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오 6,24-34)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you besi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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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말씀의 초대
요아스 임금이 자기에게 충성을 바친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를 죽이자, 신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임금을 살해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며,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라고 말씀하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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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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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무릎에는 커다란 상처 자국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생긴 상처인데, 넘어졌을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어이가 없습니다.
동창 신부와 자전거를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동창 신부가 앞서가고 있었는데, 돌부리 위를 휙 지나가는 것입니다. 저 역시 동창 신부처럼 휙 지나가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겁이 났습니다.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결과는 예측대로 이곳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걸려 넘어진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겁이 나서 손으로 브레이크 레버를 확 잡았을 때 미끄러진 것입니다. 자전거에 제 몸을 온전히 맡기지 못했습니다. 자전거를 믿지 못해서 작은 돌부리에도 겁을 낸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라는 삶 안에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두려움 속에 살게 됩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함께하시는데도 주님은 보지 않고 작은 돌부리와 같은 장애물만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믿음의 눈으로 주님께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쓸데없는 두려움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걱정하지 마라.”라고 강조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이는 단순히 무심함이나 무관심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모든 근심 걱정에서 해방해 주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통해서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새들과 들에 핀 나리꽃들을 예를 드시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결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떠올리면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는 사람은 굳은 믿음을 통해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삶의 방향을 정확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많은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걱정하고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더 힘든 시간의 연속성 안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걱정과 두려움은 하느님 나라를 바라볼 때 별것 아님을 깨닫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노력을 통해 조금씩 하느님을 보고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질수록 우리의 걱정과 두려움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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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이기우신부-
유튜브 묵상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liFpOZtGD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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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신부-
한국과 미국의 문화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기부와 상속에 있어서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미국의 부자들은 ‘기부’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명예와 부를 얻었지만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기 때문입니다. 미국 유수의 대학들은 대부분 부자들의 기부에 의해서 설립되었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부를 이루었던 록펠러는 50이 넘으면서 회복될 수 없는 병에 걸렸습니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록펠러에게 이왕 죽게 된다면 이웃에게 나누면서 죽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록펠러는 자신의 재산을 이웃에게 나누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록펠러는 나누면서 건강을 회복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건강해진 록펠러는 그 뒤로 40년을 더 살았고 97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비단 록펠러뿐만 아니라 미국의 부자들은 학교, 도서관, 공연장, 미술관 등의 설립에 엄청난 기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기부문화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미국 문화의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부자들도 요즘은 이런 기부문화에 동참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상속에 대해서도 미국은 한국과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잘 키워주고 독립할 수 있도록 해 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들도 부모의 재산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독립하면 스스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보와 자식이 재산으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존경과 사랑으로 묶이는 것입니다. 제가 만나본 이민 2세대들도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재산은 부모님의 것이니 부모님이 알아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는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물려주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상속 때문에 형제들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상속 때문에 형제들이 갈등과 불화가 생기는 것도 보았습니다. 부모의 재산은 전적으로 부모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으로 기부를 한다면 그것도 부모의 선택입니다. 그것으로 여행을 다닌다면 그것도 부모의 선택입니다.
다행히도 저의 부모님은 세상의 재물은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형제들이 상속 때문에 머리 아플 일도 없었습니다. 감사드릴 일입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다른 것을 물려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신앙’입니다. 부모님께서는 기도로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생전에 많은 대자와 대녀를 두셨습니다. 대부와 대모로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식들에게 신앙을 물려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값진 상속은 없을 것입니다. 부모님 모두 건강하게 사시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종하였습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부모의 신앙이 전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이유로 신앙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릇은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합니다.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될 것입니다. 보석을 담으면 보석함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릇과 같습니다. 무엇을 담아야하는지 늘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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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네!
-양승국신부-
근심 걱정이 참 많았던 젊은 시절, 피가 마르고 살아 마르고 그래서 지금보다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은 덜 나가던 시절, 제 마음속에는 언제나 강력한 희망 사항이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의 평화,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고요함...
나이가 좀 더 많이 들면 괜찮아지겠지, 세월이 좀 더 필요하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그게 나이 먹는다고 자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전히 다양한 근심 걱정, 특히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의미 없는 근심 걱정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근심 걱정은 목숨이 일곱 개라는 고양이도 죽게 만든다.”는 영국 속담이 있습니다. 돌아보니 현대인들은 걱정이 필수인 사회에서 참으로 많은 걱정의 파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느긋하기로 유명한 티벳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네.”
갖은 걱정 속에 속전속결로 늙어가고 있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조언도 명심해서 들어야겠습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오 복음 6장 27절, 34절)
걱정 때문에 잔뜩 얼굴 찌푸리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는 이런 위로의 말씀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걱정의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그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걱정거리의 22%는 일어나도 별 볼일 없는 사소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걱정의 4%는 우리의 영역 밖의 일입니다. 결국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걱정거리는 전체 걱정의 4% 뿐입니다.”
