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칸 영성

프란치스칸 시민경제와 사회적 기업

Margaret K 2020. 4. 16. 03:28

프란치스칸 시민 경제(Franciscan Civil Economy)와 사회적 기업(Social Entrepreneurship)


김일득 (작은 형제회)
프란치스칸 사상 연구소 책임자


1. 들어가는 말
‘경제(經濟)’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공동생활을 유지 발전 시키기 위해 필요한 물질적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하여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를 이른다.1 이렇게 경제라는 단어에는 “인
간의 공동생활”, “사회적 관계” 등 인간 생활과 관계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영어에서 경제를 의미하는 단어는
‘economy(이코노미)’이다. ‘economy’의 어근은 ‘eco-’인데, 이 단어는 ‘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oikos’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서 파생된 대표적인 단어가 생태학을 의미하는 ecology인데, 그 어원적 의미에서 보자면 생태학은
“집에 관한 학문”을 뜻하며, 경제를 의미하는 economy는 “집의 관리”로 해석된다. 따라서 집의 관리인 ‘경제’ 문제
는 집에 관한 학문의 총체를 뜻하는 ‘생태’ 문제의 일부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며, 사실 우리 모두가 목도하듯이 경
제 문제와 생태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경제는 집의 관리에 관한 문제이므로 기본적으로 집을 잘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 집에 속한 여러 물건을 좋은 방법으로 관리하고 분배하며, 전체 가정을 잘 유지하고,
그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봉사하며, 전체 가정과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경제의
본뜻이라 하겠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내신 집의 구성원들 모두를 위한 하느님 물질 선(善)의 유지와 창출과 분배, 그리고 우
리 모든 구성원의 참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다음의 간단한 세계적 통계만 보아도 결코 그렇지 못하다는 것
이 자명하다. 개발 도상 국가들의 경우 인구의 약 오분의 일이 매일 1.25달러 이하의 돈으로만 생계를 유지하고 있
다. 2013년, 매일 32,000명의 사람이 갈등과 반목과 전쟁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난민의 삶을
살아야 했다.2 전 세계 인구 중 7억 8천만 명의 성인들과 1억2천만 명의 청소년들이 문맹 상태에 머물러 있고, 그들
중 60%가 여성이다.3 2013년 기준으로 볼 때 약 300,000명의 여성이 임신이나 출산관 관련된 문제로 사망하였
다.4 이러한 통계가 시사하는 바는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진 경제적 불평등, 부당함, 배척 등이라고 할 수 있
1 「경제」, 『뉴에이스 국어사전 애플 컴퓨터 번들판』.
2 United Nations, 『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Report 2014』, New York, United Nations, 2014, 8.
3 United Nations, 16.
4 United Nations, 28.

겠다. 사실, 전 세계 수입의 94%가 상위 40%의 인구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60%의 인구는 전 세계 수입의 6%에
의존해서 살고 있다.5
선진국들도 역시 현대 경제 체계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2008
년의 금융위기 이후 많은 근로자의 고용 상태가 불완전 고용이나 잘못된 고용 상태로 바뀌었다.6 한국의 경우, 사람
과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경제가 아닌, 돈, 자본, 기업의 단기 이익 극대화가 중심이 되는 경제 체계로 인하여 양극
화, 고용 불안정, 부정의한 임금 체계, 인권 및 환경 파괴의 문제, 사회적 불안정과 사회 공동체 파괴 등의 문제가 만
연하고 있다. 또한, 가계부채가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경제 충격을 가져다줄 것으로 예견된다. 2014년 통계를 볼 때,
전체 가계부채의 양이 GDP의 76%에 이르고 2008년 이후 무려 1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채 증가 비
율은 가계 수입 증가 비율을 이미 넘어섰고7, 수많은 한국인이 자신이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부채에 대한 이자만 겨
우 막고 있거나 그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며 살고 있고, 이 현상은 머지않은 훗날 우리 경제와 사회에 엄청난 파괴적인 충격이 될 것이라 예견되고
있다.
교회 역시 현대 경제와 그 파괴적인 결과들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명해 왔다. 예컨데 교황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기쁨』과 『찬미받으소서』 여기저기서 현재 전체 인류와 피조물이 당면한 주요 문제들을 분명하게 지적한
다.8 동시에 최근 교황들의 가르침은 현대 사회 경제 문제를 향한 영적이고 실제적인 해법 도출과 관련하여 프란치
스칸 전통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09년에 발표된 교황 베네딕토의 사회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에는 프란치스칸 경제 영성과 원칙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고, 2015년의 교황 프란치스코의 사회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에는 프란치스칸 피조물 전통과 신학이 대폭 스며들어있다는 점을 본다면, 현대 교회가
프란치스칸 영성 및 신학 전통을 지금 이 세상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중 하나로 보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 진다.
