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이야기

무지의 구름 중에서

Margaret K 2019. 5. 8. 22:27

무지의 구름 22페이지


모든 신비가들은 묵상을 기도 생활의 초보단계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묵상은 하느님을 배우는 통로요, 따라서 초기단계에서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정신이 하느님의 일에 충분히 교화되고 마음이 그분께로 향할 수 있게 되면 묵상은 그다지 절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상 필요 없게 된다. 아니 심지어는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경험적으로 하느님을 알게 된 영혼은 더 이상 이런 초보적인 수련에 의지하지 않고도 곧바로 친교로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결 심화된 앎 속에서는 이전 단계들에서 누리던 자유로움은 사라지는 경향이 있으며, 때로는 간단한 구절들을 자주 반복하면서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진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렇게 될 수 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서로를 사랑하는 남녀는 처음 교제하기 시작한 단계에서는 할말이 많은 법이지만, 사랑이 깊어지면 서로를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너무나도 미진하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말은 갈수록 함축성 있고 의미 깊은 구절로 짤막하게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런 때 이전 표현들에  수식어가 많이 줄어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실성이나 진실도가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도에도 이와 흡사한 특성이 있어서 갈수록 발전하고 단순화한다. 영혼은 마침내 하느님과 사랑에 빠지고, 그러면서 점점 말수는 줄어든다. 기도의 이 단계를 '애정적' 단계라고 하는데, 그것은 애정이 감성적인 방식으로 솟구치기 때문이 아니라(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영혼이 삭막감과 고독감을 느낄 때조차도 기도의 표현에는 기본적으로 애정이나 사랑이 묻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영혼이 자신의 기도가 완전히 건조해져 버렸다고 느끼고 또 그렇게 된 데해 적이 당황하는 때가 올 수 있는데 바로 이 단계를 일반적으로 '신비기도'의 출발점으로 간주한다. 이때 일어나는 일은 영혼이 스스로 아는 것 일체를 넓은 아량으로 하느님께 바치면서 그분을 가장 우선적으로 구하는 일이다. 그는 지금도 응답은 하고 있지만 이미 너무나도 가까이 다가간 나머지 평소의 정신상태로는 마주하는 체험을 해석하지 못하며, 이런 상황은 평소의 정신 상태가 거기에 맞도록 조정될 때까지 이어진다. 이를 알아듣게 표현하자면, 정신의 수신장치가 수신되는 신호음의 강한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를 식별하기 위해 스스로를 제대로 조정하는 일은 당장에는 (또는 한동안은) 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이 단계에서 영혼은 무척이나 힘든 고통을 당하게 되는바, 그도 그럴 것이 오직 하느님말고는 이무것도 바라지 않는 그가 느낄 수 있는 것은 황량함과 당혹감뿐이기 때문이다. 바라기만하고 감지하지는 못하는 이 단계는 영혼에게서 자신과 하느님 사이를 가로막는 일체의 것들을 제거해 주는 더욱 숭고한 의미를 지닌다. 


'관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로움은 선물로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는 주님의 초청일 수 있다./김홍언신부  (0) 2011.10.27
덮쳐서  (0) 2011.07.28
허물을 벗고  (0) 2011.07.28
저 세상이  (0) 2011.07.28
쓰나미/말씀  (0) 2011.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