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교재

폰테콜롬보 제10과 복음적인 가난

Margaret K 2020. 11. 15. 05:05

  

제10과 복음적인 가난 양성 지도안

 

주제

제10과 복음적인 가난

 

학습목표

1. 복음적인 가난에 대해 알아본다

2. 프란치스코의 가난이란 무엇이며, 그 의미를 알아본다

3. 재속프란치스칸의 가난 실천에 대해 알아본다

 

구분

내용

시간

준비

인사, 시작기도(예시된 기도 외에 다른 기도나 성가), 출석 점검

3분

도입

1. 전시간 학습 상기

2. 주게 제시: 복음적인 가난

3. 복음적인 가난은 현세적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 마음이며, 순례자나 나그네 같은 정신으로 사는 것이다 오늘은 재속 프란치스칸의 복음적 가난을 살펴본다

2분

전개

1. 성서의 가난

1) 성서에서의 가난은 물질적 가난과 정신적 가난을 모두 말한다.

2) 물질적 가난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주고 받아야 하는 애덕과 봉사를 요구한다면 정신적 가난은 하느님만을 갈망하며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길 바라며 세상의 재물에 초탈한 마음임을 가르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

1) 예수님의 지상 생활은 가난한 삶이엇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은 하느님과 동등하신 분이 종의 신분을 취하시어 인간이 되신대 있다.

3) 성부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시는 가난의 근원이시다.

4)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께 대한 순종과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가난의 모범이시다.

3. 프란치스코의 가난

1) 육화와 십자가의 가난

①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의 동기는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과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다

②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그리스도의 가난을 베들레헴과 갈바리아의 신비에서 견한다

③성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 안에서 참된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2) 프란치스코의 소유 없음

①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소유없음은 물질적 가난과 더불어 정신적이고 영적인 모든 것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고’ 내게는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는 완전한 비움이다

② 소유없음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자기에게는 아무 것도 남겨 놓지 않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이다

3) 순례자나 나그네와 같이

①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순례자나 나그네의 삶을 그대로 사셨다.

②순례자의 삶은 외적 생활만을 의미하지 않고 수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젖어 한없는 순례를 했으며, 순례하는 모든 것 안에서 수난하신 그리스도와 창조주 하느님을 만났다

4. 재속 프란치스칸의 가난 실천

1) 재물 관리자로서의 의무

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물질적 욕구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② 재속프란치스칸은 청지기와 같은 마음으로 재물을 관리하고,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이어야 한다

③재속프란치스칸은 하느님께서 재물의 주인이심을 알고 맡겨진 임무에 충실할 것이며, 언제나 하느님께 되돌려드리는 자세이어야 한다

④ 재속프란치스칸은 재물을 사용할 때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지나친 소비주의를 반대한다

2) 행복 선언의 정신

① 우리는 행복 선언의 정신 특히 가나의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② 복음적 가난은 아버지께 대한 신뢰와 내적인 자유를 지니게 되며, 재물을 나누게 한다.

③ 행복 선언의 정신을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희망을 두지 않고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둔다. 이것은 우리 삶의 내적 가난이며 내적 자유이다.

④ 재속프란치스칸은 이 세상을 순례자와 나그네 같이 살며, 재물에 대한 소유욕과 재물로 다른 이를 지배하려는 욕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⑤ 재속 프란치스칸은 영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을 나눔으로서 가난의 정신을 완성한다.

50분

종합

1.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께 대한 순종과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는 가난의 모범이시다.

2.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을 베들레헴과 갈바리아의 신비에서 발견한다.

3.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소유 없음은 물질의 가난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모든 것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고 내게는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는 완전한 비움이다.

4. 재속 프란치스칸은 행복 선언의 정신으로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두며, 순례자와 나그네 같은 마음으로 재물에 대한 소유욕과 지배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5. 재속프란치스칸인 우리는 영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을 나눔으로써 가난의 정신을 완성한다

2분

심화실천

재속 프란치스칸의 가난의 정신은 재물의 포기가 아니라 재물의 관리와 나눔으로써 완성된다. 또 행복 선언의 정신으로 내적 가난의 자유를 누린다. 가난의 실천에 서로 나눠보자.

1. 성 프란치스코가 발견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 즉 베들레헴과 갈바리아의 신비에 대해 묵상하고 묵상한 바를 형제 자매들과 함께 나누어 본다

2. 소유욕과 지배욕 온갖 탐욕 등을 버리는 마음의 가난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본다

10분

과제물

예시된 과제물이나 그 외 별도 과제물을 내준다.

