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회 자료실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Margaret K 2018. 2. 1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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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isi Basilica San Francesco

Assisi Basilica San Francesco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 관하여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사료는 1228년 3월 29일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작은형제회의 엘리아(Elia Bombarone) 형제가 교황 그레고리오 9세의 이름으로

시모네 푸차렐로 (Simone di Pucciarello)가 성 프란치스코의 시신을 모시기 위한 성당 하나를

 건축하도록 기증한 땅을 받아 들인다는 것입니다.


1228년 7월 17일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낙원의 언덕'(Collia Pardiso)이라 불렀던 언덕 위에

성전 건축의 초석을 축성했다고 합니다.  축성 후 공사 진척이 늦게 이루어져서 형제들은 교황에게

성당 건축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였고 그 결과로 세개의 칙서가 반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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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isi Basilica San Francesco Chiostro


saint francis basilica photo




세개의 칙서 중에서 두개의 칙서가 나중에 공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1266년 3월 28일 클레멘스 4세가

칙서를 반포하였고, 1288년 5월 15일 첫 프란치스칸 교황인 니콜라오 4세가 칙서를 반포합니다. 

이러한 칙서의 영향으로 당대에 가장 유명했던 피렌체, 시에나, 그리고 로마의 예술가들을 아씨시로 데려올 수

 있었고 그들은 아씨시 대성당의 건축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367년에 모든 공사가 끝났으며, 그 후에 변경된 것은 성당 지하묘소의 건축과

외부의 일부 첨가 그리고 인접한 수도원의 확장이었다고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


1230년 4월 22일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칙서로 성인의 유해를 모시게 됨으로써 이 성당이 전 형제회의

'머리요 어머니'가 될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1230년 5월 25일 성 프란치스코의 시신을 성 조르죠 성당에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래로 옮기는 행렬이 있었는데 전 세계에서 온 2,000명 이상의 형제들과 아씨시와

인근의 많은 주민들, 여러 고위 성직자들, 무장한 기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무덤은 1925년에서 1932년 사이에 우고 타르키(Ugo Tarchi)의 설계로 개조된 것이라고 합니다.


기둥 가운데 부분에 석관이 있고 거기에 시신을 모셨다고 합니다.


기둥을 중심으로 앞과 뒤가 열린 타원형 부분이 있고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을 중심으로 앞 오른쪽에

루피노형제의 무덤, 사진의 오른쪽 뒤에 안젤로 형제의 무덤, 왼쪽 뒤에 맛세오 형제의 무덤,

앞 왼쪽에 레오 형제의 무덤이 있습니다. 1층 성당에서 내려오는 계단의 중앙 부분에,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 맞은편에 세떼솔리의 야고바 부인의 무덤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녀를 '야고바 형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1층에는 여러개의 경당이 있고 중앙 제대가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 위에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꼰벤뚜알 작은형제회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1층 성당에서

주로 성무일도와 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2층에는 주랑 양쪽 벽의 밑부분에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와 기적들을 프레스코 화풍으로 그린

28폭의 그림이 있습니다. 거의 모두가 지오토에게서 영감을 받았으며, 지오토와 그의 협조자들의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의 다섯 폭의 그림들은 '성녀 세실리아의 대가'의 작품으로 여겨지는데

이 그림들은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에 있는 성녀 세실리아의 생애 그림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아씨시 대성당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합니다. 왼쪽부터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가 기도하던 중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서 '프란치스코야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다음은 아씨시 귀도 주교 앞에서 아버지에게 받은 모든 것을 돌려주는 모습,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이 꿈속에서 프란치스코가 라테라노 성당을 받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사진의 출처는 Web Gallery of Art 입니다.


대 성당 끝 부분 식스토 4세 광장이라는 곳입니다.


가운데 우물이 있고 군데 군데 손상된 그림이 보입니다.


1층 성당 후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계단을 올라와서 나오는 문 위에 있는 그림입니다.

프란치스코가 십자가를 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왼쪽 언덕 끝 부분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모습입니다. 


움브리아 평원에서 본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모습입니다.



윗 사진 희게 보이는 회랑 끝부분에서 찍은 사진인데 벽에 누군가의 석상이 있습니다.


움브리아 평원을 내려다 보면서 강복하고 있는 프란치스칸 교황인 식스토 4세의 석상입니다.


대성당 회랑에서 본 움브리아 평원의 모습입니다.


구름과 아치의 모습이 어울려서 찍었습니다.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한 종탑의 모습입니다.


1202년 아씨시와 페루지아간의 전쟁이 일어나서 프란치스코가 기사로 전투에 참여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잡혀서 포로가 되어 페루지아에서1년간 감옥생활을 하고 1203년 가을에 아씨시와 페루지아간의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감옥생활을 마치고 아씨시로 돌아 옵니다. 감옥생활의 후유증으로 병상에 눕게 됩니다.



대성당 1층 문의 모습입니다.

왼쪽 문 가운데에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클라라의 모습이 있습니다.





출처  http://blog.daum.net/ofmjohn/15720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