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Margaret K 2022. 11. 1. 06:17

2022 11 1 모든 성인 대축일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오 5,1-12ㄴ)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요한은, 큰 환난을 겪어 내고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한 큰 무리를 본다(제1독서).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오르시어 제자들에게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을 가르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자동차경주 선수가 승부를 거는 구간은 직선 구간일까요? 아니면 곡선 구간일까요? 사실 차들의 성능은 거의 비슷해서 직선 구간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아 추월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앞차를 추월할 수 있는 구간은 곡선 구간 뿐입니다. 이 구간에서만 자동차경주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 삶도 직선과 곡선 구간이 있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직선 구간만 계속 있으면 좋겠지만 곡선 구간도 계속해서 우리 앞길에 놓여있습니다. 자기 개인의 문제, 가족 문제, 직장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 문제 등등 너무 많은 곡선 구간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입니다. 그런데 자동차경주처럼 이때가 나의 실력이 진정으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자동차경주에서 승리를 위해 곡선 구간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곡선 구간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속도를 내야 앞차를 앞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고통과 시련을 가져다주는 많은 문제를 담은 곡선 구간과 같은 순간에 속도를 내서 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 자리에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까?

직선 구간에서는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차이는 곡선 구간에서 결정됩니다. 고통과 시련 등의 문제는 내가 다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가치를 알리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에 대해 말해줍니다. 누구나 자기 나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많은 돈을 갖게 되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아직 세상의 재화에 대해 잘 모르는 어린이가 엄청난 유산을 갑작스럽게 물려받았습니다. 과연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어린이는 돈보다, 자기를 보호해 주는 부모와 따뜻한 가정, 그리고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와 친구가 행복의 조건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드디어 능력을 인정받아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이제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때 높은 지위는 행복의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건강해지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우리는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입니다. 성인은 이 세상에서의 상이 아닌, 하늘에서 받을 상만 바라보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랑, 자아에 국한된 세계를 벗어나는 것(허희).

 

 

 성인이 되는 길: 그분을 입고 그분을 보라

-전삼용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youtu.be/MFRCrFY2Z-g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에서 광해는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광대 하선을 왕으로 앉힙니다. 광해는 양귀비에 중독되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천민 하선은 오랜 시간 왕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하다 보니 자신이 정말 왕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점점 이전 왕과 구별되지 않는 모습이 되어갑니다. 마지막에 그가 가짜인 줄 알고 반역을 일으킨 무리는 그가 진짜 광해임을 알고는 망하게 됩니다. 이렇듯 점점 자신이 입은 옷에 충실해지다 보니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성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제1 독서에서는 하느님 나라의 성인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묵시 7,14)

  

    어린양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피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 겉옷을 빨았다는 말은 그분의 가죽을 입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야곱은 에사우의 털옷을 입고 아버지에게 자신이 에사우라고 우겼습니다. 그래서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하선이 왕의 옷을 입으려면 왕은 죽어야 합니다. 왕이 살아있으면 왕 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당신이 되도록 자리를 비워주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피 흘림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죽음으로 우리에게 살과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마치 왕의 옷을 입은 것처럼 그리스도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제 깨끗해지기 위해 내가 그리스도라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그리스도처럼 되어갑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오늘 제2 독서에서는 그분을 입는 것을 넘어서서 그분을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요한 3,2)

  

    만약 왕의 옷을 입고 못 된 왕의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요? 폭군이 될 것입니다. 왕의 옷을 입었다면 자신에게 옷을 벗어준 그 대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처럼 됩니다. 한 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말과 행동과 눈빛까지도 그분을 닮아가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분을 향한 길을 걷는 것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더 웨이’는 안과 의사이고 일만 아는 톰이라는 미국인이 아들이 걸으려다 끝내 걷지 못한 산티아고 길을 걷는 내용입니다. 아들 다니엘은 달려오던 길을 잠시 내려놓고 산티아고 길을 걷겠다고 나섭니다. 그를 공항에 태워주는 아버지 톰은 아들이 하는 일이 시간 낭비요, 남는 것이 없는 삶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아들은 삶의 의미가 진정 무엇인가 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골프를 치고 있던 톰에게 전화가 한 통 옵니다. 생장에서 피레네산맥을 넘다가 아들이 실족사했다는 소식입니다. 아내를 잃었던 아버지는 또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바쁜 일정을 접어놓고 프랑스 생장으로 날아갑니다. 그곳에는 아들이 그 길을 걸으려고 준비한 배낭과 옷, 신발, 그리고 생장에서 한 개의 스탬프만 찍힌 종이와 지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왜 그 길을 걸으려고 했는지 궁금했고 아들 대신 그 길을 걸어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동안 자신이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았던 모든 것들은 자신이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섞일 줄 알게 됩니다. 

