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생각

천상병

Margaret K 2007. 5. 23. 22:36
 

 




천상병


 


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조의금이 몇 백 걷혔다.


생전에 그렇게 「큰돈」을 만져본 적 없는


시인의 장모는 가슴이 뛰었다.


이 큰 돈을 어디다 숨길까. 퍼뜩 떠오른 것이 아궁이였다.


거기라면 도둑이 든다 해도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노인은 돈을 신문지에 잘 싸서 아궁이 깊숙이


숨기고서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시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추울 거라는 생각에 그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이상했다.


땔나무 불빛사이로 배추이파리 같은 것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조의금은 그렇게 불타버렸다.


다행히 타다 남은 돈을 은행에서 새 돈으로 바꾸어주어,


그 돈을 먼저 떠난 시인이 「엄마야」며 따르던


팔순의 장모님 장례비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늘 「엄마」의 장례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는 시인 천상병 가의 이야기이다.


평생 돈의 셈법이 어둡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시인이었다.


지상에 소풍 왔던 천사처럼 순진무구하게 살다간 시인의 혼은 가고


남은 자리마저 그런 식으로 자유로와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천상병 시인을 사랑했다.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는 세속과 악의 혐의가 짙을수록


그 어린아이 같은 시인을 그리워했다.


지상에서 가난했고 고초 당했던 그 시인은


그러나 천국에 가면 땅은 선한 것이었다고,


지상은 아름다왔노라고 전할 것이라고 썼다.


악은 그의 머릿속에도 없었고 가슴에도 없었다.


악에 관한 한 그는 지진아인 셈이었다.


 


사물과 사람을 투명하게 관조하여 그려내었던 천상병은 1967 년 7월


친구 한 사람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면서 엉뚱하게도 기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된다.


뜻밖의 고초와 충격으로 그의 정신은 황폐해졌고 어느 날


거리에 쓰러져 행려병자로 분류되어 시립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어디에선가 죽은 것으로 생각해


유고 시집 '새'를 출간하고….


 


유독 어린아이를 좋아했던 시인은 훗날 아내에게


“전기고문을 두 번만 받았어도 아기를 볼 수 있었는데…”하며


아쉬운 마음을 술회하곤 했다 한다.


동백림사건 이후 그의 시세계는 죽음 저편을 바라보는 초월의식과 함께


종교적 원융무애의 어린아이 같은 세계로 나아간다.


엄청난 고초를 겪었지만 절망과 증오와 비탄이 아닌


맑고 투명한 어린아이의 세계를 열어 보인 것이다.


그 점에서 그는 성자였다.


 


병구완에 헌신적이었던 아내 목순옥을 그는


하느님이 숨겨두셨던 천사라고 했다.


그는 생전에 고문 후유증으로 활발한 걸음걸이가 아니었지만


인사동에 나오기를 즐겨했다.


아니, 인사동 골목의 아내가 하는 작은 찻집


「귀천」에 나오기를 좋아했다.


귀천에 나오면 무엇보다 하루 종일 아내를 볼 수 있어 좋고,


문인, 화가, 연극인 같은 다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하였다.


하지만 빨간 옷 입고 오는 여자나


안경 낀 남자는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무슨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아이 같은 일면이다.


빨간 옷 입거나 안경 낀 손님이 오면“문디가시나 문디가시나”하며


아내를 원망했다는 것이다.


 


그의 행복에 대한 고백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하루에 용돈 2천 원이면 나는 행복하다…


내가 즐겨 마시는 맥주 한 잔과 아이스크림 하나면 딱 좋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을 좋아했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가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다 부자가 되려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굶지 않기만 하면 되는데…


내게 만일 1억 원이 생긴다면


나는 이 돈을 몽땅 서울대학교에 기증하겠다. 장학금으로…”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처럼


가볍게 살다가 시인은 이제 인사동을 떠나 천국으로 갔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귀천’)고


작별을 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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