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소명

제 10장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3

Margaret K 2017. 12. 18. 21:45

제 10장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3 


가난과 일

최근에 생긴 “인간과 현세적 실재”의 신학에서 노동의 신학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3장에서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 있어 인간 활동의 크리스천적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일을 통하여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참여하며, 노동 여건을 성화시키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재창조에 이바지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 활동은 구원적이고 속죄의 가치를 지닌다.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일은 생계의 주요 방법인 동시에 인간을 향상시키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일은 인간들을 서로 뭉치고 한 공동체로서 인류의 발전에 봉사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성 프란치스코가 회칙을 쓸 당시 일의 가치관은 오늘과 다르게 평가 되었다. 그 당시에 인간의 활동은 다음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되었다: 정신노동(학문과 예술, 즉 liberales - 자유인들의 일)과 육체노동(serviles - 노예들의 일)으로 구분되었다. 인간 지성에 속하는 첫째 종류(facultates superiores)인 학문적이고 예술적인 활동은 높이 평가되어 인간의 영신적 완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반면에, 둘째 종류의 일 - 수공, 노동, 기술적 혹은 생산과 소비에 관계되는 일 -은 천한 직업이므로 하인들이 하는 일이며, 영신생활에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육체노동의 필요성을 다음 네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생계를 마련하기 위한 수단, 한가함을 피하기 위한 수단, 정욕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 애긍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들이다. 대수도원 생활 전통에서 일의 가치는 주로 수덕적이고 금욕적인 것이었다. 즉, 한가함을 피하고 유혹을 피하기 위한 가치다. 그러므로 개인적 혹은 사회적 목적 없이도 일은 그 자체로 위에 말한 이유 때문에 가치가 있었다.

성 프란치스코도 이러한 개념의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당대인들과 비교하면 더 복음적이고 현대적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일에 관한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은 「제1회칙」 7장, “봉사와 일하는 자세”에 나온다. 요약해서 말하면, 형제들의 일은 “형제적 공동체”(Fraternitas)와 “작은자”(Minoritas)의 정신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한 형제들의 일반적이고 주된 방법은 일이다. 그리고 회칙이 말하는 일은 육체적 일이기에 형제들은 노예들이 일을 하듯이 부자들의 집에서 일할 때 책임을 맡거나 관리인이 되지 말고 “작은 자”답게 모든 사람에게 복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중세기에서 일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므로 주인에게 예속함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제7장에서 형제들이 기술적 일을 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다: “기술을 아는 형제들은 구령에 해가 되지 않고 올바르게 쓸 수 있다면 그 기술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8장에서는 돈에 대한 욕심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을 제외한 후에 “형제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우리 생활에 반대되지 않는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인다. 또한 성 바울로의 말을 적용하면서 형제들에게 권고한다: "각각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기술과 직을 그대로 유지하십시오. ···· 그리고 각자의 기술에 필요한 공구와 연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통적 대수도원과 당대의 후밀리아티(Humiliati)및 비슷한 단체들과는 달리 작은 형제들의 공동체는 자기 생계비를 위해서 수도원 내에서나 밖에서 생산 조직체를 설치하지 않는다. 각 형제는 공동체가 소도직을 행하는 지역에서 혹은 은둔소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에서 스스로 일을 찾아야 했다.  「제1회칙」에 의하면, 일에 형제들 생계의 일반적 방법이다. 그리고 돈을 제외하고는 “형제들이 일의 보수로 필요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일의 보수로 받은 것만으로 생활하기에 항상 충분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병환자들을 위해서도 양식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충방법으로 애긍을 해야 했다. 애긍에 대하여 다음에 언급하겠지만, 처음에 애긍하러 다닌 형제들은 다른 기술이 없고 다른 일은 하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성인은 애긍을 하러 다니는 것도 가치가 높은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동냥을 얻는 데 수고하는 형제들은 큰 보상을 받을 것이다.”

일에 관한「제2회칙」5장에서도 일할 특은을 받은 사람하고 일할 줄 모르는 사람. 이 두 종류의 구분이 나온다. 그러나 「제1회칙」과 달리 「제2회칙」은 일의 동기 중에서 사회적인 것보다 수덕적, 금욕적인 동기를 강조한다. “영혼의 원수인 한가함을 피하는” 것이 그 동기이다(이 구절은 성 베네딕도 회칙에서 인용된 것임). 또한 일이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기보다 “거룩한 기도와 신심의 정신”에 해가 되는 것처럼 간주된다. 이것은 수도회에 입회한 배운 형제들의 강요로 삽입된 것으로 간주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하튼 「제2회칙」에서도 일이 형제들의 생계를 위한 주요 수단이고, 이 일은 수도원 밖에서 하게 되는 것이다.

