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교재

프란치스칸 여정 제 10장 재속 프란치스코회 입회기

Margaret K 2021. 8. 1. 07:00


프란치스칸 여정 

제 10장 재속 프란치스코회 입회기

Chapter ten Candidacy in the SFO


입회기는 적어도 18개월이 되어야 하고 36개월을 넘겨서는 안된다.

Candidacy lasts at least 18 months and no more than 36 months


입회기는 초기 양성의 마지막 단계이다.  그것은 양성의 끝이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다른 단계이다. 이 기간은 재속 프란치스칸으로서의 종신 서약을 하는 결정에 이르게 한다. 서약은 프란치스칸 삶에 있어 영속적 양성에 이르는 문을 여는 것이다. 당신이 재능과 기술을 형제회, 교회 그리고 세상의 봉사에 바칠 시간이다. 당신의 재능과 기술은 형제회를 넘어서 밖으로 뻗어져 있다. 그것은 성 프란치스코 정신을 교회와 세상에 가져다 준다.

Candidacy is the final stage of initial formation. It is not the end of formation, but another step on the way. This period leads to your decision to make a permanent profession as a secular Franciscan. Profession opens the door to ongoing formation in Franciscan living. It is a time when you consecrate your gifts and skills to the service of the fraternity, the Church and the world. Your gifts and skills reach out beyond the fraternity. They bring the spirit of St. Francis to the Church and world. 


미국 국가 규정 (19,2조)은 입회기는 18개월보다 적어서도 아니되고 36개월을 넘어서는 안 된다. 입회기의 기간은 (18-36개월 사이) 재속 프란치스코회 단위 혹은 지구 평의회에서 결정된다. 이 책은 입회기에 대한 24장을 다루고 있다.

The USA National Statutes (article 19.2b) determine that candidacy is not less than 18 months nor more than 36 months. The length of candidacy (between 18 and 36 months) is decided by the local council or by the regional council of the SFO. This book has 24 chapters for candidacy.


입회기는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 및 회헌의 이행뿐만 아니라 정보를 공유할 것이다. 당신의 임무는 회칙과 회헌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정보는 다아신의 삶의 방식을 개혁하는 수단에 이르게 한다. 회칙과 회헌의 시리행을 통해 당신은 서약에 관해 정보에 근거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Candidacy will share information as well as implementation of the SFO Rule and Constitutions. Your task is not only to study and explore the Rule and Constitutions but to put them into practice. Information leads to ways of reforming your way of living. Putting the Rule and Constitutions into practice will enable you to make an informed decision about profession.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님이시고 주님으로 인정되어 있는 하느님의 왕국에서  살고 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랑이다. 그것은 심판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삶에로의 초대이다.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 할 때 우리는 복음에 대한 애정이 깃들인 대응을 하도록 요청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실제로 일상의 방법으로 그것을 보여줄 때 하느님의 바라는 바가 실현된다.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은 수밚은 상황 속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We live in the Kingdom of God where God is Lord and is recognized as Lord. The will of God is LOVE. It is not a place for judgment but an invitation to new life. In building the Kingdom of God we are called to offer our loving response to the Gospel. the desire of God is fulfilled when we love one another and show it in practical, everyday ways. The Rule of the SFO offers ways to love one another in a multitude of circumstances.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기도, 묵주기도, 피정 및 프로그램 등등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위안은 되나 도전적이지 않으면,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실질적 대화를 하지 않고 그것들을 계속 되풀이 할 수 있다. 대화란 프란치스칸 사람에서 일반적인 요소이다. 우리 또한 예수님으로 이끄는 명상기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 분은 사랑하는 주님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는 신자들의 공동체(하느님의 왕국)를 세우는 "생명이 있는 주춧돌"이다. 양성이 신뢰받기 위해서는 활기차야 되고 그것은 우리의 행동에서 나타날 것이다.

The spirit of St. Francis invites us to deepen our relationship with Jesus, Prayers, rosaries, retreats, programs etc. are good. But if they become comfortable and not challenging, we can repeat them over and over again without any real conversion taking place in our lives. Conversion is a normal element of Franciscan life. We also recognize the importance of contemplative prayer that brings us to Jesus. He is the Beloved and the Lover. Jesus loves us. We are called "loving stones" who build a community of believers (Kingdom of God). Formation must be live able to be credible and it will show in our behavior.


