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6월 6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Margaret K 2022. 6. 6. 06:06

 2022년 6월 6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에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은 교부 시대부터 쓰였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에서 마리아에게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부여하였다. 마리아는 성령 강림 이후 어머니로서 교회를 돌보았고, 여기서 마리아의 영적 모성이 드러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하였다.

 

☆☆☆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 19,25-34)

 

 “Woman, behold, your son.”
Then he said to the disciple,
“Behold, your mother.”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사람은 자기 아내 이름을 하와라 하였는데,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74세의 노인이 99세 어머니와 900일 동안 여행을 떠났었던 이야기가 화제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세계의 지붕이라는 서장에 가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중국 헤이룽강에 사는 아들은 가난해서 비행기도, 자동차도 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수레를 매단 세발자전거로 어머니를 수레에 태워 서장으로 향했습니다. 평생 희생만 하며 늙어 온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이렇게 900일간 함께했지만, 서장에는 함께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103번째 생신을 앞두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죽음 직전,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세상 구경하는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

장례를 치른 뒤, 다시 7개월 동안 자전거 페달을 밟아 아들 홀로 서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유해를 그토록 가고 싶어 하셨던 서장에 뿌리면서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이 제 생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사랑의 마음은 서로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왜 우리 마음에 사랑을 쫓아내고 있을까요? 만약 아들이 ‘왜 이렇게 가난해서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합니까?’라고 생각했다면, 또 ‘그 나이에 무슨 여행입니까?’라고 생각했다면, 사랑은 마음 안에서 희미해졌을 것입니다. 사랑했기에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서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보냅니다. 성모님께서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것은 오늘 복음에서 나오듯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예수님을 맡기는 장면을 통해서라고 말합니다.

성모님께는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하시지요. 이 제자는 신앙인을 대표하고, 성모님은 이들의 영적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예수님 당신의 죽음으로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맡을 수 없어서 맡긴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함께하는 성모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는 배려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제자는 그때부터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자기 집에 모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성모님을 귀한 보물처럼 자기 삶 안에 들어오게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교회 안에 사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성모님의 사랑에 함께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 제자가 보였듯이, 성모님을 보물처럼 귀하게 자기 삶 안에 모셔야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이 제 생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결혼은 사랑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조재형신부-

 

부르클린 본당 성모회에서 나들이를 준비하였습니다필라델피아 랭커스터에 있는 극장엘 가기로 했습니다극장에서는 다윗왕을 공연하고 있었습니다팬데믹으로 지친 본당 교우들을 위해서 모처럼 나들이도 하고공연도 보기로 했습니다옆에서 지켜보면서 성모회가 열심히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만두와 반찬을 만들어서 팔았습니다버스 좌석에 이름표를 만들었습니다나이와 교우 관계를 고려해서 좌석을 배치하였습니다아침에 먹을 간식 주머니를 만들었습니다간식 주머니는 종합 선물세트 같았습니다. ‘바나나쿠키계란사탕’ 다 생각은 나지 않지만 10가지가 넘었습니다저녁에 버스 안에서 먹을 수 있도록 출발 당일 아침 5시부터 김밥을 만들었습니다상하지 않도록 시금치 대신에 오이를 넣었습니다따뜻한 물과 커피도 준비하였습니다성극을 보고 소감 발표를 한 분들에게는 선물카드를 주었습니다경품 추첨을 통해서 5명에게 선물도 주었습니다말없이 열심히 봉사하는 성모회가 있었기에 50명이 넘는 분들이 즐거운 나들이를 하였습니다하느님께서는 좋은 날씨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전에 탈무드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다 챙겨 주시기 어려워서 어머니를 보내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을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가족을 위해서 희생하고가족을 위해서 참아주고가족을 위해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저의 어머니도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천사였습니다가장 먼저 일어나셨고가장 늦게 주무셨습니다추운 겨울에도 가족들을 위해서 차가운 물에 빨래를 하였습니다김장철에는 시장에 가서 배추와 무를 사왔습니다가족들을 위해서 간장고추장된장을 담갔습니다손님이 와도 어머니는 손님의 숫자에 맞추어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아버지가 경제적인 능력이 없을 때는 어머니가 쌀장사밥장사구멍가게도 하였습니다지친 내색 없이 어머니는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셨고고운 얼굴은 주름이 늘었습니다저의 어머니만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모든 어머니는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천사입니다그래서 어머니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를 기념하는 날입니다성모님께서는 교회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 오니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인간의 능력과 인간의 지혜에서 길을 찾지 않았고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길을 찾았습니다의로운 사람 요셉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였고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교회는 세상의 지혜를 찾기 전에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식별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를 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우선적 선택은 가난한 이들이어야 합니다.

