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기고 싶은 글들

2021년 4월

Margaret K 2021. 4. 1. 06:18

4월 30일 금요일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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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십자가는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십자가는 예수님처럼 지고 가는 것입니다십자가는 우상이 아닙니다십자가는 내가 지고가야 하는 아픔과 고통입니다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만이 부활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느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을 따라는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조재형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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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목요일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가 보내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인다(요한 13,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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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요한 12,44-50)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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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화요일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요한 1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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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월요일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요한 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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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일요일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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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토요일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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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금요일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요한 6,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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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따라서 우리가 미사성제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살인 성체를 모시고 예수님의 피인 성혈을 마실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예수님 ‘안에 머무르며’, 예수님께서도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먹고 마심으로써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서철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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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가 어머니 태중에서 어머니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살 듯, 모든 피조물은 자신을 창조해 준 창조자의 태중에서 창조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생존합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고 하늘의 법칙입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우리 안의 자아를 죽여 그것이 만드는 세상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합니다. 이것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로 나오는 과정과 같습니다. 

사람은 창조자의 살과 피로 삽니다. 내가 지금 먹고 마시는 양식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분명 그 힘으로 살고 있을 것이고 그 힘이 흘러나오는 세상에 머물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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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노도 말합니다. “미사성제에 참례하러 가기 위하여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를 천사가 세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영원에서 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그러므로 너무 바쁘다는 말을 하지 말고 하루 일과 중에 미사참례를 첫 자리에 놓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미사는 지상의 천국입니다.”“미사는 종합영양제입니다.”영성체 없는 신앙생활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반영억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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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요한 6,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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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빵” “살리는 빵”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곧 먹는 이 안에서 부활하는 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증여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죽음을 몰아내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를 당신의 몸이 되게 하시고, 당신 생명이 되게 하시고, 당신 신성에 들게 하고, 우리에게서 부활하십니다.

-이영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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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수요일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요한 6,35-40)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요한 6,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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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는 고해신부에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배가 고픕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이 영혼에게 양식을 주십시오. 성체이신 주님을 주십시오. 주님을 모실 수 없을 때는 성당으로 가서 그분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또 바라봅니다. 저는 이렇게 만족을 얻습니다.” 성 알도 마르코치는 “저는 식사를 거르는 것보다 영성체를 못하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듭니다.”하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성체를 모셨으면 합니다.

 “영성체는 우리의 그리스도교적 생명력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우리가 육신에 영양을 주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듯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성 가롤로 보르메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반영억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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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능력만으로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셨기 때문에 내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는 것이 곧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4-5).

-송영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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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도 내려놓음에서 시작하신다.

나의 뜻을 내려놓는 것이 우리자신을 살리는 생명의 참된 길이다.

산다는 것은 내려놓음의 연속이다.

가장 좋으신 하느님과 함께하기위해 내려놓는 생명의 빵이 되는 것이다.

내려놓음이 회개이고 내려놓음이 실천하는 생명의 시작이다.

이와같이 내려놓아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다.

내려놓음이 행복이다.

하느님을 향한 믿음은 나의 뜻을 내려놓는 기쁨이다.

생명의 빵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바로 내려놓음임을 가르쳐준다.

십자가도 생명의 빵도 부활도 내려놓음의 은총이다.

내려놓는 마음과 마음 사이에 하느님 나라가 있다.

하느님 나라는 생명의 빵이 되는 실천의 나라이다.

내려놓음이 생명의 참된 힘이라는 것을 언제나 뒤늦게 깨닫는다.

내려놓음이 신앙의 신비이며 삶의 참된 변화이다.

우리를 살리고 삶의 여정마다 정화하여 주는 내려놓음의 빵이 우리들 한가운데에 내려오셨다.

내려놓음의 진실한 사랑을 받아들인다.

내려놓음이아멘이다.

-한상우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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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화요일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6,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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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메시아는 하늘에서 만나보다 더 큰 풍요를 주리라고 여겼기에 예수님께 더 큰 일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생명의 빵”이요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나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빵이었다면, 당신께서는 온 세상을 위한, 온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서철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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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순수한 마음속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깃들어 있다단순하고 소박하고 그리고 감사와 사랑에 대한 순수한 인간적인 감정이것이 신앙의 원천이다.” 페스탈로치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인간그리스도시인모든 것을 남에게 바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축복이 있을 지어다그의 이름에 축복이 있을 지어다.” 삶은 사름의 준말이고사름은 사르다의 명사형입니다그러니까 삶은 사르는 일입니다그래서 마지막에 한 줌의 재로 남은 것입니다잘 산다는 것은 잘 사라지는 것입니다.

-조재형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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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아모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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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월요일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요한 6,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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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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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일요일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다(루가 24,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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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토요일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요한 6,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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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금요일

"이 사람들을 다 먹일 만한 빵을 우리가 어디서 사올 수 있겠느냐?” (요한 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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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목요일

세상에서 나온 사람은 세상에 속하여 세상 일을 말하고 하늘에서 오신 분은 모든 사람 위에 계시며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요한 3,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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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수요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그가 한 일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요한 3,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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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시되, 그냥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 아드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말해줌과 동시에, 우리가 그토록 차고 넘치는 사랑을 이미 받아먹은 고귀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만약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하셨다면, 굳이 당신의 외아들을 보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영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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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이 먼 고장으로 떠난 것은 방탕하게 살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루카 15,13).

