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2년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Margaret K 2022. 9. 29. 06:40

2022년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교회는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에서 천사들의 존재를 신앙 교리로 선언하였다. 그러나 천사들에 대한 학자들의 여러 학설에 대해서는 유권적인 해석을 하지 않았다. 다만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이외의 다른 천사의 이름은 금하고 있다. 천사들의 축일도 오늘의 세 대천사 축일과 ‘수호천사 기념일’(10월 2일)을 정하여 천사 공경을 권장하고 있다. 세 대천사 이름의 뜻은 다음과 같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권세’,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이다.

☆☆☆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47-51)

 

“Amen, amen, I say to you,
you will see heaven opened
an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on the Son of Man.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다니엘 예언자는 밤의 환시 속에서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연로하신 분 앞으로 인도되어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를 받는 광경을 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되리라고 하신다(복음).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남들과 비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들 정도의 돈만 있으면, 남들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게 되면, 남들 정도의 가정의 평화만 누릴 수 있다면…. 그런데 그렇게 비교하는 세상의 것들은 결국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이 아닐까요? 즉, 남의 것으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진짜 행복은 남과 비교하고 불만을 품는 데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나의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위해 스스로 변화해나갈 때 행복을 발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행복이 또 다른 행복을 불러들인다는 것입니다.

남의 것으로 행복해지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 세속적인 것들이 결국은 남의 것이었음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이 세상에 남아 다른 이에게 전달될 뿐입니다.

나의 것은 죽음으로 그냥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은 사라지고, 대신 사랑의 실천,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삶을 주님께서 모두 기억하시기에 하늘에서도 남게 됩니다. 이렇게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진짜 나의 것입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대천사는 중대한 사건을 전하는 이들이지요.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 같으랴?’라는 뜻으로, 요한 묵시록에 나오듯 우리의 원수와 싸우도록 파견되어 우리가 악을 멀리해야 함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람, 영웅, 힘’이라는 뜻의 가브리엘은 동정 마리아에게 파견되어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했으며,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의 라파엘은 토비아의 눈을 고쳐 주어서 하느님의 치유를 전해주었습니다.

대천사의 이런 역할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뜻에 더 철저히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의 것을 구할 수 있도록,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 사랑에 집중하면 할수록 하늘에 나의 것을 너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 없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나타나엘을 향해서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의 천사를 볼 수 있을까요?

세상에 나의 것을 만들려고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나의 것을 만들려고 철저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똑같은 꽃이라도 감탄하면 한층 예뻐 보인다. 똑같은 사람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더 좋게 보인다. 생각에 따라 세상 풍경이 달라진다. 간단하면서도 신비한 일이다(정연복).

 왜 천사는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까?

-전삼용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youtu.be/ABZPkLtOmDI 

 민수기 22장에 재미있으면서도 아리송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압 임금은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는 게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예언자 발라암을 불러와 이스라엘 군대를 저주하려 합니다. 하지만 발라암은 하느님께서 가기를 원치 않으시자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니 나귀를 타고 떠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이 바뀌셔서 발라암을 죽이려 하십니다. 천사가 칼을 들고 나귀가 오는 앞길에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나귀는 천사를 봅니다. 자신과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길에서 벗어납니다. 그러자 발라암은 말을 안 듣는 나귀를 때립니다. 천사가 더 위협해오자 나귀는 벽으로 붙습니다. 그러자 발라암은 나귀를 더 심하게 때립니다. 이젠 막다른 골목에 다다릅니다. 피할 길이 없자 나귀는 주저앉습니다. 발라암은 나귀가 미쳤나보다 생각하고 나귀를 죽도록 때립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주십니다. 나귀는 자기가 칼을 든 천사를 보고 피하려고 한 것인데도 왜 죄 없는 자신을 때리냐며 따집니다. 나귀가 하는 말을 듣자 발라암은 그제야 눈이 열려 칼을 들고 자신 앞에 서 있는 천사를 봅니다. 천사는 말합니다. 
    “너는 어찌하여 너의 나귀를 이렇게 세 번씩이나 때렸느냐? 네가 내 앞에서 나쁜 길을 걷기에, 내가 막으려고 나왔다. 나귀가 나를 보고 세 번이나 내 앞에서 비켜났으니 망정이지, 내 앞에서 비켜나지 않았더라면, 내가 나귀는 살려 주고 너는 이미 죽였을 것이다.” (민수 22,32-33)
  
