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의 영성
그리스도의 인간성 (The Humanity of Christ)
그리스도와 프란치스코간의 애정 관계에 대해서는 하등의 의심을 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중세 말엽의 회화들 속에 그렇게도 많이 나타나는, 최후의 심판을 맡으신 심판관으로서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이 되신 베들레헴의 그리스도이었고, 영적으로 굶주린 인간을 위해 음식으로서 자신을 내주었던 최후 만찬의 그리스도이시며, 인간이 자기 자신의 비인간적 상태로부터 일어날수 있도록 희생재물로서 죽으셨던 갈바리산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했던 프란치스코 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 사람이여 보십시요! 육신에 있어 당신이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모상에 따라 그대를 지으시고 형성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얼마만큼 탁월하게 그대를 들어 높이셨는지를!"
보속, 회개 (Penance-Conversion)
우리가 그같은 아버지(하느님)와 그같은 형제(그리스도)를 가졌음을 발견하면서 압도 당할 때 전적인 회개이외에, 곧 자신의 옛 생활을 슬퍼하거나 거부하는 것 이상의,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쳐버리는 애정관계 같은 그 회개 외에 다른 응답이란 불가능합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의 회개 그이 보속은 대단히 기쁨의 일들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완전한 충족감을 주었고, 만약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으면, 결코 자기를 버리질 않을 신부인, 다른 어느 신부보다도 더 뛰어난 신부(정배)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의 회개에 대해서 , 프란치스코는 "나에게 쓰디쓰게 보였던 것이 영혼과 육신의 감미로움으로 변했습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생활양식으로서의 복음 (The Gospel as a way of life)
그러한 회개이후, 프란치스코는 크리스찬으로 남아 있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들만을 이행하고는 더 이상 살수 없었습니다. 그는 법을 초월하고, 법보다 훨씬 더 멀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삶과 동화되는 정도로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복음이라는 도전과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간성을 넘어 오르도록 해 주고 또 세상으로 하여금 그것이 지닌 집합적인 죄악을 넘어 오르도록 복음이 문을 열어준 그 가능성들이 프란치스코의 영혼 안에 있는 현을 너무도 힘차게 진동시키어 그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온 마음과 영혼으로 그리던 것이다."
계속 되는 육화 (The Continuing Incarnation)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육화는 단순히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역사적인 사건만은 아니었습니다. 육화는
과거에 이루어 졌지만 또한 현재에도 일어납니다. 복음적 생활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의 자신의 역할에서 그리스도를 탄생시키도록 계속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수임 받습니다. 지극히 독특한 표현으로 프란치스코는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분을 모실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들이 됩니다. 표양을 보여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할 거룩한 행실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게 됩니다."
형제애 (Brotherhood)
프란치스코의 유언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구절은 아마도 그가 그의 첫 번째 제자들과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시작을 표현하는 데에 사용한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주께서 나에게 몇몇 형제를 주셨습니다." 계급 구분이 경직화되고 수도원의 규칙에서조차 제 2계급의 시민들에겐 평수사 직분만 허용되었을 때, 또한 주인과 하인 귀족과 농민, 특권 상류층과 평민하층의 계급이 있었을 때, 또 의혹과 불신이 친구들 사이에서조차 그 시대의 하나의 질서가 되었을 때, 프란치스코는 적어도 자신의 수도회에서는 참된 형제애가 아직도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수도회를 작은 형제들의 회라고 이름지었을 때, 형제애란 인간에 대한 인간의 비인간적 행위에 그리스도께서 도전하시는 것은 물론 자신도 도전하는 일임을 분명하게 나타내었습니다.
작음 (Minority)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수도회를 형제들의 수도회로 보았다면, 그는 또한 그것을 특별히 '작은 형제들'의 수도회로 보았을 것입니다. 소수 혹은 작음이란 말이 가난하고 무력하며 침묵을 지켜야 하는 소수 그룹에 대해 말할 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작음은 권력과 특권과 지위에 대한 추구와의 절연이었습니다. 그것은 가난하고 무력하며 무방비 상태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에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이들, 곧 성서가 말하는 "야훼의 가난한 자"처럼 되려는 욕망이었습니다. 그것은 봉사 받지 않고 봉사하려는 욕망이고,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고통을 겪고 함께 나누며, 서로 관심을 갖고 도와주며 서로 유용한 자가 되려는 욕망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군림하려는 욕망, 즉 인간의 가장 악한 경향을 극복 하려는 욕망입니다.
