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여서 행복한 여정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벗 삼는 산들이 조금씩 붉게 물들어 가고 있을 즈음, 동기 수녀님 11명과 도보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전주터미널에서 천호성지, 그리고 나바위까지….
하루에 3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하기에 설레는 마음과 더불어, 그 긴 거리를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들은 하느님을 향한 오롯한 마음으로 다부지게 끌어안고, 각자가 지향하는 바를 청하며 첫발을 내디�습니다.
몸이 조금 불편한 수녀님을 선두로 세우고, 건강한(?) 수녀님들은 뒤편으로 배치하고 나서, 바람에 날리는 깃발을 들었습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자연스럽게 앞 뒷자리를 메우는 수녀님들…
그러나 예상치 않는 일은 어느 곳에나 있는 법,
첫발을 내딛기가 무섭게 한 수녀님 신발에 이상신호가 왔습니다.
신발과 신발 밑창 분리되는 사건을 시작으로 뒤늦게 시작한 점심 때에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급기야 소나기를 뿌려댔습니다.
미리 준비해간 우비를 급하게 꺼내어 입고, 떨어진 신발은 압박붕대로 동여매고, 발가락에 잡힌 물집이 터질세라 한 걸음씩 조심히 걸으며 서로서로 격려하면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향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걸어 드디어 나바위 성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 그 기쁨이란….
김대건 신부님이 사제서품을 받고 조선 땅에 오셔서 첫 발을 내딛으셨던 그곳…
만감이 교차하던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편하게 한 차로 단숨에 왔었더라면 과연 이만큼의 감격을 느꼈을까요?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걸으며 겪었던 육체의 아픔,
예상치 않았던 일들과 기후,
순례의 여정에서 만난 고마운 이웃들,
지나가던 우리 일행에게 힘들어 보인다며 피로회복제를 건네 주셨던 약국주인과 일하시던 허리를 펴 방금 수확한 방울토마토를 건네 주셨던 아주머니.
지칠 대로 지쳐 있을 때, 조용히 손을 건네며 도움을 주었던 수녀님,
그리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던 수녀님,
상처 나고 타박상 입은 곳을 어루만지며 치료해 주었던 수녀님.
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내가 살아왔던,
그리고 살아가야 할 여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이기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분께로 향하는 여정에서
‘우리’는 서로서로 큰 희망이요, 든든한 동반자임을 고백합니다.
행복지기 수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