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교재

프란치스칸 여정 제3장 프란치스코... 글라라... 가톨릭 교리

Margaret K 2021. 8. 1. 06:55


프란치스칸 여정 


 제3장 프란치스코... 글라라... 가톨릭 교리

Chapter three Francis Clare Catholic Doctrine


성 프란치스코(1182-1226)와 성녀 글라라(1194-1253)는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살았었다. 그들은 아시시의 사회 구조에 있어서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하였다. 글라라의 집안은 아시시의 권위 있는 귀족계급이었다. 프란치스코의 집안은 신흥 상인 사회계급에 속하였다. 권력은 주로 귀족들에게 있었다. 프란치스코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나도네는 아시시에서 권력과 지위상승을 갈망하였다.

St. Francis(1182-1226) and St. Clare(1194-1253) lived in Assisi, Italy. They belonged to different classes in the social structure of Assisi. Francis' family belonged to the rising social class of merchants. Power was mainly in the hands of the nobles. Francie' father, Pietro Bernadone, longed to move up the power/social ladder of Assisi.


사회는 변화되면서, 부는 권력의 근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피에트로의 부는 포목상 사업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자주 프랑스와 다른 나라로 물건을 사기 위해 여행을 다니느라 집을 많이 비웠다. 그러나 부만으로는 권력계급에 속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사회적 지위상승을 하기 위해서 귀족이 되기를 갈망했다.

Society was changing. Wealth was becoming a source of power. Pietro's wealth came from his cloth business. He was frequently absent on buying trips to Francis and other countries. But wealth alone was not enough to enter the power structure. It was imperative to become part of the nobility if he wished to move up the social scale.


프란치스코는 기사가 되는 것이 아시시에서 사회적 지위상승을 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의 아버지도 그의 야망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기사가 됨으로써 프란치스코는 귀족과 결혼할 수 있고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다. 

Francis knew that becoming a knight was one way to move up the social ladder in Assisi. His father, Pietro Bernadone, obviously approve Francis; desire to become a knight. As a knight he could marry into the aristocracy and move up the social ladder.


전쟁과 폭력은 그의 생애 동안 이탙리아에서 통상적인 한 부분이었다. 1199년에서 1200년 사이에 아시시의 사람들은 황제 권력의 구조에 반기를 들었다. 아시시 전체에 우뚝 솟는 "로까 마죠레 성체"를 아시시의 시민들에 의해 공격 당하여 점령되었다. 글라라의 식구들은(글라라를 포함해서) 이 폭동을 피하기 위해서 페루지아로 피난을 갔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목적을 얻기 위해서는 종종 폭력을 사용하였다. 프란치스코의 잚은 시절에 사회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 폭력을 쓰게 되었다.

War and violence were a normal part of life in Italy during Francis' lifetime. In 1199-1200 the people rebelled against the emperor's power structure in Assisi. The "Rocca," which towered over Assisi, was stormed and captured by the ordinary citizens of Assisi. Clare's family(and Clare) fled to Perugia to escape the violence. The spirit of the times often used violence to achieve goals. Early in life Francis experienced the use of violence to achieve social goals.


아시시와 페루지아가 전투를 할 때 (1202) 프란치스코는 군대에 입대했다. 기사가 됨으로써 지위 상승을 할 수 있고 또한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페루지아는 꼴레스라다가 승리를 하여 프란치스코를 포함해서 아시시의 많은 남자들은 전쟁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들은 감옥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프란치스코는 생존하였지만 중병에 걸렸다. 감옥에서 1년을 보낸 후에 그의 아버지 덕분에 감옥에서 석방이 되었다(1203).

When Assisi battled with Perugia(1202), Francis was part of Assisi's army. It was an opportunity to make a name for himself and move toward knighthood. Sad to say,, Perugia prevailed at Collestrada, and many men of Assisi were taken prisoner, including Francis. Prisons were not noted for tehri gentle treatment of prisoners. Francis survived but became quite ill. He was ransomed by his father(in 1203) after about a year in prison.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건강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의 어머니 피카 부인은 그의 아들을 지극정성을 하여 간호한 덕분에, 조금씩 조금씩 그는 기력을 회복 되었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는 시간들은 포로생활 이전처럼 흥미롭지 않았다. 감옥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그를 더욱 더 묵상적으로 만들었다. 모든 것들이 전과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었다. 그래서 그는 포로생활 이전에 했던 것처럼 즉 파티를 계속하였다.

Returning home he needed time to recuperate. His mother, Pica, took loving care of her son. Little by little he regained his strength. But as he joined his friends in parties and fun-times, he found them to be less exciting than before his captivity. His time in prison had made him more reflective. Things didn't seem the same for Francis. But he didn't know where to go or what to do. Se he continued to do what he had done before his imprisonment - to Party!


기사가 될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가 왔다(1205). 유명한 전사인 브리엔느의 월터 백작이 교황 편에 서서 독일황제에 대항하기 위해  병사들을 모집할 때 다시 한번 프란치스코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에게 최고의 갑옷과 투구를 갖추어 주었다. 다시 프란치스코는 기사가 되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Another opportunity for knighthood (1205) came when Gautier de Brienne, a famous warrior, gathered an army to fight on the side of the Papacy against the German emperor. Again, Francis' father furnished him with fine armor. Once more Francis went forth on the journey to become a knight.