여러분 가운데 누가 지혜롭고 총명합니까? 그러한 사람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하게 살아, 자기의 실천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 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거든, 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시기와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행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그 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집니다. (야고보서 3ㅣ 13-18)

Who is wise and understanding among you? Show by your good life that your works are done with gentleness born of wisdom. But if you have bitter envy and selfish ambition in your hearts, do not be boastful and false to the truth. Such wisdom does not come down from above but is earthly, unspiritual, devilish. For where  there is envy and selfish ambition, there will also be disorder and wickedness of every find. But the wisdom from above is first pure, then peaceable, gentle, willing to yield, full of mercy and good fruits, without a trace of partiality or hypocrisy. And a harvest of righteousness is sown in peace for those who make peace. (James 3: 13-18)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을 만나고 예수님과의 친교 속에서 자라게 될 때는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킨다. 기도와 행동은 이런 근원으로부터 자란다. 그것들은 우리가 프란치스칸 삶의 방식으로 회개하는데 도움을 준다. 입회기에는 예수님과의 친교를 이루려는 방법과 수단을 계발한다. 결탄코 우리은 일상생활에서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찾는다. 프란치스칸 정신으로서 우리는 교회에서 그리고 세속에서 사랑을 공유할 수 있다. 

As we encounter the person of Jesus and grow in union with Him, the Holy Spirit transforms us. Prayer and action grow from this source. They assist our conversion to a Franciscan way of living. Candidacy explores ways and means to achieve intimacy with Jesus. In faith we discover ways to express love in daily life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 머리말

The Prologue to the SFO Rule


회개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주신 성 프란치스코의 권고는 1978년 회칙의 머리말의 소개이다. 이 권고의 날짜는 불확실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준 비전이 아주 분명하다.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회개하는 이들 회개하지 않는 이들 양쪽의 경우에서 발생하는 것들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이해는 프란치스코가 말로써 의미하는 바와 21세기에 대비한 원전의 의미 즉 양쪽 모두를 필요로 한다. 

The Exhortation of St. Francis to the Brothers and Sisters of Penance serves as an introduction to the Rule of 1978. The dating of this Exhortation is uncertain, but the vision it creates for us is quite clear. Francis points out things that happen both when we co penance and when we don't. Our understanding involves both what Francis meant by the words and the meaning of the text for the 21st century.


회개하는 이들

Concerning those who do penance


권고의 첫 구절에서 프란치스코는 사랑의 문제를 언급한다. 성서적 말씀은 명쾌하고 분명하다.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자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우리를 악행과 죄악으로 이끄는 이기심으로부터 피하라.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의 간단한 형체로 우리에게 오실 때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인식하라. 회개의 합당한 열매을 맺으라는 불림이다. 이런 방법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회개"의 의미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를 드러내는 결정에 이르게 한다. 

In the first verses of the Exhortation Franc is addresses the issue of love. The biblical words are straightforward and clear - love God with everything we have. Love neighbor in the same way. Love ourselves with an honest love. Avoid the selfishness that moves us to vices and sins. Recognize the importance of Eucharist as Jesus comes to us under the simple appearances of bread and wine. There is a call to produce worthy fruits of penance. Looking at life this way leads to decisions that reveal how well we understand the idea of "penance."


회개하는 이는 삶의 이기적인 방식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알고 있다. 이웃이나 하느님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개인의 필요를 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것 (그의 유언에서)을 "내가 죄 중에 있었기에"라고 말한다. 그를 괴롭힌 것은 단지 개인적 죄악은 아니었다. 죄악을 촉진시키는 이기심이었다. 그가 명백히 필요로 했던 것은 하느님의 방식을 무시하고 - 죄 중에 있는 것은 -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하느님을 무시하고 자기 만족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자기 중심적인 삶이었다. 그런 삶의 방식과 선택은 또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행하는지를 지배할 수 있으며 삶의 복음적 방식을 무시하는 것이다. 

