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 성인. |
2013년 아르헨티나의 베르골료 추기경이 새 교황으로 선출되고 자신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결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프란치스코는 교회사에 한 획을 그은 성인임에는 분명하지만, 그의 이름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 모습을 떠올리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1228년 그가 성인품에 오른 후 약 8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떤 교황도 그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교회와 형제 안에 머무는 삶 실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1~1226)는 일반적인 교회 성인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인물이다. 그는 죽음으로 신앙의 증인이 된 순교자도 아니었고, 고매한 학식의 신학자도 아니었으며, 추앙받는 성직자도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아시시의 가난뱅이’라고 불렀고, 그 역시 스스로를 “무지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만큼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다. 미래를 기획하는 인간적인 지혜나 주도면밀함, 청중을 휘어잡는 달변의 재능도 없었다. 단 한 번도 다른 이들의 지도자가 되려 하지 않았으며, 항상 교회와 형제 아래에 머무는 삶을 실천했다. 그의 아래로 몰려온 모든 형제들에겐 “거룩한 교회의 발아래 항상 매어 순종”하는 삶을 권고했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가 되고자 했고 만인의 아래에 머무르려고 했던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거대한 영성 운동의 시발점이 됐고, 그의 이름은 시대를 초월해서 그를 따르려는 모든 이들의 이름이 된다. 그것은 그의 작음이 인격적인 나약함이 아니라 그의 고유하고 독특한 예수 그리스도의 체험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의 한 측면이 아니라 탄생에서 승천에 이르는 그분의 전(全) 차원,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말씀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가난하고 겸손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체험하고 그 사랑에 매료됐다.
가난과 겸손의 길을 걷다
그는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 ‘그리스도 찬가’에서 노래했던 것처럼,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께서 스스로 당신의 신적 위치를 버리시고 종의 신분이 되셨고 초라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시어 평생을 가난한 모습으로 순례자처럼 사셨으며 아버지 뜻을 따르시어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셨고 지금은 하늘에 올라 영광 중에 계시면서도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낮춰 우리를 찾아오시는,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한없이 경탄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에게 삶의 가장 뚜렷한 목표이자 계획이 됐다.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변함없는 지향점은 다름 아닌 복음 속 예수 그리스도와 집요하리만큼 철저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이 체험은 그가 형제 공동체를 움직이는 고유한 관점의 원천이 된다. 그와 형제들의 삶의 모범은 사도들도 초기 교회 공동체도 여느 성인들도 아닌, 복음 속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그 자체였다. 그는 형제들을 위해 작성한 회칙(인준 받지 않은 회칙) 1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형제들의 회칙과 생활은 순종과 정결 안에 소유 없이 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 형제들 앞에 펼쳐진 회개의 여정에서, 자신들보다 앞서 걸어간 이들의 숱한 발자취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발자취를 발견하니,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것이었다. 그와 형제들은 오로지 그분의 가르침에 온 마음을 기울이는 가운데 그분이 남기신 발자취 위에 자신들의 발을 하나씩 올려놓으며 회개의 여정을 걸어간다. 그분께서 가난하고 겸손하게 사셨으니 그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여정 역시 필연적으로 가난과 겸손을 동반한 여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모두 빼앗긴 사람이었다. 예수만이 그의 모든 지혜이자 이정표이며 계획이었다. 그는 예수를 통해서 하느님과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고 이해했다. 성 보나벤투라는 「프란치스코 대전기」에서 프란치스코의 삶을 이렇게 요약한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채로, 옷 벗긴 채로, 그리고 커다란 고통 속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프란치스코도 모든 면에서 그분과 같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 확실히 그는 가장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었다! 그의 유일한 갈망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었고 그분을 완전히 본받는 것이었다.”
거대한 영성 운동의 씨앗으로
이처럼 그의 지향은 단순했다. 삶은 길지 않았지만, 복음 속 겨자씨처럼 거대한 영성 운동의 씨앗이 되고 뿌리가 됐다. 그의 이름은 개인에게 붙여진 호칭을 넘어서서 영성 운동과 가족들의 이름이 됐다. 그리고 800여 년이 지난 오늘, 교황은 이러한 프란치스코를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했다. 이는 가난하고 겸손한 프란치스코가 고귀한 교황의 자리에 올라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황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교회가 가난하고 겸손한 프란치스코의 자리로 내려와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인식과 반영일 것이다.
“프란치스코야, 무너져 가는 나의 교회를 고쳐라.” 프란치스코가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들었던 하느님의 목소리는 오늘날 우리의 귓전에도 생생하게 울리고 있다. 속속들이 세속화해 가고 있고, 점차 나아지리라는 희망보다는 점점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절망이 지배적인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새로운 희망과 쇄신의 힘을 얻을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프란치스코에게 길을 물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삶의 실천을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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