    처음 만난 사람은 밤에도 남 잠 못 자게 괴롭히며 부스럭거리며 무엇을 먹는 네덜란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목적은 살을 빼는 것입니다. 또 담배를 입에 물고 자신보다 까칠한 한 여자를 만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낙태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동료가 되는 사람은 아일랜드 사람으로서 하나도 유명하지 않은 작가입니다. 작품의 소재를 찾기 위해 이 길을 떠난 것입니다. 

    처음엔 좀 이상하게 보이던 이 사람들과 조금씩 친해지게 됩니다. 그 길에선 도움을 받을 때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동무도 되어주고 싸움도 말려주고 잃어버린 가방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톰은 인생을 걷는 길이 무언가 성취를 이루는 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섞이는 능력을 배우는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들의 모습을 비로소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처럼 된 것입니다. 나중에 증명서를 받을 때는 아들의 이름으로 받습니다. 결국 아들이 걸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옷만 입어서는 안 됩니다. 아들을 보아야 합니다. 매 순간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들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진정 아들과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선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하시며 아버지와 당신을 대등하게 여기셨습니다(요한 5,18). 이것이 은총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이 되는 과정은 이 두 개가 하나가 되는 과정입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입고,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입는 것은 은총을 받는 과정이고 그리스도를 보는 과정은 진리를 습득하는 과정입니다. 이 두 과정을 통해서만 오늘 복음에서 “행복하여라!”라는 축복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성인이 되는 길, 그것은 그리스도를 입고 그리스도라 믿으며 그리스도를 매 순간 보고 따라서 하려는 길입니다. 

 

 

 성덕과 의덕으로 주를 섬기게 하심이로다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wwxpMMz1FqI

 

 

 -조재형신부-

 

우리 속담에 뚝배기 보다 장맛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뚝배기는 음식을 담는 그릇입니다보온효과가 있어서 음식을 담으면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따뜻함을 유지하는 우리의 독특한 그릇입니다하지만 아무리 뚝배기가 좋아도 음식의 맛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음식의 맛을 내는 것은 우리의 전통 발효 음식인 간장고추장된장의 맛입니다우리의 조상들은 장독대를 만들어서 에 손을 타지 않도록 했습니다장독대는 어머니들이 가족을 위해서특히 먼 길에 나가 있는 가족을 위해서군대 간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는 지성소이기도 했습니다유명한 냉면 집을 보면 냉면의 맛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냉면을 담아내는 육수입니다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육수는 냉면의 맛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그래서 유명한 냉면 집은 고유한 육수를 만들고 있습니다저도 가끔 국을 끓일 때가 있습니다그럴 때 주방 자매님이 정성껏 만들어 놓은 육수를 사용합니다그러면 요리에 서툰 제가 만든 국도 제법 먹을 만 합니다.

 