가난 (Poverty)
재산, 풍요 그리고 개인재산과 물질에 대한 집착, 이것들은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형제애 및 하느님과의 일치에의 장애물로 보였습니다. 그 삶이 돈과 돈으로 살수 있는 것에 의해 지배당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보다는 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자연질서의 가장 나쁜 악용 가운데 하나인데, 대단히 빠르게 개인을 비인간화에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인격이 재산보다 더 중요하고 사람들이 물건들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난은 확실히 그런 것에 대한 증거자로서의 의미를 지닙니다.
인격주의 (Personalism)
채스터톤(G.K. Chesterton)은 프란치스코의 인격주의에 관해 아마도 결정적인 말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군중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은 더욱더 사실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존경했고, 이는 그가 사람들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그들 모두를 존경했음을 의미한다. 그에게 놀라운 인격적 힘을 주었던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즉 교황으로부터 거지에 이르기까지, 술탄으로부터 숲 속에서 기어 나온 누더기 옷을 입은 강도에 이르기까지 불타는 그 갈색 눈동자를 들여다 본 사람은 누구나 프란치스코가 진정으로 '그 사람'에게 관심 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신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개개인의 삶에 관심을 가졌고 그 사람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고 진지하게 대하였습니다."
기도 (Prayer)
기도, 특히 관상기도는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너무도 중요해서 한때 그는 세상에 대한 사도직 사명을 포기하고 관상 생활로 은퇴하려는 유혹을 심하게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 해주셨듯이 그의 임무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동굴에서건 장터에서건 라 베르나 산에 있는 백작의 저택에 있건, 홀로 있건 형제들과 함께 있건 노동하는 중에 있건 간에, 프란치스코는 늘 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관상기도를, 때로는 자유기도를, 때로는 형제들과 함께 공동기도를, 때로는 노동기도를 바쳤습니다.
고통의 수용 (Acceptance of Suffering)
고통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통은 모든 대가를 치루고서 피해야 하는 악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경외심을 가지고 고통에 접근했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다음의 메시지를 알아들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고 고양시키기 위해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프란치스코는 고통을 수용했을 뿐 아니라,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그리스도 고통의 남은 부분을 나의 몸으로 채우겠다"고 했듯이 고통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평화 (Peace)
프란치스코는 전쟁상태에 있는 귀족과 하인, 크리스챤과 모슬렘 교도, 아씨시의 귀족계급과 하층 서민계급
사이의 분쟁에서 평화의 건설자로서 인정받았습니다. 그 스스로가 평화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입술로 평화를 선포하고 있는 동안에, 당신의 가슴속에 평화를 더욱더 충분히 간직하도록 힘쓰십시오. 어느 누구든 당신 때문에 분노나 모욕적 언동을 불러 일으켜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당신이 보이는 자제의 결과로서 평화와 선의, 자비에로 움직여야 합니다"라고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존경 (Respect for the Church)
교회는 본질적인 교의 및 윤리영역에서 보다 다른 영역, 즉 인간적 나약함과 심지어 오류에 항상 떨어 질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시대에 있어서 교회 안의 인간적 나약성은 대단히 커서 교회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현존의 표지가 거의 되지 못하였습니다. 교회는 정치적 권력을 지님으로 인하여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성직자의 대다수가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며, 反聖職(Anticlericalism)主義가 충분히 근거를 지닌 채 만연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네 가 보다시피, 폐허가 되어 가고 있는 나의 교회를 수리하여라"고 프란치스코를 부르셨습니다.프란치스코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성직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파견되었습니다. 그것은 성직자들의 부족함을 우리들이 보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평화의 자녀들처럼 행동한다면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성직자도 사람들도 함께 얻을 것이고, 그러면 주님은 그것을 성직자의 타락에서 사람들만 구 하는 것 보다 더욱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십니다”
오늘에 있어서의 프란치스칸 증거 (Franciscan Witness Today)
세상은 프란치스코의 시대 이래 여러번 변화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슬프게도 똑같은 조건들과 문제들이
우리의 시대에 너무도 많이 되돌아 왔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상황을 변화시키며,냉담자들을 깨우치는가 하는 방법들을 권고하는 수 백만개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다수의 말들은,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상투적인 말에 불과 합니다. 또한 말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말은 모순된 소리였으므로 다른 이들에게 받아들여 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로서 그들은 말한 것에 대한 파괴적 논리를 갖게 됩니다. 폴 사이몬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것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내가 의심하게 된 것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내가 한때 진실이라고 주장했던 모든 것을; 나는 신념도 없이 홀로 서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진리는 당신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너 역시 나의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아마도 그분은 우리 시대 사람들이 알게 될 유일한 진리는 개개인, 신앙인,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 애정 깊고 평화를 애호하며 충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일 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당신은 당신의 이웃이 항상 읽게 되는 유일한복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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