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 영성

글라라와 프란치스코-R. Cantalamessa, OFMCap., 호 가롤로 역

Margaret K 2020. 4. 16. 03:17

글라라와 프란치스코-R. Cantalamessa, OFMCap., 호 가롤로 역



"글라라와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칸 삶과 사상, 제21호 2003년 가을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구나; 그와 닮은 조력자 하나 만들어 주자(창세 2, 18). 이렇게 해서 이브가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끔씩 이와 같은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구나; 그와 닮은 조력자 하나 만들어 주자. 이렇게 해서 글라라가 창조된 것입니다. 글라라는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참으로 “그와 닮은” 조력자였습니다. 그와 같은 본성과 기질을 지녔던 글라라는 가장 참다운 의미에서 그의 “쌍둥이 영혼”이었습니다. ...


생텍쥐페리는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글라라와 프란치스코는 분명히 서로를 바라보는 데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그렇게 많은 왕래(서신이든 대화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프란치스코가 글라라에 대해 너무 어렵게 대하는 것에 대해 형제들이 가끔씩 사랑하는 마음으로 질책했을 정도로 그들 사이에는 놀랄만한 자제(혹은 삼가함)가 있었습니다. 


그의 삶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들 사이의 엄격한 관계성이 완화됨을 알 수 있으며 또한 그래서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Pianticella, 즉 자신의 작은 나무 가까이서 더욱 힘과 용기를 찾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죽음에 이르러서 병이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무렵 위안을 받기 위해서 갔던 곳은 산 다미아노였습니다. 그


가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에 내용을 덧붙인 것도 글라라와 가까이 있을 때였습니다. 

그 내용은 쓰임 많고 겸손하며 소중하고 정결한 물 자매에 대한 것인데, 마음 속으로 글라라와 함께 썼던 것으로 보입니다. 


프란치스코와 글라라의 우정은 다른 이들, 즉 프란치스코의 형제들과 글라라의 자매들을 제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우정이 그들에게 넘쳐 흘렀던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모든 자매들의 형제이자 아버지이고 글라라는 모든 형제들의 자매이자 어머니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우정이 이런 속성을 지닐 때 그 우정은 창조를 상기시키는 것이 되며, 가장 최초의 순진무구함의 관계성으로 우리를 돌아가게 해 줍니다. ‘낙원으로의 돌아감’인 것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대신에 글라라와 프란치스코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습니다.


 글라라와 프란치스코는 두 개의 눈과 같았습니다. ...

 그들은 같은 하느님을, 같은 주 예수님을, 같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을, 같은 성체성사를 보았지만 남성과 여성의 각도에서, 남성과 여성으로서 지니고 있는 선물과 감수성을 가지고 보았던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성서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고도의 대조점을 보여주는 그 상호보완성의 신비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에 따라 남자(사람)를 창조하였고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그분은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창세 1, 27). 


그들은 함께 하느님의 완벽한 닮은 꼴을 만들어냈고 그들은 함께 일치성과 다양성을 갖추고 계신, 한 분이면서 세분이신, 즉 숫자에 있어서가 아니라 사랑에 있어서 일치를 이루시는 성서의 하느님과 완벽한 닮은 꼴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의 일반적인 관계는 거의 늘 여성 수도회들의 상대 남성 수도회들에의 의존과 종속에 관련하여 배열되어 왔습니다. 


글라라와 프란치스코는 종속에 대해서보다는 상호보완성과 협력에 대해서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위해서 남성과 여성은 함께 하느님께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 되실 천상 예루살렘의 표징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모범들을 통해 글라라와 프란치스코가 같은 방향으로 보았던 그 방식을 입증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모범들 한 가지에 대해 강조점을 두고 싶습니다. 


그들이 다 같이 가졌던 성체성사에 대한 사랑이 그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그의 글들에서 가난에 대해서보다 성체성사에 대해서 심지어 더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성체성사는 단순한 신비가 성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격인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그분이 베들레헴에서 그랬던 것처럼 약하디 약하고 무방비 상태인 인간의 손에 완전하게 주어진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러한 것으로부터 제대상의 성사와 함께 행해지는 모든 것에 대한 그의 사랑에 찬 정이 나오게 되는 것이고, 교회와 성작(성합)이 품위와 깨끗함을 지니고 있다는 그의 전제적인 생각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콘 그림 양식을 보면 글라라에게 있어서 성체를 모시는 성광은 그녀의 표징입니다. 

그녀는 성합으로부터 그녀를 확신시켜 주는 ‘어린이와 같은’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그대를 언제나 지켜줄 것이다.” 

이것은 봉쇄의 삶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측면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분 앞에서 세상을 붙들고 세상 앞에서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붙잡기 위해 무릎을 꿇고 그분을 들어 높이는 것...말하자면 그렇게 해서 도시의 성벽들 위에서 그분을 들고 적들에게 창을 겨누는 것입니다. 


아씨시는 사라센인들의 공격으로부터 구출되었는데, 이는 군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광을 들고 사라센인들과 맞선 글라라에 의해서였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기 가까이에서 ‘영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자그마한 수도원을 하나 바티칸 성벽 내에 두고 싶었는데, 그가 시작한 첫 번째 공동체는 성녀 글라라의 딸들의 공동체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책임이 또한 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집중’, 즉 포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을 너무 많이 바라보면 그분에게서 시선을 빗나가게 합니다. 바깥과의 너무 많은 접촉은-- 물론 이것은 최선의 지향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지만--그분과의 접촉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의 가능성을 가지고 내가 어린이와 같은 그 놀라운 찬가형식의 유언을 글라라와 그녀의 자매들에게 보내는 프란치스코 자신이라고 상상해 볼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르셔서 여러 지역과 지방으로부터 함께 모인 사랑하는 가난한 이들이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 

성령의 삶이 더 나은 것이니 바깥의 삶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글라라와 프란치스코」, R. Cantalamessa, OFMCap 호명환 가롤로 OFM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