또한, 최근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한 경제학 분야에서도 중세 프란치스칸들을 중심으로 발전되었던 ‘시
민 경제(Civil economy)’, 혹은 그와 유사한 경제 형태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 안에서 현대 경제의 여러 문제점
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찾고 있다. 이에 이 짧은 논고에서는 프란치스칸 시민 경제의 중심 영성과 그 실제적(경
제적) 적용을 일별하고, 그것에 대한 현대적 적용과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가톨릭-프란치스칸
사회적 기업에 대한 논의를 가볍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2. 시민 경제(Civil economy)와 근현대 자본주의 경제(Capitalistic economy)9
5 Muhammad Yunus, 「Creating a World Without Poverty: Social Business and the Future of Capitalism」, 『Global Urban
Development Magazine』 (November 2008), 16.
6 David Couturier, 『Franciscans and Their Finances: Economics in a Disenchanted World』, New York, Franciscan Institute
Publication, 2015, 19.
7 Jeremy Lee, 「The Speed and Trajectory of Household Debt in South Korea」, 『Federal Reserve Bank of San Francisco』,
September 11, 2015, http://www.frbsf.org/banking/programs/asia-program/pacific-exchange-blog/trajectory-south-koreahousehold-
debt-to-gdp (accessed Feb 4, 2016).
8 예를 들어, 『복음의 기쁨』 53항, 57항, 62항, 74항, 75항에서 소비주의 문화의 폐해, 가난한 이들의 배척 문제, 세계화를 통한
고유 문화의 상실 문제, 대도시 인간 고립 문제, 인간 학대와 착취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찬미받으소서』 22~25항, 33~35
항에서는 환경 공해 문제, 지구 온난화와 생명 위협 문제, 무분멸한 경제 활동으로 인한 동식물 멸종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9 이 부분은 주로 다음 글을 참조하여 구성하였다: Stefano Zamagni, 『The Civil Market: Medieval Franciscan Ideas to Solve
21st Century Economic Problems』, Clemens Lecture Series, 2009, Minnesota, Saint John’s University, 2009.



다. 이렇게 프란치스칸들은 ‘시장 경제’의 창시자였다. 프란치스칸들이 안착시킨 ‘시민 시장 경제(civil market
economy)’의 목적은 공동선 창출과 형제적 경제 사회 건설이었다. 바로 그런 목적으로 프란치스칸들은 1462년에
최초로 초저리 신용 대출 은행(Montes Pietatis)을 설립하였고, 회계 장부 작성에서 복식 부기 방식을 고안하였으
며, 15세기에 첫 번째 주식회사 형태를 설립하였다. 이 모든 것은 공동체를 위한 부를 창출하고 그 부가 어느 한 곳
에 축적됨 없이 순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즉 공동선 창출을 위함이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이러한 프란치스칸 시민 경제는 18세기 이후 자본주의 경제로 대치되었고,
따라서 경제의 목적 역시 ‘공동선(common good)’에서 ‘전체선(total good)’으로 대치되었다. 전체선이라는 개념은
현대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개념으로서 일종의 덧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즉,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경제 주체들의 활동의 손익을 모두 덧셈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의 창출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 일부가 손
해를 보거나 전혀 이익을 보지 않더라도 전체적인 총합이 긍정적(+값)이라면 그 전체 경제 활동 역시도 긍정적으
로 평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0+1+100의 계산 결과는 101이 되는 것이고, 한 사람은 전혀 이익을 보지 못했지
만 전체 값이 101의 이익을 보았으므로 이 경제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게 전체선을 경제의 목적으로 두
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이 전체선의 최대화에 역점을 둔다. 그러나 공동선의 계산법은 완전히 다르다. 공동선을
목적으로 하는 시민 경제 체계는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경제 주체들의 활동의 손익을 곱하기로 계산한다. 따
라서 단 한 주체라도 손해를 보거나 전혀 이익을 보지 못한다면, 전체 산출값이 부정적(-값)이 되거나 아예 0이 되
어버린다. 예를 들어, 0*1*100은 1과 100이라는 숫자가 있음에도 그 결과값이 0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따라
서 공동선이 목적인 시민 경제 아래서는 타인의 이익이나 전체선의 논리 아래 그 어떤 이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는 원칙이 명백하게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가톨릭 교회, 유럽, 북미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시민 경제’, 혹은 그와 유사한 경제 형태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참된 경제적 이익 추구’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지금과 같은 누
군가(인간과 피조물)에 대한 희생이 강요되고, 부의 창출과 분배가 공의롭지 못하고 불평등한 경제는 그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 프란치스칸 시민 경제: 영성과 적용
중심 영성
그렇다면 ‘프란치스칸 시민 경제’를 탄생시킨 중심 영성은 무엇이었을까? 물질 재화를 이야기하는 시민 경
제의 중심에는 역설적이게도 돈이나 재화 등 경제적 관념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가난’ 영성이 있었다.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와 성 클라라로부터 시작되어 파두바의 성 안토니오, 성 보나벤투라, 복자 요한 둔스 스코투스, 베드로
요한 올리비,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등으로 이어진 중세 프란치스칸 영성 전통은 우선 하느님을 ‘지극히 높은
선(善)’으로 규정한다. ‘선’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자기 확산적인, 즉 자기를 나누는 본성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프
란치스칸 영성과 신학은 하느님을 ‘지극히 높은 선’이라는 문구로 표현하면서, 하느님은 최고로 자기를 확산하는,
그렇게 최고로 자기를 나누는 분으로 이해하고 체험하였다.11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하느님은 항상 최고로 자기 자
신을 ‘나누는’ 분으로 정의되었고, 이러한 하느님의 완벽한 나눔은 곧 ‘지극히 거룩한 가난’과 동의어였다. 이 같은 하
느님 이해는 전체 프란치스칸 전통을 관통하는 것으로서, 프란치스칸 전통은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실
11 참조: 보나벤투라, 「하느님께 나아가는 정신의 여정」, 6, 2, 박장원 옮김, 『프란치스칸 삶과 사상』, 제41호, 2014년 봄, 54.
