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묵상

2021년 4월 5일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Margaret K 2021. 4. 5. 06:32

2021년 4월 5일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마태오 28,8-15)
 

"Do not be afraid.
Go tell my brothers to go to Galilee, 
and there they will see me."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오늘의 묵상

-서철신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직접 본 이들은 없습니다. 다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들이 그분을 증언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오십일 동안 이 부활의 기쁨을 노래할 것입니다. 특별히 부활 팔일 동안 말씀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증언하는 이들과 함께 축제를 지낼 것입니다.
여인들은 아직 어두운 새벽녘에 집을 나서서 무덤을 보러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천사들에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5-6)라는 놀라운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가서 다음의 말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태 28,7). 이 소명을 받은 여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소식을 전하러 달려 나갑니다.
이 여인들처럼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소명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닮아 자신에게서 나와 아픈 이에게 다가가는 여정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가라고, 거기서 당신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릴래아는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이 있는 곳이자 그 울부짖음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고, 제자들을 뽑으시어 함께 사람들을 섬기기 시작하신 자리입니다. 우리에게 첫 자리로, 첫 마음으로 돌아가 섬김의 삶을 새로이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날마다 삶을 새롭게 시작할 때 예수님께서는 다가오시어 조용히 인사하십니다. “평안하냐?”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에게 마주 오시며 인사하십니다. ‘평안하냐’는 그리스 인사말로 ‘기뻐하시오, 기쁘냐?’라는 뜻입니다. 장엄한 축복의 말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로, ‘잘 지내니?’ 정도의 인사말입니다. “평안하니? 잘 지내니?”

-조명연신부-

http://cafe.daum.net/bbadaking/GkzT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첫인상은 소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심리 때문에 일단 형성된 첫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저 역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첫인상에서 느낀 감정을 계속 만날 때마다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일에도 예외가 있듯이, 첫인상이 쭉 간다는 것 역시 분명 진리는 아닙니다.


심리학에서 처음에는 비호감이었지만 자주 보게 되면 차츰 호감으로 변하는 현상을 ‘에펠탑 효과’라고 합니다. 19세기 말,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320m 철탑 계획은 당시 파리의 예술가와 시민들의 엄청난 반대를 가져왔습니다. 파리 한가운데에 엄청난 흉물이 탄생할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기념탑이 지어지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 갔습니다. 계속 보면서 탑의 모습에 익숙해지고 친밀감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 탑이 바로 ‘프랑스’ 하면 떠오르게 하는 ‘에펠탑’입니다.

사람의 첫인상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첫인상이 나빴어도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면서 바뀔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조금씩 친밀해지는 과정이 편견을 벗겨버리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한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묵상해보았으면 합니다. 계속 만나면서 친밀감을 키우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만남에서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과의 관계가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도록 우리의 노력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무덤을 찾아온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당신의 몸을 보여주십니다. 그 큰 사랑을 준 제자들에게 먼저가 아니라 여인들에게 먼저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면서 주님께 대한 사랑을 접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주님을 찾으면서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님과의 계속된 만남을 통해 주님을 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여러분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편견과 부정적인 마음으로 그 관계를 깨뜨려서는 안 됩니다. 계속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때 고통과 시련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돈독한 관계가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복음의 여인들처럼, 우리 역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충만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더욱더 사랑하는 것밖에는 사랑의 치료법이 없다(H.D. 도로우).


판단의 중요성.

전쟁은 어마어마한 손실과 희생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평화’는 모두를 잘살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경제적 피해를 떠나서 인명 피해는 다시 복구할 수 없기에 절대로 전쟁이 나서는 안 됩니다.