대한민국은 어느덧 선진국의 일원이 되었습니다지금 우리의 문화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정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저는 미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삶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대중교통의료시설음식문화예술문학건축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오랜 만에 한국에 다녀온 분들도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지난 3년간 코로나의 시대를 지내면서도 한국의 의료체계와 시민의식은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2022년 대한민국이라는 이 활짝 피기 까지는 발효의 과정을 거쳐서 이 되듯이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온 몸으로 겪어냈던 분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습니다시골에서 올라와 가족들을 위해서 버스차장을 하였던 누나들이 있습니다가발공장에서 일하던 누나들이 있습니다공장에서 기름범벅이 되면서 일하던 형들이 있습니다베트남에 가서 일하고 싸웠던 군인도 있습니다독일까지 가서 일하던 간호사와 광부들이 있습니다멀리 중동에서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일하던 근로자들이 있습니다눈에 보이는 정치인경제인들이 뚝배기라면 눈에 보이지 않던 그분들이 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80년대부터 10년에 100만 명씩 신자가 들어나는 성장을 하였습니다성직자와 수도자의 수도 증가하였습니다신학교도 7개가 되었습니다예비자 교리에 등록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성지도 개발하였고많은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본당 신설도 늘어났습니다저는 82년에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91년에 사제가 되었습니다한국교회의 성장을 저의 눈으로 보았고사목의 현장에서 체험하였습니다지금 우리의 모습이 뚝배기라면우리의 모습이 아름다운 꽃이라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그 뚝배기를 채웠던 장과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어두운 땅에서 양분을 찾는 뿌리와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우리는 103위의 성인과 124위의 복자를 모시고 있는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우리는 만 명 이상의 순교자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켜온 자랑스러운 교회입니다이제는 우리가 뚝배기가 아닌 장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을 기억하는 날입니다교회의 역사에 드러나는 성인들이 있습니다우리는 그분들의 숭고한 삶과 희생 그리고 순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 했던 아브라함이 있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던 지도자 모세가 있습니다예수님으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았던 베드로 사도가 있습니다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고초대교회의 신학적인 기틀을 마련했던 바오로 사도가 있습니다그러나 교회는 이분들만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삶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이웃을 사랑한 분들이 있어서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본당도 그렇습니다눈에 보이는 건물이 있습니다성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있습니다신앙의 향기를 전해주는 수도자가 있습니다본당에는 지체를 이루는 봉사단체가 있습니다그러나 본당은 그런 건물과 조직봉사자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아침 일찍 성당에 오셔서 기도하는 분들이 있기에주보를 나누어 주면서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있기에나눔과 희생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분들이 있기에 본당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들이 나의 몸을 지탱하는 것처럼드러나지 않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있기에 교회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내 몸의 세포들이 늘 새롭게 태어나듯이우리의 생각도 새로워져야 합니다낡은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두려움좌절원망미움욕심을 버려야 합니다그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내 생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그리고 우리들 또한 뚝배기보다는 구수한 맛을 내는 장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양승국신부- 

 

오늘 모든 성인의 대축일을 맞아,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 땅 위에서나, 하느님 나라에서나 참 행복을 얻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인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참된 행복에 이르는 길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역설적(逆說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하지요. 재산의 유무야말로 행복의 척도다, 슬픔이 없는 삶, 피눈물 흘리지 않는 삶, 고통이 없는 삶, 굴곡이 없는 삶,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이 최고라고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변에 둘러서 있던 바리사이들, 사두가이들, 율법학자들은 속으로 비웃었을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눈짓을 하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몸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여러 가지 이유로 피눈물 흘리고 애통해하던 사람들, 힘겹게 현실을 견뎌가던 사람들, 그래서 결국 겸손해진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습니다. 현실적인 가난, 고통, 상처, 눈물이 무조건 좋은 것, 귀한 것,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성서는 모든 극단을 피합니다.

  

가난이, 고통이 소중하다고 가르치시는 이유는 가난이나 고통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대체로 겸손해지고, 하느님 두려워할 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자라고 해서 모두 나중에 불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이면서도 덕스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겸손하게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자신이 가진 바를 아낌없이 나누고 섬기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겸손하고, 다 하느님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질투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갖은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결국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박해를 받는 사람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은 사람,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고통이나 박해를 저주하지 않으며, 끝까지 인내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상급 중에 가장 큰 상급인 ‘하늘나라’가 선물로 주어질 것입니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을 맞아 저는 확신합니다. 성인이란 우리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별세계에서 살다간 유별난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우리보다 한 3분 정도 더 인내한 사람, 우리보다 조금 더 친절했던 사람, 우리보다 조금 더 사랑했던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우리보다 조금 더 따뜻함을 지녔던 사람들, 우리보다 조금 더 인간미를 풍겼던 사람들, 우리보다 조금 더 영적 생활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성인들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머무는 빛인 사람들, 이제는 어둠의 세력과 결연히 단절하고 떳떳하고 당당한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확실한 성인 후보자들입니다.

