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머레이 보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서론

Margaret K 2017. 12. 18. 21:19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서론


그의 생애는 1182년인 8세기 전의 움브리안 계곡에 있는 한 작은 이태리 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옷감 장수인 피에뜨로 베르나르도네와 프랑스인 아내 피카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는 요한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데 후에 그의 아버지가 프란치스코로 바꾼다. 그는 청년기를 비교적 사치와 호사와 음악 속에서 동년배들의 탐나는 지도자 노릇으로 보낸다. 그는 매력적이고 위트가 있으며 친절하고 유머를 잘 구사하는 잚은이이며 재산을 펑펑 쓰는 호방하면서도 응석받이 아들이다. 그리고 그의 불타는 야망은 그의 영웅들 즉 아더왕 원탁의 전설적인 기사들과 샤를르마뉴 대제의 용사들처럼 기사가 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20세 되는 때에 아시시와 그 이웃 도시인 페루지아 사이에서 벌어진 작은 전투에 나섰다. 아시시의 시민들은 참패하고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와 페루지아 사이에 있는 한 조그만 마을인 폰테 산 지오반니에서 포로가 되었다. 1년간 그는 동료들을 격려하면서 페루지아 감옥에 있었고 그가 생애 내내 처하게 되는 어려운 상황을 대체로 최선의 것으로 만든 것처럼, 그렇게 지낸다.

 

프란치스코는 그의 부나 지위 때문에 일반 시민이 아닌 귀족들과 함께 수감된다. 그러한 구분과 격리는 젊은 프란치스코를 붙어 다니며 괴롭히기 시작한다. 귀족들의 좀 더 나은 숙소라 해도 축축하고 지저분한 감옥의 상태는 프란치스코의 민감한 체질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여 피에뜨로 베르나르도네는 병을 이유로 그의 아들을 몸값을 치르고 석방시킬 수 있게 한다.

 

마침내 석방되어 고향 아시시로 돌아오자 프란치스코는 1204년 한 해를 병석에서 보내는데,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투옥이며 또 다른 시험의 해이다. 그리고 마침내 병상에서 일어나고 그는 아시시의 언덕들을 수심에 차 거니는데, 그 이유는 세상이 그 화려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빛은 프란치스코 안에서 사라졌다. 즉 그는 더 이상 어린아이의 밝은 눈으로 보지 않는다. 그가 그의 삶을 변화시키고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게 할 음성을 듣고 비전들을 보기 시작한 것은 그의 이러한 외로움의 사막에서이다.

 

첫 번째 음성은 스폴레토시에서 꾼 꿈에서 오는데, 프란치스코는 기사로 전쟁에 나가 우울함을 없애려는 또 다른 쓸데없는 시도를 하면서 거기에서 야영한다. 그는 벽들이 방패로 덮여진 한 성의 커다란 방을 보는데, 어떤 음성이 그것들을 프란치스코와 그의 추종자들의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는 꿈을 기사직에 관한 예언과 영광으로 잘못 이해하는데, 그때 또 다른 음성이 들려온다:

 

“프란치스코아, 주님을 섬기는 것이 더 나으냐, 아니면 하인을 섬기는 것이 더 나으냐?”

“오, 물론 주님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왜 너의 주님을 하인으로 바꾸려 하느냐?”

그리고 사무엘 예언자처럼, 프란치스코는 그에게 말하고 있는 음성을 알아본다.

“주님, 당신께선 제가 무얼 하길 바라십니까?”

“아시시로 돌아가라. 그곳에서 네가 무얼 해야 할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이 비전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프란치스코는 전쟁터에서 영광을 구하는 자신의 조급한 갈망 대신에 하느님께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는 아시시로 긴 내면의 여행을 시작한다.

 

