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기고 싶은 글들

2021년 6월

Margaret K 2021. 6. 2. 07:01

6월 30일 수요일

하느님의 아들이여,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려고 여기 오셨습니까?

(마태 8,2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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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월요일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나를 따라라.”(마태오 8,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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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7일 일요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마르코 5,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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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 토요일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그저 한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낫겠습니다. (마태오 8,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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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목요일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루가 1,57-66.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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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수요일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마태오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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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화요일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오 7,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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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월요일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마태오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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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일요일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마르코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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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처음으로 느낀 감정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끄럽고 두려워 숨게 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걱정이 없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안해지고 두려워지는 것은 나를 지켜 줄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시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아이들은 천하무적입니다. 부모님이 받아주면 아무리 높은 곳에서도 두려움 없이 뛰어내립니다. 

문제는 인간이 죄를 지으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서 불안하고 두려워지게 됩니다. 아무리 머리로 그 분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생각해도 양심은 나를 죄인으로 심판하고 그래서 마치 고아처럼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만듭니다.

내가 무언가를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면 스스로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하며 내 안에서 주무시고 계신 주님을 깨워 무엇이든 청합시다. 아니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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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목요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마태오 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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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수요일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오 6,1-6.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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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도는 기도자로 하여금 삶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새롭게 보게 해줍니다그리하여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일하심이 드러나고하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고우리의 눈이 바뀌어 가고삶이 바뀌어 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이처럼올바르게 사는 것은 우리의 올바른 기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아멘.

-이영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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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화요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마태오 5,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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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인간의 힘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해 완성됩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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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만드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사랑으로 충만하다면 원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시는 하느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간직하여 모두가 사랑해야 할 사람으로 보인다면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해야 할 소명이 있을 뿐입니다.

“성인은 착한 사람을 착하게 대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 또한 착하게 대하니 이는 덕이 오직 착하기 때문이다”(노자49장). “사랑은 사랑일 뿐, 상대에 따라서 달라지거나 있다가 없다가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이현주).

-반영억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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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실천이고, 선의 실현이기 때문에,

감정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미워하고 싫어해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감정과 사랑은 차원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무조건 잘해주는 것만 사랑이 아니라, 타이르고, 꾸짖는 것도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엄하게 꾸짖으신 일은(마태 16,23),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꾸짖고 비판하신 것도

그들을 회개시켜서 구원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원수를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을 실천한 대표적인 예는

루카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도당한 사람’은 유대인으로 생각됩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원수 사이입니다.)

그래서 착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당한 사람을 도와준 일은

이웃을 사랑한 일이기도 하고, 원수를 사랑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 사마리아인은 강도당한 사람이 원수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라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사랑입니다.

-송영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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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사랑하라고만 하시지 않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를 자녀가 되는 권한으로 부르시는 것은 우리가 당신 모습과 닮은 모습이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본능을 넘어 행동하는 것이므로 그는 큰 보물을 지닌 것이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48절) 오늘 복음은 “모든 것은 선으로 완전해진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 상속자들의 삶으로 부르시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모습을 보이도록 부르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버지의 선하심을 본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조욱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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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월요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오 5,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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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일요일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마르코. 4,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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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우리 안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우리가 받아들이고 키우고 열매 맺기를 바라는 말씀의 씨를 뿌리고 계십니다. 저는 ‘행복’이라는 말씀의 씨를 지금까지 키워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분명 주님께서 많은 씨를 뿌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이 겸손일 수도 있고, 선교일 수도 있고, 감사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모든 것은 은총이라는 작은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하나만 끝까지 키워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분명 누군가를 쉬게 해 줄 수 있는 하느님 나라가 자신 안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면 그분은 헛되게 씨를 뿌리고 계신 것이 됩니다. 

단 하나의 말씀의 씨앗이라도 그것만큼은 누구보다 내가 잘 키울 수 있다고 믿고 가장 훌륭한 나무로 키워보십시오. 그러면 가장 훌륭한 하느님 나라가 내 안에 세워진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수많은 식물이 자라지만 실제로 그 많은 식물이 하늘에서 떨어진 하나의 작은 씨앗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습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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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토요일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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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모님을 신앙의 모범으로 바라보며, ‘천주의 성모님’, ‘하늘의 여왕’,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등 영광스러운 호칭을 드립니다. 그러나 그 영광스러움을 가능하게 하셨던 성모님의 밑바탕에는,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시고 마음속에 간직하시는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의 마음’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의 육화는 이러한 성모님의 마음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박형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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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금요일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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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목요일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 것이다(마태오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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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표현하는 것이 곧 내가 됩니다. 그러니 좋은 것은 표현하고 나쁜 것은 감춥시다. 화가 났다고 말하면 되지 화를 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좋은 감정은 드러나게 하고 나쁜 감정은 삭입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믿읍시다. 그러면 화가 나야 할 때도 화가 안 나고 감사의 마음이 솟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쁜 감정은 숨기고 좋은 감정은 표출하십시오. 결국, 내가 자주 하는 행동이 나를 만듭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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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수요일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큰사람 대접을 받을 것 이다." (마태5,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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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의 의무를 지키지 못한 것만을 우리가 죄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율법주의적 사고에 빠지는 것입니다. 

-박형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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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사랑은 사랑하게 만듭니다.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유다 지도자들의 의로움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랑을 합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의로움입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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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화요일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오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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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나의 사랑이 마르지 않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사랑 안에 자신이 담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욕망도 사라지고 마르지 않는 물을 내어줄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 됩니다. 이것이 빛과 소금이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복음은 진복팔단 바로 뒤에 나옵니다. 진복팔단은 먼저 자신의 욕망을 비우고 하느님으로 자신을 채워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할 때 박해도 받겠지만 가장 행복하다는 내용입니다.

내가 비워지고 주님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내가 주는 한 방울의 물은 금방 말라버립니다. 내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욕망이 사라지고 참 만족을 느끼기 전에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내 물이 마르면 다른 물을 빨아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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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위해 헌신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언제나 교회를 증명해준다

-반영억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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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월요일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오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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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일요일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마르코 14,12-16.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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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흠 없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 어린 양의 피가 발라놓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앙에서 구원되고 이때부터 유월절이 되면 어린양을 잡아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계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양이 아닌 당신 자신을 바침으로써 새롭고 영원한 유월절의 양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체 성혈로 인류는 죽음과 죄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체 성혈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일치를 이루는 신비와 인류에 대한 사랑의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피로써 인간이 거룩한 하느님과 하나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피의 계약으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었고 우리 모두는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키엣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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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토요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코12,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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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금요일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마르코 12,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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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목요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코 12,12,28ㄱㄷ-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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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일 수요일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마르코 12,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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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화요일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드려라.”(마르코 12,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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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믿는 이에겐 돈도 하느님의 것이고 황제도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돈과 황제는 하느님과 상반되는 무엇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두가 다 하느님의 것이지만 하느님은 당신께 합당한 것만 챙기십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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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황제가 자신의 초상을 요구하니, 황제의 것을 황제에게 돌려주어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초상을 요구하시니,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황제에게는 돈을 돌려주고 하느님께는 여러분 자신을 돌려드려라.

 그러면 우리 안에 진리가 다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이영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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