    발라암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천사를 볼 수 없는 수준까지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나귀가 그를 천사를 볼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입니다. 나귀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천사가 보였다는 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자신이 어느 세상에 머무는지 보여준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군대에서 귀신을 본다는 청년에게 귀신과 대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귀신과 대화한다는 말은 자신이 귀신의 세상에 속해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나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들과 대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사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항상 신기했습니다. 제가 청년이었을 당시 성당 성물방에 ‘하.사.시.’가 꽂혀 있었지만, 제가 아는 한 그 책을 뽑아 읽은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왜 저만 그 책에 관심을 가졌을까요? 저는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천사는 파견되어 파견한 사람과 누군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주님의 종입니다. 저에게는 그 책을 쓴 마리아 발토르타가 천사입니다. 그 천사를 통해 저는 신학교에 들어와 한 번이라도 그리스도를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 이유가 나옵니다. 나타나엘을 보시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요한 1,47)
예수님은 그에게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천사들을 볼 것을 약속하십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거짓말을 제일 싫어한다는 말을 굳게 믿고 거짓말을 안 하려 했습니다. 신학교에서 착한 거짓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을 때 저만 들었습니다. 
    진실한 말은 나귀의 언어였던 것입니다. 천국에 속해있어야 천국의 존재를 볼 수 있습니다. 말은 자신이 속한 세상을 알려줍니다. 천국은 거짓이 없는 세상입니다. 왜냐하면 거짓의 아버지는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향해 수많은 천사를 내려보내십니다. 그런데 천사를 보는 사람은 극히 일부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천상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 언어란 ‘진실’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다시 예수님을 뵐 수 있기 위해 무엇을 해야 했을까요? 자기 죄를 고백해야 했을 것입니다. 특별히 성모님께 고백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감싸는 무화과 잎들을 떼어낼 때 불칼을 든 천사를 통과하여 생명 나무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성이 높아지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우리 안에 거짓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은 저급한 세상에 머물면서 기도로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발은 밧줄로 바위에 꽁꽁 묶어놓고 하늘을 날려는 것과 같습니다. 
    왜 거짓을 말하면 천사가 보이지 않을까요? 천사는 천국의 존재인데, 천국에서는 거짓말이란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내 안에서 거짓이 사라지지 않으면 나를 하늘로 이끌어줄 천사를 만날 수 없습니다.

 하늘의 천사, 땅의 천사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_bOpSHSS8lY

 -조재형신부-

 

천사(天使)’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첫째는 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로써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입니다예언자들은 천사의 역할을 하였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이 그릇된 길을 갈 때면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길 때면 하느님의 징벌을 전하였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이 고통과 절망 중에 있을 때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전하였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이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시는 것을 전하였습니다초대교회에는 교부들이 있었습니다교부들은 천사의 역할을 하였습니다교부들은 신학과 교리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이단과 이교도와 맞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교부들은 영성과 말씀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성인과 성녀들이 천사의 역할을 하였습니다성인과 성녀들은 세상의 것을 따르지 않았습니다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하였습니다우리가 말과 행동 그리고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다면 우리들 역시 천사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착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그렇게 보면 주변에는 천사들이 많습니다제가 미사를 도와 드리는 부르클린 한인 성당에도 천사들이 있습니다매주 친교를 준비하는 성모회원들이 있습니다김밥비빔밥국수커피컵과일 같은 것을 마련합니다미사를 마친 후에 교우들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누며 정겨운 시간을 갖습니다가톨릭평화신문의 지면에도 천사들이 있습니다.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라는 지면은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을 전하고 있습니다정말 많은 천사들이 따뜻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안타가운 사연에 마음을 열고 도움을 주는 분들이 천사입니다저도 천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제가 능력이 있고잘나서가 아니었습니다제가 서품을 받는 사제였기 때문입니다. 1년 넘게 제가 있는 신문사에서 부르클린 한인 성당까지 차량봉사를 해 주신 분도 있습니다보험이 없던 제게 치과치료를 무료로 해 주신 선생님도 있습니다낚시를 해서 잡은 물고기를 나누어 주신 형제님도 있습니다저의 세례명은 가브리엘입니다가브리엘은 천사입니다그러나 제가 누군가에게 천사가 되기보다는 천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사람은 비록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의상을 입었어도 결코 천사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하얀 날개가 없어도화려한 의상을 입지 않았어도아름다운 외모를 갖지 않았어도 우리는 모두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면 됩니다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면 됩니다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천사입니다배려와 나눔이 있으면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어떤 사람이 도움의 손길로 다가왔다면 어찌 천사로 기억하지 않겠습니까주위를 돌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막연히 잊고 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예전에 적성성당에 있을 때였습니다아이들을 위해서 컴퓨터를 사려고 했는데 비용이 걱정이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한 형제님께서 성당엘 찾아왔습니다성당 근처에서 군 복무를 하였다고 하면서 컴퓨터를 구입할 정도의 금액을 봉헌해 주시고 가셨습니다아무런 조건 없이 성당엘 찾아오셔서 감사헌금을 봉헌해 주신 그분께 감사를 드렸으며살아 움직이는 천사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에도 다른 천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천사는 결코 이론 속의 존재가 아닙니다늘 우리 곁에 있는 다정한 이웃입니다따뜻한 모습으로 이웃에게 다가간다면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상대방에게 천사의 역할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바로 내가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양승국신부-
 
