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1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Margaret K 2021. 11. 27. 07:36

2021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닥쳐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가 21,34-36)

 

Be vigilant at all times
and pray that you have the strength
to escape the tribulations that are imminent
and to stand before the Son of Man.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다니엘 예언자는, 환시에서 본 네 마리 짐승은 이 세상에 일어날 네 임금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설명을 듣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고 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역사가이며 비평가인 토머스 칼라일은 집에만 두문불출하며 오로지 집필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프랑스 혁명’이라는 대작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 대작의 첫 작품은 불에 타 없어졌고, 두 번째로 쓴 작품이 현재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수천 장의 원고를 완성한 뒤, 친구인 존 스튜어트 밀에게 감수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그의 하녀가 책상 정리를 하다가 쓰레기인 줄 알고 난로에 넣고 태워버린 것입니다.

지금이야 컴퓨터로 작업을 하기에, 어떻게든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펜으로 일일이 써야 하는 시대였으니 원고가 없어지면 그 모두가 헛일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토머스 칼라일의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요?

그냥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서 건물을 만드는 것처럼 다시 쓰게 됩니다. 그리고 1837년 ‘프랑스 혁명’이라는 대작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포기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특히 세상의 일은 포기하게 만드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힘을 주님께서 주십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지니는 방법이 바로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하는 기도를 하지 않으면, 우리 곁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실제적인 만남과 대화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기도는 순간의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기도할 줄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기도하기가 너무나 힘들다고도 이야기하십니다. 그러한 분들에게 이런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기도는 기도함으로써만 기도를 배우고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가 잘되지 않는다는 분들, 또 할 줄 모른다고 하는 분들에게 “어떻게든 기도하십시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늘 깨어 기도하여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용서하는 것이다(엘리잘 벤 주다).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쫓아내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 9명이 있었고, 다른 한 명이 감기로 무척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 건강한 사람 9명과 감기 환자 1명이 같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건강한 사람의 에너지로 아픈 사람을 낫게 해줄 것 같기도 하지만 전염병은 이런 예측대로 가지 않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생활한다면 모두 감기 환자가 될 확률은 아주 높아집니다. 건강한 사람으로 감기 걸리는 사람을 건강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이 감기에 걸립니다.

우리 삶도 비슷합니다. 부정적 말과 행동 하나로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 안에도 이런 말과 행동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따라서 부정적인 영향이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도록, 일찌감치 격리하고 쫓아내야 합니다.

 심 판 때 그리스도 앞에설 힘은 기도로 얻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믿음

-전삼용신부-


오늘 복음에서 종말의 긴 말씀 가운데 마지막 당부가 나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우리 대부분은 마지막 때에 하느님 앞에 설 힘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그러나 쉽지 않을 것입니다그 힘은 곧 그분의 뜻을 따랐느냐에 의해 생겨납니다.

    중동으로 나가 일을 하고 남편들이 돈을 보내줄 때 아내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아껴 쓰면서 자녀를 잘 키워 몇 년 만에 남편이 돌아올 때 기쁘게 김포공항에 나가는가 하면어떤 자매들은 남편이 돌아올 때 도망을 치거나 자살을 했습니다그 돈을 제비에게 다 가져다 바치고 빚까지 졌기에 남편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사랑했다고 주님 앞에 설 수 있을까요야곱은 장자권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그러나 20년 동안 많은 고생을 했음에도 감히 에사우 앞에 나설 힘이 없었습니다그동안 세상에서 자신이 낳은 자녀들과 모은 재물들을 먼저 선물로 보냈지만여전히 에사우 앞에 설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남아 기도하였습니다이것이 천사와의 씨름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천사는 축복을 청하며 밤새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야곱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리고 그의 이름을 바꿔주었습니다이름을 바꾸었다는 말은 새롭게 태어났다는 말이고 새 정체성이 생겼다는 말입니다정강이뼈가 부러졌다는 말은 더는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죽었다는 말입니다

    기도는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 서는 힘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산다라는 믿음입니다.

  

    사람 앞에 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내가 살아 있으면 누구의 앞에도 설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나는 사랑으로만 죽는데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이들은 자아가 강해서 남들 앞에 잘 서지 못합니다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자아가 상처받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무대 공포증과 같은 것입니다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자아가 살아 있어서 잃을 것을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알게 되면 하느님의 사랑으로 부모가 죽여주지 못한 자아까지 죽일 수 있습니다그러면 비로소 누군가의 앞에 설 힘이 생깁니다나 대신 그리스도께서 나서주신다고 믿으면 사람들 앞에 설 수 있고 하느님 앞에도 설 수 있습니다.