수도자 초년병 시절 저 역시 갖은 걱정거리로 온 몸을 칭칭 감은 채 살아갔습니다. 참으로 걱정이 많았습니다. 내가 과연 수도생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동료 수도자가 혹시라도 나를 힘든 존재로 여기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수도원에서 쫓겨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남겨두고 온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나 걱정, 앞으로 밟아나가야 할 수많은 단계에 대한 걱정...그러다보니 몸과 마음의 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게 하루는 선교사 할아버지 신부님께서 한 가지 조언을 주셨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국에 오래 사셨어도 한국 말씀이 많이 서투셨던 신부님께서는 큰 목소리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걱정? 왜 걱정? 아무 걱정 말고 주님께 모두 맡겨!”
갖은 스트레스와 근심걱정꺼리를 이고 지고 살아가는 이웃들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위로의 천사로 다가서야겠습니다. 그리고 크게 외쳐야겠습니다.
“제발 그 무거운 짐들 좀 내려놓고 살아가십시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즉시 모든 근심 걱정을 하느님께 맡겨드리십시오. 걱정 대신 기도하십시오. 근심 대신 찬양하십시오. 걱정하기보다 일상 안의 소소한 기쁨을 찾고 만끽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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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의탁하라」
-반영억신부-
일상을 살아가면서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남모르는 걱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사실 모두가 근심 걱정을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엇을 걱정하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걱정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을 걱정하는 어리석음은 그만둬야 하겠습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랍니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라고 합니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시편저자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그분께서 네 마음이 청하는 바를 주시리라.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37,4-5).하였습니다. 결국 믿음을 가진 사람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이는 주님께 의탁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여 근심을 끌어안고 삽니다. 그러나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믿고 맡기며 최선에 최선을 다하고는 주님의 처분을 기다릴 뿐입니다. 아무리 걱정해도 해결되지 않는 걱정거리에 매이면 걱정거리만 커집니다. 눈을 돌려 “야훼이례”,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다는 믿음에로 한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루카복음에 보면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마르타에게 주님께서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10,41-42). 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위치를 확인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머물면 쓸데없는 일로 바쁘지 않을 것이요, 또 괜한 걱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유지하기위한 음식과 몸을 보호하기위한 의복의 걱정에 앞서서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변함없이 주님을 선택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안에 있고, 주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공중의 새나 들판의 꽃들조차도 하느님의 안배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만물의 영장’입니다. 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우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신뢰하며 모든 근심걱정을 송두리째 맡겨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이러한 물음은 인간적인 걱정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고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도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헛된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여정에 우선적인 선택이 주님이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의탁하고 섭리에 맡기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 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5,7).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하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의 영원한 생명에의 약속에로 이끌고 계시다는 확신 속에 뽑아주신 좋으신 분께 대한 응답으로 오늘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최선에 최선을 다하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때 영원한 새 삶이 시작됩니다. 마음을 다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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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 6, 34)
-한상우신부-
걱정하는
이 마음을 통해
진정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게 된다.
좋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또 내일을
주신다.
오늘을
주신 것같이
내일을
우리에게
주신다.
오늘을 건너갈
힘을 주시고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주신다.
걱정이 아니라
믿음을 배우는
삶의 모든
시간들이다.
우리의 삶이란
소중함을
되찾는 여정이다.
소중함과
존귀함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서
자라난다.
믿음의 길이
존귀한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들에 핀
나리꽃들과
들풀까지도
입히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다.
만남을 통해
드러나는
믿음의 다양한
빛깔들이다.
믿음이
씨앗이고
열매이다.
먼저 찾아야
할 것은
가장 좋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이다.
하느님의
의로움으로
이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게된다.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우리의
일상이 된다.
필요한 것을
아시고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으로
충분한 삶의
은총이다.
우리의 삶으로
하느님을 알게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성장시키시는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오늘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고
내일도
하느님을 향한
감사이다.
견디고
헤쳐나갈
힘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우리의 오늘이며
우리의 내일이다.
걱정이 아니라
깨달음이며
생각이 아니라
차려주신 오늘을
차려주실 내일을
맛보고 만나는
만남이다.
걱정을
손 잡아주는
하느님과의
만남이다.
그날로 충분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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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나누기 - 연중 11주 토요일-어떻게 하면 걱정없이 살 수 있을까? (ofmkorea.org)
-김찬선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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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매일복음 묵상 글 보기 :
오늘의 성인 :
http://maria.catholic.or.kr/sa_ho/saint.asp
프란치스칸 성인들 : https://www.roman-catholic-saints.com/franciscan-calenda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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