홀로 아시시로 돌아올 때 프란치스코의 수치심은 얼마나 컸을까! 기사에게 있어서 최고의 시험은 용기이다. 그런데 그는 전투에서의 죽음보다 전투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어떤 것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프란치스코는 전투지에서 이탈한 고독한 기사가 되어 집으로 온다. 부끄럽고 초라하게 보이더라도 그의 확신에 대한 이러한 용기는 프란치스코의 인격의 보증이 되는데, 그래서 죽을 때까지 어떤 행위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신하면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물론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것을 프란치스코가 쉽게 그리고 한 번에 빠르게 결정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에게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일으킨다. 스폴레또에서 돌아온 후로 그해 내내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의 외곽에 있는 한 동굴에서 기도하며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분이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키도록 허용한다. 그 모든 투쟁 속에서, 꿈속에서 보았던 비전과 숙고를 거듭하며 프란치스코는 그의 기사적인 이상들의 기본 바탕을 매우 섬세하고 고귀하지만 동시에 어리석고 역설들로 가득한 어떤 것으로 변형시키는 현자의 돌을 발견하다. 즉, 기사가 군마에게 내려와 궁정의 어릿광대와 가수가 되는 것이다. 단지 그리스도를 향한 보통의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중세 사회라는 축소된 세계의 모든 이들의 삶들에 지혜를 갖고 영향을 끼치는 궁정의 어릿광대가 되는 것이다. 그는 듣는 사람이 되는데, 그 바보스러움이 현자들의 지혜보다 더 현명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어떤 인간의 삶에도 신비가 너무나 많은 것처럼 그에게 변화를 가져다주는 순간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프란치스코에게 일어나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의 결과인데, 그 누적된 영향은 그에게 더 깊은 마음의 움직임과, 그가 내내 향하고 있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가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자각하고 있었다면 이 모든 것을 알았을 터였다. 그의 체험들의 영향력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그는 주변의 목소리들, 자신의 환경의 목소리들과 그것들이 나타내는 가치들보다 더 진실한 내면의 음성을 듣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면의 음성은 그가 어느 날 무너져가는 작은 경당인 성 다미아노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중에 듣게 된 바로 그 음성이다. 즉 “프란치스코야, 너도 나의 집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는 가서 나의 집을 수리해 다오.”

 

실제로 성 다미아노 경당은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으므로, 프란치스코는 즉시 그 작은 교회를 재건하기 시작한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했기 때문에 주님의 더 큰 집인 교회 자체를 재건한데까지 가게 된다. 아시시의 가장 부유한 상인의 아들인 그가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의 상점에 있는 옷감 꾸러미를 훔쳐 말을 타고 이웃 마을인 폴리뇨로 쏜살같이 달린다. 그곳에서 그는 옷감과 말을 팔고는 성 다미아노 성당으로 걸어서 들어온다. 그는 그 돈을 자신을 알아보는 한 놀란 사제에게 주는데, 사제는 이 아낌없이 주는 행위가 프란치스코의 아버지가 모르거나 찬성하지 않은 채 일어난 것은 아닌지 당연히 의심했기 때문에 그 돈을 받기를 거절한다. 실망한 프란치스코는 창문턱 위에 그 돈을 던져 버리고 하느님의 교회를 재건하기 위하여 돌들을 구하러 아시시로 떠난다.

 