1983년 9월 26일, 당시 소련과 미국이 서로 전쟁할 뻔했던 엄청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냉전 시대의 긴장이 극에 달했을 때였지요. 소련(당시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합니다)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중령이 근무하고 있던 관제소에 비상경보가 울렸습니다. 미국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5기가 발사되었다는 긴급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곧바로 반격해야 우리 측의 피해를 줄일 수 있기에, 곧바로 소련에서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페트로프 중령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제3차 세계 대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순간 그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선제 타격으로 겨우 5기의 미사일만 쏘았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어서 ‘조기경보시스템 오류’를 상부에 보고했고, 햇빛에 반사된 인공위성이 시스템 오류로 미사일로 오인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의 판단으로 몇천만 명을 살린 것입니다.

이렇게 판단은 매우 중요합니다. 판단의 원칙은 바로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여기에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더 정확하고 모두에게 유익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끌어 당김의 법칙(시크릿)완결판, '갈릴래아의 법칙'

-전삼용신부-


 오늘 복음은 여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심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과 대비되는 인물들도 나오는데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이었습니다. 여인들이나 경비병들 모두 천사를 보았습니다. 여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기뻐하였고 경비병들은 까무러쳤습니다. 여인들은 천사들의 말대로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러 가는 중이었고 경비병들은 유다인들에게 돈을 받고 예수님을 제자들이 훔쳐 갔다고 거짓을 말하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여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천사가 말한 것과 똑같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사실 여인들은 천사들의 말대로 갈릴래아로 가면 거기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제자들에게 알리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 말은 갈릴래아로 가라고 복음을 전하는 삶이 바로 갈릴래아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갈릴래아는 받은 물을 내어놓아 생명이 풍부한 호수이고 사해는 받는 것을 자신만 가지려 해서 죽어버린 바다입니다. 여인들은 갈릴래아처럼 가진 복음을 전하고 있었고, 경비병들은 가진 복음을 돈으로 바꿔치기하며 자신 안에 들어온 생명력을 죽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경비병들이 아닌 여인들에게 나타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 여인들을 통하여 두 가지 갈릴래아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갈릴래아의 법칙은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끌어당긴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하지만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전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소원대로 예수님을 끝까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끌어당김의 법칙’(시크릿)을 믿습니다. 누구나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종교 서적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비밀을 적은 책입니다. 그리고 이 법칙으로 기적과 같은 결과를 끌어들였다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유튜브에 있는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목이 ‘7000억 매출 사업가가 되기까지 60번 읽은 한 권의 책’입니다.

 

‘켈리 최’라는 중년 여성인데, 저는 이분이 어떤 분인지 잘 모릅니다. 다만 이 동영상에 나온 대로만 정리하자면, 켈리 최의 우리나라에서의 학력은 중졸입니다. 어린 시절 고단하고 가난했던 가정환경 속에서 열일곱 살이 되던 해부터 서울에 올라와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어쩌다 그리되었는지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사업에 실패해 10억 원의 빚더미에 앉기까지 했습니다.

      마흔이 넘어 무일푼으로 다시 수많은 책을 읽었고 그중에 60번 읽고 항상 틀어놓은 동영상도 ‘시크릿’이었습니다. 시크릿은 세상에서 성공한 모든 이들이 가진 비밀을 말해 놓은 책인데 간단히 정리하면 이런 법칙입니다.

 

1. 원하는 것을 간절하게 구하고 원하라

2. 영감이 떠올랐을 때 즉시 행동하라

3. 언제나 기분 좋은 마음을 유지하라

      켈리최는 미국에서 도시락을 팔아 성공한 김승호 회장을 모델로 유럽에서 도시락 사업을 하여 유럽에서 창업 10년 만에 연 매출 7천억 원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책을 추천하라면 자신이 쓴 책,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보다 『시크릿』을 더 추천한다는 것입니다.

 

      ‘시크릿’은 분명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는 법칙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끌어당긴 여인들을 이 법칙에 적용해봅니다.

 

원하는 것을 간절하게 구하고 원하라: 여인들은 그리스도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영감이 떠올랐을 때 즉시 행동하라: 여인들은 남자들이 주저할 때 즉각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천사를 만났을 때 그 천사들의 말대로 즉각 움직였습니다.