그 다음에 일어났던 일이 그를 매우 혼란스럽게 하였다. 아폴리아로 가는 도중에 스폴레또에 당도하여 쉬고 있을 때에 그는 꿈을 꾸었다. 

What happened next really confused him. While resting in Spoleto, on the way to Apulia, he ahd a dream. 


밤이 되어 그는 스폴레토에 도착하였고 여정에 대한 불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반쯤 잠이 들었을 때 그에게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를 물어보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에 그는 그의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그 목소리는 그에게 물었다. "누가 너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느냐? 주인이냐 혹은 종이냐? 그는 "주인 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왜 너는 종을 위해서 주인을 버리느냐? 보호 받을 사람을 위해서 보호해 줄 사람을 버리려고 하느냐?" 프란치스코가 이에 응답하여 말하기를 "주님 당신께서는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돌라가거라 아시시로, 주께서 너에게 말씀하신 바를 행하기 위하여" 라고 말씀하셨다.

신의 은총으로 그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아침이 되어서 그는 들은바 대로 아시시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도중에 폴리그노에 도착하여 아폴리아로 파견되기 위해서 갖추었던 갑옷과 타고 있던 말을 팔아버리고 허스름한 옷으로 갈라 입었다.

익명의 페루지아 전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창시자 2권 36쪽

It was night when he arrived in Spoleto and, anxious about his trip, he retired for the night. Half asleep, he heard a voice asking him where he intended to go. He outlined to him his whole plan. The 

voice then asked him: "Who can do more for you? The lord or the servant?" "The lord," he answered. "Then why are you abandoning the lord for the servant, the patron for the client?' To which Francis responded: "Lord, what do you want me to do?' "Go back," it said, "to your own land to do what the Lord will tell you."

It seemed to him that divine grace had suddenly made him a different man. But when it was morning, he returned home as he had been told.

And when, on the way back, he reached Foligno, he sold the horse he was riding as well as the wardrobe with which he had equipped himself for the expedition to Apulia, and put on cheaper clothing.

The Anonymous of Perugia - Francis of Assisi - The Founder Vol II-Page 36


1205년도에 성령이 이 젊은이를 새로운 뱡향으로 인도하셨다. 그는 전에는 기사가 되고자 하였으나 이젠 주님의 기사가 되고자 하였다. 먼저 아버지와 화해하는 것이 첫째 문제였다.

In this year of 1205 the Holy Spirit moved this young man in a new direction. He would be a knight, but a knight of the Lord. A new beginning is taking shape. But first there is the matter of dealing with his father.


그후 몇 달 동안 프란치스코는 평화롭지 않았다. 피에트로는 그의 아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프란치스코를 달랬다. 프란치스코를 집 지하실에 감금 시키기도 했다. 프란치스코의 행동을 창피하게 여겼고 그의 이상한 행위 때문에 정신을 잃게 되기도 하였다. 프란치스코가 상가에 가서 비단 필들을 가지고 다른 도시로 가서 그것들을 팔았을 때 피아트로는 매우 분노하였다. 피에트로는 프란치스코를 구이도 주교 앞에 데리고 가서 유언장의 내용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문제 삼았다. 피에트로는 프란치스코가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모든 것들을 돌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The following months were not peaceful for Francis. Pietro thought his son had lost his senses. He cajoled him. He held him in captivity in his home's basement. he was embarrassed by Francis' actions and felt stunned by his strange behavior. When Francis came to the shop and took some rolls of fabric and sold it in another town, Pietro was furious. This contest of wills came to a public conclusion when Pietro brought Francis before the Bishop. Pietro demanded that Francis return everything he had received from him.


그 추운 겨울나라에 프란치스코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이 순간을 중요한 때로 보았다. 모든 사람들과 주교님 앞에서 그는 옷을 다 벗어서 그 옷들을 아버지 앞에다 놓았다.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의미 심장한 말로써 그가 받은 새로운 부르심에 관해 명백하게 말하였다."이날까지 피에트로 베르나도를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이제부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만을 아버지로 부르겠습니다....."

On that winter day, far from being shamed, Francis saw this as an important moment. In public, before the bishop, he undressed himself, took all his clothes and laid them before his father. With his father and the townspeople standing around, using words that had deep meaning for Francis, he spoke clearly of his new call - from this day forward his Father would be: Our Father in heaven....


프란치스코의 회개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의 삶에 관한 책들에서 많이 저술되었다. 이 짧은 이야기로 많은 것들을 대신하겠다.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프란치스코의 인생과 업적들은 저서와 기사 그리고 아직도 더 연구될 출처에서 가득하다.

The whole story of Francis' conversion fills many more pages in the writing on his life. Much is left out in this short telling. This is only the beginning. Francis' life and works fill books, articles and other resources that are available for further study.


이러한 초창기에 프란치스코는 "취미"와 "물질"이 행복과 평화에 필수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 혹은 나병환자들,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그들 모두와 관계 맺기를 원하였다. 그들 모두가 형제자매인 것이다. 사실 나병환자들과 교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나병환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그의 성소에 원천이 되었다.