성녀 글라라도 노동은 절대적인 가난의 당연한 결과요, “가난한 자매들의” 공동체에서 일치와 평등의 요소로 본다. 글라라회의 공동체에서는 하찮은 일을 하도록 입회한 “노동 자매들”이 따로 없고 모든 자매들은 각자가 받은 일할 특은에 따라 같은 차원에서 공동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글라라는 「회칙」에서 매일 삼시경 후에 시작되는 유익한 일을 언급한다. 비록 일에 관한 성 프란치스코의 「제2회칙」의 택스트를 인용하지만 자매들의 노동을 “영혼의 원수인 한가함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생계를 위한 필수적인 수단으로 생각한다. 수녀원이 재산도 가지고 있지 않고 소작료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더욱 그렇다.

자매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살았다. 전통적인 여자 수녀원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이러한 수도생활 양식을 가까이 관찰한 비트리의 야고보(Iacobo de Vitry)는 1216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작은 자매들은 도시에서 멀지 않은 가난한 집에 살면서 공동생활을 한다. 이들은 아무것도 받지 않고 손으로 일하여 생계를 마련한다.” 글라라 자신이 일에 열중하는 데서 모범적이었다. “성녀는 한가함을 몰랐다. 병중에 있을 때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천을 짜는 일을 하였다.”

당대에는 여성들이 하는 일 분야가 한정되어 있었다. 여성들은 특히 봉쇄 안에서 실 잣는 일, 천 짜는 일 그리고 수를 놓은 일 외에는 다른 활동이 없었다. 글라라는 이외에도 먹는 채소를 장만하기 위해 자매들이 수녀원 옆 밭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그동안에 “일할 특은을 받지 못한”(노동 일) 형제들 - 학자, 사제, 귀족 출신 - 의 수가 증가했고 또한 노동 일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형제들이 많아졌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런 형제들을 형제회에 받아들임으로써 거기에 따른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형제회에서 학문적인 활동이 허용되었고 이러한 활동도 노동일이나 기술, 나병환자들을 돌보는 일, 애긍을 하러 다니는 일고 같은 수준으로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일“이라고 하면 모든 활동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인은 육체적인 일을 함으로써 형제들이 기도의 정신을 잃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래서 학문적인 활동만이 하느님께 가기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그 당시의 사상과 달리, 성인은 어떤 종류의 일이라도 - 학문이든, 노동이든, 기술이든 - 같은 수준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실제로 노동 일을 멸시하려는 형제들이 있었다는 점과 이 때문에 형제들간에 불평등이 생기는 것을 볼 때 성인은 매우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유언」에서 단호히 말한다:

“나는 손수 일하였고 또 일하기를 원하며 다른 모든 형제들도 올바른 일에 종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일할 줄 모르는 형제들은 일을 배워야 합니다.”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한가함”은 어떤 공동체가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에 어떤 형제들은 일할 책임을 느끼지 않고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벌써 이 악습이 성인의 시대에 발생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자주 이 위험에 대하여 경고하였고 그런 형제들을 심하게 다루었다. 예를 들어, 초창기 생활에서 어떤 형제가 일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으며 애긍하러 나가지도 않는 것을 보고서 다음과 같이 나무랐다. “파리 형제여 당신의 길을 가시오, 형제들이 일해 온 수고로 살고 있으니, 형제는 마치 벌지도 않고 일하지도 않으면서 일벌들의 수고에서 먹기만 하는 수벌과 같구나.”

예부터 수도자들이 받아온 비판 중의 하나는 “사회의 기생충”이라는 점이다. 아마 오늘날에 그런 비판은 별 근거가 없는 것 같다. 어떤 때 사회인들은 수도자들이 하는 일의 유익함과 목적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어쨌든 오늘날에 수도생활의 쇄신에 있어서 수도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오늘날의 신학은 디아코니아(diakonia), 즉 인류 공동체를 위한 봉사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프란치스칸 가족들은 이 점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프란치스칸들에게는 어떤 종류의 일이든지 다 적합한 것이고 프란치스칸 활동에서는 어떤 종류의 일이라도 제외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의 선택이나 분배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소질과 받은 카리스마 그리고 각자가 전공한 분야와 우리가 서약한 축성생활의 요구, 그 중에도 특히 우리들이 사회 안에서 가난한 자와 작은 자의 신분을 택했다는 점이다. 또한 각 형제들의 활동이 형제적 공동체의 정신에 입각해서 형제들의 일치를 촉진해야 한다. 형제들이 서로 다른 일을 했다고 해서 형제들 간에 불평등이 생기지 말아야 하며 또 서로 다른 활동을 했다고 해서 공동체 안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거나 차이가 생기지 말아야 한다. 형제들이 사목적 활동, 자선사업, 사회봉사. 기술적인 활동, 수공적인 활동 등 어떤 활동을 하든지 또한 이런 활동을 수도원 내에서나 밖에서 하든지 간에 형제들은 서로 존중해야 한다.