 

마침기도

예시된 기도문 외에 다른 기도나 성가를 할 수 있다.

2분

 

 

 

 

 

제10과 복음적인 가난


회칙 제11조

성부를 신뢰하신 그리스도께서는 피조물을 관심있게 또 좋게 보셨지만 당신과 당신의 어머니를 위해서는 가난하고 겸손한 생활을 택하셨다. 이와 같이 회원은 물질적 욕구를 줄임으로써 현세의 재물로부터 벗어나고 사용에 있어서도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것이며, 복음에 따라 자신의 하느님 자녀들을 위해 받은 재물의 관리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회원은, ‘행복 선언’의 정신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는 순례자나 나그네와 같이, 소유욕과 지배욕 및 그러한 모든 경향에서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시작기도

하느님 아버지를 신뢰하심며 가난하고 겸손한 생활을 택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우리가 가난하고 겸손한 생활을 택하신 당신과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욕구를 줄여 재물을 잘 관리하고 사용하는 데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게 하소서. 또한 ‘행복 선언’의 정신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는 “순례자나 나그네”와 같이, 소유욕과 지배욕 및 그러한 모든 경향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느님 자녀로서 재무의 진정한 관리자가 되게 하소서.


복음적 가난은 현세적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 마음이며, 순례자나 나그네 같은 정신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회칙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재물에 대한 가난 정신을 이야기함으로써 재물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고, 나아가 재물의 사용에 대해 재속프란치스칸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재속성을 지닌 우리가 청지기와 같은 재물의 관리와 나눔을 위해 소비를 줄이는 실천적이고 복음적인 가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성서의 가난


구약성서에서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하느님께만 희망을 두는 겸손한 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야훼의 가난한 자들’(anawim)은 메시아를 기다리며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신약성서에서 가난한 이들은 모든 종류의 병자들, 소외도고 굶주린 이들, 보잘것없는 이들 등 온갖 곤궁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또 ‘행복 선언’의 가르침을 통해 지상 재물에 대해 정신적으로 초연한 것을 요구하신다. 행복 선언은 ‘하느님 나라’라는 진정한 보물을 갈망하고 찾으라는 말씀이다. 아나님(anawim)의 후예들인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진정으로 하느님께만 희망을 두는 사람들이며 하느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성서의 가난은 구약이나 신약을 막론하고 물질적 가난과 정신적 가난을 모두 이야기한다. 물질적 가난이 그리스도인 모두가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 애덕과 봉사를 요구한다면, 정신적 가난을 하느님만을 갈망하며 하느님으로 만족하길 원하여 세상의 재물을 초탈한 마음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


예수님의 지상 생활은 가난한 삶이었다. 탄생하실 때에도 비천한 말구유에서 나셨고 그분의 나자렛 생활 또한 부유하지 않았다. 공생활 전에는 아버지 요셉의 노동 일을 거드는 노동자로 사셨다. 전도 여행 중의 예수님은 언제나 나그네이셨고 순례자이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루가 9,58)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셨던 예수께서는 당신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셨다. 예수께서는 멸시받기 위해 가난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가난하시고 죽기까지 낮추신 구분의 독특한 방법이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6-7)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은 하느님과 동등하신 분이 하느님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으로 인간이 되신데 있다. 인간이 되신 예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생명까지 내어놓으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외아들을 내어주신 가난의 근원이시며, 아들은 아버지께 대한 순종과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가난의 모범이시다. 아들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해 수난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가난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발로였다.