  

어렵고도 어려운 길이 성화의 길이지만, 어떻게 보면 조금도 어렵지 않은 길이 성화의 길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함을 통해서, 좀 더 기쁘게 살아감을 통해서, 조금만 더 기도함을 통해서, 조금만 더 양보하고 물러섬을 통해서 우리 역시 충분히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

 -이영근신부-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잘 익어가는 11월의 가을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주님의 축복과 자비가 잘 익어 성덕의 열매가 맺혔으면 좋겠습니다.

 

정녕 가을은 하나의 변화의 극점입니다.

자신을 찬란하게 꾸며오던 일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비우는 일에로의 건너감입니다.

 

그것은 붙들고 있던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바람 부는 대로 나뒹구는 낙엽처럼, 매여 있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영의 이끄심에 끌려 다니는 일입니다.

임을 찾아 바삐 달리던 일에서, 찾아 만난 임과의 속삭임에로의 건너가는 일입니다.

 

이제는 뒹구는 낙엽처럼, 강해지기보다는 약해지기를,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무력해지기를, 현명하기보다는 어리석어지기를 배워야 할 때입니다.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 생명의 길이요, 옳고도 지는 것이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비워지고서야 타인의 존귀함이 보이고, 허물을 뒤집어쓰고서야 자신이 비워지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해결 받기를 즐겨해야 할 때입니다.

자신이 해결사가 아니라 해결 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다 주님을 주님 되게 해 드려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주님 안의 자신과 홀로 고독할 줄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는 공동체에 힘입어 살아왔다면, 이제는 공동체에 거름으로 자신을 내어주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참된 행복'입니다.

 

그것은 ‘가난을 사는 일’입니다.

이미 그분을 차지한 까닭입니다.

그러면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할 것입니다.

 

그것은 ‘슬퍼할 줄을 아는 일’입니다.

자신과 세상의 죄를 슬퍼하되, 자비 안에서 위로를 받고 기쁠 것입니다.

이미 깨어, 항상 임을 바라보며 기도할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온유해지는 일’입니다.

그것은 진정 있어야 할 하느님 품에 안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감미로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일’입니다.

곧 그분 외에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 않는 일입니다.

주님을 극단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 외에는 결코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비를 베푸는 일’입니다.

이미 주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그분의 손길에 매만져진 까닭입니다.

 

그것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일’입니다.

그분의 영에 끌려 다스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고 모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입니다.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진정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클 것입니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에 이토록 우리는 복된 삶에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 제4장 62절의 성구를 새겨봅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성인으로 불리기를 바라지 말고, 참으로 성인으로 불리어지도록 먼저 성인이 되십시오.”

 

<오늘의 말 · 샘 기도>

 

“행복하여라,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1-12)

 

주님!

제가 가난을 살게 하소서.

비록 ‘쓸모없는 종’이지만 당신 앞에서는 부유하게 하소서.

슬퍼할 줄을 알게 하소서.

측은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이 제 가슴에 부어지게 하소서.

온유하게 하소서.

겸손하고 양순하신 ‘당신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게 하소서.

당신 외에는 결코 아무 것에도 목마르지 않게 하소서.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게 하소서.

아멘.

 

 

「행복하십시오!」

 -반영억신부-

 

교회가 어떤 사람을 ‘성인’으로 선포하는 것은 ‘성인들의 생애에서 드러나는 은총의 위대한 업적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하느님을 흠숭하고, 성인들의 거룩한 생애나 업적을 일부라도 본을 받도록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미 하느님과 일치하여 영생에 참여하고 있는 성인들이 아직 현세에서 구원의 길을 순례하는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전구하여 주기를 청원하기 위한 것입니다’(정하권). 다시 말하면 현세를 사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인들의 모범을 우리가 살아감으로써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인을 올바로 공경한다는 것은 외적 행사의 복잡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사랑의 깊이에 있는 것입니다.