오늘과 같은 전문적 시대에서 형제들이 하는 일이 유익한 봉사의 방법이 되려면, 적합한 준비는 물론 계속적인 재교육 -학문적이든 기술적이든 - 이 필요하고 할 수 있는 한 자격증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작은 형제가 잊어서는 안될 점은 그가 수도원 내에서나 밖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가난하고 작은 자답게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에 봉사하는 사람으로서 매일 노동으로 생계를 마련하는 사람들과 더 가까이서 사는 더 직접적인 증거의 삶, 남의 기관에서나 남의 지배하에 일하며 사는 것이 수도회의 일을 봉사하는 것보다 작은 형제에게 더욱 이상적인 삶일 것이다. 그렇지만 각 형제는 자기 노동을 통해서 지역 공동체나 관구 공동체 형제들의 생계비에 이바지해야 함을 자각해야 한다. 노동자들과 같이 정식 노동계약을 해서 일의 정당한 보수를 받는다는 것은 프란치스칸 생활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보수를 받되 어떤 명목으로 받든지 그것을 공동체를 위해 바칠 것이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를 할 때 보수를 받지 않고도 기쁘게 일할 줄 알아야 한다. 「


“주님의 식탁”

모든 창조물의 주권자이신 하느님은 또한 “큰 자비심을 가지고 합당한 자나 부당한 자에게 골고루 애긍을 나누어 주시는 아버지로서 애긍 희사하시는 큰 은인이시다.” 프란치스코는 복음에서 이 진리를 배웠고 이것을 순수한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모든 재화의 소유권은 하느님께만 있고, 사람들이 지상 재화를 빌려서 쓰는 셈이다. 따라서 만약에 다른 사람이 극빈 중에 있으면 인간은 가지 재물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으며, 극빈자를 도와주지 않을 때 하느님의 재물을 훔치는 죄를 범한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는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만날 때 그에게 애긍 희사하였다. 성인은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만나서 그에게 망토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제여, 우리는 이 망토를 그 주인인 저 가난한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 망토는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만날 때까지만 우리가 빌린 것입니다. ··· 나는 도둑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필요한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둑이나 진배없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법적인 기준을 넘어서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지상 재물의 목적을 매우 깊은 종교적 차원에서 본 결과이다. 그러므로 애긍이란 하느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는 “결과”로서, 가난한 자의 권리이다.

“동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얻어주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할 유산이며 권리입니다.” “물건들이란 모두 범죄 후에 우리가 하느님께 희사 받은 것이다. 그리고 베푸시기만 하시는 위대하신 분께서는 자비로우신 사랑 때문에 받을 만한 사람이건 그렇지 못한 사람이건 간에 누구에게나 당신의 선물들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생활을 보장해 주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 재산, 돈, 권리, 특전 등 - 미친 사람이 짓이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의 무한하신 섭리와 사랑을 믿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탁발”(거지) 생활양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의 신비 안에서 그 완전한 뜻을 가지게 된다. “동냥”에 관한 「제1회칙」 9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모든 형제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가난을 따르도록 힘 쓸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동냥하러 다닐 것입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전능하시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주님뿐만 아니라 복되신 동정녀도 제자들도 가난하셨고 나그네 되셨으며 동냥으로 사셨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일을 해서 거기서 받은 보수로 생활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때 프란치스코는 애긍의 방법을 찾았는데, 애긍하는 생활을 택한 주요 동기는 극빈에 처해 있는 사람들과 같이 모욕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일의 보수를 받지 못할 때는 집집마다 동냥하면서 주님의 식탁으로 달려갑시다.” 프란치스코는 은인들이 스스로 바치는 애긍을 받는 것보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애긍을 청하는 방법을 더 좋아했다. 부끄러움을 당함으로써 그리스도와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까이 느꼈기 때문이다.

애긍을  청하는 일은 창피한 일이다. 프란치스코는 회개의 시작에 이러한 모욕을 맛보기를 원했다. 회개한 후에도 출신 도시에서 잘 아는 시민들의 집을 다니면서 애긍의 부끄러움을 견딤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충실성을 지켰다. 프란치스코는 첫 번 동료들에게도 같은 시련을 겪게 했다. 아씨시의 시민들은 ‘자기 재산을 포기한 사람들이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한다’고 그들을 나무랐고, 가족과 친척들은 그들의 꼴을 보면 창피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뻬루지아 전기」에 의하면, 성인의 첫 동료들이 애긍을 청함으로써 창피를 당하는 시련을 겪고 영신적으로 강하게 된 후에, 프란치스코는 그들을 위로했고 그 시련에서 면해 주었다고 증언한다. 그렇지만 성인은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거지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신자들이 좋은 마음으로 애긍해 주는 것을 받는 것과 수고스럽게 남들이 벌어온 재물을 그들에게 부담을 부면서 받는 다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처음에는 형제들에게 애긍을 청하는 것이 시련의 방법이 되었지만, 그들이 잘 알려지고 존경을 받게 될 때 오히려 애긍의 방법은 편하게 살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이 위험을 예지한 프란치스코 성인은 애긍으로만 사는 “탁발” 형제회를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일의 보수로 충분하지 않을 때만 비상시의 방법으로 애긍을 청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필요 이상으로 애긍을 청하는 것은 다른 가난한 사람들의 유산을 빼앗아가는 것이 된다. 또한 애긍으로 받은 것은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유산이기 때문에 그들과 기꺼이 나눌 줄 알아야 한다고 성인은 가르쳤다.