During these early days, Francis came to understand that having "things" and "stuff" is not necessarily a source of happiness and peace. To ignore people who are poor or leprous or marginalized seemed to him to be sinful. He sought to relate to all of them. They were all brothers and sisters. in fact, his contact with lepers brought him to new point in understanding the ways of Jesus. He attributes his contact with lepers as the source of his vocation.


주님께서 나 프란치스코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가 죄 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이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

유언(1226)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1권 124쪽

The Lord gave me, Brother Francis, thus to begin doing penance in this way: for when I was in sin, it seemed too bitter for me to see lepers. And the Lord Himself led me among them and I showed mercy to them. and when I left them, what had seemed bitter to me was turned into sweetness of soul and body. And afterwards I delayed a little and left the world 

The Testament(1226)-Francis of Assisi- The Saint -Vol 1- Page 124


가난 부인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사랑은 그냥 "물질"을 소유하지 않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도 생활하는데 어떤 물질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필요하다고 하는 물질에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Francis' love of Lady Poverty went further than discarding "things." He needed some "things" to live. But he realized that things we call necessary can also make us their slaves. 


우리는 "소유물"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순간과 나눔을 잃어비리게 된다. 실상 오늘날 우리는 "물건"을 사고, 그 "물건들"을 유지하고 수리하고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시대에 알맞게 혹은 "스타일'에 맞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것들로 다시 바꾸기도 한다. 소유물에 대한 걱정으로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많이 소유하지 못해서 우울해지거나 슬퍼하거나 화를 내기고 한다. 

We lose freedom of movement and sharing because we must take care of "things." Even today we recognize how much of our time is spent in being able to buy "things" and maintain "things" and repair and re-paint "things," and replace "things" and get new "things" to be up-to-date or "in style." Worry about "things" saps our energy. Lack of "things" can make us depressed or sad or angry.


프란치스코가 주교와 마을 사람들 앞에서 옷을 완전히 벗어버린 행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만을 "신뢰"하겠다는 상징이다. 프란치스코는 우리의 머리를 땅에 대고 거꾸로 서서 보게 함으로 가진 것들은 더 안전하게 하고 영원하게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물구나무로 서서 볼 때 새로운 빛으로 사물들을 보게 된다. 재산이 허공으로 없어지지 않도록 그것들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재산이 불어나면 불러날수록 점점 더 위험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Francis' nakedness before the bishop and townspeople is a symbol of what it means to "trust" our Father in heaven. Francis stands us on our heads. Standing upright, things seem secure and permanent. When we stand on our heads we see things in a new light. Things are dependent on God's gracious hands to keep them from falling into space. The bigger they are, the more they are in danger.


프란치스코는 가난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에 사로 잡혔다. 가난은 그의 말과 양식은 예수님에 대한 그의 사랑에 상징이었다. 자매의 죽음이 다가오자 그는 옷을 벗고자 하는 행위를 반복했고 수의도 입히지 말고 벌거벗겨서 땅바닥에 눕혀 달라고 그의 형제들에게 부탁하였다. 이런 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한 신뢰만 확고하였다. 자매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땅바닥에 눕혀 달라고 그의 형제들에게 부탁하였다.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이 세상에 와서 생명 외에는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고 떠나야 한다는 것,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 맡겨져야 하고, 봉헌 되어여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Francis was captured by his love of Lady Poverty. She was a symbol of his love for Jesus, his words and ways. He repeated the gesture of divesting when he came to die and asked his brothers to lay him naked on the ground. In this way he repeated his trust in Our Father in heaven as he prepared to greet Sister Death. He asked the brothers to lay him naked on the ground when they saw that Sister Death was near. 

He knew that as he brought nothing material into the world, he would leave without possessing anything but his life, given over and consecrated to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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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라는 아시시에서 성장하였다. 그녀의 아버지 파브로네 오프레두치오(Favrone di Offreduccio)는 아시시의 귀족가문의 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집안 남자들(삼촌)은 기사였고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황제, 프레데릭 2세를 보좌하였다. 아시시의 시민들은 황제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였고 오프레두치오 가문의 삶들을 별로 좋아하지 ㅇ낳았다. 시민혁명(1199년에서 1200년 사이)이 일어났을 때에 글라라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페루지아로 피난을 가야 했다. 그 당시 글라라는 17세었다(1194출생,12살 차이 1212년 성녀 글라라 수도회에 입회 ,성인이 30세 글라라 성녀 18세일 때 수도회에 입회). 수년 후 모든 것이 다 안정 되었을 때 그녀의 집안가족들은 다시 아시시로 돌아 왔다. 

Clare grew up in Assisi. Clare's father, Favorone di Offreduccio, was one of Assisi's nobles. The men(Uncles) in her family were knights and military men. They supported the Emperor, Frederick II. The ordinary people of Assisi wanted to get out from under the power of the Emperor and showed little love for the Offreduccio family. When civil war broke out in Assisi(between 1199 and 1200), Clare's family was forced to flee to Perugia. Clare was about  six or seven years old at the time. The family returned several years later when things settled down.


그녀의 어머니 올톨라나는 신앙심이 돈독하여 성지순례를 자주하는 여인이었다. 글라라도 자주 어머니의 순례 여행에 함께하였다. 그 순례는 방법과 목적에 있어서 고행을 동반한 힘든 성지 순례였다.