프란치스코의 삶의 또 다른 전환기: 하느님의 집을 돈으로써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구걸을 함으로써 얻어진 돌들로 재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거지에게 주는 돌들이 살아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주의를 끄는 일이 없이 거지처럼 입고 돌들과 선재를 구걸하며 돌아다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청년이 그렇게 할 때,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비웃음과 경멸로 바뀐다. 그래서 어느 날 프란치스코가 아시시의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을 때 군중은 그를 조롱하고 야유하고 있었다. 프란치스코의 아버지가 시끄러운 소리들을 듣고 무슨 일에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위하여 상점의 문가로 나간다. 그는 크게 경악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아들이 거리를 지나며 조롱당하는 것을 본다. 피에뜨로는 가족의 명예에 대한 이런 모욕을 몹시 화내고 있다. 불과 몇 달 전에 프란치스코가 옷감과 말을 팔았을때 피에뜨로는 그를 집으로 끌고와서 창고 방에 감금시켰었다. 그러나 피에뜨로가 사업차 여행을 떠나야 했을 때 피카 부인은 남편의 노여움을 무릅쓰고 프란치스코를 풀어 주었으며, 그 때 프란치스코는 즉시 성 다미아노 경당의 가난한 사제와 함께 살기 위하여 떠나갔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된 것이다. 그것은 피에뜨로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거리로 뛰어나가 아들을 아시시의 주교 앞에 끌어다 놓고는, 프란치스코가 옷감과 말에 대한 돈을 자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런데 어찌 되었던가; 프란치스코는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의 전례행위를 재현하듯 옷을 조용히 벗는다. 그리고 주교관 마당에 모여있는 군중 앞에서 아버지의 발 앞에 옷을 벗어 놓으며 그의 생애 중 가장 극적인 말로 공표한다: “여러분, 저의 말을 듣고 알아 두십시오. 지금까지 저는 베드로 베르나르도네를 저의 아버지라고 불러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느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였기에 어버지를 저토록 노엽게 하는 돈을 돌려 드리고 아버지의 소유인 제가 지금 몸에 걸치고 있는 일체의 옷가지들까지도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부터 베드로 베르나르도네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아버지를 거절하는 이 극적인 에피소드에서 프란치스코는 공적인 사람이 된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있는 모든 이들을 그가 행한 행위의 증인으로 초대한다. 그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공적으로 아버지에게서 떠나간다. 그리고 나머지 삶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행위에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여겨주기를 기대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람은 여전히 마음속에선 기사이다; 그는 명예와 고결함을 지닌 수도자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의 기준은 복음에 대한 기사도와 성실함이 될 것이며 그는 세상도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지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리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적인 여행들 중 하나가 시작되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집에서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프란치스코의 여정인 것이다.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하늘의 아버지는 에수께서 계시하신 아버지이며, 그분께로 가는 여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쫓아가는 그 길인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즉시 본격적으로 복음을 문자 그대로 살기 시작하였고 타협하지 않았으며 그의 삶의 모범은 다른 이들을 당기기 시작한다. 프란치스코를 추종한 많은 이들 중 첫 사람은 퀸타발레의 베르나르도란 아시시의 한 부유한 상인이다.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일어난 변화를 본 그는 그의 집으로 프란치스코를 초대한다. 저녁 식사 후에 두 사람은 잠을 자러 가고 프란치스코는 곧 잠이 든 척한다. 그러자 베르나르도는 잠이 든 척하고 코를 골기 시작한다. 베르나르도의 코고는 소리를 듣자 프란치스코는 침대에서 일어나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이시여”를 밤새도록 계속해서 반복하며 마루에 무릎을 꿇는다. 깜짝 놀란 베르나르도는 깊은 감동을 받고 아침에 하느님의 종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프란치스코에게 묻는다.

 

프란치스코의 응답은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는 그의 모든 태도에 한 열쇠가 된다. 그는 베르나르도에게 성 니콜라오 성당에서 거행되는 아침 미사에 함께 가지고 요청한다. 미사 후에 프란치스코는 세 번이나 복음서를 펴 달라고 사제에게 요청한다. 이것이 그 구절들의 내용이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 오너라.”

 

“길을 떠날 때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 지팡이나 식량자루나 신발이나 돈도 지니지 말아라.”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9,21: 루가 9:3; 마태 16,24)

 

그리고 그것이 베르나르도가 행한 것이고, 여기서부터 성 프란치스코 제1, 제2, 제3회에 입회할 형제자매들의 하나의 운동이 시작한다.

 

프란치스코가 사제에게 복음서들을 펴달라고 요청한 것은 커다란 의미를 내포한다. 바로 시작부터 아시시의 가난뱅이는 교회의 사람이 되는데, 이 사실은 하느님께로 가는 그의 개인적인 여정을 낭만화 시키면서 쉽사리 간과할 수 있는 사실이다. 프란치스코는 참으로 극단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교회 안에서 그 극단성을 주장한다. 그는 언제나 그와 그의 추종자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교회로 돌아간다. 그는 그의 마지막 유언에서 이렇게 쓴다:

 

“주님의 거룩한 로마 교회의 관습에 따라 생활하는 사제들에 대한 큰 신앙심을 주셨고 또한 지금도 주시기에, 만일 그분들이 나를 학대한다 해도...나는 그분들에게 달려가기를 원합니다.(유언 6)

사제 직분에 대한 존경이 너무 컸기에 그는 자신을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낮게 여겼고 결코 스스로는 서품을 받지 않는다. 그는 교회의 서품된 부제이지만 결코 사제는 아니며 자신의 수도회가 비성직 수도회가 되도록한다.

 

성 프란치스코의 유쾌한 이야기들 중 대부분은 그와 동료들이 초창기에 한 설교와 치유, 혹은 들판에서 일하거나 애긍을 청하러 다닐 때 함께 어울리며 지냈던 시절의 것들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의 매력은 그것들이 사랑의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며, 비유나 중세풍의 풍자방식으로 궁정의 어릿광대가 말한 이러한 긍정의 사랑이야기들이 마치 사도행전의 것들과 묘한 조율을 이루는데 있다. 거기에는 항상 십자가의 어리석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배경과 대조적으로 기사도와 대담한 행위와 예의바름이 있다.