제로’ 하느님 한 분에게만 속한다는 가난의 생활 양식을 구체적으로 살았다.12 즉, 모든 것이 ‘실제로’ 하느님께만 속
한다는 영성을 ‘지극히 거룩한 가난’의 추구를 통하여 ‘실재화' 하였다. 이렇게 프란치스칸 가난은 하느님이 지극히
선한 분이심을 깨닫고, 또한 모든 좋은 것들이 그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그 좋은 것들을 감사롭게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삶으로 체험되었다.13 이렇게 가난 영성은 ‘모든 것의 주인이자 선이신 하느님 체험’의
실재화였다. 당대의 일반적인 수도 생활은 ‘공동 소유’를 정당화 하였고, 그러한 수도 생활 안에서는 가난 혹은 청빈
을 복음적 권고 중 하나로 바라보며, 그렇게 가난을 한 개인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완성을 위한 수단 혹은 도구로
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와 초기 동료 형제들에게 있어서 이 가난은 완벽함이나 수덕 생활을 위
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분명한 삶의 원리와 태도이자 실제적인 삶의 계획이었다. 따라서 작은 형제들의
『수도 규칙』에는 공동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원칙이 법제화 되었다(당대의 주류 수도
생활 양식이던 베네딕토회 생활 양식에서는 공동 소유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프란치스칸들은 또한 세상에 펼쳐진 피조물 역시 하느님 선의 표현으로 체험하였다. 예컨데, 보나벤투라
성인은 전체 피조계가 “내재적인 하느님의 말씀이 하느님 외부로 표현된 외적인 언어 체계”14라고 말하는데, 이는
곧 피조물이 외적이고 유한한 형태로 내재적이고 무한한 하느님에 관하여 말하는 ‘하느님의 책’임을 뜻한다. 또한,
보나벤투라는 피조물을 우리 인간의 지상 여정, 즉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 중에 우리가 하느님에게 오를 수 있는
사다리로서 해석한다.15 이렇게 전체 물질 피조계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창조 활동의 목적을 깨닫도록
도와주면서 우리 인간의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존재로 서 있는 것이다.16
위와 같은 전망에서 다음과 같은 사회 참여 영성이 도출되었다. 우선, ‘무상성(無償性, gratuitas)의 원리’를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을 당신 자신을 완전히 내어 주시는 ‘지극히 높은 선’으로 경험한다. 따라
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로 체험된다. 모든 것을 거저 받았으니, 감사
하는 마음과 행동으로 그 모든 것을 하느님께 다시 무상으로 돌려드리는 인간의 가난 태도가 바로 ‘무상성의 원리’
이다. 이러한 무상의 감사는 피조물 보호, 연대, 나눔 등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난다. 사실, 무상성을 이 세상 안
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회적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
과 선을 우리 삶의 태도와 행동으로 이 세상 안에서 증거 하는 것이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와 사회를 ‘변화시
키는 역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무상성의 실천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회 관계망 형성으로 이어지
며, 그 과정 안에서 ‘관계의 선’을 형성하게 된다. 이 ‘관계의 선’은 ‘공동선’의 필수적인 요소로서 각 개별자들에게 천
성적으로 부여된 선 뿐만 아니라, 각 개인과 단체가 어떻게 타인, 피조물, 세상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선으로 작용한다.17
12 김일득, 『프란치스칸 경제: 그 중심 영성과 중세 프란치스칸들의 가르침과 실천, 그리고 현대 경제를 위한 응답』, 서울, 프란치
스코 출판사, 2016, 35.
13 Thaddée Matura, 「Francis of Assisi - Theologian?」,『A Pilgrimage Through the Franciscan Intellectual Tradition』, eds. André
Cirino and Josef Rascal, Canterbury, U.K, Franciscan International Study Centre, 2008, 20.
14 Zachary Hayes, 「Bonaventure: Mystery of the Triune God」, 『The History of Franciscan Theology』, ed. Kenan B. Osborne,
New York, The Franciscan Institute, 1994, 74.
15 보나벤투라, 1, 2, 17-18.
16 참조: Hayes, 68.
17 ‘무상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라: 김일득, 67-69.


두 번째로는 하느님 선의 산물인 인간과 피조물에 대한 태도에 관한 것이다. 프란치스칸 전통은 모든 피조
물이 그 근원, 본성, 독특함에서 성사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피조물, 인간, 이 세상의 신비를 보고 관
상하도록 초대받고 있으며, 더 나아가 모든 피조물 안에 새겨진 천부적인 의미를 보호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세상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무한한 내적 언어가 유한한 형태로 외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렇게 이
세상과 피조물은 하느님의 책이자 거울이고, 그러한 하느님의 책이자 거울로서의 의미가 끊임없이 살아나야 한다.