포도주가 없구나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성모님은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알았습니다주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교회는 조직과 건물이 있어야 합니다신학과 교리가 있어야 합니다제도와 전통이 있어야 합니다그러나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사람이 교회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교회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제자입니다우리는 교회는 사도로부터 이어온다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교회는 성모님을 어머니로 존경하고 사랑을 드려야 합니다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교회를 위해 전구 하시고 있습니다. “저희를 하느님 아버지께 이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주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를 저희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저희의 전구자로 세우셨나이다비오니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간구하는 모든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이 시대는 어머니 성모님의 도움을 더 많이 필요로 합니다!

 -양승국신부-

 

한 가냘프고 연약한 소녀 나자렛의 마리아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묵상해보니 참으로 놀랄 지경입니다. 마리아는 절대 한 상태에 오래 머물러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뜻이 자신의 생애 안에 이루어지기를 늘 기도하고 고민하였으며, 항상 성찰하고 움직였습니다.

  

언제나 희미한 안갯속 같은 자신의 인생 여정이었지만, 주님께서 반드시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굳게 믿으며, 기약 없는 먼길을 걷고 또 걸어가셨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마리아는 놀랍게도 예수님의 어머니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하느님의 어머니에서 천상의 모후로, 천상의 모후에서 교회의 어머니로, 그리고 마침내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의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셨습니다.

  

성금요일 골고타 언덕 십자가 위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그 혹독한 고통 가운데서도 아직 채 못다한 몇 가지 사명을 수행하십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당신 제자와 어머니 마리아 사이에 모자 관계를 맺어주신 것이었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마침내 마리아는 제자들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 그리고 오늘 우리 각자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 시대와 우리 교회가 어머니 성모님의 도움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시대라는 것을 절감하셨을 것이고, 그래서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제정하셨습니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2018년 3월 3일자로 이와 관련된 교령을 발표하였는데, 요지는 이렇습니다.

  

“교회 안의 사목자들, 수도자들, 신자들 안에서 교회의 모성적 감각을 성장시킬 뿐 아니라, 참된 마리아적 독실함을 성장시키기 위해 이러한 공경을 증진하고 격려하기를 원한다.”

  

어머니는 가정의 여왕이자 주인이 분명합니다. 어머니 없는 가정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입니다. 어머니 없는 가정, 허전하고 쓸쓸할 뿐입니다.

  

가정 안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막중한 것처럼, 하느님의 집인 교회 안에서도 어머니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의 어머니 역할을 할 여인을 선택하셨는데, 그분이 곧 성모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양떼, 우리 교회를 위해 성모님을 간택하셔서 우리의 협조자, 동반자, 조력자가 되게 하셨으며, 우리를 위한 갖은 수고를 다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봉사와 조력의 삶을 살도록 성모님을 이끄셨습니다. 주님의 영광스런 그날이 오기까지 성모님께서 우리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도록 준비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서’계십니다. 그런데 그냥 서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방관자나 감독관으로 서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중개자로, 협조자로, 안내자로, 인도자로 그렇게 서 계십니다.

  

어떻게 하면 부족한 우리의 입을 대신해서 하느님께 잘 말씀드려줄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실수나 과오를 잘 변호해줄까? 어떻게 하면 우리를 하느님께 잘 드릴 수 있을까? 순간순간 고민하시고 노심초사하시는 분이 교회의 어머니 성모님이신 것입니다.

 「교회의 어머니」

 -반영억신부-

 

우리는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교회를 ‘자모이신 성교회’라고 칭합니다. 그것은 성모님의 믿음을 바탕으로 제자들의 믿음이 자라났고, 교회의 믿음이 자랐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필생의 과제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의 '교회의 어머니이십니다."(차동엽).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님과의 모자관계로만 머물지 않고 사랑하는 제자의 어머니로,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어머니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어미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신 예수님에 의해 성모님은 많은 이들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늘 함께 하셨던 어머니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엘리사벳의 고백처럼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기에 복되신 분”이셨습니다. 그 복이란 세상이 생각하는 부귀영화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끝까지 지켜내는 믿음의 복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과 순종으로 아기 예수님을 품으셨던 어머니 마리아는 신앙인의 삶의 본보기요, 모범으로 사셨습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기에 예기치 못한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 죽음의 길을 걸을 때 묵묵히 함께 걸으시면서 아들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픈’ 고통을 품으면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날을 받아들였습니다. 성모님은 주님의 어머니요, 믿음의 어머니이십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어머니로 부를 수 있음은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일 때 당당할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성모님과 모자관계를 형성하고 산다는 것에 감사하고 한없이 자애로우신 어머니의 전구에 힘입어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보시고 어머니에게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19,26).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에 순명으로 사신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아들로, 딸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우리 삶의 여정에 어려운 모든 것들을 헤쳐 나아가는데 필요한 은총을 당신의 아들 예수님께 빌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어머니와 동행하는 신앙의 길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송영진신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5-2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성모님과 제자를