 

초기 프란치스코 전승의 이야기들은 줄줄이 영혼의 열정적인 힘들과 그것들의 정화를 다룬다. 프란치스코가 나병환자들을 껴안음으로써 자신의 결벽증과 마음의 비좁음을 극복한 것과 같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구비오의 늑대를 길들일 때 그는 그 인간의 어두운 측면, 폭력적인 그림자 자아를 포착하게 되는데, 이것은 폭력에 대한 자신의 잠재성을 끌어안고 스스로 용기를 내어 바라보는 모습을 주님께서 구원하시도록 허용하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폭력과 대면하는 개인의 풍자적인 이야기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길에 대한 최후의 마무리와 승인은 그가 죽기 2년 전에 아시시에서 약 100마일 떨어진 북쪽에 있는 한 적막한 산에서 일어난 극적인 사건이다. 그 산은 라 베르나라고 불리는데 프란치스코는 성 미카엘 대천사의 축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1224년 9월초에 거기서 칩거한다. 라 베르나에서 프란치스코가 올린 기도는 그가 누구이며 역사에 왜 그런 충격을 주었는지에 대한 열쇠가 된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여, 구하오니 제가 죽기 전에 두가지 은총을 내려주소서. 먼저 제가 살고 있는동안 제 영혼과 육신에, 당신이 가장 괴로웠던 수난 시간에 견디어 내신 고통을 체험케 하시고, 다음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그 고통을 견디어내실 만큼 불타올랐던 당신의 넘치는 사랑을 최대한으로 제 마음에 느낄 수 있게 해 주소서.:(잔 꽃송이 3관찰)

 

오직 사랑하는 이만이 이러한 말들을 이해할 수 있으며 기사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그러한 말들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라 베르나에서 기사인 프란치스코와 사랑하는 사람인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최후의 “어리석은” 요구 안으로 함께 몰입하게 된다. 오직 프란치스코의 삶의 겸허함과 진실함만이 돈키호테와 같은 허세로부터 이 기도를 구해준다. 그의 전 삶은 이 기도가 마음으로부터 전혀 자아를 의식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며, 눈은 예수님께 고정하고 누가 보고 있는지 주위를 전혀 살피지 않고 만들어진 기도임을 증명한다. 밤새도록 퀸타발레의 베르나르도가 들은, 밤새도록 프란치스코가 했던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이시여” 기도처럼 라 베르나에서의 프란치스코의 요청은 사랑하는 이와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자하는 한 연인의 탄원인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예”가 너무도 완전한 포옹이기에 프란치스코의 옆구리와 손과 발은 그리스도의 수난의 표시인 그분의 육체에 있는 사랑의 상처들의 징표를 받게 된다. 프란치스코는 살아 계신 하느님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육화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마치 그를 입양한 아버지인 성부가 입양에 만족하지 않고 프란치스코를 그의 유일한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한 표지들로 봉인함으로써 육체적으로 당신 아들로 만드신 것과 같다.

 

프란치스코는 라 베르나에서 갈바리 수난이 그의 몸과 영혼에 연장된 오상을 받은 뒤 2년을 더 산다. 그 신비의 산에서 떠날 때, 수년간 앓았던 결막염이 악화되어 프란치스코는 성 다미아노로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청한다. 성 글라라 수도원 옆에 있는 한 조그마한 오두막집에서 그는 육체적, 영적 어두움 속에서 50일을 보낸다. 그 낮과 밤 동안 예수는 라 베르나에서 그의 몸을 가진 것처럼 프란치스코의 영혼을 껴안는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예수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십자가상에서 울부짖을 때 느꼈던 것을 체험한다.

 

프란치스코는 라 베르나산에서 온통 느꼈던 사랑하는 하느님의 포옹으로부터 자신이 완전히 버려졌다고 느낀다. 그들의 사랑은 궁정의 사랑의 법칙에 따라 숙녀와 기사의 사랑처럼 단지 실망과 두려움만 느끼는 절정에 달한 것일까? 어두움 속에서 그리고 자신의 의심과 하느님의 상처를 유일한 동반자로 가진 프란치스코는 침묵으로부터 나오는 한 음성을 듣는다.

 

“프란치스코야, 만일 이 모든 재앙들과 바꾸어서 전 지구가 금으로 변하는 것보다 더 큰 보물을 네가 받는다면, 이것으로써 네가 만족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주님.”

