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5월 26일 주님 승천 대축일

Margaret K 2022. 5. 29. 06:44

2022 5 26일 주님 승천 대축일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루카 24,46ㄴ-53)

  

Then he led them out as far as Bethany,

raised his hands, and blessed them.
As he blessed them he parted from them
and was taken up to heaven.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 말씀하시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군대 제대 후에 당시 성소 국장 신부님께서는 사회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면서 아르바이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택했던 일이 주유소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추운 겨울에 주유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힘들었던 것은 손님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무시하는 말투, 욕이 섞여 있는 반말, 자그마한 실수에도 큰 죄 지은 것처럼 화를 내고 혼내는 모습에서 세상살이가 쉽지 않음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 기간이 빨리 지나서 학교에 복학했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어떤 연세 지긋한 형제님과의 만남에서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분은 주유원에게 절대 반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휴지 가져와라, 사은품 가져오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지금은 거의 없지만 당시에는 사은품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추운데 고생한다면서 꼭 무엇인가를 주셨습니다. 사탕, 귤, 일 끝나고 따뜻한 호빵이라도 사 먹으라면서 돈을 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이분만 오시면 기분이 좋아졌고, 이분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나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각 휴지를 하나만 드려야 하는데 몰래 두 개를 드리기도 하고, 차가 지저분하면 살짝 세차도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분을 보며 ‘나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겠다.’라고 다짐하게 되었지요.

사랑의 실천은 절대 손해가 아닙니다. 나를 통해 변하는 누군가를 만들 수가 있으며, 나 역시도 큰 도움을 받게 됩니다. 사랑의 실천은 약한 사람의 모습이 아닌, 가장 강한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장 힘센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깨우치도록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다음으로 구원의 길은 온 세상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담당해야 할 제자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힘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신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사랑의 힘으로 주님의 말씀을 무조건 따르겠다고 다짐합니다. 주님을 닮은 삶, 주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삶을 선택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세상 끝까지 가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 사랑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의 전달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계속된 사랑의 전달로 사랑 가득한 세상이 됩니다.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으려고만 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사랑받는데 익숙한 약한 사람이 아닌, 사랑하는데 적극적인 가장 강한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삶을 더 심오한 의미의 연관성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이 의미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들도 인식한다(페터 부스터).

 주님 승천, 떠나시는 것이 사랑인가?

-전삼용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youtu.be/0l8p0r-TaHs

오늘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날입니다. 그런데 기뻐해야 하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으실 때 내가 가장 크게 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눈에 보여야 일치할 수 있지 않으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엄마가 지켜볼 때 공부하는 것과 지켜보지 않아도 공부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더 원하십니까? 지켜보지 않아도 잘 할 수 있는 아이가 성숙한 아이입니다. 

부모들도 처음엔 지켜보다가 이젠 자녀를 믿고 볼일을 봅니다. 이때 자녀가 부모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려 자기 자신과 싸울 때 가장 큰 발전을 이룹니다.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에서 저자 앤절린 밀러는 완벽한 아내,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심리 상담 학위가 있던 준비된 엄마였습니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술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남편과 결혼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를 닮았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남편을 고쳐보겠다고 완벽한 아내가 되려던 엄마를 닮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은 술은 안 마시지만 심한 불안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밀러는 그런 남편에게 엄마처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녀들도 우울증과 분열증과 같은 심각한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분열증으로 병원에 입원하자 엄마는 이 모든 문제가 가장 완벽하다고 여겼던 자신 때문이었음을 발견합니다. 

상담사가 어느 날 밀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자녀 행복의 책임이 당신에게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런…. 것…. 아닌가요?”

이번엔 딸에게 묻습니다. 

    “네 행복에 대한 의무가 엄마에게 있다고 생각하니?”

딸은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아니요!”

  

    엄마는 왜 자녀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을까요? 지신이 불행한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고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입니다. 부모 탓을 하고 있기에 자녀들에겐 그런 부모가 되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자신은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코디네이터’였습니다. 완벽히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가족들을 도구로 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자기 행복의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에게 있다고 믿는 데서 해결됩니다. 어느 날 하루는 정원에 큰 나무를 베어 장작으로 쓰려고 했습니다.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자기에게 중요한 나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가 남편을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싸우는 가정이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화를 인정하였습니다. 물론 자신의 탓으로 여기면 더 큰 발전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막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때 아내의 말에 깜짝 놀라 자기 행동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책의 첫머리에 이 말이 그녀의 후회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억제하지 못할 때면 나는 네 신발을 집어주고, 네 배낭을 져 나르고, 네 교통 법규 위반 벌금을 납부하고, 네 상사에게 거짓말로 핑계 대고, 네 숙제를 해 주고, 네 앞길에서 돌멩이를 치워주고, ‘내가 직접 했어!’라고 말하는 기쁨을 네게서 뺏겠지.”