Her mother, Ortolana, was a woman of devotion and pilgrimages. Clare at times joined in her mother's pilgrimages. These were tough pilgrimages, with difficult travel and penitential practices both on the way and at the goal of the pilgrimage.


글라라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 그들과의 관계에 헌신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글라라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선을 베푸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동생 카타리나(아그네스)와 베아트리체도 아시의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로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Clare was dedicated to relationships and had a special concern for the poor. The towns people recognized her generosity to and concern for the poor and needy. She and her sisters, Catherine(Agnes), and Beatrice, showed a generous concern for the poor of Assisi. 


페루지아에 있을 때도 무사의 집안으로 그 집안서 들리는 소리는 전쟁과 전투에 대한 이야기와 거리에는 갑옷에 부딪치며 쩔렁 거리는 칼 소리들이 울려 퍼져 나갔다. 그녀가 듣는 것은 전쟁에서 전사한 친구들 이야기, 전쟁에서 져서 비통해 하는 소리들 뿐이었다. 수년이 지난 후에 그녀의 가족들은 페루지아에서 피난 생활을 끝내고 아시시로 돌아왔다. 그 집안의 어린 소녀들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되었다. 글라라의 십대 시절은 폭력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다.

With all the military men in the house, even in Perugia, the house echoed with swords and clanging armor and talk of wars and battle. She heard the lamentations over lost battles and friends who died in war. After several years the family was able to return to Assisi from their exile in Perugia. The young girls of the family were becoming beautiful young women. Clare's teen years were filled with tales of violence and loss and -concern for the poor.


프란치스코가 아시시의 구이도 주교 앞에서 그의 모든 재산을 포기 하였을 때 글라라는 여전히 10대였다. 그녀가 17살이 되자. 가족들은 그녀의 결혼에 대하여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글라라가 결혼하여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 주기를 기대하였다. 적어도 그것은 가족 구성원이 믿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글라라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또 다른 부름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프란치스코가 아시시의 주변에서 여전히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었을 때도 글라라는 그와 대화하고 싶었다. 그녀의 친구인 보나가 그 만남을 주선하였다. 

Clare was still in her teens when Francis renounced his goods before the bishop of Assisi. When she turned seventeen the family began to speak of marriage for her. Clare was expected to get married and bring new life to the family. At least, that's what members of the family thought. But Clare did not wish to marry. She felt a different call. Though Francis was still the object of jokes and teasing around Assisi, Clare wanted to speak with him. Her friend, Bona, arranged the meeting.


조금씩 조금씩 프란치스코의 꿈이 글라라의 꿈이 되었다. 그들은 일년 넘게 가족 몰래 비밀리 만나면서 성령에 감동받아 서로 꿈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나누면서 글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생활양식을 따르고자 하는 갈망이 확고해졌다.

Little by Little Francis' dream became Clare's dream. For over a year they met, apparently without Clare's family being aware of the meeting. The Spirit of God touched them and the dream that they shared. It confirmed Clare's desire to follow the way of life Francis shared with her.


1211년 3월 27일 성지 주일에 글라라는 아시시에 있는 산 루피노 성당에 갔었다. 그녀는 신부만큼 아름답게 차려 입었다. 성지 주일 예식은 아주 훌륭하였고 기도들은 그녀를 감동시켰다. 그녀가 묵상으로 넔을 잃고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주교로부터 성지가지를 받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때 그녀는 자기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구이도 주교가 그런 그녀를 보고 그녀의 자리로 다가와서 전례의 일부분인양 그녀에게 성지 가지를 건네주었다.

On March 27 1211, Palm Sunday, Clare went to Sen Rufino, the Cathedral of Assisi. She was dressed as beautiful as a bride. The Palm Sunday celebration was beautiful and the prayers touched her heart. Carried away in reverie, she stayed in her place while everyone moved forward to receive palm branches from the bishop. When Bishop Guido noticed her, he came to her place and gave her a palm branch as though it were part of the rite.


밤에 아시시로 내려가서 글라라는 프란치스코와 다른 형제들과 함께 하고자 준비하였다. 그날 밤 늣게 집을 나와 포르치운쿨라의 작은 성당으로 향하였다. 형제들은 그녀를 환영하였다. 그녀는 보석들과 좋은 옷들을 벗었다. 그리고 나서 프란치스코로부터 허스름한 수사복을 받았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풀어 내렸다. 프란치스코가 그녀의 머리를 잘랐다. ㅇ이제 그녀는 주님의 일꾼이 되었다. 수도자들이 상 파울로 델리 안젤로 디 디오의 베네딕틴 수도원까지 그녀와 함께 동행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글라라와 그녀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아시시의 외곽 언덕 위에 있는 산 다미아노인 첫 번째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At night descended on Assisi, Clare prepared to join Francis and his brothers. She left the house late that night and headed to the little church of the Portiuncula. The brothers welcomed her. She took off her jewels and fine clothes. Then she received from Francis the rough habit of the friars. She knelt and loosened her hair. Francis cut it. Now she is a servant of the great King. The friars accompany her to the Benedictive convent of San Paolo Delle Ancelle di Dio. In a short time Clare, and those who joined her, would come to their first home, San Damiano, outside the walls of Assisi, 


글라라는 가난한 삶으로 변화되어 프란치스칸의 관상과 봉사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글라라의 거룩한 성령의 부르심을 통해 삶의 길이 되었다. 이렇게 헌신적으로 프란치스코를 후원할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 후에 프라하의 복녀 아그네스(개인적으로 만나 본적이 없는)에게 글라라 성녀는 이렇게 편지를 썼다.

