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생각

어머니 잘 모셔라! . . . . . . . . . [오기선 신부님]

Margaret K 2007. 5. 12. 20:35

 

 

 

 

어느 궂은비 촉촉히 내리던 날,

 

"어머니, 저는 신학교를 그만뒀으면 좋겠어요..."

 

조용히 말씀드렸던 것이다.

 

어머니의 불호령에 얼른 종아리를 걷어 올렸더니

어디서 그렇게 기운이 나셨는지 핏줄이 죽죽 불거지도록

종아리를 치셨다.

 

"어머니, 잘못했어요,

 , 신학교 문지방이라도 베고 죽을게요.

 용서해주십시오."

 

나는 빌고 또 빌었다.

1928년 가을에 나는 철학과를 마치고 신학과로 올라갔다.

그러나 위병은 극성이었다.

매일 흰죽만 먹고 약을 먹으니...

그 많은 공부를 다른 학생들 같이 해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생각다 못해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 흰죽만 먹고는 죽어도 더 공부를 못하겠습니다."


 

"모진 박해를 4대에 걸쳐 받으면서 신부만 학수고대하던

 우리의 뜻도 모르고...

 신부가 없어 성사도 제대로 못보고 몇 십년씩을 살아온 그때,

자식을 주시면 당장 신부를 만들겠습니다약속했다.

 이 에미의 생각을 왜 모르느냐?

 위장이 나쁘면 공부하다 신학교 문지방을 베고 죽을 것이지,

 신학교를 그만두겠다구!

 어서 종아리를 걷어 올리지 못하겠느냐?"

 

 

나는 매를 맞으면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신학교에서 죽으나, 세속에서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다!

에라! 죽자!

신학교 다니다가 내 명이 다하면 어머니 뜻대로

신학교 문지방이라도 베고 죽자.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손이 발이 되고, 발이 손이 되도록 빌었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쥐시고는 옛날 그 무시무시한 박해를

생각하시는 듯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신부가 꼭 있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강한 일념은...

아픈 자식을 때려서 신학교로 돌려보내야 하는,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시게 했으며,

지금까지의 나의 모든 것을 사제로 봉헌할 수있게 했다.

 

내가 27살에 신부가 되어

지금의 중림동 성당에서 보좌 신부를 4년 보내고

혜화동 성당 주임신부로 있을 때이다.

 

무일푼으로 혜화 유치원을 설립하느라

온몸이 성한 데가 없었고 잘 먹지도 못해서 쓰러져 있던 어느 날,

 

멀리 원산에서 어머니께서 찾아오셨다.

반갑기 한정없던 나는 속으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하루밤을 쉬시게 하고 이튿날 아침,

입안에서 뱅뱅돌며 나오지 않는 이 모진 말(!)을.

 

"저.. 어머니, 오늘... 가셔야겠지요...?"

 

"왜, 신부..  내가 못 올 데를 왔나?"

 

"그런게 아니고...  어머니...,

 , 신자들은 신부의 부모나 일가친적들이 신부가 사는 본당에

 자주 드나드는 걸 아주 싫어해요."

 

그때 신자들의 생리는 그러했다.

본당신부의 부모나 친적이 그 본당에 드나들면

큰 변이 나는 줄  알았던 것이다.

 

", 그래?

 그럼 가야지.

 신부에게 해가 된다면 얼른 가야지.

 에미가 자식에게 해를 끼쳐서야 되겠니?

 

 본당신부노릇 잘해라.

 내 다시는 안 올께.

 그런줄 알았으면 오지 말걸 그랬지..."

 

하시며 훌훌 털고 일어나시어 혜화동을 떠나셨다.

여비도 못드리고...

그 흔한 모본단 치마하나, 못해드린 나는

돌아서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서있었다.

 

그후,

어머니는 다시는 내가 있던 어느 본당에도 오시지 않으셨다.


아버님께서도,

하나밖에 없는 형님도.. 한번도 오시지 않았다.

모두들 못 오신 것이다.

 

나는 그날을 생각하면

아픔이 깊은 늪처럼 내 마음에 고인다.

 

그래서 나는

피정강론을 하러 다니다가

홀어머니를 모시는 젊은 후배 신부들을 만나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입버릇처럼 신신당부한다.


어머니 잘 모셔라!”하고...

 

어머님, 이 불초 자식은 오늘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가슴을 칩니다

  그리고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통곡합니다.

  용서하소서!”

 

"어머님, 이제 안심하세요.

 동생 알벨또 신부도, 형인 저도

 이젠 위병으로 신학교 자퇴하겠다는 소리 안할께요.

 이 자식들도 이젠 모두 여든 살이 넘었으니

 천국에서 안심하십시오!


 우리 어머님!

 두 아들을 신부로 두신 내 어머님!"

 

 

                                                          

 

- [사제들의 어머니] 중에서 -

 출처: http://www.catholic.or.kr/글쓴이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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