  

    조두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소원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소원이네 문구점그리고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아빠이들은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소원이는 늦게 학교에 가게 되고 아저씨가 우산을 씌워달라는 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소원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소원이는 우산을 씌워준 것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렸고 자신에게 상처만 주는 세상과 담을 쌓습니다아빠가 들어와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아빠도 세상에 속한 한 남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호스를 낀 옆구리로 변이 새어 나와서 그것을 닦아주기 위해 바지를 벗기려는 아빠를 거부합니다그런데 아빠 말고는 아이의 상처를 치유해 주어 세상과 소통하게 할 사람은 없습니다. 

 

    아빠는 소원이가 냉장고 나라 코코몽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코코몽 인형 안으로 들어가 소원이와 친해지려 합니다소원이는 코코몽을 좋아합니다공장에서 일하다가도 점심시간에 소원이만 볼 수 있는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코코몽 인형 속에서 소원이를 응원합니다소원이는 코코몽이 보이면 그 무시무시한 학교 앞길도 힘 있게 걸을 수 있습니다소원이는 코코몽이 지켜주기에 학교도 갈 수 있고 남자친구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그것으로 만족이었습니다그러나 소원이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그 코코몽이 아빠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소원이는 아빠를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세상도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아빠의 희생 덕분으로 잃어버렸던 말도 되찾아 말을 하게 되고 아이들과도 이전처럼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어느 날 소원이는 자신을 쫓아다니는 코코몽에게 다가와 인형 얼굴을 벗기고 아빠의 땀을 닦아줍니다아빠는 눈물을 흘립니다.

  

    사실 우리도 같은 상황입니다상처받아 자아가 커진 상태입니다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그러나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동행해주심을 믿으려 합니다그리고 그렇게 동행해주시는 하느님의 땀과 피를 봅니다그리고는 그분의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이것이 기도의 과정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나아갈수록 상처받은 나는 사라집니다죽는 것입니다마치 태양으로 다가가는 것처럼 주님께 다가갈 때 나는 타버립니다그렇게 나도 하느님의 인형 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에게 다가갑니다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시는 것이기에 타인이 나를 모욕하고 상처 주어도 크게 두렵지 않습니다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주님께서 다 받아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이 믿음을 증가시켜 줍니다결국야곱이 에사우 앞에 서는 힘은 기도로 내가 죽고 에사우에게 속한 사람임을 고백할 수 있을 때 가능했습니다야곱은 에사우에게 일곱 번 절하며 다가갑니다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며 하느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과 같음을 고백합니다마치 마지막 만찬상에서 요한이 예수님께 그랬던 것처럼 에사우에게 안기고 그의 땅에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소원이가 아버지의 땅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세상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처럼하늘나라에서도 하느님 품에서 살 수 있게 될 때 하늘나라 백성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됩니다형제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기도로 하느님을 사랑하여 나를 죽이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분 품에 안겨있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마지막 때에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 십자가를 거친 요한이나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숨는 일 없이 기쁘게 그분께 엎드려 그분 품으로 달려들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이 있다면 바로 그분 앞에서 설 힘을 얻기 위해 기도하여 자기를 죽이는 것뿐입니다자기를 죽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인정해야 합니다소원이가 아빠의 사랑을 인정했듯이 말입니다이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https://youtu.be/zh1mgC8LPGE 