그런데 이 세상의 성사적 의미와 존엄성에 대한 발견과 관상은 전적으로 우리 인간의 몫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 외의 다른 피조물은 하느님의 영광과 의지를 볼 수 없고, 따라서 거기에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피조물에게 사랑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그들의 의미를 더욱더 충만하게 차 오르게 하는
것 역시 우리 인간의 몫이다. 그렇게 모든 인간, 피조물과 이 세상이 다시 본래의 성사적인 상태로 복원될 수 있도
록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실, 18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하느
님이 새겨준 자신의 존엄성과 의미가 짓밟히는 상황 속에서도 마치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비참하게 남겨지고
말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전체 피조계의 운명은 인간의 자각과 사랑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19 이는 곧
우리 인간의 지상 여정이 모든 인간과 피조물이 하느님의 선함으로 양육되는 보다 더 형제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
회를 건설한다는 것과 같음을 의미한다.20
프란치스칸 영성의 경제적 적용: 프란치스칸 시민 경제
초기 프란치스칸들의 영성과 활동은 중세 유럽 시대에 ‘프란치스칸 시민 경제’로 진화되었다. 중세 프란치
스칸들은 모든 좋은 것을 감사롭게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원리 아래 사회 경제의 여러 주
제들(공동선, 돈, 자본, 상인, 시장 등)을 조화롭게 배치하며 당대의 경제 사회가 하나의 ‘형제적 공동체(fraternitas)’
로 변모될 수 있도록 힘썼다.
이 노력의 중심에는 13세기의 베드로 요한 올리비와 14세기의 시에나의 베르나르디노라는 두 명의 프란
치스칸 거장이 서 있다. 올리비는 수많은 프란치스칸 수도자들이 실행하던 소유없는 ‘가난한 사용(Usus pauper)’이
라는 생활 원리가 프란치스칸 성소의 중심에 놓여있다고 생각하였고21, 그 ‘소유 없는 사용’이라는 가난 원리가 불
완전한 형태로나마 이 세상에 적용될 수 있으리라 보았으며, 이 세상의 사물은 ‘소유 없는 사용’을 통하여 더욱더 값
지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22 나아가 이 자발적 가난이 평화로운 사회를 촉진할 것이라 믿었다.23 따라서 보다
더 형제적인 경제 사회 공동체의 건설을 위하여 단순한 돈으로부터 사회적인 부, 즉 공동선을 창출하는 ‘자본’을 분
리하였고, 공동선의 성취를 위한 상인과 시장의 필수적인 중요성을 가르쳤다. 그로부터 100년 후, 시에나의 베르나
18 ‘이 세상의 성사화’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라: 김일득, 69-70.
19 Hayes, 68.
20 이 세상에 대한 인간의 특별한 의무와 책임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김일득, 57, 72-73.
21 모리스 카르모디, 『프란치스칸 이야기: 프란치스칸 가족의 기원과 다양성의 역사』, 김일득 옮김, 서울, 프란치스코출판사,
2017, 354.
22 Giacomo Todeschini, 『Franciscan Wealth: From Voluntary Poverty to Market Society』, trans. Donatella Melucci, eds.
Micheal F. Cusato, Jean François Godet-Calogeras, and Daria Mitchell, New York, Franciscan Institute, 2009, 102.
23 카르모디, 『프란치스칸 이야기』, 354.


취하는 것도 허락되었다. 더 나아가 “상인이 자신의 재산과 부를 공동선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그 상인의 활동은 적
법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고결한 것” 28으로 이해되었다. 상인이 활동하는 시장의 기능 역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왜냐하면, 시장을 통하여 상품 공급이 이루어졌고, 공동체를 위한 부의 순환이 가능하였기 때문
이며, 이는 곧 공동선의 강화라는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준수주의 프란치스칸들은 공동선을 시민 시장 경제의 목적으로 두고 활동하였다. 당대에는 시장의
여러 요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으나, 준수주의 프란치스칸들은 반대로 더욱더 포괄적이고 형제적이
며 지속 가능한 사회 경제 공동체 건설을 위한 시장, 상인, 자본, 이익 등의 경제 요소들의 기능과 가능성과 그 중요
성을 알아보았다. 이들은 실로 경제 전문가들이었고,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자본주의자들이었다.29 왜냐하면, 공동
선을 위한 자본, 상인, 시장의 기능과 의미를 제대로 알아보았고, 그것을 실물 경제에 적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것의 결정판이 바로 중세 유럽의 초저리 대출 서비스인 몬테스 피에타티스(Montes Pietatis)였다.