“그러면, 행복하거라, 왜냐하면 나는 네가 진정으로 하늘왕국을 즐기게 될 그날을 네게 보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네가 이미 그것을 소유한 것처럼 확실한 것이다.”

 

그리고 돌은 프란치스코의 마음으로부터 글러 나오고 그는 영원히 자신의 동굴에서 일어난다. 그가 젊은이였을 때 동굴에서 찾으려했던 보물은 마침내 그의 것이 된다. 그리고 무아지경 속에서 프란치스코는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위대한 시이자, 성부께 드리는 감사의 찬미가인 “태양 형제의 찬가”를 노래한다.

 

이 찬가 속에서 프란치스코는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아지경 속에서 그의 영혼의 깊이를 보여주는데, 그곳에서는 반대되는 것들의 심오한 화해가 일어난다. 그는 땅, 물, 공기 그리고 불의 네 가지 중세의 요소들을 취하여 이원성의 조합 속에서 그것들을 하나로 통합한다. 그것들은 형제와 자매가 되며 통합의 전체성 안에서 함께 어울리는 그의 영혼의 남성적 여성적 차원들의 상징적인 결합(일치)이 된다. 그리고 시의 우주적인 차원은 그의 영혼의 무의식적인 거울이 되어 실제의 우주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을 화해시킨다. 이리하여「태양 형제의 찬가」는 화해에 관한 위대한 시들 중의 하나가 되는데, 세상의 위대한 시인들이 그렇게 하기 위해 일생을 보낸 것을 단순한 몇 마디의 글을 통해서 이루는 효과를 낸다. 즉 그것은 내적 외적 체험들을 통합시켜서 그러한 체험들과 떨어져 존재하는,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진실한 하나의 예술적 대상을 만든다. 오상을 받은 후 최후의 2년 간 프란치스코는 위대한 왕의 사자로서 설교와 증언을 계속한다. 그리고 1226년 10월 3일 그가 죽을 때, 한 빛이 수바시오 산 위로 보이는데, 그 빛은 산위에 여전히 있으면서, 경사를 따라 아시시 속으로 스며 들어온다. 그리고 여러분은 아시시에서 그 빛을 느끼고 뼛속 깊숙이 그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임종시에 한 프란치스코의 말이 여러분의 영혼 안에 울린다; “나는 내가 할 일을 마쳤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이 할 일을 가르쳐 주시기를 빕니다.”(2첼라노 214)

 



태양의 노래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주여!

찬미와 영광과 칭송과 온갖 좋은 것이 당신의 것이옵고,


호올로 당신께만 드려져야 마땅하오니 지존이시여!

사람은 누구도 당신 이름을 부르기조차 부당하여이다.


내 주여! 당신의 모든 피조물 그 중에도, 

언니 햇님에게서 찬미를 받으사이다. 


그 아름다운 몸 장엄한 광채에 번쩍거리며,

당신의 보람을 지니나이다. 지존이시여! 


누나 달이며 별들의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

빛 맑고 절묘하고 어여쁜 저들을 하늘에 마련하셨음이니이다.


 언니 바람과 공기와 구름과 개인 날씨, 그리고

사시사철의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저들로써 기르심이니이다.


쓰임 많고 겸손하고 값지고도 조촐한 누나

물에게서 내 주여 찬미를 받으시옵소서.


아리고 재롱되고 힘세고 용감한 언니 불의 찬미함을 

내 주여 받으옵소서.

그로써 당신은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내 주여, 누나요 우리 어미인 땅의 찬미 받으소서.

그는 우리를 싣고 다스리며 울긋불긋 꽃들과

풀들과 모든 가지 과일을 낳아 줍니다.


 당신 사랑 까닭에 남을 용서해 주며,

약함과 괴로움을 견디어 내는 그들에게서 

내 주여 찬양 받으사이다.


 평화로이 참는 자들이 복되오리니,

지존이시여! 당신께 면류관을 받으리로소이다.


내 주여! 목숨 있는 어느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육체의 우리 죽음, 그 누나의 찬미 받으소서.


죽을 죄 짓고 죽는 저들에게 앙화인지고,

복되다, 당신의 짝없이 거룩한 뜻 좇아 죽는 자들이여!

두 번째 죽음이 저들을 해치지 못하리로소이다.


내 주를 기려 높이 찬양하고 그에게 감사드릴지어다.

한껏 겸손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어다.


                                          (최 민순 신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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