    그녀는 자신이 이런 엄마인 줄을 알고 나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은 아주 많았다. 다른 사람들의 책임을 떠맡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 말이다.”

  

    각자의 행복은 각자에게 맡겨주십시오. 나의 책임이 아닙니다. 내가 다른 이의 행복까지 책임지려 하는 것은 나의 행복도 다른 이가 책임져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니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녀를 방치해야 할까요? 방치란 사랑이 없을 때 하는 것입니다. 귀찮을 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맡겨야 합니다. 맡기려면 힘을 주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오는 일을 맡기셨을 때 지팡이를 주신 것처럼, 주시고 맡기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이를 하루 동안 길에 버려놓고 몰래 아이를 지켜봅니다. 필요할 때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아이에게 언젠가는 이렇게 부모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것이 맡김입니다. 예수님도 그냥 하늘로 오르신 것이 아니라 필요한 때에 성령을 주실 준비가 되어계십니다. 

  

    아프리카 어떤 부족들도 이와 비슷한 행위를 한다고 합니다. 아이를 밤새 정글 안의 나무에 묶어 놓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사라집니다. 아이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겁을 먹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줄 것을 믿습니다. 아버지는 필요할 때 활을 쏠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이 활이 성령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스스로 두려움 없이 믿고 살며 성장하도록 하늘에서 우리 주위에 활을 겨누고 계십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 쏘셔서 우리를 구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분이 보이시지 않아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처럼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나무에서 떨어뜨리는 어미 새와 같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않는 고통을 감내하며 그분의 믿음을 실현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내려주실 성령을 기다리며 그 순간을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떨어지는 고통 가운데에서 우리는 날갯짓만 하면 됩니다. 물론 계속 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힘을 주지 않고 떨어뜨리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떨어져야만 그 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미 새가 새끼 새를 떨어뜨린다는 말은 새끼 새를 믿는다는 말입니다. 어른이 되게 하려면 일단 독립적인 공간을 제공해주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유를 부여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승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제 어른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이지 않아도 하느님처럼 하기 위해 끊임없는 날갯짓을 하면 힘이 붙어 날게 될 것입니다. 이 힘이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성령입니다. 

  

    하느님처럼 되기 위해 날갯짓하는 노력은 무엇일까요? 이웃을 하느님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처럼 대하기 위해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도 이웃을 하느님처럼 대하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이 날갯짓은 언젠가 성령을 불러와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시킬 것입니다. 저에게 이 날갯짓이란 이웃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조재형신부-

 

북미주 사제모임을 다녀왔습니다모임의 취지는 미주지역 한인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인 협력과 파견사제들을 위한 다양한 정보제공입니다이번 모임에서 미국주교회의에서 발표한 문서 '조화 속에서 그리스도와 만남'에 대한 주제토론이 있었습니다문서의 주된 내용은 아시아와 태평양 연안 섬에서 온 이주민들이 미국사회에서 잘 지낸 수 있도록 미국 교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그들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이었습니다아시아 교회는 특히 한국 이주민 교회는 미국교회에 3가지 측면에서 협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첫째는 지역 교회에서 실시하는 각종 모임에 참석하자고 하였습니다그래야 인정받는 다고 하였습니다둘째는 성직자와 수도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이주민 출신 성직자와 수도자는 이주민 교회를 대변할 수 있고교회 기관에 역할을 맡으면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셋째는 재정적인 기여를 하자고 하였습니다그렇게 하면 미국교회도 아시아 이주민 교회를 존중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토론은 2가지로 요약되었습니다언어의 문제가 있지만 적극적인 참여로 목소리를 내자는 것입니다미국교회도 아시아 이주민들의 언어문제를 감안해서 이해한다고 하였습니다중요한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이주민 2세들에게도 마음을 열고 가까이 다가가면 충분히 대화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다른 하나는 우리의 것을 잘 지키고 알리자는 것입니다팬데믹 중에 한국의 문화와 의료체계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미국과 서구사회도 한국의 효과적인 대응에 놀랐습니다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였다고 합니다김대건 신부님의 생애를 영어로 번역하였고전시관을 만들어서 보여주었다고 합니다지역교회의 주교님과 미국교회 공동체도 한국의 성인에 대해서 높은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이주민 2세들도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적극적인 참여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은 이주민 교회의 발전과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이번 모임에서 먼저오신 사제들은 다양한 정보를 나누어 주었습니다새로 온 사제들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오늘은 주님승천대축일입니다교회는 주님승천대축일을 홍보주일로 정하였습니다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수난부활 그리고 승천은 제자들에게는 추억 만들기입니다때로 험난하고 두렵고 떨리기도 하지만 희망과 신념으로 질곡의 역사를 관통하며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그리고 우리의 추억을 이웃에게 알려야 합니다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지 말라고 하십니다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문하는 것은 3가지입니다.

