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3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Margaret K 2023. 1. 7. 06:19

 

2023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요한 2,1-11)

 

His mother said to the servers,

“Do whatever he tells you.”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예수님이 혼인 잔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다는 사실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혼인을 축복하신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위기를 기쁨으로 바꾸실 수 있는 전능한 분이십니다. 이 기적엔 성모 마리아께서도 참여하십니다. 무엇보다 신앙의 모습이 돋보입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성모 마리아께서는 자신 스스로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시며 하느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따르셨을 뿐 아니라,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십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우리 신앙의 모범이실 뿐 아니라, 신앙을 가르치는 스승이시기도 합니다.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긍정적인 생각만 있고, 부정적인 생각이 없으면 과연 행복할까요? 고통은 없고 기쁨만 존재하는 것이 과연 이상적인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인간의 DNA 안에는 부정적 감정이 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사시대에 가장 약한 존재인 인간이 멸종되지 않고 오히려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자그마한 소리에도 얼른 피하고, 멀리 사나운 짐승이 보이면 얼른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나와 친구가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사나운 맹수에게 다가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도 실수를 줄이고 자신의 안정을 위한 부정적 생각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100% 부정적 생각만 있으면 당연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의 연구 조사 결과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의 비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즉, 3:1. 정확히 말하면 긍정적인 정서 2.9: 부정적인 정서 1의 비율이었습니다. 이런 비율을 갖춘 사람이 직업 성취도, 대인관계 원만도, 상사의 긍정 평가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부정적인 정서가 많아지면 신체에서부터 불면증, 두통 등이 나타납니다. 긍정적인 정서를 높여야 할 때인 것입니다. 부정적인 정서가 하나 생기면, 얼른 3개의 긍정적인 정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를 묵상하면, 성모님께서 너무 막무가내가 아닌가 싶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관여를 은근하게 청합니다. 그러나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라면서 거절하시지요. 하지만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 단순히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긍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예수님께 청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정적인 정서가 아닌, 긍정적인 정서가 예수님의 첫 기적을 가져오게 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3:1이라는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의 비율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해서 부정적인 정서만 보였던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안 되는 이유만을 찾게 되면 주님의 섭리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행복의 길에 들어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가 말씀하신 이 믿음을 우리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1요한 5,14)

당신에게 평화를 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랄프 왈도 에머슨).

​예수의 첫 표징, 혼인 잔치의 기적

-이기우신부-

https://www.youtube.com/watch?v=12nmWOmGb5s

 

-​조재형신부-

우드사이드 성당의 신부님이 성탄판공성사를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신부님들을 위해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준비했습니다. 9명의 신부님들을 초대했는데 6명만 왔습니다. 한분은 몸이 좋지 않아서 못 왔고, 한분은 장례가 생겨서 못 왔고, 한분은 온다고 했는데 그만 시간을 착각해서 못 왔습니다. 덕분에 6명이 9명이 먹을 음식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는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과 같다.’는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하늘나라의 잔치에 초대받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어떤 사람은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못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 때문에 못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잔치에 가려고 못 왔습니다. 혼인잔치의 주인은 길가에 나가서 아무나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얼떨결에 하늘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번 모임은 단순히 식사초대였지만 저 역시도 하느님께서 저를 초대하는 자리를 외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가난한 이들의 모습으로, 가장 굶주린 이들의 모습으로, 가장 헐벗은 이들의 모습으로 주님께서는 저를 초대하셨는데 외면한 적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비유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밭에 가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큰 아들은 안 간다고 했지만 마음을 바꾸어서 밭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간다고 했지만 마음이 바뀌어서 밭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아들은 결국 밭에 나가서 일을 했던 큰 아들이었습니다. 부르클린 한인성당은 주님의 성탄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서 지난 1년 동안 가톨릭평화신문에 연재되었던 파우스타 수녀님의 교리여행 문제를 공부하였습니다. 저도 매주 문제를 풀면서 즐거운 교리여행을 했습니다. 350문제를 나누어 주었고, 12월 11일에 ‘교리경시대회’를 하였습니다. 말로는 공부를 못했다고 했는데 교리경시대회에 참가했던 분들은 모두 문제를 잘 풀었습니다. 100점을 맞은 분이 7명이나 되었습니다. 교리경시대회에 참가한 모든 분들은 주님의 성탄을 잘 준비했다고 생각합니다. 동방박사들은 황금, 유향, 몰약을 준비했지만 부르클린 교우들은 교리시험 문제지를 성탄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신앙은 그리고 종교는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꿈입니다. 그 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꿈은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함에서 시작됩니다. 그 꿈은 세상의 모든 권한을 가지신 분께서 기꺼이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는 겸손함에서 시작됩니다. '말'을 늘려서 발음하면 '마알'이 됩니다. 이를 풀이하면 '마음의 알갱이'란 뜻이 됩니다. 말은 마음의 알갱이에서 나옵니다. 말이란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을 곱게 쓰는 사람은 마음을 곱게 쓰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말을 험하게 쓰는 사람은 마음을 험하게 쓰는 사람입니다. 말에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들어 있습니다. 새해에는 말씀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말씀으로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수능을 마친 학생의 어머니가 추천서를 써달라고 하였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모임이 있었지만 한 학생의 앞날이 결정될 수 있기에 학생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학생이 추천서를 가지고 왔고, 기쁜 마음으로 추천서를 작성해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학생의 어머니가 전화를 하였습니다. 아이가 전공과목을 바꾸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추천서를 새로 작성해 줄 수 없는지 부탁을 하였습니다. 역시 학생의 앞날에 중요한 일이기에 오시라고 해서 추천서를 다시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힘은 역시 강한 것 같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도 가끔 제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대녀의 친구의 딸이 혼인을 하는데 혼배 주례를 해 줄 수 없느냐는 전화를 하셨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의 부탁이라면 거절 했을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차마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용감(?)하신지, 저를 너무나 믿는 것인지 가끔 그런 부탁을 하시곤 합니다. 같은 레지오 단원이 다치셔서 의정부 성모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시면서 병자성사를 부탁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역시 어머니의 부탁인지라 거절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어린 시절 모든 것들을 해결해 주신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제게 누군가를 도와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하였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하느님 나라, 커다란 내 포도주잔에 양질의 포도주가 철철 흘러넘치는 곳!

