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6월 27일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Margaret K 2022. 6. 27. 06:37

 2022 6 27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나를 따라라.”
(마태오 8,18-22)

 

"Follow me,
and let the dead bury their dead."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아모스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그들을 짓눌러 버리실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어느 주인이 자기 종에게 감자 수확할 시기이니 밭에서 감자를 다 캐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종은 아주 일을 잘하고 주인의 말에 철저하게 순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자를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캐서 쌓아놓은 뒤 주인에게 보고했습니다. 주인은 일 잘하고 순명하는 종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구덩이 두 개를 파고 네가 판단해서 큰 감자와 작은 감자를 구분해서 넣어라.”

그런데 저녁이 되어 어둑어둑해졌는데도 종이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감자밭에 나가보니, 종이 구덩이 두 개를 파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이유를 물으니, 큰 감자와 작은 감자 구분을 도저히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시킨 일은 하겠는데,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는 것은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종의 삶입니다. 종종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를 순명이라고 겸손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이는 종의 삶의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자기 뜻과 의지를 세워 행동하면서 그 자리에 하느님을 초대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는 것도 종의 삶입니다. 어렵고 힘들어서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 삶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삶입니다. 포기가 아닌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는 굳은 의지가 필요합니다. 친구이신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친구이신 주님을 모시면서 주님과 함께하는 나의 의지를 세우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겠다는 한 율법 학자의 말에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라고 말씀하십니다.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사람이 종을 거느릴 수 있을까요? 종이 아닌 친구만이 함께할 수 있는 여건임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길 원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장사까지도 뒤로 미룰 수 있어야 한다고도 하지요. 주님을 따르는 일이 그 어떤 것보다 먼저라는 것입니다.

친구이신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자신의 의지를 세우면서 계속 변화되는 삶을 통해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종의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렵고 힘들면 포기하고 좌절하는 종의 삶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친구이신 주님과의 진정한 우정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가장 제대로 따르는 모습입니다.
사랑은 판단하지 않는다. 주기만 할 뿐이다(마더 테레사).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느님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GMot230HP-o

 -조재형신부-

 

교구에 있을 때는 1년에 한번은 피정을 갔습니다교구에서 피정 프로그램을 준비하였고사제들은 시간과 마음에 맞는 프로그램을 신청하였습니다주제와 강사가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고개인 침묵 피정이 있었습니다성서공부를 하는 신부님들은 그룹으로 강사를 모시고 피정을 했습니다영신수련을 하는 신부님들도 그룹으로 강사를 모시고 피정을 했습니다피정을 하면서 영적인 힘을 충전하였습니다피정을 하면서 신부님들과 대화하였습니다모처럼 예전 신학교의 생활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미국에 온지 3년이 되었습니다. 2020년 2월에 뉴멕시코에 있는 피정의 집에서 머물며 피정을 하였습니다수녀님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였고미국에서의 생활을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그 뒤로는 팬데믹이 왔고 지난 2년 동안 개인 피정을 가지 못하였습니다많은 활동이 중단되면서 팬데믹은 저 자신을 돌아보는 피정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우리는 살면서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생계유지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합니다더불어 살기 위해서 친교를 나누어야 합니다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주님을 믿고주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스마트폰은 잘 때 충전해야 다음 날 사용할 수 있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도 충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그것이 기도이고그것이 피정입니다북미주 파견 수녀님들의 피정에 초대받았습니다오늘부터 7월 7일까지 수녀님들과 피정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하느님께서 제게 혼자서는 어려우니 수녀님들과 함께 피정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수녀님들께서도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먼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일 것입니다. 2년 전에 피정이 기획되었지만 팬데믹으로 미루어졌다가 올해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찾는 것과 같다.” 수녀님들이 피정이라는 밭에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보물을 찾으면 좋겠습니다세속의 깃발을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깃발아래 모이면 좋겠습니다걱정과 근심은 모두 버리고 용기와 담대함을 채우면 좋겠습니다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30, 60,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 이번 피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를 넘치도록 느끼면 좋겠습니다영신수련 23항에서 말하듯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한 것보다 가난함을 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건강한 것보다 아픈 것을 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을 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좋은 피정이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좋은 시간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저도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하려고 합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극단적 청빈의 삶과 지상 것들로부터의 완벽한 이탈과 초월의 삶!

 -양승국신부-

 

엄청난 강풍이 불어 애지중지하던 그림 액자가 와장창 깨져버렸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노발대발, 안절부절, 난리였을 텐데, 이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그림 액자 수명이 다됐나 보네. 종종 그림 액자도, 도예품도, 장식품도 깨져야 그 분야 종사자들이나 거래하는 사람들도 먹고 살겠지.’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누군가가 제 옷이나 물건을 갖고 싶어하는 눈치가 보이면 두 말 않고 그 자리에서 줘버립니다. 무엇 하나 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니, 더 이상 지상 것들에 대한 애착이 사라졌습니다.