3. 프란치스코의 가난


1) 육화와 십자가의 가난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의 동기는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과, 가난하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허(kenosis)와 겸손을 나타내는 가난을, 무엇보다도 베들레헴과 갈바리아의 신비에서 발견한다. 프란치스코는 베들레헴에서 가난한 동정녀의 궁핍한 모습과 ‘말씀’ 이 세상에 들어오시는 모습 안에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가난하심을 보았다. 육화와 십자가의 가난 때문에 프란치스코를 가난하게 했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희생과 사랑을 드렸다. 수난의 사랑에 젖었던 그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각하여 울음을 그칠 날이 없었으며 그리스도의 상처를 기억하느라 길거리를 한숨으로 채웠고 어떤 위로도 마다하였다(2첼라노 11). 프란치스코는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이들 안에서 수난받으시는 그리스도를 보았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에 대해 이론적인 정의를 내리기보다 실제로 가난하게 사셨다. 그는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셨으니 부끄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여러분을 하늘나라의 상속자와 왕이 되게 하고, 물질에 가난한 사람이 되게 하면서도, 덕행에 뛰어나게 하는 지극히 높은 가난의 탁월성입니다.(2회칙 6,3-5)라고 말한다.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 안에서 참으로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2) 프란치스코의 ‘소유없음’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소유없음’은 물질의 가난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까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고 내게는 아무 것도 남겨 놓지 않는 완전한 비움이다. 프란치스코의 가난은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기 위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이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을 통해 하느님께 찬미와 사랑을 돌려드리는 가난이다. 그러므로 ‘소유없음’란 자신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까지도 포함하여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그 어느 것도 지니거나 품지 않는 것이다. 프란치스코의 ‘소유없음’은 절대 주권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가난이다.

프란치스코는 권고에서 자신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일에 대해 많이 언급한다. “어떤 일 때문에도 분개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하느님의 종은 진정코 아무 소유없이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마태 22,21) 돌리면서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는 사람은 복됩니다.”(권고 11,3-4)

여러 가지 기도와 신심 행사에 열중하고 육신의 많은 극기와 고행을 하면서도, 자기에게 해가 될 듯한 말 한 마디만 듣거나, 혹은 어떤 것을 빼앗기기만 하면 발끈하여 내내 흥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이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뺨을 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권고 14, 2-4)

프란치스코는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까지 그분께 다 돌려드리고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울 수 있었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타올랐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하느님을 흠숭하고 찬미하는 일이었다.


3) 순례자나 나그네와 같이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순례자나 나그네의 삶을 그대로 살았다. 불안정한 생활!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사셨던 프란치스코가 취한 생활 방식이다. 그가 생활 양식으로 삼았던 복음 말씀(마태 10,9-10; 루가 9,3)은 가난한 나그네 생활이었다. 프란치스코는 온전히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의탁 하기를 원했고, 오히려 정착하기를 두려워하였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 이 세상에서 순례자나 나그네 같이 가난과 겸손 안에서 주님을 섬기며, 이 가난에 완전히 매달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하늘 아래서는 결코 다른 어느 것도 가지기를 원하지 마십시오.:”(2회칙 6,6)

그는 순례자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스스로 맨발로 걷기를 원했다. 이렇게 한 것은 본향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원의 때문이었다. 이 세상을 나그네나 순례자처럼 사는 것은 본향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가난에 대한 외적인 표지이기도 하다.

또한 프란치스코의 순례자 삶은 외적 생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젖었던 프란치스코는 그 사랑을 토해 내기 위하여 한없는 순례를 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작고 가난한 순례자를 한 곳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그는 주님의 동반자였으며 선포자였다. 쉼 없이 순례하는 모든 것 안에서 수난하신 그리스도와 창조주 하느님을 만났다.


4. 재속프란치스칸의 가난 실천


재속프란치스칸은 프란치스코의 가난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의 삶은 수도생활이 아니기 때문에, 세속에서의 생활은 어떤 면으로든지 재물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대부분 사유 재산이 있고,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직업을 가지게 된다.


1) 재물의 관리자로서의 의무.

회칙은 분명히 복음적 권고인 가난을 언급하지만 우리에게 재물을 포기하라고 촉구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물질적 욕구에서 자유로워지도록 요구한다. 재물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거나 재물의 포로가 되면 하느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된다. 그러나 재물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잘 관리한다면 오히려 가치 있는 것이다. 청지기와 같은 마음으로 재물을 관리하고, 언제나 이웃을 위해 나누려는 마음이어야 한다. “만약 너희가 세속의 재물을 다루는 데도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참된 재물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루가 16,11)

재속프란치스칸은 하느님께서 재물의 주인이심을 알고 맡겨진 임무에 충실한 것이며,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면 언제나 되돌려 드리는 자세여야 한다. 지상의 물질에 마음을 두는 사람은 탐욕스럽게 되고, 천상에 마음을 두는 사람은 물질에서 자유롭게 될 것이다. 물질에서 자유로워진 가난은 하느님께 대한 자식으로서의 신뢰심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원의를 불러일으킨다.

