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7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29-33)
In the world you will have trouble,
but take courage,
I have conquered the world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오늘의 묵상
-신우식신부-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이 끝이 아님을 당신의 부활로 보여 주십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악과 그의 권세인 죽음에 대한 승리임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라는 사도 신경의 부활 신앙은, 빈 무덤이 주님의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아니더라도, 제자들이 체험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이며 역사를 초월하는 사건’이라고(『가톨릭 교회 교리서』, 639-647항 참조)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괜히 모든 것을 잃고 손해 보는 것’으로 여겨지는 예수님의 방법은 인간 세상의 방법과 전혀 다름을 알게 해 줍니다. 무조건적이며, 아낌없이 내어 주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통하여 세상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며, 사랑을 통하여 움츠려 있던 우리의 몸을 펴고 용기를 내어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렵고 힘들수록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는 자신의 것을 내어 주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삶에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그리스도 안의 새 생활’(로마 12,1-21 참조)을 실천하도록 노력합시다. 우리는 부활의 삶을 향하여 용기를 내어 나아가야 합니다.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대표 교향곡을 물으면 대부분 ‘운명 교향곡’을 이야기합니다. 그의 교향곡 제5번으로, 저 역시 무척 좋아하는 곡입니다. 그런데 이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큰 시련을 겪고 있었습니다.
삼십 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음악가에게 귀는 생명과도 같지 않았을까요? 따라서 그의 생활은 경제적으로도 아주 힘들어졌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에서 허름한 아파트에 살았는데, 월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계속 밀리는 월세에 집주인이 집을 찾아와 문을 두르면서 월세 낼 것을 독촉했지요.
그날도 집주인이 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똑똑똑똑....”
집주인도 베토벤의 귀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얼마나 크게 문을 두드렸겠습니까? 이 리듬에서 베토벤은 특별한 영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운명 교향곡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빠바바밤~ 빠바바밤~”입니다. 그에게 이 소리는 어떻게 들렸을까요? “월세내라~ 빨리내라~”로 들리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는 이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시련에 그리고 아픔에 좌절만 하기에는 나 자신의 삶이 아깝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방향으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주님과 함께하면서 그 안에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필요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로써 유일하게 죽음을 이기신 분, 가장 힘센 분임을 세상에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힘 있는 분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 편이 되어 우리의 마음 안에 평화를 간직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이렇게 세상을 이기신 분이 우리 편이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좌절과 절망도 주님 앞에서는 별것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른 방향으로 마음을 바꿔서 주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시는 길로 힘차게 걸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역시 주님과 함께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중에서 아주 유명한 시가 있지요. 바로 ‘풀꽃 1’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가 비록 짧아도 워낙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이를 인용하는 사람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풀꽃 1(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너도 그렇다’는 싯구 뒤에 하나의 문장을 더 넣어보면 어떨까요?
“나도 그렇다.”라고 말입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쁘다고 하지 않고 사랑스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늘 부족해 보이기만 합니다.
이제 나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어떨까요?

나 자신을 위해 싸우면 왜 항상 지는가?
-전삼용신부-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말씀하지 않으시는데도 말씀을 모두 알아듣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그들의 믿음이 아직은 완전하지 않아 당신을 버리고 흩어질 때가 온다고 하십니다. 아직은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이길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힘을 잃지 말라고 하십니다. 당신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제자들도 이길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그런데 혼자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쳐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만약 예수님께서 제자들로부터 힘을 얻거나 제자들을 위해 세상과 싸우셨다면 제자들이 도망칠 때 큰 실망과 함께 싸울 의욕을 잃으셨을 것입니다. 또는 당신 자신을 위해 싸우셔도 세상엔 누구도 당신에게 영광을 줄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 세상과 싸우고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과 싸워 이기실 수 있으셨던 이유는 당신을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싸우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패배할 것을 두려워하여 몸이 경직됩니다. 두려우면 어떤 싸움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은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해 준 분을 위해 싸운다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그러면 승리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방식입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태어날 무렵 배우였던 아버지는 여배우들과 바람을 피웠습니다. 아버지는 1살 때 졸리를 버리고 떠납니다. 졸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고 경제적인 지원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남편과 똑 닮은 졸리를 볼 때마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졸리가 4살이 되었을 때 금발의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해 버립니다. 이후 졸리는 어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지 갈색 머리를 지금까지 유지합니다.
7살 때 졸리는 아버지와 함께 ‘라스베가스의 도박사들’이라는 영화에 출연합니다. 문제는 아버지와 불륜을 일으킨 여배우가 졸리의 어머니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함께 같은 영화에 출연합니다.
이런 기이한 상황을 어린 졸리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우울증과 불면증이 생겼고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껴졌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그녀의 방황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두꺼운 입술과 긴 팔다리 때문에 놀림을 받았고 3년간 집단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당시 학교폭력과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으로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졸리는 점점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항상 칼을 몸에 지니고 다녔고 자해하며 평온을 찾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급기야 13세 때 첫 자살 시도를 합니다. 결국, 자퇴한 그녀는 14살 학교에서 만난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삽니다.
얼마 후 학교로 다시 돌아간 졸리는 그 누구와도 유대감을 형성할 수 없었습니다. 극심한 우울증만이 그녀를 따라다녔습니다. 여기저기 모델과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지만 하나도 잘 되는 게 없었습니다.
이후부터 그녀는 “날 망가뜨리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할 정도로 본격적인 막장 인생을 시작합니다.
19살 때부터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헤로인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약을 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여러 번의 자살 시도를 했고 자신을 죽여달라고 살인 청부까지 합니다. 그러다 20세 때 영화를 통해 만난 배우와 결혼을 합니다. 식장에 가죽바지를 입고 나오고 남편의 이름을 자신의 피로 새긴 티셔츠를 입고 등장합니다. 밀러와의 결혼생활은 3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고 이후에 다른 영화에서 만난 사람과 혼인하게 되는데 그때는 서로의 피가 담긴 목걸이를 메고 등장합니다. 식을 올리기 3일 전에는 자살 충동에 휩싸여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1999년 TV 미니시리즈 ‘지아’에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게 됩니다. 역할은 마약 중독자 주인공이었습니다. 이후엔 ‘처음 만나는 자유’(1999)에서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역할을 맡아 잘 소화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이 반영된 역할을 통해 그녀는 유명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역시 망가진 삶을 이어갔고 기괴한 행동을 하며 다녔습니다.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는 친오빠와 진한 키스를 해서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그렇게 연일 기삿거리를 제공하는 헐리웃 문제아로 낙인찍히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26세가 되던 2001년, 그녀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툼 레이더’ 촬영으로 캄보디아에 간 졸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충격적인 세상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전쟁으로 삶을 송두리째 잃은 사람들, 총탄으로 부모들을 잃은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울증으로 허우적거리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곳에서 졸리는 부모를 잃은 매덕스란 아이를 입양했고 그녀는 맹세합니다.
“다시는 나 자신을 파괴하는 엄마가 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