Penitents know how easy it is to follow a selfish way of living. It is easy to seek one's personal needs rather than thinking about the neighbor and the ways of God. Francis speaks of this(in his testament) as "when I was in sin." It wasn't simply individual sins that disturbed him. It was the self-centeredness that prompted the sins. It was the desire to have things his  own way. It was his obvious need to be somebody and forget about other folks - being in sin - ignoring the ways of God. It was a self-centered life that ignored God and focused primarily on self-satisfaction. Such a way of living and choosing can also govern how we act and what we do - ignoring a gospel way of living.


권고의 첫 줄에 믿음을 견지하는 자세가 일상 생활에서 무엇으로 보이는 지에 대해 깨우쳐 주는 소명이다. 만약에 만사가 우리를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에 관심을 갖게 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서도 이웃이 필요로 하는 것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죄 중에서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권고는 프란치스코로부터 회개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첫 번재 지침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상기하라. 이 맥락에서 우리는 프란치스코의 관점을 이해한다. 

The first lines of the Exhortation are a wake-up call about what a faith-stance looks like in daily life. If we find ourselves concerned about how everything touches us, and ignore neighbor needs, we may be living is sin. Recall that the Exhortation is among the first guidelines from Francis about how "penitents" would live. In this context we understand the perspective of Francis.


우리는 죄악 속에서 산다는 것이 특정한 죄악을 범한다는 의미로 생각하도록 조건 지워져 있다. 그 죄(혹은 죄악)는 우리의 중심점이 된다. 우리의 일반적 상태가 첫 번째 선택으로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회피하는 자기 중심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성장을 막는 개별적 죄악은 아니다. 사실은 우리의 삶에서 내적 정신이 하느님께 첫 번째의 위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내적 정신을 바꾸도록 움직이게 하는 회개가 필요하다.

We are conditioned to think about living in sin as meaning we have committed some specific sin. That sin(or sins) becomes our focus. If our general status is a self-centered one that avoids loving God and neighbor as a first choice, than it is not the individual sins that hinder our growth. It is the fact that our inner spirit does not give God first place in our lives. We need a conversion that moves us to change that interior spirit.


성령의 부르심으로 우리가 회개를 받아드리면 우리는 더 평화스러운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님의 영이 그들  위에 내리고(참고 이사야 11:2)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거처와 집으로 삼으실 것이다.(참고 요한 14:23). 우리가 삶을 더욱 더 아버지 -  예수님 - 성령 - 이웃 중심으로 만들게 되면 우리는 삼위 일체의 자녀가 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들이요 형제들이요 어머니들이기 때문입니다.(참고, 마태 12:50).

If we embrace the conversion the Spirit calls us to make we find ourselves in a more peaceable stance. The spirit of the Lord will rest upon them(Cf. Isaiah 11:2) and God will hake his home and dwelling among them(Cf. John 14: 23). When we make our lives more Father-Jesus-Spirit- neighbor-centered wee are children of the Trinity. We will be spouses, brothers, and mothers of our Lord Jesus Christ(Cf. Matthew 12:50).


프란치스코는 진정한 회개자의 영을 지적하기 위해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다. 정배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상징화 한다. 우리를 예수님과 일치시키는 것은 거룩한 성령의 작용이다. 우리가 협력은 하지만 예수님과의 친교를 맺도록 가능케 하고 촉진시키는 것은 성령이다. 기쁨 역시 우리의 삶에서 안정적인 자질이 된다.

Francis uses these terms to point out the spirit of a true penitent. Being a spouse symbolizes a relationship with Jesus. It is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o unite us to Jesus. We collaborate, but it is the Holy Spirit to unite us to Jesus. We collaborate, but it is the Spirit that prompts and enables us to become intimate with Jesus. Joy, too. becomes a stable quality in our lives.


그것은 회개가 의미하는 것의 한 부분이 된다. 우리는 개별적 죄를 피하고 죄의 근본이 되는 원천을 뿌리째 뽑는다. 죄의 근원에 다가감으로써 우리는 회개가 필요한 곳을 알게 된다. 내적 회개는 삶의 외적 행동에 영향을 준다. 우리의 삶은 세례와 서약을 통해 우리가 받아들인 복음적 가치를 더욱 더 긍정적으로 드러낸다. 중요 사항이나 가치의 얼마 가운데서 우리가 쉽게 '호기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정배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개인적 관계가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그런 관계가 성숙해짐에 따라 우리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더 잘 실행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참고, 마태 12:50).