언제나 기분 좋은 마음을 유지하라: 여인들은 천사들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면서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빠진 핵심요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분 좋기 위해 그들이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4. 기쁘게 내어주어라.’입니다.

 

기쁘게 내어주는 것이 더 충만하게 채워집니다. 갈릴래아는 사해와는 다르게 받아들인 것을 내어주어 생명력이 있는 바다입니다. 여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달려갈 때 참 복음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만나지 못한 사람은 전할 줄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만난 사람은 이미 충만히 가지고 있기에 복음과 동시에 가진 것도 내어줍니다. 결국, 끌어당김의 법칙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이지만, 갈릴래아의 법칙은 기쁘게 내어주려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참 기쁨을 얻고 싶다면 지금 알고 있는 복음을 기쁘게 전하십시오.

 -조재형신부-


선진국의 기준은 무엇일까요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일 수 있습니다과학과 문명이 발전한 나라일 수 있습니다사회복지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나라일 수 있습니다시민들의 참여의식이 높은 나라일 수 있습니다부정과 부패가 적은 나라일 수 있습니다빈부의 격차가 적은 나라일 수 있습니다이런 것들은 선진국이 보여주는 결과들입니다선진국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이 3가지를 가진 나라들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아서 풍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뿌리 깊은 나무와 같아서 시련과 고통이 다가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합니다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던 나라들이 다시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군인들이 정권을 빼앗고부정과 부패로 얼룩지는 것은 3가지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3가지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기본기입니다운동선수들에게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기술을 익히기 전에 체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한국의 야구선수들은 어린나이에 변화구를 익히고던진다고 합니다그렇게 하면 게임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만 어깨가 다치기 쉽고부상당하기도 쉽다고 합니다대학생이 되어서 빠른 공을 던질 수 없다고 합니다결국 프로의 세계에서는 경쟁 할 수 없다고 합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4강으로 올려놓았던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기술은 좋은데 체력이 약하다고 하였습니다체력을 키운 후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우리 학생들은 선행학습으로 미리 배우고암기하기에 좋은 성적을 내지만 대학을 졸업하면 더 이상 공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과도한 학습으로 지쳐 버리기 때문입니다신뢰와 예의는 선진국이 되는 기본기입니다.

 

신앙생활에도 기본기가 필요합니다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지식은 많았지만 신앙의 기본기가 적었습니다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그러나 사제생활에 기본이 되는 것은 기도의 생활화입니다수영은 이론만으로는 배울 수 없습니다직접 물속에 들어가서 연습을 해야만 수영을 배울 수 있습니다기본기가 부족한 사제들은 쉽게 지치기 마련입니다수영과 마찬가지로 기도는 책으로만 배울 수 없습니다직접 기도를 하면서 기도의 맛을 느껴야 합니다성체조배를 자주 하는 사제묵주기도를 자주하는 사제아침 일찍 묵상하는 사제강론을 성실히 준비하는 사제는 기본기가 충실한 사제입니다기도가 생활이 되는 신앙인은 기본기가 충실한 신앙인입니다.

 