재속프란치스칸은 재물을 사용할 때 적적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나눔을 실천하면서 동시에 인간 존엄성을 착취하는 이념이나 실천 등 지나친 소비주의를 반대한다(회헌 15,3). 재물이 하느님의 선을 위해 쓰여질 때만이 가치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해 소비를 줄이는 일은 우리의 의무이다.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이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풍부히 나누어져야 한다. 즉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유익을 줄 수 있도록 사용하라는 뜻이다.”(사목 69)


2) 행복 선언의 정신

재속프란치스칸은 참 행복의 정신, 특히 가난의 정신을 살아야 한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영으로 가난한 자’는 세상적 만족에서 초타하여 하느님만이 온갖 선의 근원임을 깨닫는 자이다. 복음적 가난은 하느님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내적인 자유를 누리게 되며, 재물을 더욱 공정하게 나눌 수 있게 한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가 교만하다면 그는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 아니며, 부자라도 재물을 주님의 선물로 여겨 잘 사용하는 사람이면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다.

행복 선언의 정신을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희망을 두지 않고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둔다. 이 세상에서 순례자와 나그네와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은 바로 우리가 차지할 땅이 하늘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속프란치스칸은 재물에 대한 소유욕과 재물로 다른 이를 지배하려는 지배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그러한 모든 경향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가난은 세상 재물에 대한 초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깊은 인간적 자세, 곧 하느님의 뜻 외에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행복 선언의 정신은 재속프란치스칸이 지녀야 할 내적 가난이며 내적 자유이다.

우리가 영적, 물적 재물을 나누면 그것이 바로 프란치스코가 말한 소유 없는 생활이다. 재속프란치스칸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임을 알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되돌려드린다. 그리고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 줄 알아야 한다. 프란치스코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십자가의 신비 안에서 그리고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신 주님의 삶에서 우리의 가난 정신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

재속 프란치스칸은 집착과 자만심, 시기와 질투심을 극복하고, 가정과 사무실 그리고 일터에서 권위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일터는 가난의 정신을 실천하며 완성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이다. 우리는 세상을 섬기지 않고 하늘나라를 지향하는 원의와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오늘은 프란치스코의 가난 정신과 재속프란치스칸의 가난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재물의 관리자로서, 그리고 행복선언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삶의 행복이며 기쁨이고 내적 자유로움이다. 재속프란치스칸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되돌리기 위해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


나눔을 위한 주제

1. 우리가 가난의 삶을 살아야 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2.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3. 성 프란치스코의 순례자나 나그네의 삶은 어떤 삶인가?

4. 나는 소유욕과 지배욕, 온갖 탐욕 등을 버리는 내적 가난을 살고 있는가? 현실에서 내적 가난을 사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


과제물

1. 물질적 가난의 삶과 내적 가난의 모습을 묵상하고 그 내용을 적어온다.

2. 회칙 11조와 회헌 15조를 써온다.


마침기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여러 가지의 기도와 신심행사에 열중하고 육신의 많은 극기와 고행을 하면서도, 가지에게 해가 될 듯한 말 한 마디만 듣거나, 혹은 어떤 것을 빼앗기기만 하면 발끈하여 내내 흥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뺨을 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권고 14. 마음의 가난


렘프

가슴까지 차오르는 종일의 계단 끝

기척없이 다가와

물빛 잠을 사루다가

기억의 가장자리로

짙어오는 생각들

넘치는 물살의

욕망은 가라앉고

하루를 살다가도 몇 번이나 지웠다 쓴

뉘우침의 가지 끝에서

타오르는 빛이여.


돌아오는 사람과 돌아가는 사람들이

마지막 출항의 등불을 박힐 때

맨살의 가슴 위에서

출렁이는 바닷물


떠밀리는 세월 속

참마다 걸리어

보이지 않는 소느 그리움의 빛깔로

누구의 여읜 가슴에

젖어 타고 있을까


참고 문헌

사목헌장 69

작은 형제회 II회칙 6,3-5; 6,6;10,8-9

성 프란치스코의 권고 11,3-4; 14,2-4; 7; 5,5-6

덕행들에게 바치신 인사 13

신자들에게 보내신 둘째 편지 19

토마스 첼라노 1생애 42,39

토마스 첼라노 2생애 11,56-57,140,211

세동료 전기 8,10

프란치스칸 소명 PP 143-176

회개하는 형제자매들의 삶 PP 260-276

신비가 프란치스코 PP 156-168, pp191-206

프란치스칸 삶과 사상 14호 PP 107-125

양성교제 ‘회칙생활 1’ PP 42-44

양성교재 ‘양성교제 1 PP 197-204

성서신학사전, 광주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