The development of the Poor Clares has begun. A Franciscan lifetime of contemplation and service begins Clare remained faithful to the call of the Holy Spirit throughout her life. In a way, her dedication became a source of support for Francis. Later, writing to Agnes of Prague(whom she never met personally), Clare penned these words in a letter to Agnes: 


그러나 실상 필요한 것은 하나뿐이므로, 그대가 거룩한 마음에 드시는 제물로 그대 자신을 바친 그 님의 사랑으로 나는 그대에게 간청하고 권고합니다. 라헬처럼 그대의 생활양식을 기억하여 그대의 생활원천을 항상 바라보면서

But because one thing is necessary, I bear witness to that one thing and encourage you, for love of Him to Whom you have offered yourself as a holy and pleasing sacrifice, that you always be mindful of your commitment like another Rachel always seeing your beginning.


그대가 지금 잡고 있는 것을 꼭 잡으시고.

그대가 지금 하시는 일을 앞으로도 하시고 그 일에서 물러서지 말며,

오히려 그대의 발을 먼지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재빠르고

가볍게 하여 돌에 부딪치지 않는 발걸음으로

안전하고 기쁘고 흔쾌하게 확실한

행복의 길로 달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그대를 부르신

그 완덕 안에 그대의 서원을 지존하신 님께

채워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그대의 길에다 장애물을 놓거나

그대의 생활양식을 거두게 하는 자를

아무도 믿지 말고 그런 자들에게 동의하지 마십시오.

What you hold, may you hold,

What you do, may you do and not stop.

But with swift pace, light step, unswerving feet,

so that even your steps stir up no dust,

may you go forward

securely, joyfully, and swiftly,

on the path of prudent happiness,

believing nothing,

agreeing with nothing

that would dissuade you from this commitment or

would place a stumbling block for you on the way,

so that nothing prevents you

from offering your vows

to the Most High in the perfection

to which the Spirit of the Lord has called you.


프라하의 아그네스에게 보낸 두 번째 서한(1235)

아시시의 글라라-부인

레기스 암스트롤 카푸친 작은 형제회 47-48쪽

Second letter to Agnes of Prague(1235)

Clare of Assisi - The Lady. 

Regis Armstrong OFM Cap - Pages 47-48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는 유일한 친구였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항상 두 사람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 두 분의 복음 정신을 받아 드리기 위해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는 우리에게 반사되는 거울이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까지도 사랑했다.

Francis' and Clare's friendship was never exclusive. Relationship with others was always part of their lives. Francis and Clare offer us a mirror in which to discover the gospel spirit they both embraced. Their love reached out to everyone and to all of creation.


가톨릭 교리

Catholic Doctrine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생활양식으로 불림을 받은 분들은 가톨릭 신앙을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는 또 다른 가톨릭 교리를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프란치스칸 정신을 매우 중요하게 믿고 있다.

People called to the Secular Franciscan way of life are expected to understand their Catholic faith. We will not write another Catholic Catechism, but there are some beliefs that are very important to our Franciscan spirit.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이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7-8.11)

Beloved, let us love one another, because love is from God; everyone who loves is born of God and knows God.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for God is love. ..Beloved, since God loved us so much,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 (1 John 4: 7-8,11)


프란치스칸들은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어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을 믿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벌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다. 다소 우리가 죄를 지었든 안 지었든 간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 그 사랑은 인성을 취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출현하였다. 이런 사랑으로 우리는 부수적으로 죄의 사함을 받는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칸들 신앙의 한가지 신학적 진리는 - 하느님의 사랑은 강생의 신비(하느님이 사람이 됨)에서 표현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로 오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It is our belief as Franciscans that God's love is what prompted God to send Jesus to earth to be with us. Sin is not what influenced God to send Jesus. Rather, whether we had sinned or not, Jesus would have come among us because God's love seeks to be with us. That love is made visible in the humanity of Jesus, the Christ. Only secondarily did this love rescue us from our sin and unfaithfulness. Hence, one theological truth of faith for Franciscans is - God's love finds expression in the Incarnation. God chooses to come among us because God loves us.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상생활에서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신다. 주님의 말씀과 행동은 삶과 믿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본보기가 되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가장 중심에 계신다. 주님과 거룩한 성령이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헤메게 된다. 예수님 영은 하느님의 사랑이시다(강생 & 육화의 신비)

Jesus shows us what love looks like in everyday life. The words and actions of Jesus offer a model of how to deal with the issues of life and faith. Jesus is at the heart of all we are. Without Jesus and the Holy Spirit we would be lost. Jesus is the love of God made flesh(Incarnation).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 하시어,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를 받았습니다.(에페소: 1; 8-10,13)

With all wisdom and insight he has made known to us the mystery of his will, according to his good pleasure that he set forth in Christ, as a plan for the fullness of time, to gather up all things in him, things in heaven and things on earth... in him you also, when you heard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and had believed in him, were marked with the seal of the promised Holy Spirit... (Ephesians 1: 8-10, 1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개인적인 믿음에 근본을 두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개개인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을 이룬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해 주신 하느님의 마지막 말씀이다. 예수님이 마지막 재현까지는 하느님으로부터 아무런 새 공적 계시가 없을 것이다

Personal faith in Jesus Christ is fundamental. This requires a personal faith-relationship with Jesus, not just an intellectual knowledge of facts about Jesus. As Jesus put it: Those who abide in me and I in them bear much fruit, because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John 15: 5). Revelation reached its zenith in Jesus Christ. Jesus is god's final Word to us. No new public revelation will be given by God before the final manifestation of Jesus.