중세 유럽 사회에서는 도시 사회에서의 유다인 인구가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였는데, 이는 전혀 새로운 경제적인
현상을 불러왔다. 많은 유다인들이 고리대금업에 종사하였고, 그 대출 이자는 무려 40~80%에 달하였다. 이러한 고
리대금업은 공동체의 부의 순환을 차단하였고, 결과적으로 가난한 이들의 인구를 증가시키고 공동체의 사회 경제
체계를 파괴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준수주의 프란치스칸들은 초저리 대출 금융 서
비스인 몬테스 피에타티스의 활동을 통하여 반-사회적이고 반-공동체적인 고리대금 업자들의 횡포에 맞섰고, 그들
로부터 발생한 가난과 사회 파괴 현상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몬테스 피에타티스는 지방 정부, 시민 사회, 부자들의
기금과 헌금을 통하여 예산을 마련하였고, 가난한 이들의 상업 활동에 대출하였는데, 그 이자는 4~12%였다. 이 기
금을 대출받을 수 있는 상업 활동은 공동선 증진을 위한 활동으로 적시되었다. 이렇게 몬테스 피에타티스는 비자발
적으로 내몰리거나 억눌린 가난을 제거 혹은 제한하는 활동을 통하여 더욱더 지속 가능하고 형제적인 경제 공동체
를 실제적인 방법으로 현실화하였다. 이는 곧 공동체에 속한 모든 이들이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
이었다. 또한, 공동체의 축적된 부와 부자들의 여유로운 재산을 공동체 안에 순환시킴으로써 분배 정의를 촉진하였
다. 이렇게 몬테스 피에타티스라는 은행은 프란치스칸 공동선이라는 개념과 자본이라는 경제 이론이 결합한 것으
로, 돈, 이익, 시장, 상인 등의 경제 개념들을 조화롭게 배열하며,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하여 재화가 ‘정의’와 ‘순환’
이라는 체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왔다.30
프란치스칸 경제 전통과 교회 가르침의 만남: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
2009년에 선포된 베네딕토 16세의 사회 회칙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은 프란치스칸적 통찰
을 대폭 적용하여 진정한 경제와 발전의 의미를 논한다.
우선 베네딕토는 무상성(無償性, Gratuitas)이라는 프란치스칸적 인간 태도를 확인한다. 베네딕토는 무상
성의 실천이 참된 시장 경제와 공동체를 건설한다고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상거래 관계에서 형제애의 표현인 무
상성의 원칙과 은총(증여)의 논리가 통상적인 경제 활동에 자리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생각과 행동으
28 Zamagni, 「Catholic Social Thought, Civil Economy,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71.
29 Todeschini, 7.
30 ‘몬테스 피에타티스’에 관한 더 자세한 사항은 다음을 참조하라: 김일득, 121-127.
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31 교황 베네딕토는 무상성 없이는 경제 정의도 없다고 강조한다: “오늘날에는 무
상성이 없으면 정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32 또한, 이 무상의 감사가 “여러 경제 주체들 사이에
정의와 공동선에 대한 책임과 연대 의식을 촉진하고 확산”33한다고 강조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선물
로 거저 받았으니, 그것을 다시 감사롭게 “실제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무상의 감사함의 삶의 태도가 이렇게 실물
경제 안에서 경제 정의와 연대의 원리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교황 베네딕토는 무상의 감사로움이라는 인
간의 태도를 현대의 사회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보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다시피 중세 프란치스칸들은 모두를 포함하는 경제 공동체와 경제 활동 안에서의 공동선의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러한 가치 역시 베네딕토의 회칙 『진리 안의 사랑』에 명확한 주제로 들어가 있다. 모
두를 포함하는 경제 공동체 건설은 이 경제 사회를 하나의 “형제적 공동체”로 바라보는 것이고, 그렇게 변모시키는
작업이다. 베네딕토는 진정한 발전은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경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34한다고
말하며, 경제적 참여의 포괄성을 보장하는 모든 사람의 안정된 고용을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35 이러한 평등성과
포괄성을 통하여 그 어떤 사람도 배제되지 않는 경제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 교황 베네딕토의 가르침이고,
이는 곧 경제 사회를 하나의 “형제적 공동체”로 변모시키는데 그 초점이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교황 베네딕토는
시장 경제와 경제 활동의 참된 의미를 정의함에 있어 중세 프란치스칸들이 강조하고 실천하였던 무상성의 원칙과
형제적 공동체의 가치를 그 중심에 둔다.
또한, 상업적 이익이 공동선이라는 궁극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는 수단이라면 그 상업적 이익 또한 유용하
다고 말한다.36 이는 상업적 이익을 공동선이라는 맥락에서 정당화하고 촉진했던 프란치스칸들의 역사와 맥을 같
이 하는 것이다. 교황 베네딕토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중세 프란치스칸들이 공동선을 이루고 가난한 이들의 사
회 경제 복귀를 돕기 위하여 행했던 초저리 금융 사업, 몬테스 피에타티스(신심의 산)를 직접 언급하며 그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교황 베네딕토 역시 현대 사회에서 가난한 이들을 파괴적인 고리대금업으로부터 보호할 장치인
소액 금융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며 제안한다.37
이렇게 『진리 안의 사랑』은 사회 경제 문제를 다룸에 있어 프란치스칸 핵심 원리들, 즉 무상성, 공동선을 위
한 형제적 공동체로서의 경제, 그에 따른 구체적인 경제적 적용과 실천(몬테스 피에타티스) 등 중세 프란치스칸 경
제의 중심 요소들을 그 핵심 메시지로 삼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스테파노 쟈망니(Stefano Zamagni)는 『진
리 안의 사랑』의 신학적 뿌리가 프란치스칸 전통 안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진리 안의 사랑』은 가톨릭 사회 교리 전
통에서 처음으로 ‘형제성’이라는 프란치스칸 원칙을 경제 분야에 적용한 사례라고 소개한다.38 또한, 『진리 안의 사
31 교황 베네딕토 16세, 『진리 안의 사랑』, 36항.