유튜브 묵상 동영상

 -조재형신부-


여행가서 미사를 드릴 때입니다간장 종지에 물을 담아 놓으니 미사 중에 사제가 손을 씻는 그릇이 되었습니다간장을 담을 때는 간장 종지였는데물을 담으니 미사를 봉헌하는 제구가 되었습니다간장을 담을 때는 몰랐는데 미사의 제구로 사용하니 더 예쁘게 보였습니다예전에 읽은 글도 생각납니다화가가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렸는데 두 사람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최후의 만찬을 이끄시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배반했던 유다였습니다화가는 어느 날 예수님의 얼굴로 그릴 수 있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젊은이에게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고예수님의 얼굴을 그려 넣었습니다. 7년이 지난 후였습니다드디어 예수님을 배반했던 유다의 얼굴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그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유다의 얼굴을 그렸습니다그런데 유다의 얼굴을 했던 사람이 화가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실은 제가 7년 전에 예수님 얼굴의 모델이었습니다.’ 화가는 깜짝 놀랐습니다유다의 얼굴 모습으로 그렸던 사람이 7년 전 예수님의 얼굴 모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바보라는 소리를 들었던 온달은 평강공주를 만났습니다평강공주는 온달이라는 그릇에 신념과 용기를 담아 주었습니다바보 소리를 듣던 온달은 나라를 구하는 장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로 비유하셨습니다슬기로운 처녀는 등잔에 기름을 채웠습니다어리석은 처녀는 등잔에 기름을 채우지 못하였습니다등잔에 기름을 채운 처녀는 혼인잔치에 오는 신랑을 맞아들일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기름을 채우지 못한 처녀는 혼인잔치에 오는 신랑을 맞이할 수 없었습니다등잔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직업능력성별민족외모피부색이라는 등잔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중요한 것은 등잔에 채우는 기름이었습니다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등잔을 채우면 등잔이 아무리 좋아도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지 못합니다거짓과 교만과 욕망으로 등잔을 채우면 유혹의 바람이 불면 꺼지고 맙니다우리가 채워야 할 등잔의 기름은 무엇일까요기도와 선행과 나눔으로 등잔을 채우면 비록 등잔이 투박할지라도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될 것입니다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으로 등잔을 채우면 유혹의 바람이 불어도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21년 10월 28일 정순택(베드로주교님을 차기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겸 평양교구 교구장 서리로 임명하였습니다정순택 주교님은 교구장 임명과 동시에 대주교로 승품됐습니다염수정 추기경님은 우리 교구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새 교구장님으로 성령께서 정순택 대주교님을 선택하셨다고 말했습니다이어 교구에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큰 기쁨이고 축복이라며 든든하고 훌륭한 새 교구장님이 우리나라와 교회에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열매를 맺길 모든 신자수도자사제들과 함께 기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2014년 저는 교구 성소국장으로 있었습니다깔멜의 수도자였던 정순택 베드로 신부님은 서울대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저는 사제부제서품을 준비하면서 주교 서품식도 함께 준비하였습니다. 2014년에는 주교서품부제서품사제서품식이 있었습니다그 뒤로 정순택 주교님과는 교황방한 준비 위원회로 함께 일하였고, 5년 동안 가까이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온유하시고겸손하신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염수정 추기경님께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성령께서는 영적으로 충만한 교구장을 선택하셨다고 생각합니다정순택 대주교님께서 교구의 사제들과 함께 서울대교구라는 등잔에 믿음희망사랑의 기름을 가득 채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늘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신앙의 눈을 뜨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도 기쁨입니다희망의 눈을 뜨고 이 모든 것 또한 지나가리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거저 받았으니거저 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기꺼운 마음으로 나누는 것도 행복입니다그러기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큰 행복입니다신앙인이라는 말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몸을 팔았던 여인도눈이 멀었던 소경도나병환자도하혈하던 여인도중풍병자도듣지 못하던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그들은 살아서 참된 행복을 느꼈고영원한 삶을 보았습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간결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지키고 따른다면 그곳이 바로 꽃자리입니다우리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진다면 그곳이 바로 가시방석입니다우리가 하느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한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면서 좋아하는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복음: 루카 21,34-36: 늘 깨어 기도하라

 -조욱현신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34절) 영원하신 임금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술의 위험과 또한 ‘술 중독’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먹는 사람도 의사가 술을 먹으면 이제 죽는다고 하면 모두 술을 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영혼과 육신의 의사이신 주님께서 만취와 방탕과 일상의 근심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다. 그렇게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에 빠져 살면서 아무 탈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만취는 모든 것을 망치는 원인이다. 육신과 함께 영혼까지 약하게 하는 유일한 병이다. 사도 바오로는 육신이 약할 때 영은 강해진다(2코린 12,10)고 하였다.

 

“외적 인간은 쇠퇴해 가더라도 우리의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2코린 4,16) 하였다. 그러나 술에 취해 살면 육신과 영혼이 파멸한다. 육신과 영혼이 한꺼번에 타락하는 것이다. 모든 지체가 약해지면서 손과 발이 말을 안 듣고, 혀는 풀리고 눈은 어두워진다. 정신 또한 망가져서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심하면 자기가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술 중독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생의 마지막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아직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애써 잊으려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여도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앞에 당당히 버티고 있으며, 언제나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다만 그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하여간에 우리 인간은 언제고 어느 때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깨어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지금 당장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 있게, 기쁘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을 기쁘게 잘 만날 수 있으려면 평소에 죽는 연습을 잘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이기는,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나의 인간적인 뜻을 죽이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죽는 연습이 잘 되어있다면,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이 세상 삶도 잘 마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종말론적인 삶이며, 우리는 그날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이겨내고 주님을 뵐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은 항상 기도하는 자세와 함께 이루어갈 수 있다. 기도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들의 삶이 하느님께 바쳐지는 아름다운 기도로써 바쳐질 수 있도록 한다면 진정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잘 새기고 실천하여야 한다.