둘째는 움직임입니다자신의 얻은 부와 재물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자식에게는 가치와 의미를 물려주고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이런 사람이 많은 나라는 부정과 부패가 적습니다욕망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나눔의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미국의 고등학교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매일 한 시간씩 운동을 하는 학교와 매일 한 시간씩 공부를 더 하는 학교를 정했습니다그리고 수학 시험을 보았습니다놀랍게도 매일 한 시간씩 운동을 한 학교의 학생들이 수학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우리의 뇌도 운동을 해야만 더 활성화 되고자란다고 합니다한국의 학교는 체육시간을 없앤다고 합니다움직임이 없으니 아이들의 비만이 늘어났다고 합니다움직임이 없으니 평균 키도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에도 움직임이 필요합니다야고보 사도는 실천이 없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예수님께서도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의 말은 따르지만 그들의 행동은 따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그들은 말만 하지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지금 강도당한 사람을 외면하였던 사제와 레위 사람은 실천이 없었습니다그래서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지 못하였습니다그러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당한 사람을 여관으로 데리고 갔습니다치료해 주었고돈이 부족하면 다음에 주겠다고 하였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는 모두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그런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하라고 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라는 질문입니다선진국은 당면한 문제에 정의를 내린다고 합니다. ‘?’라는 질문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합니다선진국이 아닌 나라는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모방을 한다고 합니다정의를 내려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왜라고 묻지 않는다고 합니다먹고 살기에 바쁘기 때문에 묻지도 않고따지지도 않고 따라 하기 마련입니다코로나19을 겪으면서 한국은 ?’라는 질문을 던졌고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냈습니다그리고 효과적인 방역으로 코로나19의 위기를 잘 극복하였습니다다른 나라들이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따라하였다고 합니다효과적인 검사를 하기 위해서 드라이브 스루우와 워킹 스루우를 만들어 냈습니다. ‘추적검사치료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라는 질문이 필요합니다묻지 않는 신앙은 자칫 광신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묻지 않는 신앙은 이단에 빠질 수 있습니다내가 가진 신앙이 어떤 신앙인지 알아야 합니다내가 믿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합니다오늘 베드로 사도는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는 질문에 답변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는지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살려주셨는지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왜 갈릴래아로 가라고 하셨을까요갈릴래아는 복음을 전하셨던 곳입니다많은 이적과 표징을 보여주셨던 곳입니다참된 행복을 말씀하셨던 곳입니다가파르나움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곳입니다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다. ‘중풍병자나병환자절름발이소경세리죄를 지었던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다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제자들에게도 갈릴래아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은 끝이 아니었습니다부활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두려움근심걱정절망아쉬움불평불만을 던져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편안하십니까여러분에게 평화를 빕니다.’ 이제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습니다다시금 삶의 현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부활은 나를 에워싸고 있는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부활은 이제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세상은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세상은 변해 있었습니다내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알렐루야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다.

-이영근신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제자들을 극심한 두려움으로 몰아넣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승의 죽음이라는 당혹스런 사실 앞에서, 믿음의 흔들림과 의혹과 허탈감으로 절망과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자신들도 붙잡혀 죽게 될까 봐 불안에 떨어야 했고, 불투명한 미래가 걱정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숨어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는 그 깊은 어두움 속에서도 결코 갈망이 식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두려움보다 컸던 것입니다. 그만큼 사랑이 깊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그리움이 되어 이른 새벽 스승의 무덤을 찾아가게 했고, 거기서 그들은 천사를 만나 놀랍고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셨다.”(마태 28,7)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면서 ‘평안하냐?’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천사를 통해 사명을 주었건만, 굳이 열절하신 사랑으로 직접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주 오십니다.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향하여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인간을 향하여 계신 분”(본 훼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 나서기만 하면 “나 여기 있노라.”(이사 58,9;이사 66,1) 하시며, 이미 찾아와 우리 앞에 계십니다. 항상 우리를 향하고 계셔서, 우리가 찾기 전에 먼저 우리를 향하여 찾아오십니다. 그러니, 더 이상 예수님을 붙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께 붙잡혀 있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를 찾으시는 당신 앞에, 항상 “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당신 면전에 있어야 할 일입니다. 항상 당신을 향하여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시어, 막달레나에게서 두려움을 몰아내시고, 당신 부활을 선포하는 첫 사도로 파견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리켜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십니다. 당신을 부인하고, 배반하고, 달아나버린 제자들을 말입니다. 비록, 그들이 당신을 떠났어도 진정으로 사랑하신 까닭입니다. 이미 그들을 용서하신 까닭입니다. “내 형제에게로 가라” 바로 이것이 당신께서 부활하시어 첫 사도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형제들 안에서 예수님을 뵈올 것입니다. 척박한 땅 갈릴래야, 우리가 머물고 있는 바로 이 땅, 바로 여기,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주님을 뵈올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께서는 형제들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형제를 사랑할 때 부활 생명이 우리 안에서 피어오르게 될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형제를 사랑하게 하소서.

