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28일 연중 제8주간 월요일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르코 . 10,17-27 )
“You are lacking in one thing.
Go, sell what you have, and give to the poor
and you will have treasure in heaven; then come, follow me.”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이라도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부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더 큰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바꾸어 이해해 볼 수도 있습니다. 곧, 어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갔다면, 이는 다른 보통 사람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훌륭하게 산 부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경주의 최 부잣집 이야기는 부자들의 좋은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최 부잣집에는 대대로 이어진 여섯 가지 가훈이 있었습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둘째, 재산을 모으되 만석 이상은 모으지 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마라. 다섯째,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우선 첫째 가훈은 최소한의 양반 신분을 유지하는 진사까지만 벼슬을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필요한 재산 이상은 사회에 환원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나그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노잣돈을 쥐어 보내라는 규율입니다. 넷째는 당시 흉년에 가난한 농부들은 쌀 한 말에 논 한 마지기를 넘길 정도였으므로 가난을 이용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다섯째는 집안 살림의 검소함을 강조합니다. 여섯째는 이웃의 굶주림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자는 삼 대를 지내기 어렵다고 하나 최 부잣집은 이 여섯 가지 가훈을 지키며 12대를 만석꾼으로 이어 왔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은 “하느님 나라와 부자”의 비유는, 가진 것이 얼마나 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실질적인 가난
-이철구 신부-
성당을 신축하는 동창신부와 대화를 하다가 농담 삼아 동창신부에게 매 주일
로또 복권을 사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당첨되면 성당 짓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신부가 로또 복권을 사서 당첨된다면
그건 성소가 없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권을 사고 안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때로 제물은 하느님께 가까이 나가는 데 큰 장애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부자 청년이 울상이 되어 슬퍼했던 것도
그가 가진 재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계명을 잘 지키고
주님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어 했던 그 청년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다름 아닌 재물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먼저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마음의 가난을 이야기하면서
실질적인 가난을 비켜가려 한다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양승국신부-
<슬픈 얼굴, 쓸쓸한 뒷모습>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두 가지 영상이 계속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슬픈 얼굴로 예수님 곁을 떠나가는 부자 청년. 그는 결국 자신이 걸치고 있는 부와 명예, 안정된 생활에 대한 미련을 결국 버리지 못하고 쓸쓸히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청년의 마음 안에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동경, 보다 경건하고 영적인 생활을 위한 의지로 가득 찼지만, 최종적으로 재물에 대한 집착을 떨치지 못하고 다시금 현실로 돌아갑니다.
그런 부자 청년의 모습에 이어 가난과 결혼했던 가난의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떠올랐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보다 적극적인 예수님 추종을 위해 집을 떠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수님의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가난’을 그대로 자신의 삶 안에 재현하기 위해 부와 명예, 가족을 떠납니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상당한 부를 소유하고 있었던 잘 나가던 가문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에 대한 기대도 컸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을 프란치스코가 물려받아 더욱 번창시켰으면 하는 바람도 컸습니다.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출가한 프란치스코에 대한 실망도 더욱 컸습니다. 집요한 부친의 집착을 떨쳐버리기 위해 프란치스코는 눈물을 머금고 극단의 방법까지 동원합니다.
프란치스코 영화를 본 분들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대성당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옷을 훌훌 벗습니다. 완전히 알몸이 될 때까지. 그리고 그 옷을 아버지에게 건넵니다. 하느님 앞에, 사람들 앞에 완전히 알몸으로 섭니다.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정녕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또 다른 예수님의 모습으로 교회를 나섭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쓰러져가는 중세 교회를 일으키기 위한 머나먼 투쟁’을 시작합니다.
그 순간은 프란치스코가 그간 자신이 걸치고 있었던 세상에 대한 미련과 부와 명예에 대한 집착,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해방의 순간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청년, 참으로 신심이 깊은 청년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만나 뵙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영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지로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을 대하는 그의 자세도 훌륭합니다. 무엇보다도 겸손합니다. 존경의 표시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예의도 아주 바릅니다. 예수님을 향해 사용하는 존칭도 극존칭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던지는 질문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참으로 놀랍습니다. 다른 청년들이 노느라고 바쁘고, 우선 눈앞에 닥친 현실 문제, 자기 극복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쁜데, 이 청년은 대단합니다. 다른 청년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신앙인으로 남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계명에만 충실한 보통 수준의 신앙생활에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보다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싶었습니다.