It is a portion of what is meant by conversion, We not only avoid individual sins, but we root out the radical sources of sin. Getting to the root of sinfulness makes us aware of where conversion is needed. Inner conversion influences the external actions of life. Our lives reveal more positively the gospel values that we embrace through baptism and profession. We learn that we can easily "miss the boat" in some of our priorities or values. To be a spouse reminds us that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Jesus is important in our lives. As that relationship grows we find ourselves better able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who is in heaven"(Matthew 12:50).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정배자 관계와 관련이 있다. 우리의 성(남성 혹은 여성)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서 영의 거주에 두고 있는 우리의 능력이다. 성령을 통해 우리는 삶에서 예수님의 존재를 전한다. 이런 관계는 우리의 삶과 활동을 통해 예수님의 원인이 되도록 우리를 촉구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 그분의 방식, 진실, 그리고 삶을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공유한다. 우리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으키신 것과 같은 평화, 동정심 그리고 기쁨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예수님과의 관계를 만들어 내게 한다. 프란치스코의 "모범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되어주어야 하는 성스러운 생활을 통해 예수님의 원인이 되도록 우리가 불림을 받았다(참고. 마태 5:16)."

Being a mother is connected to spousal relationship. Our sex(male or female) is not what is being addressed. Rather it is our ability to be present to the Sprit dwelling within us. Through the Spirit we carry the presence of Jesus in our lives. This relationship prompts us to give birth to Jesus through our life and activity. We know Jesus and freely share his way, truth, and life with others. Our goal is to bring others to Jesus, giving birth to the same peace, compassion and joy that the Spirit crates in us. We give birth, in others, to a relationship with Jesus. Francis calls us to "give birth to him through a holy life which must give light to others by example (Cf. Matthew 5; 16).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Holy be Your Name."

주님께서 주신 은혜가 얼마나 넓고,

주님께서 하신 약속이 얼마나 길며,

위엄은 얼마나 높고,

판단하심이 그 얼마나 깊은지를

저희가 깨달을 수 있도록 당신께 대한 저희 인식이 밝아지게 하소서.

May knowledge of You become clearer in us

that we may know

the breadth of Your blessings

,the length of Your promises,

the height of Your majesty,

 the depth of Your Judgments.


주의 기도문에 영감 받은 기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ㅣ권 -158쪽

A Prayer Inspired by the Our Father

Francis of Assisi - The Saint -Vol 1- Page 158


우리의 삶을 우리 형제의 전형이신 예수님에 비추어 볼 때면 우리는 형제(자매)이다. 이러한 용어들(배우자, 어머니, 형제)은 다른 차원의 관계를 다루어야 한다. 그것은 삼위일체의 영성으로부터 나오는 관계이다. 형제(자매)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완수하도록 하기로 되어 있다. 

We are brothers (sisters) when our lives reflect the model of our brother, Jesus. These terms(spouse, mother, brother) have to do with different dimensions of relationship. It is a relationship springing from Trinitarian spiritualty. Brothers(sisters) are expected to fulfill the will of our Father in heaven.


예수님처럼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버지의 방식을 포용한다. 우리는 빈자를 위해 예수님의 동정심을 모방하며 가난하고 소외 받은 자를 위해 관심을 가진다. 예수님과 서로 서로와 관련된 형제로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복지를 걱정하는 가족이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이 빚은 육화하신 - 예수님 - 의 헌신을 본받도록 기대한다. 명상은 우리 모두이며 우리가 행하는 것의 영혼이다. 

Like Jesus, we embrace the way of the Father no matter what the cost. We imitate Jesus' compassion for the needy and concern for the poor and marginalized. As brothers, related to Jesus and one another, we are one family, concerned for the welfare of those we love. Francis expects us to imitate the dedication of Cod-made-flesh - Jesus. contemplation is the soul of all we are and what we do


형제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들이 다른 어느 곳에서 만나든지 형제들은 영적으로 사랑을 갖고 서로 대하며 불평 없이 서로 존경해야 한다. 그리고 형제들은 겉으로 슬퍼 보이거나 음울한 위선자들 같이 보이지 말 것을 명심할 것이며, 오히려 주님과 함께 기뻐하고 명랑하며 분에 맞게 괘활해 보여야 할 것이다.(초기 회칙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1권 -169쪽)