‘어머니와 아들’로 맺어 주신 일을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당신이 떠나신 뒤에 혼자 남아 계실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신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당신이 떠나신 뒤에

고아처럼 남아 있을(요한 14,18) 당신의 제자들이(교회가) 걱정되어서

어머니께 제자들을(교회를) 부탁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걱정하셨다는 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마태 6,25-34). 그렇게 가르치신 분이

어머니와 제자들을 걱정하셨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또는 제자들을 걱정하셨다고 표현한 것은,

우리 입장에서 예수님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고,

그 심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초조해하는’ 그런 걱정이 아니라,

어머니와 제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어머니께 부탁하신 일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는

보호자를(성령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요한 16,7).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제자들은 성령을 받았다. ‘성령’이라는 보호자로는 부족한 것인가?

어머니라는 보호자가 왜 더 필요한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 일은 하느님과 예수님 쪽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감각과 인식의 한계 안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에 대한 배려.)

처음부터 생각하면, 하느님께서는 메시아 예수님을,

사람의 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세상에 등장시키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성모님을 통해서 아기로 태어나게 하신 것은,

인간 구원 사업을 인간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어머니께 맡기신 일도,

성령이라는 보호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분으로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인도해 주실 분이 계시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신앙인들) 쪽에서 먼저 원하고,

먼저 부탁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 첫 번째로 선택된 협력자로서

메시아 강생의 통로가 되셨고, 아기 예수님의 보호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는 인간들이 하느님 나라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보호자가 되셨고,

하느님 나라로 연결되어 있는 통로가 되셨습니다.

 

보편적으로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랍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자녀들이 모두 구원받기만을 바라시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복음에 있는 ‘되찾은 양의 비유’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이 말씀에서 ‘아버지의 뜻’은 ‘어머니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다음 말씀입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48).”

전후 상황이 어찌 되었든지 간에

잃은 자녀를 ‘애타게’ 찾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고 마음입니다.

 

<오늘날의 인간들이 점점 더 세속화되고, 하느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영혼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 갖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성모님께서는 정말로 애를 태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종말과 심판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애를 쓰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자녀가 중병에 걸려 누워 있으면,

밤새도록 자녀 곁을 지키면서 간호하는 ‘사랑’입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말하더라도,

그래도 어머니는 자녀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사랑입니다.

죄는 영혼의 병입니다.

지금 우리는(나는) 어머니의 사랑과 간호가 필요 없을 정도로 건강한가?

혹시 자신의 병을 깨닫지 못하고서 “나는 건강하다.” 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서 하신 예수님의 다음 말씀은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을 잘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루카 3,34).”

 

신앙생활은 ‘효도하는’ 생활입니다.

‘내가’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효도로 응답하는 생활,

또 ‘나 때문에’ 애를 태우고 계시는 어머니의 사랑에

효도로 응답하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실행해야 할 첫 번째 효도는 ‘회개’입니다.

예수님의 첫 복음 선포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입니다.

회개하지 않고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혹시라도,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

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교만한 생각은 메시아를 보내신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가 됩니다.>

‘회개’란, 죄에서 벗어나는 것을 포함해서,

‘삶 전체’를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 27)

-한상우신부-

동정 마리아와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
삶이다.

진실함과
간절함의
여정이다.

교회는
어머니의
삶을 닮았다.

어머니의
정성과 손길로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모든 기쁨을
함께 나누신다.

교회에 대한
존귀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어머니시다.

고맙고 존귀한
사랑의 관계는
생활을 사랑하고
믿음을 실천하는
신앙의 삶으로
드러난다.

모두의 어머니가
되시는
어머니시다.

이 시대
교회의 역할또한
어머니가 되는
자기 희생과
헌신적 봉사로
이어져야 한다.

구체적인
현실 위에
구체적인
실천이
더 없이
중요하다.

어머니는
곧 실천이다.

실천이 빠져버린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닐 것이다.

신앙의 생명은
타성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창조이며
변화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살아있는
교회는 어머니와
함께 끊임없이
기도하시며
삶 자체를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하신다.

어머니같이
뜨거운 가슴으로
삶의 현장에
뛰어드는 교회
그 교회의 모습이
그리운 시대이다.

어머니를 통해
변화된
우리의 모습이
곧 교회의
모습이길
기도드린다.

어머니의 삶은
교회가
나아가야 할
교회의 참된
모습이다.

간절함과
절박함의
정성과 사랑이
더더욱 필요한
때이다. 

말씀 나누기 - 교회의 어머니 성 마리아 축일-마라아처럼 모성성을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1년 5월 24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