분명히, 아버지가 작은아들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 작은아들 자신이 떠났습니다.

그것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모습입니다.

큰아들의 경우, 방탕하게 살다가 온 작은아들에게 아버지가 벌을 내리기는커녕 잔치를 벌이는 것이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는데(루카 15,28),

분명히, 아버지가 큰아들을 쫓아낸 것이 아니라 큰아들 자신이 안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도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선택한) 모습입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작은아들은 악을 저지르는 동안에는 ‘아버지의 집’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빛을 미워하면서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회개한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부터 했습니다(루카 15,18).

회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은, 진리를 실천하면서 빛으로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송영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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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화요일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7ㄱ.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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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의 특징은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여 하느님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곧 세상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새로워져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저희가 당신 눈으로 새롭게 보게 하소서!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보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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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월요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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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일요일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대답했다 (요한 20,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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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토요일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마음이 완고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그들을 꾸짖으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꼬 1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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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금요일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요한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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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목요일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루가 24,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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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게 만드는 가장 좋은 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안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찾아내어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해 준다면 사람들은 그 신비로운 섭리에 놀라고 믿게 됩니다. 교회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 성경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연결하여 해석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저도 그리스도께서 새 아담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깜짝 놀랐던 적이 기억납니다. 교회는 바오로 전통에 따라 하느님께서 아담의 옆구리에서 갈비뼈를 빼낸 것이 그리스도의 수난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와가 아담의 옆구리에서 빼낸 갈비뼈로 만들어졌듯이, 교회도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로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피와 물은 좁은 의미로는 세례와 견진, 그리고 성체성사를 상징합니다. 이 세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당연히 죽으셔야 하고 부활하셔야 함을 믿게 되었습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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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수요일

빵을 떼어 주실 때에야 그 두 제자는 그분이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루가 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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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성경 전체에서 흐르는 수난과 영광에 대하여 들은 제자들은 지금까지 영광만 누리고자 하였던 자신의 욕망의 길과 죽음까지 내어 주시는 예수님의 수난의 길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눈을 가리던 비늘이 떨어져 나갑니다.
성경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온 생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에 이르는 사랑, 이 고단하고 힘든 사랑의 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야 마음이 타오르고 눈이 열립니다.

. ‘너! 사랑이 고난받는 것인 줄 몰랐니? 고난 다음에 영광이 온다고!’ 힘겨움이 찾아올 때, 이 단순한 이치를 왜 자꾸만 잊게 될까요?”

-서철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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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제자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간 것은,
새로운 믿음과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차서 신앙여정을 다시 시작했음을 뜻합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참된 신앙인으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송영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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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시는 말씀과
나누시는 빵 안에 부활이 있다.

눈이 열리는 것이 부활이다. 

-한상우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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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화요일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가거라. (요한 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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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월요일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마태오 28,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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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일요일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요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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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토요일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코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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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던 사람, 사도 바오로는 고백합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이영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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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믿음으로 증명되는 신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거나, 천사의 말을 믿거나, 예수님을 만난 이들의 말을 믿거나... 이렇게 부활은 '믿음을 기초로 확장되는 하느님 나라의 증거'입니다.

-오상선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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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금요일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듣는다.”(요한 18,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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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어졌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지금까지 하느님의 얼굴은 하늘과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다만 상징적으로 일 년에 한 번 대사제가 그분 앞에 들어서 희미하게 그분을 알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열리고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는 말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몸소 휘장을 걷어 내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분 안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랑하시는 분으로 당신 자신을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께 이르는 통로가 자유로워졌습니다”(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2』, 265면).

-서철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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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목요일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요한 1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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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허무를 많이 겪어봐야 합니다. 헛되고 헛됨을 알아야 그분의 손에 나의 발을 맡겨드릴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부귀영화를 가졌던 솔로몬 왕은 말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전도 1,2)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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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언의 말씀을 주시기에 앞서, 먼저 제자들에게 유산을 나누어주십니다.

곧 당신의 유산으로 고귀하신 당신의 몸, 당신의 생명을 물려주십니다. 이름 하여, 성체성사를 설정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성체성사를 유산으로 주시기에 앞서,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예수님의 이 발 씻김은 쟝 바니어 표현을 빌면, 당혹스런 쇼크요 스캔들입니다.

제자들, 특히 베드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스캔들이었습니다.

섬김을 받아야 할 분이 섬기신 까닭입니다.

곧 발 씻김은 단지 섬김의 본보기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을 넘어서, 무릇 참된 생명으로 건너가는 구원의 성사로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섬김’은,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의 무한한 행위요, 동시에 죄를 씻어주는 용서와 구원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투완 추기경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성체가 되는 것이다.”

-이영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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