“하늘나라의 상속자와 왕이 되게 하는 가난의 탁월성”

“주님의 식탁”은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서 백 배를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의 이루어짐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약속의 둘째 부분, 즉 “후세에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은 가난이 천상적 유산을 보장해 주는 “약속이며 보증”이라고 한다. 프란치스코는 또한 이러한 말씀으로 천국에서 누릴 영광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약속대로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이 이미 이 지상에서 하느님의 나라에 속하게 하는 권리를 획득하고 있으며 왕적 지위를 지니고 있음을 믿었다. 그래서 성인이 말하기를 - “이것이 ···나의 형제 여러분을 하늘나라의 상속자와 왕이 되게 하는 지극히 높은 가난의 탁월성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 안에서 더욱 충만하게 모든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도무지 아무것도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 성인은 주님께서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재물을 “임시로 맡기셨지만”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유산”을 마련하셨다고 말하곤 하였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식탁”을 누리고 저승에서 “영원한 유산”을 누릴 수 있는 확신은 프란치스코에게 이 세상 걱정에서 해방과 마음의 자유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는 자기 형제들을 세상에 파견할 때마다 그들을 축복하고 시편의 말씀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네 근심 걱정을 주님께 맡겨 드려라. 당신이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첼라노는 리보또르또의 첫 공동체의 생활을 기술하면서 “지극히 거룩한 가난의 추종자들은 가진 것도 애착할 것도 없었기에 결과적으로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 그러므로 그들은 어디에서나 안전하였다”하고 증언한다.

가난을 없애려고 온갖 힘을 다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우리는 가난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해야 할 것인가? 1971년, 세계 곳곳에서 로마로 모인 재속 3회 형제들에게 교황 바오로 6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난, 가난이란 이미 복음에서 두 면을 보여주는 역설적인 말이다. 복음에서 ‘가난한 자들이 복되다’라고 불려지고 있는 한편, 같은 복음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가난 때문에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가난에서 해방시키라고 촉구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가난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가난에 대한 해석과 가난의 준수 때문에 - 프란치스칸 가족을 포함하여 -주장과 사람들을 분열시킨 역사적 논쟁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오늘의 세계도 가난과 부유 때문에 둘로 갈라져 있다. 오늘날의 가장 강한 이데올로기들과 사회적인 운동은 가난한 자, 노동자, 극빈자들의 편을 드는 한편 재산을 가진 자, 부유한 자, 자본주의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의 모든 발전과 현 사회의 모든 조직은 바로 부유함의 무한한 증가와 새로운 경제적 자원의 개척과 분배를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세계에서 복음적인 가난이 설 자리가 있는가?

잘 알다시피, 복음적인 가난의 의미는 우리의 인생관을 이 땅과 지상의 재물, 지상의 안락, 지상이 줄 수 있는 것에 두는 것이 아니다. 복음적인 가난의 의미는 우리의 인생관을 지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두면서 하느님을 찾고 소유하며 재물이라는 유혹에서 우리의 정신을 해방시키는 데 있다. 복음적 가난의 의미는 하느님이 정하신 그 목적에 따라서 재물을 사용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은 재물이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고 사람들에게 일할 자리를 마련해 주며, 사람들이 일함으로써 일의 경제적인 이익을 삶과 공동선과 봉사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한다.

다행히도 복음적 가난은 교회에서 다시 꽃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이며 자녀인 여러분은 가난을 명예롭게만 여길 것이 아니라, 가난을 실천함으로써 교회의 모범이 되고 기둥이 되어야 한다. 또한 여러분은 가난을 실천함으로써, 재물에 대한 지나친 근심 걱정과 재물을 차지하려는 사회적 투쟁과, 재물이 줄 수 있는 쾌락에 사로잡혀 있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난의 참된 뜻을 보여주어야 한다. 복음적 가난이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으뜸임을 재확인하는 것이요, 자유와 겸손의 표현이요 단순생활의 양식이요 기쁨의 원천인데, 프란치스칸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의 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