 소리 없이 고요히 하느님의 뜻을 이행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자 치유를 한 뒤에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고, 적대자들에게 빌미를 잡히지 않기 위해 다투지도 않고 큰 소리도 내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풍악을 불며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세상에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그 나라의 주인이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뿐이었습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은 일상 삶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만남을 통해 그리고 특별한 일을 통해서만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우리의 일상 삶 안에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거룩함을 받아서, 이웃들과 함께 함께 하느님 나라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우리도 주님의 이름에만 희망을 걸고, 주님의 뜻에 맞게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비를 피할 때에도 작은 우산 하나면 충분한 것이니 하늘이 드넓다 하더라도 따로 큰 것을 구할 수고가 필요 없다(원효대사).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8z6sjp8wEjU

 -조재형신부-

 

수녀님들과 피정을 하면서 시간이 나면 산보를 다녔습니다피정의 집은 바다가 보이는 높은 언덕위에 있었습니다산보 가는 길에 마을 사람들이 세워놓은 글을 보았습니다오늘은 글의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The Land is belongs to the future. We come and go, but the land is always here. And the people who love it and understand it are the people who will own it – for a little while.” 땅은 우리의 미래이고우리는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입니다땅은 언제나 이곳에 있습니다그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땅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아주 잠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소작인의 비유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땅을 잘 가꾸고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인 우리가 땅을 소유하려고 하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원숭이 두창이 찾아왔습니다코로나도 원숭이 두창도 발생 원인은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인간의 탐욕에 있다고 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용서하십니다인간은 가끔 용서합니다그러나 자연은 결코 용서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연을 함부로 대하면 자연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것입니다우리는 기후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기후변화는 생태계의 질서를 교란시킵니다파괴된 생태계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명은 도태되기 마련입니다자연은 폭염홍수가뭄의 형태로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우리가 그런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자연을 함부로 대한다면 생태계에 속한 인간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빚을 내고가불해서 사는 사람은 결코 현명한 사람이 아닙니다그러나 우리는 우리 후손들이 사용해야 할 자원을 마구 끌어다 사용하고 있습니다우리 후손들에게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라는 빚더미를 남겨주고 있습니다우리의 후손을 위해서우리는 잠시 머물다가는 소작인임을 명심하면서 자연을 보호해야 합니다.

 

요즘의 신앙을 생각합니다요즘의 가정을 생각합니다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성당에 가지 않아도 야단치지 않습니다대학에 가면 성당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학원에 가지 않고공부하지 않으면 야단치지만 기도하지 않고성경을 읽지 않아도 말하지 않습니다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일이 되어도 가족들이 함께 모이지 않습니다모두가 바쁘기 때문입니다세상의 일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예전에 들었던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연못에 물고기가 살았습니다서로 싸우면서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물이 썩으니 살았던 물고기도 죽었습니다신앙이라는 연못이 상하면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신앙인도 죽기 마련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떠나야 했습니다그곳에는 성공명예권력이라는 바벨탑이 있었습니다그러나 그곳에서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그곳에서는 진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떠나야 했습니다.

 

권력을 향해서 날아가는 사람들에게는욕망을 향해서 날아가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오늘 미가 예언자도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악을 일삼는 자들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결코 볼 수 없었습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십니다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이 눈앞에 있어도진리와 정의가 눈앞에 있어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그러나 순수하고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보였고그들은 주님과 함께하는 참된 행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식초 한 말보다 꿀 한 방울이 더 많은 파리를 불러 모을 수 있습니다!

 -양승국신부-

 

성인 중의 성인, 꿀처럼 달콤한 성인, 기품있고 신사답기로 유명했던 성인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입니다, 저희 수도회 창립자 돈보스코는 그를 얼마나 존경하고 흠모했었던지, 수도회를 창립하면서 수도회명을 살레시오회로 정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들은 오늘날까지도 길이 남을 명언으로 남아있습니다. “식초 한 말보다 꿀 한 방울이 더 많은 파리를 불러 모을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니 그렇습니다. 까칠함, 거만함, 우월감으로는 그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고 감동을 줄 수도 없습니다. 그보다는 친절함, 온유함, 관대함, 너그러움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킵니다. 당대 사람들은 세상 친절하고 온유했던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명료히 느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 역시 친절과 온유, 인내와 사랑으로 똘똘 뭉쳐진 분이심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마태오 복음 12장 19~21절)

  

그렇습니다. 돌아보지 저만 해도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꺾어버렸어야 할 연약한 갈대 같은 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분은 부러진 저를 꺾지 않으셨습니다.