32 교황 베네딕토 16세, 38항.
33 교황 베네딕토 16세, 38항.
34 교황 베네딕토 16세, 21항.
35 교황 베네딕토 16세, 32항.
36 교황 베네딕토 16세, 21항.
37 교황 베네딕토 16세, 65항.
38 Zamagni, 「Globalization: Guidance from Franciscan Economic Thought and Caritas in Veritate」, 105.


랑』은 무상성, 상호성, 형제성이라는 그 동안 잊혀졌던 프란치스칸 시민 경제의 원리와 논리를 회복시키면서 현대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한 분명한 방향 제시를 하고 있다.


4. 사회적 기업
사회적 기업(Social entrepreneurship)이란?
지금까지 살펴본 프란치스칸 시민 경제를, 혹은 그와 유사한 지속 가능한 형제적 경제 체계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으로 사회적 기업이라는 영역이 각광받고 있다. 사회적 기업 활동은 단기 이윤 추구를 실질적인
최종 목적으로 삼는 일반적 사업체나 기업과는 전혀 다른 형태인데, 한국의 사회적 기업 진흥원에서는 사회적 기업
을 “영리기업과 비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재화, 서비스의 생산, 판매 등 영
업할동을 수행하는 기업(조직)” 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사회적 39 기업의 역사가 더 깊고 그 활동이 더 활발한 북미나
유럽 기준에서 보자면 다음과 같이 사회적 기업 활동을 정의할 수 있겠다: “고착된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한 사회적
충격을 목적으로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과 판매를 영리기업이나 비영리기업, 혹은 그 중간 형태로 행하는 상업 활
동.” 사실, 서구에서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를 몇 마디 문장으로 다 표현하기 보다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성격과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사회적 기업의 대체적인 개념을 잡는 것이 더 일반적이라 하겠다.
우선, 사회적 기업을 논하기에 앞서 일반적인 기업 소유주나 사업가(businessmen)와 진취적인 기업가
(entrepreneur)를 구분해 보자. 일반적인 기업 소유주나 사업가는 이윤 극대화의 동기로 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entrepreneur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진취적인 기업가는 다른 일반 사업가들은 그저 견디고 참아내려고 하는 일종
의 불편함, 부당함, 혹은 문제로부터 사업의 동기를 얻는다. 즉 일반적인 사업가가 사업을 시작하는 동기가 ‘이윤’이
라면, 엔트르푸르누어(entrepreneur)가 사업을 시작하는 동기는 ‘문제’이다. 따라서 이들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불
편한 고착 상태 혹은 불편한 평형 상태 그 자체를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하기 위한 하나의 기회로 삼는다.40 그리
고 이들은 완전히 새롭고 독특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 세상에 소개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문제로 파악한 그 지
점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불편한 고착 상태를 대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41 따라서 이들
은 대체로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42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repreneur) 역시 일반적 혹은 상업적인 진취적 기업가(entrepreneur)의 일반적
인 특질을 함께 공유한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가는 사회를 변모시키는 사회적 충격과 사회적 이익을 성취하는 데에
그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사회적인 문제나 사회적으로 불만족스러운 평형 상태로부터 사업의 동인을 찾기 때문이
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가를 일반적 기업가(entrepreneur) 차별화 시키는 지점은 바로 “사회적 이익” 혹은 “사회적
임무와 관련된 충격”이라고 하겠다.43 사회적 기업가들은 자연스럽게 이전에 무시되었던 분야, 배척당한 이들, 가난
39 사회적기업 진흥원, 「사회적기업이란」, http://www.socialenterprise.or.kr/kosea/info.do(accessed Apr 25, 2017).
40 Roger L. Martin and Sally Osberg, 「Social Entrepreneurship: The Case for Definition」,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 (spring: 2007), 32.
41 Martin and Osberg, 33.
42 일반적 혹은 상업적 엔트르푸르누어의 대표적인 예는 개인 컴퓨터 프로그래밍 시스템을 개발하고 시장에 소개한 애플 컴퓨
터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 1950-)을 들 수 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을 참조하라: 김일득, 175-176.