+ 그분 자체가 하느님의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임무를 사도들에게 맡기셨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들의 증거, 설교, 그리고 저술을 통해서 그리스도 복음을 전파하였다.

+ Jesus Christ, the fullness of Revelation, entrusted his mission to the Apostles. They transmitted Christ's Gospel through their witness, preaching, and writing - under the guidance of the Holy Spirit - meant for all peoples until Christ comes in glory. ...


+ 성교회는 그 교의, 그의 생활, 그리고 그 전례를 통해서 자기가 무엇인가를 또 무엇을 믿는가를 각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계속 보존해 간다(제 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 8항 1조). 이것이 성전(전통)이라는 단어의 뜻이다.(성인용 미국 가톨릭 교리서-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31-32쪽)

+ "The Church, in her doctrine, life and worship perpetuates and transmits to every generation all that she herself is, all that she believes" (Dogmatic Constitution on Divine Revelation - Vatican II - no & Paragraph 1) . This is what is meant by the term Tradition. (United States Catholic Catechism for Adults _USCCB - Page 31-32)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계시를 전하기 위해서 믿음의 공동체(교회)를 세우셨다. 이것이 성서, 성전, 그리고 교도권을 통해 이루어진다. 쓰어진 성서말씀을 통해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어떻게 걸어가고 어떻게 살아가는 가를 보여주고 계신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알려진 예수님은 그 스승이시다.

Jesus established a believing community (church) to transmit God's revelation to people. This happens through scripture, tradition, and the magisterium. Through the written words of scripture Good reveals the way to walk and how to live as children of God. Jesus is the teacher who is known as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성전(전통)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생동적으로 계속 전파하므로 그 진리를 나누게 해준다. 올바른 전통(성전)은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 만일 사람들이 성서에서 벗어나거나 승인된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전통을 믿는다면, 그들은 잘못된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Tradition shares the truth through living transmission of the message of Jesus. Sound tradition is in accord with Scripture and the words of Jesus. If people believe a tradition that wanders from Scripture or is in conflict with approved Church teaching, they follow a false tradition.


"... 신자 전체는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주교로 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보편적인 동의를 보일 때에, 백성의 초자연적인 신앙감각의 중개로 이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가톨릭 교회 교리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92항)

" The whole body of the faithful ... cannot err in matters of belief. This characteristic is shown in the supernatural appreciation of faith(sensus fidei) on the part of the whole people, when, 'from the bishops to the last of the faithful,' they manifest a universal consent in matters of faith and morals." (LG 12 cf. St. Augustine, De praed, sanct. 14: pl 44, 980) (Cath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No 92)


성경은 하느님에 의해 영감을 받았고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성경의 저자인데 이것은 하느님이 인간 저자들 안에서 또 그들을 통해서 활동하면서 그들에게 영감을 주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저자들이 구원에 필요한 진리들을 오류 없이 가르치도록 확인해 주셨던 것이다. 영감은 성서의 인간 저자들에게 부여한 신적 도움을 뜻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다. 이것은 성령의 인도로 인간저자들이 그들의 온전한 재능과 능력을 사용하였지만 동시에 하느님이 의도하신 것을 썼다는 뜻이다.(성인용 미국 가톨릭 교리서-미국 가톨릭 주교 회의 26-27쪽)

Sacred Scripture is inspired by God and is the Word of God. Therefore, God is the author of Sacred Scripture, which means he inspired human authors, acting in and through them. Thus, God ensured that the authors taught, without error, those truths necessary for our salvation. Inspiration is the word used for the divine assistance given to the human authors of the books of Sacred Scripture. This means that guided by the Holy  Spirit, the human authors made full use of their talents and abilities while, at the some time, writing what God intended.  (United States Catholic Catechism for Adults _USCCB - Page 26-27)


계시의 초점은 하느님의 메시지를 모든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과 비전을 나눈다는 것이 교회의 우선적 임무의 하나이다.

The focal point of revelation is the transmission of God's message to all people. Sharing the love and vision of the Father, son and Holy Spirit is a primary responsibility of the Church. 