  

아마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아가셨으리라 확신합니다. 그 어떤 대상, 그 어떤 가치에도 얽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그런 대 자유인이셨던 예수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던 예수님의 모습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오 복음 8장 20절)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일관되게 보여주신 삶의 노선이 있었는데, 그것은 극단적 청빈의 삶이었습니다. 재물이나 명예, 자리와 같은 지상 것들로부터의 완벽한 이탈과 초월, 그것이 예수님께서 지속적으로 취하셨던 삶의 자세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추종하던 제자들을 향해 기회 닿는 대로 부단히 강조하셨습니다. 끊임없이 건너가라고! 현세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으로, 속된 것에서 거룩한 것으로, 육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거듭거듭 건너가라고 재촉하셨습니다.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한 마리 새처럼,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이 참으로 멋져 보입니다.

  

하느님의 외아들, 만왕의 왕인 분이셨지만, 수수한 옷차림에 평범한 삶을 추구하셨습니다. 엄청난 권한과 권위의 소유자셨지만,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 어떤 강요나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추종하려면, 우리가 지금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다른 모든 대상에 앞서 하느님을 위에 두어야 합니다. 부단히 사소한 것에서 보다 중요한 것으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으로 우리의 시선을 옮겨가야 합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이영근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많은 군중이 몰려들자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마태 8,18).

곧 제자들을 군중으로부터 떼어놓으십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아직 제자 교육을 받지 못한지라 군중에 휘둘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늘 복음에는 대조를 이루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집을 떠나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따라나서는 율법학자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러 가겠다고 나서는 제자입니다.

여기에서 제자되는 데 필요한 두 가지 자세가 드러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겠다고 따라나서는 율법학자 안에서 화려한 보금자리에 대한 갈망이 감추어져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마태 8,20)

 

바로 여기에 당신을 따르는 삶은 거처를 지상에 두지 않는 삶임을 말해줍니다.

곧 자신의 편리와 안정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떠돌이로서 불투명한 삶에 자신을 맡기는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순례자요 거류민으로의 삶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믿음을 하늘에 두고서 땅에서 자신이 가난해지고 보잘 것 없어지는 것을 받아들여 사는 삶이요,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신뢰를 두고 사는 삶이 참된 제자 됨의 본질임을 말해줍니다.

 

또한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주기를 청하는 제자 중의 한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마태 8,22)

 

이는 당신을 따르는 것이 썩어 묻힐 유한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는 생명을 따르는 길임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당신께 있으니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두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에누리 없이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진정 나는 대체 어디에 머리 기댈 곳을 찾고 있는가?

아니. 대체 어디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가?

혹 자기 자신인가?

아니면 하느님인가?

 

또한 생명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면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가?

혹 여전히 죽은 것들과 죽을 것들에 애착하고 매여 있지는 않는가?

 

오늘 우리는 산상설교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마태 6,33)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너는 나를 따라라.”

(마태 8,22)

 

주님!

오랏줄로 꼭꼭 저를 당신께 묶으소서.

당신은 저의 보금자리오니 당신을 따라 내려가 아래에서 살게 하소서!

대우보다 천대 받을 줄을, 존중보다 무시 받을 줄을, 인정보다 멸시 받을 줄을, 배려보다 모욕 받을 줄을 알게 하소서!

형제들을 떠받드는 발판이 되고, 머리 기댈 곳이 되고, 당신의 제자 되게 하소서!

아멘.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 20)

-한상우신부-

머리 기댈
곳조차 없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다.

머리 기댈
곳조차 없는
아픔을
행복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대신
채워주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여정은
머리 기댈 곳을
두지않는
따름이다.

절대고독 속으로
먼저 들어가
하느님을
만나신다.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을 통해
하느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고독을 즐기시는
예수님 내면의
여정이다.

고독함으로
하느님 말씀을
듣게된다.

하느님과
가까워
진다는 것은
하느님 말씀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독하신
주님과 함께
살고 있다.

하느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하는
고독이다.

삶을
더럽히거나
우롱하지
않게하는
고독이다.

고독으로
다시 보게되는
예수님 십자가의
뜨거운 상처이다.

뜨거운 고독이
뜨거운
기도임을
믿는다.

예수님을
따르는
뜨거운 눈물
고독이다.

곁가지를
쳐내는 방식
고독이며
더 깊어지는
따름이다.

말씀 나누기 - 연중 13주 월요일-무엇보다 먼저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일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18년 7월 2일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