이런 특별한 청년이었기에 예수님께서도 그를 눈여겨보십니다.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그의 신앙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그가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더욱 영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더욱 완전한 사람으로 이끌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하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예수님의 제안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완벽한 이탈’ ‘절대적인 포기’를 요구하셨습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된 청년이었기에, 슬픈 얼굴로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부자청년의 모습은 어찌 보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부자청년의 얼굴은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들의 얼굴입니다. 부자청년의 쓸쓸한 뒷모습은 예수님 추종과 현실에 대한 안주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들의 뒷모습입니다. 부자 청년의 슬픔은 무미건조해보이고 고리타분해 보이는 영적생활과 휘황찬란해 보이는 세상의 쾌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 현실의 반영입니다.
예수님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종하기 위해 오늘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거짓 신앙, 헛된 우상숭배, 현실에 대한 지나친 집착입니다.
예수님을 ‘넘버원’으로 삼지 않는 신앙, 예수님을 입력번호 1로 설정하지 않는 신앙, 결국 재물을 예수님 보다 더 우위에 두는 치명적인 착각입니다.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아가는 삶
-이기정 신부-
오늘 복음에서는 영생과 세상 재물과의 관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일 우리의 것을 버리고 주님의 것을 선택하려는 신앙적 결단과 함께 보이는 유한한 세상 것에 대한 과도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영원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영생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키워가는 참된 신앙의 삶을 살기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고 주님을 따르기 위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 영생을 향하는 길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많은 부족함과 잘못 때문이 아니라 한 가지 부족함 때문입니다.
마지막 남은 하나의 걸림돌마저 없애고 제거할 결심이 있을 때 천국은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주님과 영생보다도 더 낫게 여기는 마음이 없어야만 합니다.
사라져 없어질 세상의 부와 명예와 좋은 자리와 같은 유한한 세상 것들 때문에 사랑과 신의와 진리와 같은 하늘나라의 가치들을 포기하고 버리며 세속적 가치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는 영생이 체험되고 있는 현실이 아니라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미래로만 존재하고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영생은 현재 안에서 이미 누리고 체험해야 할 삶의 현실입니다.
영생은 마지막 남은 나의 가장 소중한 것까지도 주님을 위해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신앙적 용기와 결단력을 지닌 사람만이 누리고 가질 수 있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영생을 얻고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고 하시자 부자 청년은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예수님을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오늘 복음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과연 우리를 영생의 문턱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며 나에게 마지막 남은 소중한 그 한가지마저 주님 때문에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결심을 새롭게 합시다.
참으로 우리 모두 매일 보이는 세상의 좋은 것들을 많이 가지고 누려서 행복한 세상의 부자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것을 소유함으로써 행복한 하늘나라의 부자로서 살아가려는 삶의 노력과 함께 오늘도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아가는 신앙 안에서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둘 중 하나
+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강영구신부-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생명은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입니다.(마태16,26)
우리의 고뇌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나에게 여러 개의 생명이 허락되었다면 이런 저런 시도를 해 볼 수 있고,
이 길 저 길도 가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연습은 없습니다.
바른 결단을 내리고 바른 길을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때로는 눈을 빼어 던져야 할 때도,
손과 발을 찍어 던져야 할 때도 있습니다.(마태5,29-30)
눈에 집착하다가 생명을 잃거나 병든 손발에 집착하다가 생명을 잃는다면 어리석음입니다.
어떤 길을 걷든 어떤 선택을 하든 그 끝에는 생명 아니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라는 그릇 하나만 허락하셨습니다.
그 그릇에는 한 가지만 담아야 합니다.
보물과 쓰레기를 뒤섞어 담을 수 없습니다.
보물을 담기 위해서는 쓰레기를 버려야 합니다.
쓰레기에 집착하면 보물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을 담든 그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청년은 영원한 생명과 재물 두 가지를 다 갖기를 원하지만 그에게 하나의 생명과 하나의 그릇만 허락되어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어떤 것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一明)
구원과 행복의 길
-조욱현 신부-
오늘 복음에서 보면 한 젊은이가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 야 하는지 여쭈어보고 있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17절).
그가 돈 많은 젊은 귀족으로 그러한 행동을 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예수께 서는 부자청년의 말을 일축하신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
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18절)하시며, 유일한 선(善)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하 신다.
그리고는 10가지 계명을 잘 지키라고 하신다(19절). 그러자 지체치 않고 모든 것을 다 지켰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그 청년을 기특하게 보시고 계시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상처 를 준 일이 없습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선을 베풀었는가 ?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당신은 당신 소유의 모든 것, 당신 재물과 당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적극적인 선을 베풀었는가 ?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당신의 사명은 얼마나 이룩했는가 ? 라는 말씀이었다.
체면을 유지할 정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을 따른다고 하 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체면을 지키는 데서 벗어나 남에게 선을 행하는데 너의 능격과 네 소 유의 재산을
다 써가며 힘써라 !