교회 역사 안에서 천사(天使)들의 존재는 교부들과 신학자들 사이에서 잦은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 존재 자체가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애매모호함으로 인해 명쾌한 설명이나 해석이 힘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천사들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서는 신구약 성경 몇 군데에 드러나고 있는데, 대체로 그들은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에 개입하실 때 매개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사들은 하느님의 사자(使者), 하느님의 사신(使臣), 하느님의 심부름꾼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느님 편에 서 있는 영적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봉사합니다. 더불어 하느님의 명으로 인간 세상에 파견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합니다.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인간에게 알려줍니다.
  
‘하느님의 권능’이란 이름의 의미를 지닌 가브리엘 대천사는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파견됩니다. 그녀의 삶에 개입함을 통해 구원의 기쁜 소식을 모든 인류에게 전해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이름의 의미를 지닌 라파엘 대천사는 눈먼 토빗에게 파견됩니다. 그의 병을 낫게 함을 통해 인류의 치유자이신 사랑의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누가 하느님 같은가?’라는 이름의 의미를 지닌 미카엘 대천사는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에 파견되어 악을 물리치시는 승리의 하느님 이미지를 전달했습니다.
  
척박한 이 세상살이지만 가끔 천사의 모습을 지닌 동료 인간들을 만납니다. 말투나 사고방식, 행동 하나하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한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로 집에서 게임만 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우셨던 선생님은 주말만 되면,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내 접선 장소로 모이게 했습니다.
  
보통 대여섯 명, 많게는 열 명 내외까지, 생계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서 아이들을 동반했습니다. 영양가 만점인 맛있는 간식도 직접 준비해서 산으로 들로, 그렇게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쐬게 해주었습니다.
  
당신 숙소로 아이들을 데려가서 저녁까지 해먹이고, 집으로 데려다 주곤 하셨답니다. 따지고 보니 제2의 돈보스코가 따로 없습니다. 날개 없는 천사가 분명합니다.
 
솔직히 세상의 좋은 것에 죽고 그리스도 안에 살겠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이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서약한 우리 수도자들, 사제들은 신원의 속성상, 맡고 있는 직무에 따르면 천사의 역할을 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천사는커녕, 평범한 한 인간 존재로서 가장 기본적인 역할과 도리에도 소홀하고, 자기 앞가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참 많이 부끄럽습니다.
 
오늘날 이 천사의 역할은 누구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늘을 아무리 올려다봐도 날개 달린 천사는 더이상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천사의 역할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천사의 역할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바로 내가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영근신부-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와 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를 통해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였습니다.

 

'천사론'에서 믿어야 할 교리는 두 가지입니다.

곧 천사는 존재한다는 것과 천사는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적 존재로서, 하는 일은 사자(천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요,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요,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히브 1,14), 자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녔으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요, 악에 대한 수호자요,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합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고, 즈가리아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합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을 지녔으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고,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천사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천사들은 인간에게 봉사하고, 인간을 보호합니다.

곧 인간인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51)

 

오늘 우리는 대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하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어디에서 열릴까?

대체 어떻게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렸듯이,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셨듯이, 오늘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곧 하늘이 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열리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늘을 우리 안에서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 안에는 당신이 계시니, 우리가 곧 당신께서 계시는 ‘하늘’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자리요, 우리 ‘일상의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며,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미 그분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천사들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타고 하늘을 오르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인간이 존귀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천사가 있는 것이지, 천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이토록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을 찬미합시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51)

 

주님,

언제나 당신을 향하여 있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당신 말씀을 전하는 사자가 되고, 당신의 뜻을 지키고 따르는 장수가 되게 하소서.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고, 아픈 이를 어루만지는 당신의 치유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오늘도 당신 힘으로 살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으로 제 삶이 열리고, 제 안에 당신의 하늘이 펼쳐지게 하소서.

아멘.

말씀 나누기 - 대천사 축일-내가! 우리가!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1년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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