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이야기

쓰나미/말씀

Margaret K 2011. 7. 25. 22:00

http://kslofs.blog.me/50113904960

 





 

 

 

습관적으로 보아오던 T.V. 연속극을 끊고,

그 좋아하던 술을 끊고,

장시간의 전화사용을 짧게 하고,

습관적으로 손이 가던 인터네트에서 손을 떼고,

.....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밀려오는

<답답함과 어두움>을 살아가는 자(者),

서서히 복지(福地)에 든다.

 

 

 

  온 세상 사람들이

이 세상에  이렇게 속아서

쓰나미에 밀려

뒤엉켜 떠밀려가고 있다.



 

명상이 있는 기도이보나 수사님 말씀입니다.(2011.7.24.)

다른 사람의 십자가외에 나에게 오는 십자가를 질 줄 알아야 한다.
T.V, Computer,
전화, 싸우나 등은 시간보내기 좋으나 하고나서 후회한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막막하여 무엇을 하고 살까 할 정도로 속이 답답하다.
이것은 기쁨을 따라가는 쾌락이고 가짜 즐거움이다.
여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바라는 것은 하느님과의 일치이다.

재미와 시간 보내기 위한 T.V, Computer 등을 멈출 때 답답함이 골고다 산이다.
그 언덕 너머에 감미로움, 우주가 있다.
견디는 방법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것이 직방이다.

그 답답함에도 교부들은 사막으로 갔다. 사막에 T.V, Computer, 전화 등이 있는가?
단절된 사막이 얼마나 황량하고 답답할까!
T.V, Computer
등에 의지하지 않고 사는 것이 사막이고 세속을 떠난 것이다.
답답함을 그냥 견디고 살면 십자가 그 너머에 낙원, 참 기쁨이 있다.

 

좋은 것을 명상하는 것이 관상이 아니라 세상에 되는 일이 없고,
친구도 없고, 낙을 찾아볼 수 없는 그 답답함에 그냥 있는 것이다.

답답함에서도 기다리는 마음 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하느님이 천상보화를 주실 때까지 답답함을 견디어야 한다.
그러나 답답함을 모면하기 위하여 불평하고 대책을 찾아낸다.

몸이 아파서 회복된 것은 목숨만 연장된 것이며 죽지 않는다.
살기 힘들어 어려운 그 답답함으로 하느님께 넘어가서 해결을 해야 한다.

내가 정신이 불안해서 죽겠을 때 그 불안함을 가만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불안함이 그리스도 십자가와 같아서 하느님께서 넘겨 줄때 까지 진득하니 기다린다.

 

이 답답한 언덕을 넘을 때 그리스도께서 지셨다. 예수님이 아직도 큰 형님으로
닥아 오지 않는 이유는 답답함을 넘어서 하느님을 만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답답함, 어려움을 기다린다.

성 프란치스코는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앞으로 어떻게 살까?” 했을 때
하느님께서프란치스코야, 네가 육적으로 헛되이 좋아했던 것을 이제는 영적인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네가 나를 알기를 원한다면 달콤한 것 대신에 쓴 것을 택하여 너 자신을 천하게 여겨라.
순서가 바뀌어도 너는 내가 한 말에 맛을 들일 것이다.”(2첼라노 5)

성인은 마음 안에서 말씀하신 것을 마음으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환자를 혐오하였지만 오히려 나환자를 찾아갔다.

내 십자가인 답답함에 머물러라.

 

 

 

 

 

 


 

'관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물을 벗고  (0) 2011.07.28
저 세상이  (0) 2011.07.28
언덕에  (0) 2011.07.25
재빨리  (0) 2011.07.25
들어가서 사는  (0) 201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