43 Martin and Osberg, 35.
한 이들을 겨냥한 기업 활동을 벌이게 된다. 영리 추구와 관련해서 사회적 기업가들은 크게 세 가지 형태, 즉 순수
비영리형, 영리와 비영리의 혼합형, 영리 추구형의 세 가지 형태를 형성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적 기업가라는
개념을 아주 넓게 확장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44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가들이 영리
추구와 관련하여 혼합형의 모델을 지향하면서, 시장 경제 안에서 또한 시장 경제를 통하여 활동하고 있다. 바로 이
런 식으로 경제적, 사회적, 생태적 가치를 함께 생산해 내는 것이다.45
사회적 기업가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첫째, 이들은 사회에서 배척되고 내몰린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이미 고착화된 사회적 부당함을 파악한다. 둘째, 그들은 이러한 부당한 사회적 평형 상태를
하나의 기회로 파악하고 그들의 창의력, 용기, 영감을 통하여 완전히 새로운 사회적 해법을 시장 경제 안에서 소개
한다. 셋째, 이러한 새로운 사회 경제적 해법을 통하여 목표 그룹의 고통을 완화하고, 이전에는 무시되고 묶여있던
또 다른 사회 경제적 가능성을 사회와 경제 안으로 흘려보내며, 사회 안에 새로운 안정된 사회적 평형 상태를 구축
한다. 또한, 새롭게 도입된 평형 상태 주위로 안정된 생태계를 창조하고, 사회 전체와 목표 그룹의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한다.46 사회적 기업가들은 이런 방법을 통하여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입증하며, 나아가
사회의 여러 자원과 자본을 그동안 무시되었던 사회 문제로 돌리는 역할을 한다.47
가톨릭-프란치스칸 사회적 기업의 가능성
가톨릭-프란치스칸 사회적 기업의 가능성과 그 모범적인 사례는 이미 중세 프란치스칸들에 의하여 발전
된 프란치스칸 전통 및 경제 이론에 의해서 명백하게 증명되었다. 첫째, 프란치스칸 전통은 사회의 불공정하고 부
당한 평형 상태와 중요한 사회 경제 문제들을 판단할 수 있는 프란치스칸 영성과 사회 경제 철학을 제공한다. 프란
치스칸 전통은 인간과 모든 피조물의 천부적인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며, 무상성과 자발적 가난이라는 철학에 기초
하여 모든 사회 관계망 안에서 올바른 관계를 추구한다. 공동선, 즉 하느님의 본성을 반사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를
묶는 그 공동선에 근거하여, 프란치스칸 전통은 더욱 더 포용적이고 형제적인 경제 공동체를 꿈꾸고 실행하였다.
바로 그러한 노력 안에서 중세 프란치스칸들은 그 어떤 사회 구성원도 사회 경제적 맥락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도
왔다. 일반적인 사회 기업가들은 다소간 주관적인 사회적 판단에서 사회적 기업을 시작해야 하는 것에 비해서, 현
대의 프란치스칸들은 중세 프란치스칸들의 노력과 실천에 근거하여 사회 경제적 문제들을 파악하는 데에서 더욱
더 분명한 신학적이고 영성적이며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둘째, 프란치스칸 전통은 실제적인 경제 이론을 제공한다. 따라서 프란치스칸 사회적 기업은 그 이론의 현
대적 적용을 통하여 현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에도 큰 무리 없이 진입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의 경제 활동을
통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방법으로 그 기업 활동이 안정화 될 수 있고, 그 와중에도 여전히 사회적 기업의 첫 번째
목표인 사회적인 충격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프란치스칸 경제 이론은 공동선을 위한 기업가적인 위험과 활동에서
44 Martin and Osberg, 30.
45 John Elkington, and Pamela Hartigan, 『The Power of Unreasonable People』, Boston, Harvard Business Press, 2008, 3-4.
46 Martin and Osberg, 35.
47 Fillipe M. Santos, 「A Positive Theory of Social Entrepreneurship」, 『Journal of Business Ethics』 (2012) 111, 335; 사회적 기
업의 대표적인 예는 200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1940-)가 창설한 방글라데시의 그라
민 은행(Grameen Bank)을 들 수 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을 참조하라: 김일득, 179-181.
창출되는 그런 금전적인 이윤은 적합하다고 인정하였다. 또한, 프란치스칸 전통은 단순한 돈으로부터 사회적 가치
를 창출하는 가능성이 있는 재정적 자산, 즉 자본을 분리하였다. 자본은 가난한 사람들이 존엄한 생활을 영위하도
록 돕는 핵심 보조 도구이고, 또한 공동선을 위한 그들의 가능성을 개발하는 필수적인 도구로 이해되었다. 더 나아
가 프란치스칸 경제 이론은 시장이 가지는 중요성을 놓치지 않는다. 시장은 기업가들이 중요한 공적인 역할을 수행
하는 장이고, 공동체의 부를 순환시키면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수혜를 가져다주는 필수적인 경제 요소 중 하
나이다. 바로 이런 시장의 체계와 기능 안에서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하느님과 가난한 이들에게 돌려준다는 프
란치스칸 가난이 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구체화 될 수 있었다. 프란치스칸 사회적 기업은 바로 이러한 프
란치스칸 시장 이론을 바탕으로 실제 시장 경제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가톨릭 교회 역시 프란치스칸 경제 해법에 큰 관심을 보인다. 특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진리 안의
사랑』은 무상성(gratuitas), 형제성(fraternitas) 등의 프란치스칸 경제의 핵심 가치들을 현대 시장 경제에 반드시 적
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교회의 입장은 더 형제적이고 포용적인 경제 공동체를 건설하라는 프란치스칸들
을 포함한 모든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초대일 것이다.
