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기고 싶은 글들

2020년 11월

Margaret K 2020. 11. 1. 06:05

11월 30일 월요일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오 4,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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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 일요일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마르코 13,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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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어떤 순간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곧, ‘우리 모두는 되어가는 것’임을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조명연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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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 안에서 판단이나 미운 마음, 불안과 초조, 걱정과 두려움의 마음이 일 때는 분명 영혼이 배고픈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영혼의 양식을 주러 오시는 예수님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려면 영과 육은 반대이고 영혼의 양식을 채우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혼의 상태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은 영혼의 양식을 주러 오시는 예수님을 이번 성탄 때도 알아보지 못하게 됩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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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오신다는 것을 믿으니까 기다립니다

루카복음에 나오는 ‘시메온’ 예언자는 믿음으로 기다린 사람의 좋은 예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루카 2,25-26).”

성령께서는 시메온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뵐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인지에 관해서는 ‘죽기 전에’ 라고 막연한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래도 시메온은 메시아를 뵙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믿었고, 믿었으니까 평생

기다렸고,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뵈었을 때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29-30).”

 

기다림은 ‘희망’입니다.

주님을 뵙기를 원하고 희망하니까 기다립니다.

주님을 뵙기를 원하고 희망하는 우리의 심정은

다음 시편에 나타나 있는 심정과 같습니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찾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합니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이 당신을 애타게 그립니다(시편 63,2).”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사람만이 주님이 오시기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고,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니까 ‘사랑으로’ 기다립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1코린 13,4).”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신앙생활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참고 견딥니다.

 

기다림은 ‘기쁨’입니다.

우리는 혼날까봐 무서워서 깨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주님을 뵙게 되는 것이 기뻐서 ‘기쁨으로’ 깨어 기다립니다.

주님을 그리워하고 그분을 애타게 보고 싶어 해서 깨어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림 자체가 ‘기쁜 일’이 됩니다.

 

기다림은 적극적으로 주님을 ‘마중 나가는 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또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동구 밖으로 나가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송영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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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토요일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닥쳐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가 21,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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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자신은 죄를 짓지 않기로 ‘절대 결심’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잘 안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마치 결심만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죄를 짓지 않을 만큼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가 기도의 힘을 믿는 신앙인의 말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목적을 이룰 가능성이 큽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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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금요일

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을 보아라.나무에 잎에 돋으면 그것을 보아 여름이 벌써 다가온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라. (루가 21,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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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목요일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루가 21,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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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

“주님은 오십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내년이 아니라 올해,

우리의 비참함이 다 지나가고 난 뒤에가 아니라 그 비참함 한가운데로,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으로 주님은 오십니다.”

-이영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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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수요일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가 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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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화요일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루가 2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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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월요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넣었다. 저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쳤지만 이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 (루가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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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헌은 돈을 내는 것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는 것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과부는 봉헌함으로써 생활이 불편해졌고 부자들은 봉헌을 많이 해도 불편해지지 않습니다. 삶이 불편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포기하고 죽였다는 뜻입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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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 일요일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오 25,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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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통치방식은 권세와 힘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섬김이요,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나라에 사는 우리 역시 사랑과 섬김을 삶의 원리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우리는 이제 섬김과 사랑의 법 아래서, 섬김과 사랑의 왕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왕국의 백성인 자녀로 살아가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아멘

-이영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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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토요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태 12,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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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금요일

예수께서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 상인들을 쫓아내시며 “성서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기록되어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하고 나무라셨다.  (루가 19,4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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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목요일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러 그 도시를 내려다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한탄하셨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루가 19,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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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수요일

했다. 너는 착한 종이로구나. 네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을 다했으니 나는 너에게 열 고을을 다스리게 하겠다. (루가 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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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7일 화요일

자케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루가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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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세상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줍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들어오면 세상 것들은 힘을 잃기 때문입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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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월요일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고 그가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자,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하고 말씀하셨다.(루가 18,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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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내용이 단순히 눈을 뜨게 하는 치유가 아니라 믿음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신앙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위하여 예수님께 청하고 부르짖습니다. 또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지나며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허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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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일요일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오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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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토요일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데도 올바르게 판결해 주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 두실 것 같으냐?