형제들 안에서 당신 얼굴을 뵙게 하소서.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주님!

당신은 제가 가는 곳에 항상 먼저 와 계십니다.

항상 먼저 오시어 나를 기다리시는 분, 결코 저를 떠나지를 못하시는 분

제가 찾기도 전부터 저를 찾으시고, 제가 찾으면 나 여기 있노라 하시고,

제가 숨으면 너 어디 있느냐?’하고 찾으시고,

먼저 제 안에 들어와 어서 가자고 이끌어 가시는 분.

그 보고 싶은 분을 보는 일, 그보다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아멘.

 복음: 마태 28,8-15: 병사들에게 많은 돈을 집어주며

 -조욱현신부-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8절) 그들은 상상도 못 한 놀라운 일들을 보았다. 그 여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였다. 바로 얼마 전에 그분이 안장되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 무덤이 비어 있었다. 이는 그들이 주님의 빈 무덤과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되도록, 천사들이 그들을 무덤으로 데려간 것이다.

 

그 여자들이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갈 때,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며 “평안하냐?”(9절) 하신다. 그들은 몹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분께 달려갔다. 그들은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부활에 대한 증거를 보았고 확신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10절) 주님께서는 이 여인들을 통해 당신의 제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신다.

 

경비병들은 일어난 일에 대해 보고하러 왔을 때, 사제들은 그들에게 돈을 주며 부정한 일이 일어났다고 거짓말을 하도록 한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13절) 라고. 그러나 무덤은 권력자의 명으로 봉인되어 있었고, 무덤 주위에는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리고 무덤을 막고 있는 거대한 돌을 옮길 수 있었을까? 그들이 돌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 몰래 그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의 설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안 된다. 유다에게 돈을 주어 배신하게 했던 사제들은 경비병들에게도 돈을 주고 입을 막아 신앙을 무덤 속에 가두어 놓으려고 하였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칠 생각이었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장되고 무덤이 봉인되기 전에 시신을 훔쳐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무덤에 제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골방에 숨어있었다.

 

수석 사제들은 무덤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빌라도에게 말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치고서는 부활하셨다고 할지 모른다고 하면서 그렇게 되면 “이 마지막 기만이 처음 것보다 더 해로울 것”(마태 27,64)이라고 했는데 제자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주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돈을 주고 그분의 목숨을 사더니, 그분이 돌아가시고 되살아나시니, 또다시 돈을 주고 그분이 부활하신 증거를 지우려 했다. 그들은 돈만 쓰고 말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다.”라는 말이 있다. 진리를 은폐하려는 행위가 바로 그런 것이다. 마치 태양을 손으로 가려보려는 행위는 어리석은 행위와 같은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비병들만 매수해서 가릴 수 있었다면, 그 진리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올 수 있었겠는가? 그러기에 순간적으로 현실적으로 어느 경우에도 자신의 안일을 위하여 잘못된 것을 은폐하기보다 진리를 따르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 10)

-한상우신부-


있어야 할
우리 삶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새로운
시간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새롭게
두드리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갈릴래아가
더더욱
아름다워진다.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면

모든 일상은
아름다운
선물이 된다.

아름다운
생명의
선물이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듯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부활의
시작이다.

첫걸음
첫만남
첫마음을
다시
떠올린다.

마음을 울린
뜨거운
갈릴래아의
마음이다.

마음은
그 만남을
잊을 수 없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마음을 만난
갈릴래아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갈릴래아는
뜨거운
만남이다.

뜨거운
만남이
눈물겨운
부활이다.

아름다운
부활 인사를
건네신다.

"평안하냐?"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주님께서
주시는
이 마음이다.