그리하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영원에 이르기까지 참 행복을 발견 할 것이다 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그 청년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것을 현세적인 대가없 이 쓸 생각을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그는 아무 것도 도둑질 한 적이 없고, 누구를 속인 적도 없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또 희생적으로 선행과 관용을 베풀지도 않았다.
그 청년은 나는 영원을 구합니다.
그러나 내 재산을 모두 버릴 정도로는 구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슬픈 얼굴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아직은 하느님보다는 재산이 그에게는 더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그 재산은 하느님께로 가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이 극적인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은 재산 때문에 비롯되 는 치명적 위험이다.
그 청년은 용기 있게 결심하고 시작하였지만 예수님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 왜냐하면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22절).
그러면 우 리의 태도는 어떤가 ?
부자 청년처럼 영원을 구하면서도 겨우 십계명을 지키는 정도의 신앙인의 자세 는 아닌지 ?
나는 얼마나 선행을 하고 있으며 나의 능력과 재산을 가지고 어떻게 사 용하고 있는지
그래서 유일한 선(善)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다른 이차적 인 선(善)의 유혹이나 매력을
극복하면서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나를 돌아보아야겠 다.
그리고는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채워 나가는 삶을 살도록 하여야 할 것이 다.
유일한 선(善)이신 하느님을 추구하면서 ! ♡
부족한 것이 하나 (마르 10,17-27)
-유 광수신부-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고 하셨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부족한 것 하나는 무엇인가? 그 하나는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일 수도 있다. 그 하나가 무엇인가를 오늘 묵상하도록 하자. 그것은 하나이지만 어떻게 보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전부일 수도 있다. 또 그 하나를 얻으면 전부를 얻는 것일 수도 있다. 그 하나는 마치 집에 들어가는 열쇠와도 같은 것이다. 그 하나는 전쟁터에 나간 군인에게 총알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비행기를 타려는 여행자에게 비행기 표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동생 마리아보고 "자기 일을 도우라고 일러 주십시오." 라고 말한 마르타에게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가 10,41-42)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많은 일을 하느냐고 분주한 마르타를 칭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왜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느냐?"라고 꾸짖으시고 마리아를 칭찬하시면서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우리도 이처럼 필요한 것 한 가지가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아니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소홀히 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하다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붙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럼 예수님이 이 부자 청년에게 지적한 부족한 것 한 가지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이 청년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하고 대답한 이후에 하신 말씀이시다. 그러니까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지켜 온 것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라는 계명들을 충실하게 지켜왔다. 그런 많은 것들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사랑스레 바라보며" 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하신 말씀이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들어보면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해도 예수님이 지적하신 하나를 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주님을 따른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 한 가지를 행하는 것이 다른 모든 것들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그럼 그 하나가 무엇인가?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것이다." 즉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부자 청년이 어려서부터 지켜온 것들은 사랑의 행위가 아니었다. 그 계명들을 지킨 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들이었지 다른 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행동들이 아니었다. 이 청년이 어려서부터 지켜왔다고 말한 계명들을 이 청년이 지킨다는 것은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니다. ".. 해서는 안 된다."라는 계명들은 " ... 하라"는 계명이 아니고 하지 말라는 계명이다. 따라서 그런 짓을 행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 그런 계명들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할 필요가 없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굳이 그 계명들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부자 청년이 굳이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 횡령 등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것들은 주로 돈이 없어 먹고 살기가 어려운 가난한 사람이 하는 행동들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 그런 계명들을 지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부자 청년은 그런 것들을 지키는 것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재산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키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이 청년은 무척 이기적인 사람이다. 자기를 위해서는 많은 재산을 모으고 갖고 있으면서도 남을 위해서는 하나도 베풀지 않는 인색한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이다. 이 부자 청년이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은 것도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재물도 명예도 얻었으니 내친김에 영원한 생명까지 얻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고 명예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무엇이든지 소유함으로써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은 다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영원한 생명도 소유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자기 것을 나누어 줌으로써 즉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내놓음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보지 못한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무엇이든지 소유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 자기 것을 내놓는 것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인색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는데 그 이유는 많은 재물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재물을 내놓음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하느님나라는 재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많은 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함으로써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음으로써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자라는 것은 재물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다. 재물을 모아서 부자가 된 것은 전부 자기 자신의 안일과 편안함을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해서 모으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 재산을 모았다면 아무리 많은 재산을 많이 가진 부자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것이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 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코전 13, 1-3)라는 바오로의 말씀이 바로 한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주님은 오늘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신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즉 재물, 시간, 재능, 명예, 권력, 건강 등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것들이다. 또 주님을 따르는 목적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주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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