Wherever the brothers may be and in whatever place they meet, they should respect spiritually and attentively one another, and honor one another without complaining. Let them be careful not to appear outwardly as sad and gloomy hypocrites; but show themselves joyful, cheerful and consistently gracious in the Lord. (The Earlier Rule -Francis of Assisi-The Saint -Vol 1- Page 169)


프란치스코는 배우자, 어머니, 그리고 형제가 되는 것에 대한 자기 생각을 공유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런 관계에 대한 모범은 하느님이다. 당신의 사랑은 끝이 없으며 당신께서 사랑하신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보이고 계신 아버지를 우리는 지니고 있다. 그런 위대하고 성스러운 아버지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Having shared his ideas for being spouse, mother and brother, Francis goes further. The model for these relationships is God. We have a Father whose love is never-ending and who has consistent concern for the people God loves. To have such a great and holy Father is a glorious thing.


성령과 같은 배우자를 가진다는 것은 특별하다. 성령이 없으면 우리는 거룩함에 다다르는 기회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성령 없이는 성체 성사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성체 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선물에 대해 되풀이하여 말한다: 우리는 당신께서 영의 힘으로 그들을 성스럽게 하시어 그들이 당신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도록 요청합니다. ...(성찬 기도문 #3) 성령은 거룩함과 완전함의 원천이다. 

It is special to have a spouse like the Holy Paraclete. Without the Holy Spirit we could have no chance at holiness. Without the Holy Spirit here would be no Eucharist. We say over the gifts of bread and wine at Eucharist: We ask you to make them holy by the power of your Spirit, that they may become the body and blood of your Son, our Lord Jesus Christ...(Eucharistic prayer #3). The Holy Spirit is the source of holiness and wholeness.


...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갈라디아 5: 22-23)

...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enerosity,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There is no law against such things.(Galatians 5: 22-23)


예수님께서 유대교 회당에 가셨을 때 예언서 이사야서에서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을 서서 읽으셨다:

When Jesus went to the synagogue, he stood up and read what the Spirit said in the prophet Isaiah: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로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였다. "오늘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가 4: 18-19,21)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bring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release to the captives and recovery of sight to the blind,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to proclaim the year of the Lord's favor. ... Then he began to say to them.  "Today this scripture has been fulfilled in our hearing."(Luke 4: 18-19,21)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생명을 불러 넣으시고 축성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가서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께 데려오도록 준비시킨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여신다. 우리에게 특히 성체 성사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제시하며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느님과의 친교에 이르게 한다 (참고. 가톨릭 교리서 - No. 737).성인용 미국 가톨릭 교리서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109쪽

The Holy Spirit builds up, animates, and sanctifies the Church. He prepares us to go out and bring others to Christ. He opens our minds to understand Christ's death and Resurrection. He makes present for us the mystery of Christ, especially in the Eucharist, and brings us to communion with God that we may bear much fruit.(Cf CCC-no 737)) United States Catholic Catechism for Adults -USCCB- page 109


권고의 이 부분의 마지막 말에서 프란치스코의 말을 지지하는 성서의 편찬이 발견된다. 아버지, 예수님, 그리고 성령과의 관계로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도록 움직이게 된다. 머리말의 이 부분은 보속과 회개의 삶을 받아드리는 것이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의 예증이 된다.

The final words of this part of the Exhortation find a compilation of Scripture texts that support Francis' words. Our relationship with the Father, Jesus, and the Holy Spirit move us to proclaim the Gospel. This part of the Prologue illustrates the possibilities that embracing a life of penance and conversion can achieve.


머리말은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가 보속과 회개의 내적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요구하며, 우리의 삶에서 완전한 전환을 요구한다. 그것은 나병 환자를 바라다 보는 것이 너무나 역겹게(유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1권 성인 124쪽) 만드는 자기 중심으로부터의 변화를 요구하며, 그냥 몇 가지의 의견이아 생각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과 삶의 완전한 변화를 요구한다.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다고 한다(같은 책).

Since final words of this part of the SFO Rule, it calls us to accept the inner meaning of penance and conversion. It calls for a complete turn-around in our lives. It calls us to turn from self-centeredness that makes it too bitter to see lepers(Testament- Francis of Assisi - The Saint-page 124). It calls for a total change of heart and life, not just the change of a few opinions or ideas. What had seemed bitter to me was turned into sweetness of soul and body(Ibid).