 

가경자 알베리오네는 “날마다 쉬지 않고 조금씩 주님께로 발길을 옮기는 것, 이것이 성인이 되는 비결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닮고자 노력하지 않는 한 결코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자 앙투안 슈브리에도 성인의 길을 말씀하십니다.“예수 그리스도님에 대한 앎이 모든 것의 열쇠입니다.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님을 아는 것, 바로 그것만이 성인의 길을 걷는 신앙인의 목표요, 지름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인은“어쩌면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을 이 세상에서 사신 분들입니다”(함께야).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 험난한 고난의 길,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사랑의 길을 묵묵히 걸으신 분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욕망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것(1요한 1,12-13)이기에 성인입니다. “행복합니다. 당신께서 뽑아 가까이 오도록 하신 이! 그는 당신의 뜰 안에 머물리이다. 저희도 당신 집의 좋은 것을, 거룩한 당신 궁전의 좋은 것을 누리리이다”(시편 65,4). 그러나 그 성인의 거룩함을 잃어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거룩함을 잘 간수하여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은 8가지 행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행복의 근원을 미래에서 찾아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약속된 미래가 있기에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가난해서가 아니라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에 행복합니다. 슬퍼함이 행복이 아니라 위로를 받음이 행복입니다. 땅을 차지할 것이기에 행복하고 만족할 것을 기대하니 행복하고 자비를 입게 되고 하느님을 뵙게 되니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되고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행복하고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으니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그 큰 행복을 차지할 기회를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행복은 천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뵈려고 애쓰고, 하느님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할 때가 행복의 순간입니다”(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그리고 “행복한 사람이란 하느님에 대한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자신 안에 모신 사람입니다”(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따라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알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며,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성 아우구스띠노). 주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행복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너희는 행복하다.”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마음을 다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1.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의 가난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희망을 두기에 그에게 온전히 의탁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것이기에 행복합니다.

2.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고 자기의 죄에 애통해 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행복합니다.

3.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 온유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황, 처지, 여건에 흔들림 없이 평상심을 유지할 줄 아는 사람, 자제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4.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진선미를 갈망하며 천상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5. 행복하여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자비는 사랑입니다. 애간장을 녹이는 안타까움을 간직하며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 이웃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사람입니다.

6.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주님은 ‘내가 완전한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함을 지닌 사람, 죄에 물들지 않은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은 행복합니다.

7.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외형적인 평온에 앞서 내 마음 속에 있는 욕심과 무질서, 불의와 미움을 거두고 화해를 전해주며 갈라진 사람을 맺어주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8.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선한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시기와 질투, 모욕과 중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도들은 주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하였습니다(사도5,41).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기뻐하고 줄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 12)
-한상우신부-

 

삶과 죽음
이 모든 것의
전부가 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죽은
모든 이의
영혼을 위해
기억하고
기도하는
위령 성월의
첫날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
우리보다 먼저
살다 떠난
성인(聖人)들이
계십니다.

죽어야 하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어떻게 살다
떠나갈 것인지를
묵상하는 기도의
시간입니다.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은
언제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이란 지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여정입니다.

사람의 길이
곧 하늘의 길이
됩니다.

죽음은 늘
우리들
삶 앞에 있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구원의 삶을
살았던 성인들의
삶을 기억합니다.

절망도 희망도
하느님을 향했던
기도였습니다.

성인들의 몸부림과
성인들의 삶에서
건지려했던
사랑의 기쁨을
기억합니다.

성인들의 전환점과
자신들의
약함을 끌어안는
사랑의 방식을
배웁니다.

사랑의 방식은
기억하고
기도하는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살아가는 방식이
또한 기억하고
기도하는
방식입니다.

모든 성인들의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삶의 이유가
사랑임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최초도
최후도
하느님 사랑이
있었기에
모든 성인은
찬미의 기도를
하느님께
바칠 수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을
주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기쁘게 사랑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모든 성인들의
마지막 봉헌을
기억하는 모든
성인들의
대축일입니다.

모든 성인들의
따뜻한 삶에
진심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성인들의
통공(通功)처럼
기억과 기도는
서로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을
진실로 믿고
따릅니다. 

 말씀 나누기 - 모든 성인의 날-하느님 안에 숨은 성인들, 밀양의 삶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1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