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루가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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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금요일

들어 두어라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누워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또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루가 17,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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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정화의 단계에서 자신을 버리고조명의 단계에서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하며일치의 단계에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합니다

일치는 운전면허증과 같습니다실기시험에 합격하면 운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운전면허증은 자격을 주지만책임도 요구합니다교통법규를 어기거나신호를 어기면 벌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심각한 위반이면 운전면허가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그러기에 운전면허증을 가진 사람은 늘 준법운전안전운전양보운전을 해야 합니다신앙 안에서 계명을 잘 지키는 분들은 준법운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교회에서 권하는 교육피정에 열심히 참석하고 선을 행하는 분들은 안전운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희생하고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분들은 양보운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가에서는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이야기합니다깨달음을 얻은 후 수행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깨닫는 사람이 있습니다깨달았으면 더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이 돈오돈수입니다깨달았지만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더 이어가는 것이 돈오점수입니다정화조명일치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람도 있지만어느 날 일치의 단계를 체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돈오점수의 삶이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고백록에서 주여당신 위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 마음이 주님 안에서 쉬기까지는 안식이 없나이다그러므로 내게는 내가 주님 안에 거함이 좋사오니 내가 그 안에 있지 아니하면 잠깐이라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신앙의 여정은 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닙니다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오늘 독서는 우리가 일치의 삶을 사는 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돈오점수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그 계명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에 하느님께서는 보물을 숨겨 놓으셨습니다그 보물은 바로 지구라는 별입니다지구라는 넓은 밭에도 보물을 숨겨 놓으셨습니다그 보물은 바로 하느님을 닮은 사람입니다사람과 사랑은 같은 말 같습니다사람은 사랑해야 합니다하느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조재형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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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가 17,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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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수요일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루가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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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 화요일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가 1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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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월요일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요한 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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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 토요일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너희는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루가 1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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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금요일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주인은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 (루가 1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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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목요일

너희 가운데 누가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한 마리를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루가 1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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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는 광야에 버려둔 채 한 마리 양만을 찾아 나설까요? 그 한 마리 양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양을 광야에 버려둔다는 말은 죽도록 내버려 둔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죽도로 내버려 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 행동을 십계명에 맞게 바꾸기면 하면 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세리와 죄인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결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회개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될 수 있다고 믿는 것에서 그리스도가 아니면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는 과정입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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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루카 15,6.8)

이 비유의 정점은 잃은 것을 되찾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되찾은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이 “기쁨”은 너무도 커서, 도저히 나누지 않고는 못 베기는 기쁨입니다

-이영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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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수요일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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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을 따르는 과정은 자기를 버리는 과정입니다. 만약 자기를 버리는 것과 예수님을 따르는 과정을 병행하지 못하면 우리는 탑을 세우려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나, 혹은 싸움에 질 것이 뻔한데도 무작정 싸우러 나가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하시며 마무리합니다.

욥이 원인 모를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의 친구 세 명은 각자 자신이 아는 바대로 욥에게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욥에게는 그 친구들의 충고가 더 가슴 아팠습니다. 다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다 아는 옳은 말만 할 때 더 마음이 아플 수 있습니다. 그 옳은 말은 상대를 위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일 때가 많습니다. 진리를 배우는 것보다 자신을 버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자신을 버리면 맛있는 소금, 맛있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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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ㅣ일 화요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루카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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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월요일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오 5,1-12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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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제각기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나 모든 이가 그것을 볼 수는 없다(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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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주님의 뜻을 만나면 내 뜻은 죽습니다. 내 뜻이 죽을 때 평화가 옵니다. 그런데 내가 죽었다면 누가 나의 주인이 될까요? 바로 주님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나의 지배자로 두면 그분이 나의 주인이 되시고 그분을 위해 나는 봉사해야 합니다. 나의 이익을 챙길 수가 없습니다. 이때 비로소 ‘프레즌스’가 성취됩니다. 자아는 끊임없이 과거의 걱정과 미래의 불안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주님께 집중하면 현재 주님의 뜻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머물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하느님을 만나고 이웃을 온전히 만나려면 자기 생각에 빠져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뜻에만 집중하고 있어야 합니다. 꾸준한 연습을 할 필요가 있지만, 아주 잠시라도 이 프레즌스가 이루어졌다면 주님은 “잠깐이지만 나는 너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너를 안다”라고 증언해주실 것입니다.

프레즌스를 연습하는 방법은 짧은 기도를 통해 자주 주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자주 짧은 대화를 나누어도 되고 그저 예수님의 이름을 자주 불러도 됩니다. 나의 의식을 나에게 두지 말고 주님의 뜻에만 두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봉헌할 때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내가 자아의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보게 되어 나를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됩니다.

  사람은 자아에 사로잡힌 사람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고 그 불안함을 금방 알아챕니다. 속이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나의 프레즌스를 먼저 봅니다. 이것은 생존본능입니다. 자아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항상 피해를 봐 왔기 때문에 우리 유전자에 그런 사람들을 회피하도록 시스템 되어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내 안에 계신 주님의 뜻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연습을 한다면 이것이 깨어있는 연습이고 죽음과 심판을 준비하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쉽게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주님 하면서 살았지만 결국 자기 자신만 만나다 죽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프레즌스는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하게 할 수 있는 능력’ 정도로 번역하면 될 것입니다.

-전삼용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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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일요일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오 5,1-12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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