우리는 나병 환자에 다가가서 그들에게 자비를 보여준다. "나환자"에게 입맞추는 것은 "그들"의 인격으로부터 "형제 혹은 자매"라는 것으로 바꾸어 준다. 관계가 우리를 변화시켜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갖도록 이끈다. 단 한 사람 나환자와의 관계 - 회개는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꼭 같은 변화를 요구한다. 아무도 이러한 새로운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일회성 변화 이상으로 그것은 완전히 삶을 바꾸는 경험이다. 함축하는 바는 삼위일체의 영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포용하는 관계의 본보기를 따른다. 사람이 삼위일체에 지극히 중요한 만큼이나 우리들에게 필수 불가결하다. 그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확인시키고 또 거룩한 찬미자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따르도록 요구한다.

Wo go among lepers and show mercy to them. Kissing a "leper" changes that person from a "them" to a "brother or sister." The relationship changes us and invites us to relate to people in this new way. The relationship-conversion with a single leper calls us to make the same changes with all the people who enter our lives. No one is left our of this new way of living. More than a one-time change, it is a complete life-changing experience. The implications follow the pattern of relationships we embrace through accepting Trinitarian spirituality. Love becomes as vital to us as it does to the Trinity. It identifies us as Christians. It calls us to follow the spirit of the seraphic lover, Francis of Assisi.


회개하지 않는 이들

Concerning those who do not do penance


이 부분의 첫 문장에서 프란치스코는 회개 중에 있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지 않으며 악습과 죄를 일삼으며 불림을 받아드리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슬픈 상태를 선포한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부정적인 영향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여 걱정이 일반적 처지가 된다. 

The first paragraph of his section finds Francis proclaiming the sad state of people who refuse to accept the call to conversion. Evil becomes normal for them. eucharist is ignored. Promises are not kept. Negative influences dominate their lives. Anxiety becomes a normal stance.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의 길을 거부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눈이 멀었다. 그들은 복음과 예수님이신 빛을 무시한다. 그들은 아버지의 참된 지혜이신 하느님의 아들을 모시지 않기에 영적인 지혜를 놓치고 만다. 프란치스코는 이런 사람들의 슬픈 상태를 묘사할 때 완곡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악을 보고 알아채며 알면서도 행하여, 고의로 자기 영혼을 파멸시킵니다(서문)

Having rejected the way of Jesus, the light of the world, these people are blind. They ignore the Gospel and the light that is Jesus. Doing so they miss out on the wisdom Jesus brings from his Father. Francis minces no words in describing the sad state of these folks. They see and acknowledge, they know and do bad things and knowingly destroy their own souls (Prologue).


그들은 그리스도의 빛없는 어둠 속에 걷기 때문에 사악하리만큼 현명항 악마가 그들에게 가져오는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그들은 왛수하지 못하는 기대에 현혹되어 완전히 끝이라는 것을 잊는다. 죽음이 그들에게 죄책감 투성이며 회개나 보속의 희망을 거부하는 유감스러운 결말로 이르게 한다. 

Since they walk in the dark, without the Christ-light, they are open to the temptations that a wickedly-wise devil brings to them. They are deceived by expectations that fail to fulfill. They forget that it will all cease. Death brings them to a sorry end, riddled with guilt and rejecting any hope of conversion or penance.


프란치스코는 주장의 정당함을 밝히기 위해 극단적인 수단을 사용한다. 그리스도를 완전히 거부하는 사람은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관대한 사랑보다는 자기 중심적인 것을 선택하는 것은 행위자를 어둠 속에 두어, 삶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이기적인 영에 현혹되게 한다. 변화의 기회가 주어질 때 여전히 변화하지 못한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온 지혜를 거절하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에 이르러서도 수단이 없다.

Francis uses extremes to make his point. Anyone who totally rejects Christ cannot hope for happiness. To choose self-centeredness rather than generous love leaves the doer in the dark, deceived by a selfish spirit that fails to bring life. Even when the opportunity  to change is given, these people ignore the call. When death comes they still fail to change. Having rejected the wisdom that comes from God through Jesus, they lack resources at death.


