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회 자료실

물과 성령으로 환골탈태하다/평화신문

Margaret K 2018. 1. 13. 03:56
물과 성령으로 환골탈태하다
-최문기신부-


▲ 한센병 환자와의 만남은 프란치스코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했다. 사진은 영화 ‘하느님의 어릿광대’에서 프란치스코가 한센병 환자를 만나는 장면.





프란치스코가 ‘죄 중의 삶’에서 벗어나 ‘회개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방황과 내적 갈등, 그리고 기사가 되어 전쟁에서 공을 세우겠다는 꿈의 좌절, 포로 생활과 열병으로 인한 병고로 인간 육신의 나약함과 한계 등을 체험하는 가운데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고집과 욕망이 점차로 무너지는 과정을 거친 후에 일어난 변화였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전기작가 토마스 첼라노가 표현한 대로 “책벌로밖에는 고칠 수 없는 인간의 고집”이 허물어지는 과정이 그에게는 반드시 필요했다. 

긴 시간에 걸쳐서 조금씩 허물어지던 고집의 성벽이 예리코 성처럼 일거에 붕괴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한센병 환자와의 만남이었다. 프란치스코의 삶을 전하는 대부분의 전기는 약간의 내용 차이는 있지만, 그가 회개 직전 한센병 환자와 특별한 만남이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 



입맞추자 사라진 한센병 환자

“어느 날 아시시 아래 있는 들판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프란치스코는 한 한센병 환자를 만났다. 전혀 뜻밖에 만난 것이어서 프란치스코는 그를 보았을 때 혐오감을 느꼈다. 그때 그는 그리스도의 기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완전한 자가 되어야 하며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결심을 상기했다. 그는 즉시 말에서 내려 그 불쌍한 사람에게 달려가 입을 맞추었다. 그 한센병 환자는 무언가 얻기를 바라며 손을 내밀었다. 프란치스코는 돈을 그 손에 쥐여주고는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말에 올라타 사방으로 이리저리 똑똑히 바라보았으나 거기엔 한센병 환자의 자취도 없었다. 그는 깜짝 놀랐으나,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넘쳤고 미래에 더욱 열심히 일할 것을 결심하며 큰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 일이 프란치스코가 실제로 체험한 사건인지 아니면 상징적인 일화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회개 초기에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에게 봉사하는 시기가 있었고, 그 시기의 체험이 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마침내 본격적인 회개의 삶에 첫발을 딛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프란치스코 자신이 유언의 가장 첫머리에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내가 죄 중에 있었기에 한센병 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올 때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유언이 작성될 당시 프란치스코는 이미 살아있는 성인으로 세상의 존경을 받고 있었고, 그와 관련된 신비롭고 놀라운 수많은 이야기가 세간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유언에서 그러한 이야기들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라 베르나 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흔을 받았던 일생일대의 사건에 대해서도 철저히 입을 닫는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일생을 통해 이루셨던 수많은 일을 모두 제쳐놓고, 바로 이 한센병 환자와의 만남을 유언 첫머리에 기록한다. 죽음이 자신에게 가까워졌음을 느꼈을 때 그의 뇌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이 사건은 그의 평생에서 가장 큰 인상을 남겼으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죄 중에 있던 그가 역겨움과 혐오감을 억누르고 한센병 환자에게 다가가 포옹하고 입을 맞추었을 때,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의 아들 프란치스코는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이는 인생의 여느 체험들처럼 부분적이고 감각적인 인성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의 외면과 내면을 송두리째 부수고 무너뜨리고 뒤집어놓은 사건이었으며, 이 체험으로 그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인간적 결단도 하느님이 이끄셔


보나벤투라의 대전기와 유언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차이가 발견된다. 전기에서는 젊은 프란치스코가 한센병 환자를 만났을 때 혐오감을 억누르고 다가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그리스도의 기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완전한 자가 되어야 하며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결심”이었다고 전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자신의 결심,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결단이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유언에서는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자신의 결심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이끄심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삶의 매 순간순간에는 나의 판단 나의 결심이라고 생각했던 일들마저도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그 모두가 주님의 이끄심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주님께서 나 프란치스코에게 이렇게 회개 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회개 생활의 본질은 자기 자신의 포기이다. 내가 할 수 있음을 포기하고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센병 환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산산이 부서진 프란치스코는 멸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태어났다.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로 상징되는 세상의 아들이 아니라, 한 분이신 하느님의 아들로 탄생하였다.

인간은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노력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변화하고 개선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전 인격의 변화, 영혼과 육신의 성화는 주님의 이끄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3.5)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다시 태어날 것을 요청하신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조금 더 도덕적이고 착한 사람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환골탈태함을 의미한다. 하느님은 프란치스코가 역겹게 받아들였던 것을 제거해 주시는 대신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 역겨웠던 바로 그것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으며 변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새롭게 태어남을 통해서 그는 새롭게 보고 다르게 느끼기 시작했다. 과거에 역겨웠던 그것이 더는 그의 발목을 잡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이 그의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다가왔다. 이제 프란치스코에게는 더 꺼릴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주님의 갑옷과 창으로 무장한 그리스도의 기사는 출정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