주교단의 가르치는 임무는 "교도권"이라고 불리어진다. 세상의 모든 주교들이 교황과 더불어 그들의 가르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신적으로 계시되어 온 어떤 교리를 선포할 때, 하느님의 백성은 신앙에서 나오는 존중심으로 이를 받아 들어야 한다. "교회는 그 교도권을 통해 계시에 포함된 것을 권위적으로 해석할 임무를 맡아왔는데 이는 믿어야 하는 것으로 제안된 교리들이 모두 다 신적으로 계신된 것으로 한 신앙창고에서 유래되기 위해서이다(하느님의 말씀 10번). 어떤 경우에는 이 교리들이 명백히 정의되어 왔지만 다른 경우에는 이 교리들이 가톨릭 신앙의 핵심적이고 변할 수 없는 요소로 보편적으로 인식되어 왔다(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교구 주교의 교수 목회[1992])(성인용 미국 가톨릭 교리서-133쪽)

The teaching office of the college of bishops is called the "Magisterium." When all the bishops throughout the world, together with the Pope, in the fulfillment of their teaching office, proclaim a doctrine that has been divinely revealed, it must be accepted with the obedience of faith by the whole People of God. "The Church, through its magisterium has been entrusted with the task of authoritatively interpreting what is contained in revelation so that 'all that is proposed for belief, as being divinely revealed, is drawn from the one deposit of faith' (Dei Verbum, ne. 10). In some cases these doctrines have been explicitly defined; in others, they are universally considered to be an essential and irreformable element of the one Catholic faith." (USCCB, The Teaching Ministry of the Diocesan Bishop [1992]). ( United States Catholic Catechism for Adults -Page 133)


교회는 하느님에 의해 하나의 공동체로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 공동체를 통해 하느님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성령께서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신다. 하느님 나라의 건설이교회의 임무이다.

The Church is an assembly of people gathered by God into one community. Through this community God's message is transmitted. The Holy Spirit empowers the Church to proclaim the Gospel. Building the kingdom of God is the mission of the Church.


교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우리에게나누어 주시려는 비전을 전달할 구조물들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신성 및 인성 양쪽을 다 가지셨는데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인간적 및 신적 요소를 가진 복합체이다.

The Church ahs structures to transmit the vision the Trinity seeks to share with us. Like Jesus, who has both a divine and a human nature so, too, the Church. The Church is a complex reality that has human and divine elements.


우리 신앙의 한 다른 요소는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실제로 현존하신 다는 믿음이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셨다. 성체는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구속적 삶, 죽음, 그리고 부활의 기념이다. 예수님께서는 성체 안에서 당신을 온전히 주시고 계신다. 

Another element of faith is our belief in the real presence of Jesus in the Eucharist. Jesus instituted the Eucharist at the Last supper. The Eucharist is the memorial of Christ's saving life, death and resurrection, made present to us. Jesus gives himself totally to us in the Eucharist. 


축성한 빵과 술의 형상 아래 살아계시고 영광스러우신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 즉 그의 몸과 피가 영과 신성과 함께 그 안에 현존하신다.(성인용 미국 가톨릭 교리서-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226쪽)

Under the consecrated species of bread and wine, Christ himself, living and glorious, is present in a true, real and substantial manner; His Body and Blood, with his soul and divinity. (CCC. no 1413 - Council of Trent: Denzinger/ schonmetzer 1640,1651)(United State Catholic Catechism for Adults - USCCB - Page 226)


나는 단지 자신만을 위해서만 그리스도를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거나 될 모든 사람과 일치를 이룰때에만 그 분에게 속할 수 있습니다. 영성체는 내가 자신에게서 벗어나 그분을 지향하도록 해 줍니다. 우리는 한 실존안에 완전히 결합된 '한 몸'이 됩니다........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건너가지 않는 성찬례는 그 자체로 불완전한 것입니다.

I cannot possess Christ just for myself; I can belong to him only in union with all those who have become, or who will become, his own. Communion draws me out of myself toward him and thus also toward unity with all Christians. We become "one body." completely joined in a single existence. ,,, A Eucharist which does not pass over into the concrete practice of love is intrinsically fragmented ....( God is Love (Deus Caritas Est) -Benedict XXVI- Paragraph 14)


성체신심은 그냥 미사 참례와 성체에 대한 신심만이 아니다. 이것은 전체 생활과 관계된 것이다. ...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과 사명의 원천이고 절정인 성체를 통해서 영성적인 삶, 즉 "성령에 따르는" 삶을 상도록 해야 합니다.(박애성사(Sacramentum Caritatis)베네딕트 16세-17절)

Eucharistic spirituality is not just participation in Mass and devotion to the Blessed Sacrament. It embraces the whole of life. ... Hence the Eucharist, as the source and summit of the Church's life and mission, must be translated into spirituality, into a life lived "according to the Spirit" (Romans 8: 4, cf galatians 5: 16, 25)(Benedict XVI - Paragraph 17)


다음 장에서 우리 가톨릭 신앙의 근본적인 믿음의 부활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In a later chapter we will speak of the resurrection, a fundamental belief of our Catholic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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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위한 독서와 질문

Readings /Questions for dialogue


하느님의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교황 베네딕트 16세의 회칙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12,14, 19,29절

God is Love(Deus Caritas Est) -Benedict XVI Paragraphs 12, 14, 19, 29


1첼라노 8장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 -1권 196-199쪽

1 Celano- Chapter VIII 

St. Francis of Assisi- The Saint -Vol 1


모든 이에게 두려움으로 사로잡히게 하라 등등.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성인 -1권 전 수도회에 보내 편지-118쪽

Let everyone be struck with fear etc

St. Francis of Assisi - The Saint -Vol 1 Letter to the Entire Order- Page 118


1. 프란치스코와 글라라가 성령의 부르심에 응답한 것에 대해 느낌들을 서로 나누어 보아라.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기도는 그들 대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 Share your impressions of Francis and Clare and their response to the call of the Holy Spirit. How were their lives changed? What role did prayer play in their conversion?