최악의 경우에도 여전히 그들의 친척들과 친구들 조차도 지지하거나 위로하지 않는다. 유언장에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남겨 놓은 것은 더 많은 거절만 가져다 준다. 그는 우리에게 더 많이 줄 수 있었고 더 많이 남길 수 있었던 재산을 벌지 못했으니, 그의 영혼은 저주나 받아라(서문). 육신이 묻히면 벌레가 먹게 되고 육신과 영혼은 완전히 소실된다. 그들은 영원히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지게 된다. 

Worst still, even their relatives and friends offer on support or consolation. The things they left to others in their will brings more rejection; Cursed be his soul because he could have given us more, he could have acquired more than he did(Prologue). When the body is buried the worms eat it and both body and soul are lost. They are forever separated from god.


회개하는 사람과 회개하지 않는 사람간에 완전한 대조에 대해 쓰고 나서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이러한 권고를 심각하게 수용하도록 이끈다. 그는 성서에 있는 예수님의 향기로운 말씀을 우리가 듣도록 요구한다. 예수님의 향기로운 말씀을 읽을 뿐만 아니라 실행한다라고 프란치스코는 말한다 - 그것은 영과 생명이다. 그렇게 실행하지 않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앞에서 심판에 직면할 것이다. 

Having written of the stark contrast between those who do penance and those who do not, Francis invites us to take this Exhortation seriously. He asked us to listen to the fragrant words of Jesus in Scripture. Not only read them, says Francis, but carry them out - they are spirit and life. To fail is to face judgment before Jesus Christ.


이 권고는 ... 프란치스코의 열정적 헌신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영의 힘을 경험하고; 예수님과 강력한 관계를 세우고;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아버지의 사랑을 실현하고 나서 프란치스코는 보속을 하지 않거나 회개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This Exhortation ... gives us insight into the passionate dedication of Francis. Having experienced the power of the Spirit; having built a strong relationship with Jesus; having a realization of the love of the Father for God's people, Francis cannot imagine that we would fail to do penance or accept eh consequences of conversion.


이것을 실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의 축복을 충만이 받고, 땅에서는 지극히 거룩하신 위로자 성령과 하늘의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축복을 충만이 받기를 비는 바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보잘것없는 종 프란치스코 형제는 여러분의 지극히 거룩한 축복을 내적 외적으로 받아드리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할 수 있는 데까지 확언하는 바입니다.(유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127쪽)

And whoever observes these things, let him be blessed in heaven with the blessing of the Most High Father, and on earth with the blessing of His Beloved Son with the Most Holy Spirit, the Paraclete, and all the powers of heaven and with all the saints. And, as far as I can, I, little brother Francis, your servant, confirm for you, both within and without, this most holy blessing. (The Testament - Francis of Assisi-The Saint -Vol 1-Page 127)



완전한(근본적)회개

Radical Conversion


끊임없이 우리는 돌아다닌다.

중단하지만 그때는 어질어질하다.

"회개, 마음의 변화"는 거의 질병처럼 들리지만 그건 아니다!

Around and around we go.

We do stop, but then we're dizzy.

"Conversion, metanoia"

Almost sounds like a disease - but it's not!


그게 고통스럽긴 하지만 치통이나 두통과 같지는 않다. 마음의 아픔 같다.

프란치스코는 표면적인 "요소"에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외적인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It can be painful, but not like a toothache

or a headache. More like a heartache.

Francis didn't spend time on surface "stuff/"

If your heart is right, the rest of you will be right.

If not, what good are all the externals?


"어떤 사람은 자기가 실행 - 지혜의 훌륭한 정의 - 할 만큼의 지식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전적으로 지성인이나 학자, 탁상에서 배움을 읽힌 사람만이 될 수는 없다.

사실은 간혹 사물의 표면 아래에 있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올바르게 보도록 우리의 머리에 의지하여, 예수님에 의지하여 우리는 

회개의 "느낌"을 가질 필요가 있다.


"Someone has only as much knowledge 

as he huts into action."

A fine definition of wisdom.

So we cannot simply be intellectuals,

not scholars, nor book -learners only.

Facts often fail to get below the surface of things. 

We need to get a "feel" of conversion,

standing on our heads to see rightly.

Dependent on Jesus.