이상적인 프란치스칸 사회적 기업의 모델은 이미 준수주의 프란치스칸들에 의하여 시작되었던 몬테스 피
에타티스를 통해서 제시되었다. 당대의 프란치스칸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사회적으로
고착되고 불만족스러운 평형 상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당대의 초고리 대출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
으며, 가난한 이들의 인구를 증가시키고, 부의 순환을 가로막고 있었다. 프란치스칸들은 바로 이런 상황을 프란치스
칸 영성 전통 안에서 바라보고 분석하였으며, 당대의 시장 경제 안에 몬테스 피에타티스라는 경제적인 해법을 제시
하였다. 당대의 프란치스칸들은 아마도 파괴적인 고리대금업 자체를 근절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을지 모른다. 그러
나 이들은 오늘날의 사회적 기업가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새로운 해법을 시장에 도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더불어
이들은 이 해법을 통하여 단지 가난한 이들이라는 목표 그룹만의 변화를 노리지 않고, 더 나아가 전체 사회를 하나
의 포용적이며, 형제적인 공동체로 변모시켜 나갔다. 시장, 이익, 자본 등의 이익 경제의 필수 요소들을 끌어안음으
로써, 당시의 몬테스 피에타티스는 실제 시장 경제 안에서 자립적인 경영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현대의 사회적 기업의 활동 영역이 대단히 광범위하듯이, 가톨릭-프란치스칸 전통에 근거한 사회적 기업
역시 그 활동의 폭이 대단히 넓을 것이다. 공동선을 위한 이윤과 자본 창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제품이나 서비스의 생산과 유통과 소비에 참여하는 모든 이와 공동체 전체가 진정한 의미의 수혜와 이익을 누리도
록 기업 활동을 설계하면서, 지구 환경 피조물, 청정 에너지, 윤리적 생산과 소비, 교육, 초저리 대출 은행, 협동조합
등 무한히 넓은 구체적인 사업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겠다.48 다만, 주지해야 할 점은 어떤 목적이나 형태의 사업
을 펼치든 “무상성”과 “형제적 경제 공동체 건설”이 가톨릭-프란치스칸 사회적 기업의 “목표”이자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며, 그렇게 가톨릭-프란치스칸적 사회적 충격의 도모를 통하여 이 세상을 보다 더 지속 가능한 형제적 세상
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48 사회적 기업의 구체적인 사례는 많은 자료를 통해서 접할 수 있겠지만,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의 Santa Clara 대학이 운영하
는 Miller Center for Social Entrepreneurship과 그곳에서 매년 발표하는 GSBI Showcase(youtube 구독 가능)가 특별히 도움
이 된다 하겠다. 한국의 사회적기업 진흥원(http://www.socialenterprise.or.kr/index.do)에서도 유용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5. 결론을 대신하여
이 세상은 인간의 여정 안에서, 인간의 여정을 통하여 하느님께 돌아가고 있다. 오직 인간만이 이 세상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과 의지와 사랑을 알아볼 수 있고, 그것을 복원시킬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
다. 교황 프란치스코도 “모든 피조물은 우리와 더불어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공동의 도착점, 곧 하느님을 향하
여 ……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49 인간이 이 세상에 대해서 가지는 특별한 의무를 강조한다. 이
같은 세상과 인간의 특별한 의무에 관한 시각은 우리의 사회 경제적 실천의 의미를 더욱더 심원하게 만든다. 왜냐
하면, 인간의 지상 여정의 중요한 소명 중 하나가 곧 다른 모든 사람과 피조물을 평화로운 ‘완성’으로 끌어안는 것이
라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세상 안에서 평화로운 완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선이 이 세상에
더욱더 충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곧 모든 인간과 피조물이 하느님의 선함 안에서 양육되는 보다 더 형제적이
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든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프란치스칸 시민 경제의 원칙과 목적 모두 지극히 높으신 선이신 하느님에게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하
느님은 지속적인 자기-나눔이신 삼위일체이다. 이처럼 삼위일체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나눔으로써 존재하기에 하
느님은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존재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하느님의 존재하는 방식이 내어줌이라면 하느님은 완벽
한 가난으로서 표현된다. 삼위일체는 이 가난을 통하여 참된 형제적 공동체를 건설한다. 왜냐하면, 삼위일체는 완벽
하고도 지속적인 자기-통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위일체는 완벽한 경제이다. 왜냐하면, 삼위일체는 완벽하고도
지속적인 사랑과 선의 자기-순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제 활동을 한다는 것은 곧 참된 형제적 공동체
를 건설한다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삼위일체의 본성의 표현으로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선을 우
리의 모든 삶의 맥락 안에서 - 특별히 사회 경제적 맥락 안에서도 - 구체적으로 실현하도록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성소이고, 더 나아가 우리 삶의 계획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올바른 경제적인 선택과 활
동을 통해서, 또한 사회적 기업과도 같은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사회 경제 참여를 통해서 보다 더 형제적인 경제 사
회 공동체 건설에 이바지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이 초대에 응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모든 이들과 피조물과의 관계를
우리의 사회 경제적 행동 안에서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며, 하느님의 선이 충만한 형제적 경제 사회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49 교황 프란치스코, 『찬미받으소서』, 83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