-양승국신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여운 이웃 어린이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다들 바쁜 관계로 홀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피정 센터 넓은 주방이 엄청 춥더군요. 손을 호호 불어가며 소시지를 썰고, 채소를 다듬다 보니, 무척이나 처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서품 30년 차가 다 되어가는데, 지금 이 나이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살짝 슬퍼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생각하면 안 되지?’ 하면서 즉시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소시지 하나 썰면서 아이들 한명 한명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이지만, 하느님께서 아버지 역할을, 성모님께서 어머니 역할을 해주십사고, 기도하면서 소시지를 썰었습니다. 그랬더니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기쁘고 보람된 사도직으로 바뀌었습니다.

 

돈보스코가 그랬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아이들 의식주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늘 바빴습니다. 총 책임자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재정적인 부분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틈만 나면 부자들, 귀부인들 식사 초대에 응해서, 그들에게 좋은 이야기도 해드리면서 후원을 끌어내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즉시 아이들 사이로 들어가셨습니다. 선생님들 후배 살레시안들 격려하고 고무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집필도 해야 했고, 출판사도 운영했습니다.

 

자연스레 성당에 오래 앉아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돈보스코는 자신만의 기도 방법을 찾았습니다. 일을 기도화한 것입니다. 일을 기도화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기도했습니다. 그 아이들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만나니 그 만남이 기도가 된 것입니다.

 

돈보스코를 만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이구동성으로 증언했습니다. “돈보스코를 만나는 시간은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 같았습니다. 그 시간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분을 바라보는 것, 그 자체가 기도였습니다.”

 

제가 준비한 보잘 것 없는 요리들을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어주는 아이들, 설거지며 마무리 주방 청소까지 깔끔히 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제 마음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모릅니다.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들이 알아서 척척 제 몫을 해내는 모습에 제 마음은 즉시 풍성한 결실로 충만한 풍년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도래할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우세한 특징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풍성함이 아닐까요? 궁색하거나 결핍된 곳이 아니라 커다란 내 포도주잔에 양질의 포도주가 철철 흘러넘치는 곳, 더 이상 굶주림이나 갈증이 존재하지 않는 곳, 아쉬움이나 불평불만이 완전히 사라진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치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처럼 말입니다.

 

포주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어쩔 수 없는 궁핍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니 즉시 상황은 반전됩니다. 여섯 개의 큰 돌 항아리에 가득 채워졌던 물이 순식간에 격조 높은 포도주로 변화됩니다.

 

그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600리터의 포도주입니다. 포도주가 넘치도록 풍성한 것은 언젠가 맞이하게 될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움과 행복,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상징하는 예표입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반영억신부-

갈릴래아의 카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계셨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혼인잔치를 아주 장엄하게 치렀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주일간 계속됩니다. 그런데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 중에 필수품인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큰 결례이고 명예가 훼손되는 망신입니다. 요즘 같으면 시장에서 금방 사서 대체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미리 예측하여 술을 담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술이 떨어졌음을 눈치채고 아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알리셨습니다. 여기서 “포도주가 떨어졌구나” 하지 않고 “포도주가 없구나!” 한 것은 성모님의 시선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난감한 처지에 빠진 신혼부부에게 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려 깊고 섬세한 어머니이십니다. 문제가 발생 되었을 때 사랑이 있으면 해결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누군가를 원망하고 핑계를 찾게 되는 법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문제만 더 커지고 시끄러워집니다.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모님처럼 접근해야 합니다. 사실 성모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처지도 알고 계시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처지를 어머님께 있는 그대로 알려주십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하시며 아들 예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보이며 주님의 뜻에 순명하도록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청하지 않고 다만 처지를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떼를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주님께서 알아서 할 일입니다. 주도권은 언제나 예수님께 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시고 다시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시며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지 않으셨다고 하면서도 어머니의 말씀을 흘려보내지 않으시고 잔칫집의 곤란함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급한 불을 꺼주셨습니다. 물은 생명이요. 정화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충만한 삶과 번영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정화를 통해서 충만한 생명에로 갑니다. 어려운 상황의 처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어머니의 배려, 당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시며 기다리시는 어머니의 사려 깊은 모습에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바가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머니처럼 믿고 희망하면 목적을 이룹니다.

 

간절한 기도는 기적을 낳습니다. 사랑이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나의 모든 것, 모든 움직임이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모든 사물, 모든 행위 속에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관심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포도주가 떨어진 것에 마음을 둘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기에 아들에게 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어떤 기도든지 생명력이 있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가 온 삶이 되어야 하고, 삶이 또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함부로 쓰지 않으십니다. 당신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시든지 당신 혼자서 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협력을 바라시며 우리를 도구 삼아 이루십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시는 기적을 이루실 때 물독에 물을 채우고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그것을 거부하면 우리를 위한 은총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은총의 협력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손과 발입니다.”

 

데레사 성녀의 기도를 상기합니다.

“그리스도는 손이 없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그분이 하실 일을 한다.

그리스도는 발이 없다.

하지만 우리 발로 사람들을 그분이 계신 곳으로 인도한다.

그리스도는 목소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 목소리로

그분이 죽으신 까닭을 말한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