심적 변화는 일회성이 아니다.

그것은 삶이 지속되는 한 계속되고 계속되는 과정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은 행위의 가치도 없다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아무도 필요 없다!

그들은 심적 변화는 그냥 홀로 내버려두고, 누구에게도 심지어

주님에게서도 영향 받지 않는다.


Matanoia is not a happening.

It is a process that goes on and on and on

as long as life lasts.

some folks say it's not worth  the work. They need no one!

 They can go it alone,

not touched by anyone, even the Lord


그들에게는 희망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에게만 철저히 관심을 가진다. 

프란치스코의 삶의 방식이란 사랑 속에서 누군가

 - 따뜻하고, 접촉하려 하고, 봉사하는, 사랑하는, 그리고 취약하면서 인간적인 무엇 - 

가 됨을 요구한다.

Such folks may lack hope.

they may be deeply concerned with self.

Francis' way of life requires

Being Someone in love.

Worm, reaching out, serving, loving, 

vulnerable and human.


우리가 심적 변화(회개)와 같은 누군가가 되기 위해서는 방향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프란치스칸은 사람을 위해 계속해서 방향을 바꾸도록 맹세한다.!

그리고 삶이란 결코 같지 않으며, 그들 또한 같지 않다.

We need to turn around in order 

to Be someone like that(metanoia).

Franciscans pledge themselves to 

keep turning around for life!

And life is never the same- not are th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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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위한 독서/질문

Readings/ Questions for dialogue


박애성사(Sacramentum Caritatis)

베네딕트 16세-71절

The Sacrament of Charity(Sacramentum caritatis)

Benedict XVI- Paragraph 71


가난과 기쁨 -윌이엄 쇼트 작은 형제회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74-75 쪽

Poverty & Joy -Wm short OFM

Following the Footsteps of Jesus -Pages 74-75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Spe Salvi) -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회칙 26절

Saved in Hope(Spe Salvi) -Benedict XVI Paragraph 26


1. 권고(머리말)에 대해 숙고할 때 무엇이 당신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가? 이유는?

1. What most impressed you in reflecting on the Exhortation....(Prologue)? Why?


2. 회개가 어떻게 평생의 임무가 될 수 있는 가 설명하라 

2. How can conversion be a lifelong task? Explain.


3. 보속의 실행은 우리에게 세속과 교회 안에서 삶을 인지하는 복음적 방식에 통찰력을 어떻게 제공하는가?

3. How does the practice of Penance give us insight into a gospel way of perceiving life in the world and the Church?


4. 권고의 연구가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칙의 연구에 대한 근거를 어떻게 부여하는가?4. How does the study of 4. How does the study of the Exhortation give a foundation for the study of the SFO Rule?


5. 프란치스코가 본인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이에게서 보고 싶어하는 자질을 서술하라.

5. Describe the qualities that Francis wants to see in those who follow his way of life.


6. 권고에 의해 당신이 인생 어떤 부분이 도전 받은가?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

6. What areas of your life are challenged by the Exhortaion? what will you do about it?


7. 성서 묵상: 2 디모데서 1:8-14. 무엇이 사도 바울로 하여금 명쾌하게 이러한 말씀을 쓰도록 자극을 주는가? 그가 하느님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의지하도록 회개가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가?

7. Scripture reflection: 2 Timothy 1: 8-14. What prompts St. Paul to write these words with such clarity? How did his conversion help him rely on God's own purpose and grace?


 

하느님 없이는 인간은 어느 길로 가야 할지도 또 그 분이 누구신지 이해조차 하지 못합니다. 우리를 실망으로 거의 굴복하도록 하는 민족의 발전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우리는 위안을 찾습니다. 그분은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 5)라고 가르치시며 그리고 나서는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라고 격려하신다. 

(진리 속의 박애(Caritas in Veritate)- 베네딕트 16세- 72절)

Without God man neither knows which way to go, nor even understands who he is. In the face of the enormous problems surrounding the development of peoples. which almost make us yield to discouragement, we find solace in the sayings of our Lord, Jesus Christ, who teaches us: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Jn 15:5) and then encourages us: "I am with you always to the close of the age.:(Mt 28: 20)

(Charity in Truth (Caritas in Veritate)- Benedict XVI - Paragraph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