마음을 만나면
길이 보인다.

마음을 만나는
것이 주님과
형제들을 만나는
것이다.

부활은 마음을
만나는 은총의
시간이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아름답게 하시는
부활의 주님이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일상의
마음으로
되살아나신다.

일상안에서
보게 되는
다채로운
마음이다.

일상안에서의
기쁜 부활이다.

 -오상선신부-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님의 부활을 대하는 여러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마태 28,8)
천사에게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여인들이 그 소식을 전하러 서둘러 떠납니다. 두려움과 기쁨.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지요. 게다가 일생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을 자기 입으로 전해야 하는 메신저의 역할까지 부여받은 터입니다.

"평안하냐?"(마태 28,9)
그런데 진짜로 예수님이 마주 걸어오시며 말을 건네십니다. 평안하고요... 참, 그 험한 일을 겪고 죽으셨던 분이 당신을 사랑하던 이들의 처참한 고통을 모르실 리 없는데, 평안하냐고 물으시다니요...
 

예수님이 평안하신 겁니다. 혹독한 수난 여정을 건너 죽음을 받아들이신 뒤, 모두가 끝이라고 여기는 그 죽음을 이기고 이렇게 살아오신 예수님께서 평안하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흔히 죽음을 각오한 이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지요.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죽음에 짓눌리지 않는 힘을 자기 안에서 발견한 이는 담대하고 초연하며 평안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여인들의 두려움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먼저 그들을 다독이십니다. 초현실적인 사건은 으레 두려움을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예수님과 함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를 언급하십니다. 그분의 구원 사명이 시작된 곳이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희망으로 전율했던 첫마음의 장소입니다.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고, 가난한 이들과 이방인이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한 곳입니다. 구원이 눈물과 피땀이 뒤범벅된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짐을 깨달은 곳이기도 하지요.

제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부활의 원리와 근거에 대해 설교합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사도 2,23)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사도 2,23)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사도 2,24)
먼저 이 엄청난 부활 사건은, 성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과 예지였음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당시 재판권과 처형권을 가지고 있는 로마인의 손을 빌어 그분을 죽인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대로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죽음을 순종으로 받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지요. 이로써 생명과 죽음은 예수님 권능 아래 복종하게 됩니다. 이 모두를 이루신 하느님의 계획과 예지야말로 부활의 원리입니다.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사도 2,30-31)
이스라엘 사람이면 누구나 다윗을 성왕으로 여겨 믿고 자랑합니다. 그 다윗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시편에서 이미 부활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고, 베드로 사도는 유다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부활의 근거를 성경 안에서 찾아 짚어 줍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마태 28,13)
아마도 이것이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믿고 싶은 바일 겁니다. 그들에게 부활 사건은 기존 종교 질서의 전복과 직결되니, 어떻게든 자신들의 주장을 지켜야 했을 겁니다.

사실 마태오는 '경비병들이 천사의 발현을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라쳤다'(마태 28,4 참조)고 앞 대목에서 언급했지요. 그러니 경비병들은 예수님 부활 사건의 직접 증인입니다. 하지만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기득권을 위해 진실을 은폐했듯이, 경비병들은 "많은 돈"을 위해 입을 닫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이렇듯 각자의 이익을 위해 각색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벗님!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어떤 의미를 주는지 숙고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 지배층들이나 경비병들처럼 기득권과 이득 앞에서 진실에 눈감지 않고, 첫마음으로 돌아가 기득권의 경계 밖에서, 가난과 불안정한 현실에 발을 딛고, 예수님과 함께 새 복음화의 길에 헌신할 열정을 일으키는지요.

진정 우리가 예수님 부활의 증인으로 변모되길 바랍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안고 갈릴래아로 달려가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말씀 나누기 - 부활 8부 월요일-두려움 없이 (ofmkorea.org)

-김찬선신부-

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2020년 4월 13일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되새기고 싶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