 

첫째는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분열과 갈등을 넘어시기와 질투를 넘어서두려움과 걱정을 넘어서 참된 기쁨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우리의 말과 행동이 참된 기쁨과 평화를 주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새로운 시대에 기쁨을 추억으로 만들어 가라고 하십니다.

둘째는 마귀를 쫓아내라고 하십니다마귀는 집요하게 우리들의 영혼을 찾아옵니다때로는 달콤한 유혹으로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은 마귀가 자주 사용하는 미끼입니다마귀는 우리를 게으름으로 유혹하기도 하며탐욕과 욕정으로 이끌기도 합니다우리의 힘으로는 부족하므로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셋째는 병자들을 고쳐주라고 합니다육신의 병은 고치기가 쉽습니다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교만의 병에 걸린 사람분노의 병에 걸린 사람시기의 병에 걸린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용서하지 못하고영혼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영혼이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는 것이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이란 우주선을 타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지금 현재를 옹골차게 딛고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승천은 좌절과 두려움에서 희망과 신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우리 모두 주님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나의 삶의 자리에서 변화된 삶을 시작하는 것이 바로 승천입니다. 

 이제 하늘 높이 향했던 우리의 머리를 일상의 낮은 곳을 향해 내려야겠습니다!

 -양승국신부-

 

선친 장례미사 때의 기억이 언제나 생생합니다. 시신을 기증하셨기에 장례절차가 참으로 간단했습니다.

  

장례미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의과대학병원에서 보내온 앰뷸런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울고불고 대성통곡을 터트릴 겨를도 없었습니다. 

 

담당 직원의 숙련된 동작에 따라 고인의 관이 앰뷸런스의 뒷공간에 실리고 문이 탁 닫히고 나니, 그걸로 모든 것이 끝이었습니다. 장지에 따라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화장장에서 기다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앰뷸런스가 떠나고 나니 정말로 허망했습니다. 뭔가 진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제야 살아생전 고인의 멋진 생애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떠오른 생각 하나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 이렇게 멋지게 장식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분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언제까지 앰뷸런스 뒷꽁무니만 바라볼 생각이냐? 이제 빨리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거라. 내가 채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란다.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더 기쁘게 더 충만히 살아가길 바란다.’

  

오늘 제자들이 보는 눈앞에서 영광스럽게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도 유사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행전 1장 11절)

  

승천하신 예수님을 떠나보내고 난 제자들의 심정, 고인을 떠나보낸 우리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굉장히 허망하고 무척이나 아쉬웠을 것입니다.

  

스승님과 함께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나머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분께서 떠나신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의 심정을 잘 헤아리셨던 예수님이셨기에 떠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따뜻한 한마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 복음 24장 49절)

  

오늘 우리에게도 천사들은 똑같은 말을 건넬 것입니다

  

“너희는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이제 하늘 높이 향했던 우리의 머리를 일상의 낮은 곳을 향해 내려야겠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낮추어 꼬질꼬질해 보이고 남루해 보이는 인간 세상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흔적을 찾아 나서야겠습니다.

  

인간 세상 안으로, 죄투성이의 비참한 인간들 안으로 완전히 육화하신 하느님의 자취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의 발밑을 내려다봐야겠습니다.

  

왜 하늘만 바라보고 있느냐는 질책은 이제 이 지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라는 말입니다. 이 땅에 머무시는 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가르침과 업적을 찬양하며 인간 세상 안에서 그분의 공동체를 건설하라는 말입니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또 다른 그리스도, 제2의 그리스도가 되어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라는 말입니다.

 말씀 나누기 - 주님 승천 대축일-땅에서 하늘을 살자! (ofmkorea.org)

-김찬선신부-

말씀 나누기 - 주님 승천 대축일 (ofmkorea.org)

-김명겸 요한-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19년 6월 2일 주님 승천 대축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