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회 자료실

교회와 사제에게 순명했지만 쓴소리 아끼지 않아/가톨릭 평화신문

Margaret K 2018. 1. 13. 03:52
교회와 사제에게 순명했지만 쓴소리 아끼지 않아
-최문기신부-


▲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꿈.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무너져 가는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꿈을 꾼 후 작은 형제들의 삶을 인준한다.



세속을 떠난 프란치스코는 미래에 대한 어떤 계획도 스스로 세우려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삶이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만 인도되기를 원했다.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한 순종의 귀감 속에서 기다렸기에 결코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았으며 끈기 있게 하느님의 뜻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기다림이 수동적이거나 맹목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시기는 프란치스코가 하느님 뜻의 수용자로서 합당한 이가 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기간으로, 그는 그 시간 동안 끊임없이 기도하고 이웃과 교회에 봉사하며 겸허하게 하느님의 뜻을 기다렸다.

특히 그는 유언에서 세속을 떠난 이후 자신을 지탱해준 것이 바로 성당과 사제에 대한 믿음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주님이 성당에 대한 크나큰 신앙심을 주셨기에, 다음과 같은 말로 단순하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로써 세상을 구속하셨사오니, 우리는 여기와 전 세계에 있는 당신의 모든 성당에서 주님을 흠숭하며 찬양하나이다.’ 그 후 주님이 거룩한 로마 교회의 관습을 따라 생활하는 사제들에 대한 큰 신앙심을 주셨고 또한 지금도 주시기에, 만일 그분들이 나를 학대한다 해도 그분들이 받은 품 때문에 나는 그분들에게 달려가기를 원합니다.”

또한 그는 회개 초기에 다미아노성당 십자가 앞에서 “프란치스코야, 가서 나의 집을 고쳐라. 이렇게 쓰러져 가는 것이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데, 이는 일찍부터 그가 자신의 소명이 교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했음을 의미한다.

 

사제의 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프란치스코는 젊은 시절부터 교회와 사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회개의 삶으로 완전히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때부터 이미 그는 교회와 가난한 사제를 돕길 원했고, 아버지와 결별할 때도 사회법정이 아니라 교회법정에서 심판받기를 원했기에 아시시 관할 주교 앞에서 재판을 받았다. 함께 살기를 원하는 형제들이 모였을 때 그는 자신들이 선택한 삶의 양식을 로마 교회에서 재가받기를 원했고, 형제회를 지켜줄 보호자 추기경을 교황께 청하도록 회칙에 명문화해 놓는다. 그리고 지금과 미래의 모든 형제들에게 늘 교회에 순명하며 사제들을 주인처럼 두려워하고 존경하며 사랑하라고 마지막까지 권고한다.

이러한 존경과 신뢰의 마음이 교회와 사제의 외적이고 인격적인 모습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 당시 교회와 사제의 모습이 복음적 관점에서 볼 때 그렇게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교회는 밖으로 수많은 이단의 공격에 직면하고 있었지만 이를 극복할 영적인 힘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안으로는 신자들에게 신앙의 위로와 기쁨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자질과 인격이 부실한 사제들도 많이 있었으며, 프란치스코의 전기 속에서도 그가 회개 초기에 사제들로부터 멸시와 푸대접을 받았던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것을 볼 때, 그가 사제들을 인간적으로 훌륭하게 본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부정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가 교회와 사제들에게 커다란 존경심과 한결같은 신뢰를 보였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서 사제의 손을 통해서 드러나는 말씀과 성체의 성사 안에서 지상에서 가장 뚜렷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교회와 사제를 존경하고 그들에게 순명하는 이유)는 사제 자신들도 성체를 영하고 사제들만이 다른 이들에게 분배하는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지극히 높으신 아드님을 내 육신의 눈으로 결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결 고리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교회와 사제는 곧 베들레헴의 말구유였고 예루살렘의 십자가였다. 아기 예수님이 말구유에 계실 때, 가시관의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계실 때 그분의 가난과 겸손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듯이, 부족한 교회와 사제의 손안에서도 그분의 거룩함은 결코 감해짐이 없으며 오히려 증대된다.

이런 이유로 프란치스코에게 교회와의 유대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가장 확실한 연결이며, 교회와의 단절은 예수 그리스도 현존과의 단절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굳은 믿음은 당시 유럽 사회에 성행하던 이단과 반교회 청빈 운동으로부터 자신과 형제들을 굳건히 보호하는 성벽이 되어 주었다.

물론 교회와 사제들에 대한 그의 사랑과 존경심이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특히 사제들을 향하여 자신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그분께 봉사함에 있어서 올바른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그리고 강력하게 권고한다. “나의 사제 형제들이여, 외적인 것만을 위반한 사람이라도 주님의 선고로 용서 없이 사형받았다고 기록된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십시오. 하물며 ‘하느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해 준 계약의 피를 더럽히고 은총의 성령을 모독한 자는 얼마나 더 가혹하고 더 큰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겠습니까? ”

평범한 사람이 지은 죄보다 경찰이나 법관의 죄는 더욱 무겁게 처벌된다. 같은 죄라 하더라도 책임이 있는 자는 가중해서 처벌받기 때문이다. 세상의 죄가 그러할진대, 제단에 봉사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무책임한 자세로 성무를 거행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직접적으로 모멸하는 것으로 더욱 무겁게 처벌될 수밖에 없다. “주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을 건성으로 하는 자, 천벌을 받으리라.’ 그리고 이 말을 진심으로 마음에 새기려 하지 않는 사제들을 그분은 이렇게 단죄하십니다. ‘너희의 축복을 저주하리라.’ ”

프란치스코와 교회의 강력한 결합은 단순히 교계제도의 외적 권위에 복종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양 떼인 교회 안에서 성령께서 주신 사명을 실천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세상에 증언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는 교회를 자신이 받은 모든 은사가 펼쳐지는 장으로 이해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을 철저하게 지향하는 가운데에 끊임없이 권고하고 용서하며 평화를 이루어 나아가는 삶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가 “가서 나의 집을 고쳐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방법이자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