  

부러진 저를 당신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고, 약을 발라주시고, 치유시켜 주셨습니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셨습니다. 그 오랜 주님 인내의 세월을 생각하니 그저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참으로 묘하고 또 묘하신 분입니다. 그분께서는 부서진 갈대는 꺾지 않으시나, 뻣뻣한 갈대는 꺾으십니다. 부서진 마음은 어떻게 해서든 감싸주시며 보살펴주시나 완고한 마음은 인정사정없이 쳐부수십니다.

  

오늘 내가 ‘부러진 갈대’라고 절대로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하느님 치유의 손길이 멀지 않았습니다.

  

오늘 내가 불이 다 꺼져 ‘연기 나는 심지’라 할지라도 결코 좌절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의 불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반영억신부-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복을 받기 때문에 좋은 일을 끊임없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미움을 사기도 합니다. 아무리 어진 사람도 미워하는 무리가 있는 법입니다. 선한 일을 하는데도 선망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견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봄비가 기름 같지만 행인은 그 진창길을 싫어하고 가을 달은 밝고 아름답지만 도둑은 그 밝게 비추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기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싫어하고 시기질투하며 심지어 미워합니다. 봄비처럼 꼭 필요한 것일지라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언제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병을 고쳐주시며 당신의 소명에 충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를 모의 하였습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를 봐 주면 좋으련마는 눈엣가시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 사촌이 땅을 사면 배를 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반대에 대응하지 않으시고 한 발 물러서는 지혜와 인내를 보여주셨습니다. 막무가내로 대드는 사람에게는 한 숨 쉬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도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며 모두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품으셨습니다. 다투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으시고 자비로운 손길로 버림을 받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상처 받은 사람들을 치유 시켜 주시고 낙담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시며 구원해 주셨습니다. 병을 고쳐주면서도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공을 감추시고 결코 기적을 위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 아님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철저히 아버지 하느님의 뜻 안에서 구원사업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좋은 일을 해 놓고는 생색을 내다가 그 공을 다 잃고 맙니다. 선한 지향을 갖다가도 이내 시기와 질투심에 그 좋은 뜻을 놓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마태6,1).고 하셨건만 그 말씀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을 믿고,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이 함께하기를 서로 기도해 주시길 희망합니다.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어딘가 상하고 깨져서 할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되어지는 이들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공에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최선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마더 데레사).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시작한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세상,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는 어떻게 살았는지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 은혜를 간절히 청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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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어떤 일을 하는데 시간이 걸리면 게을러서이고, 내가 시간이 걸리면 철두철미하기 때문이다. 남이 일을 하지 않으면 게을러서이고, 나는 바뻐서이다. 누가 하라하지 않는데 하면 월권이고, 나는 진취의 기상이 있어서이다. 남이 강력한 주장을 하면 그 사람은 고집스러운 것이고, 나의 경우는 단호한 의견발표이다.” 그야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스캔들입니다.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마태 12, 16)

-한상우신부-

치유는
구원으로
더 깊어져야
한다.

어떤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앵무새같이
같은 말만
반복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다.

세간의
무책임한 모습과
무기력한
침묵이 아니라

주님께
더 가까이 가는
적극적인
침묵이다.

참된 치유와
참된 깨달음은
언제나
요란스럽지 않다.

시끄러움이
아니라
치유되는
기쁨이다.

어떤 사실을
알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를
예수님을 통해
깨닫는 것이다.

삶의 모습으로
전달되는
기쁜소식이다.

신앙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이다.

일부분만을
만나는 기쁨은
오래갈 수 없다.

예수님의
전체적인 모습은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며
만나게 된다.

제약된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삶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은총이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자신의
성장을
가리키시는
주님이시다.

말씀 나누기 - 연중 15주 토요일-꺾인 기를 살리는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0년 7월 18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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