2. 프란치스코와 글라라의 체험 중에서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설명해 보아라

Do any of Francis' or Clare's experiences reflect your own life-experiences? Explain.

3. 당신은 프란치스코와 글라라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떤 이유 때문에 그들은 함께 하게 되었는가?

How would you describe the relationship between Francis and Clare? What brought them together?

4. 사회 정세는 프란치스코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사회 방법들을 평가하고 그는 어떻게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는가?

How did the situation of society affect the life of Francis? What brought him to a new way of assessing the ways of society?

5. 4번에서 대답한 것에 따라 내면에서 들려온 새로운 대화가 어떻게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주었느가? 그것은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의 영향을 주었는가?

Having answered #4, how did his new conversion-insights affect Francis' choice of a way of life? What kind of impact did it have among those who knew him?

6. 글라라는 복음과 예수님에 대한 프란치스코의 견해를 어떻게 받아 들이게 되었는가? 설명해 보라?

How did Clare come to accept Francis' perceptions about the Gospel and Jesus? Explain.

7. 참된 신앙을 이해하는데 있어 재속 프란치스코회가 필요하다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필요한 것인가?

What is your reaction to the requirement of the SFO that you understand your faith-beliefs? Why is it required?

8.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일상생활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당신의 개개인의 생활에서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이 사랑으로 바뀌었는가?

God is love. God's people are expected to reflect God's love in everyday life. What are some love-conversions that are needed in your personal life?

9. 더 많은 것을 받기 위해서 당신이 찾고자 하는 믿음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유는?

Which truths of the faith do you find you need to learn more about? Why?

10. 성서묵상: 마태복음 5장 1-16절. 더 없는 행복에 대한 예수님의 어떤 말씀이 당신의 마음을 움직였는가? 예수님의 어떤 산상설교 때문에 당신의 일상생활에서 움켜잡으려고 하는 것을 피하게 되었는가? 프란치스코와 글라라가 산성설교에 어떻게 응답하였다고 생각하는가? 

Scripture reflection: Matthew 5: 1-16. How do Jesus' words about the beatitudes touch you? What beatitude seems to elude your grasp in daily life? How would you suppose Francis and Clare responded to the Beatitudes? Expl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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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행위는 정의를 넘어서 간다네.

왜냐하면 사랑한다는 것은 주는 것이고.

"내 것"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렇게 한다 해서 정의가 줄어들지 않는다네.

정의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그의 것"

즉 그의 존재와 그의 행동으로 인해

그에게 속해있는 것을 주도록 하는 것이라네.

나는 정의로서 그에게 속한 것을 그에게 먼저 주지 않고는 

내 것을 다른 이에게 "줄 수 "없 다네

우리가 자선행위로 다른 삶을 사랑하게 되면

먼저 우리는 그들에게 정의로워야 한다네.

정의는 자선행위에 외부적인 것도 아니고

자선행위의 개선책도 아니고 

동행자도 아니라네

정의는 자선행위에서 떼어낼 수 없고 

그 속에 포함된 것이라네.

진리 속의 박애(Caritas in Veritate)

베네딕트 16세 6절

Charity goes beyond justice,

because to love is to give,

to offer what is "mine" to the other; 

but it never lacks justice,

which prompts us to give the other

what is "his," what is due to him

by reason of his being or his acting.

I cannot "give" what is mine to the other.

without first giving him what pertains

to him in justice. If we love others

with charity, then first of all

we are just towards them.

Not only is justice not extraneous

to charity, not only is it not an alternative

or parallel path to charity;

justice is inseparable from charity,

and intrinsic to it.

Charity in Truth(Caritas in Veritate)

Benedict XVI-paragraph 6


우리는 신입자들을

형제히에 소개 및 

환영식을 하고 

지원기(Inquiry)를 시작한다.


간단한 예식 절차는 영문 재속 프란치스코회 예절서(Retual of Secular Franciscan Order)

9쪽과 10쪽에 나와 있다.

발자취를 따라서 129-130쪽


이 예식은 하나의 본보기일 뿐이다.

형제회의 양성은 참가자들 각자에게 뜻있게 하기 위해

어떤 요소를 추가하거나 뺄 수 있다.

At the beginning of inquiry 

we introduce newcomers

to the fraternity

and welcome them.


이 예식은 간단하다

신입자들과 형제회의 회원들 모두를 참석해야 한다.

여기서 친절이 가장 중요한 단어이다.

환영하는 마음이 신입자들을 편안하게 만들 것이다.

A ritual of this simple ceremony

is found on page 9 and 10 of the

Ritual of the Secular Franciscan Order



The rite serves as a model.

Fraternity formation people

can add or subtract elements

to make it more meaningful

for everyone concerned.


The rite is simple.

Involve both newcomers and

the members of the fraternity.

hospitality is the key word.

A welcoming spirit will make

the newcomers feel at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