 "방탕과 만취의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 21, 34)

-한상우신부-


우리의
마음이
물러지지
않아야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

빠르게
지나가고
빠르게 저무는
우리 일상의
모든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했다.

일상의
근심으로
몰아넣는
우리들 방탕과
만취의 시간들을
눈물 떨구며
반성한다.

방탕과 만취로
오시는 주님도
모른 채
살아가는
어리석은
우리자신이다.

건강한 일상을
깨뜨리는 것은
언제나
무질서한
우리들이었다.

무질서는
소중한 관계를
뒤엎는
가장 큰
재앙이다.

주님께서는
깨어나는
방법이
당신을 향한
기도임을
가르쳐주신다.

기도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용기와 용서이다.

주님과
가까워지지
않고서는
일상의 모순을
멈출 수 없다.

건강한 일상을
되찾아주시는
주님이시다.

일상을
구원하시는
사랑의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일상과
기도 사이에
가장 좋은
사랑이 있다.

우리의 모든
일상의
부족했던
시간과 모든
기쁨을 주님께
봉헌한다.

그 모든
순간에
가장 좋으신
주님이 계셨다.

아무 것도
아닌 시간은
없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랑을 다시
일깨워주신
주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든 여정에
감사드립니다.

 -오상선신부-


전례력으로 2021년 나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미사의 말씀은 희망을 촉구하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이어받아 영원히, 영원무궁히 차지할 것이다."(다니 7,18)
네 짐승의 환시를 보고 정신이 산란해진 다니엘에게 누군가 그 의미를 해석해 줍니다. 앞으로 일어날 네 임금이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네 짐승처럼 하느님 백성을 박해하고 괴롭히겠지만 결국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에게 영원한 승리가 주어지리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마침내 연로하신 분께서 오셨다. 그리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권리가 되돌려졌다. 이 거룩한 백성이 나라를 차지할 때가 된 것이다."(다니 7,22)
마침내 하느님께서 오시어 당신 백성 가운데 현존하십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백성은 생명과 신앙과 행복의 권리를 되찾게 되지요. "때"가 찬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이 구원의 "때"를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들려줍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 21,34)
주님께서 오시는 "때"를 맞이하려면 마음을 지키는 일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 전 인격의 중심인 마음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내면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욕구와 정념을 무절제하게 남용하며 무질서하게 살아가거나, 세상에 만연한 어둠과 악에 치여 근심 걱정이 들끊는다면 마음의 질서와 균형을 지키기는 참 어렵습니다. 당장의 쾌락이나 안위, 두려움이 마음을 점령해 버리면 하느님이 가려 보이지 않게 되고, 그럴수록 희망은 질식되어 버리니까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마음을 거룩히 지킬 줄 아는 이들입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주님의 때를 알아차리고, 오시는 그분 앞에 설 수 있는 힘은 기도에서 나옵니다. 깨어 기도하는 이는 시대의 징표를 읽고, 알 수 없는 하느님의 계획에 함께 마음을 싣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 만만치 않지요. 어려움과 고통 중에 자신과 가족과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더 힘겹고 버겁게 느껴지는 건 코로나까지 겹쳐서 온 인류가 함께 험난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또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선물로 주셨고, 구원이 지척에 다가왔으니, 이럴 때일수록 마음과 영혼, 육신의 존재적 질서를 회복하고, 자신을 둘러싼 어둠과 고통에 굴복해 무너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촉구하시듯 희망을 꼭 붙들고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벗님! 지난 한 해 너무너무 수고하셨습니다. 말씀에 대한 갈망과 사랑으로 문을 두드려 주시고, 귀를 기울여 주시고, 그렇게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과 사랑으로 저마다의 삶의 자리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인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보냅니다.   

*오늘부로 말씀묵상 나눔을 마무리합니다. 대림절 특별한 축복 속에서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시 침묵 안에서 주님을 더 깊이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는 저를 이해해 주시고 기도중에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벗님 여러분 한분한분을 더 깊이 만나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씀 나누기 - 연중 34주 토요일-하느님 앞에 설 수 있기 위해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17년 12월 2일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