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5일 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오늘의 복음 :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
오늘의 묵상
-최종훈신부-
가끔 삶의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그 생활에 적응하게 되고, 적응된 일에만 익숙해져 쉽게 판단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실망스러워 절망하기도 하고, 좋은 결과를 얻었더라도 피곤하고 힘든 과정을 다시 걸어야 한다는 두려움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를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위 사람에게 상처받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였을 때, 열심히 한 일에 대해서 인정받지 못하였을 때,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이들이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우리는 실망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또한 그 길을 가고자 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사제로 살아 온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러한 장벽과 걸림돌에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길을 잃고 헤매야 할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또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그런 실망과 후회를 견디어 낼 수 있을지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을 하고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전하는 삶 자체가 어쩌면 처음부터 넘어지고 채찍질당하며,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견디어 내라.’, ‘걱정하지 마라.’ 하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늘 걱정이 앞섭니다.
십사 년 전 오늘, 저는 이 길에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어떠한 사제가 되겠다는 다짐이나 창대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던 첫 마음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이 닥치더라도 당당히 맞서 나아가려 합니다. 견디기 쉽지 않을 때마다 첫 마음을 기억하며 예수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첫 마음으로 삶의 어려움을 견디어 내십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조명연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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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니, 우리나라에 공시족(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자그마치 4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시험을 통해 확실한 자리를 보장받으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미래가 결정되는 직종이 인기 있는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확실한 것을 원하고 불확실성을 못 견디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우리 미래라는 것은 원래가 불확실한 것이 아닐까요? 이 불확실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다 보니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또 결혼하더라도 자녀를 낳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불확실성 자체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불확실성 사회 안에서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불확실하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 싸워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어떨까요? 우리는 주님을 직접 보지도 못하고, 또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가장 불확실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일을 특히 주님 사랑의 길을 향할 때 스스로의 만족감은 물론이고 확실한 미래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 믿음으로 더 큰 가치를 향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를 봉헌합니다. 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한국의 순교자들은 불확실한 시대에서도 굳은 믿음을 통해 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사실 당시의 대신들이 김대건 신부님의 박학다식함을 아깝게 생각해서 구명운동을 벌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만약 배교만 했다면 젊은 나이에 순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은 세상의 길보다는 주님의 길을 향하십니다. 세상의 길은 더 불확실한 삶으로 만들지만, 주님의 길은 가장 확실한 삶으로 만들어줍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참수형을 당하기 직전에 하신 아래의 마지막 유언을 마음에 새겼으면 합니다.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았으니 여러분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한 것은 내 종교와 내 하느님을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천주께서는 당신을 무시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벌을 주시는 까닭입니다.”


‘내 편’이라는 말을 우리는 좋아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생겨도 든든히 나를 지켜줄 것 같은 ‘내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도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편이 없어졌으니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또 ‘내 편’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내 편이 아니라 다른 사람 편임을 알게 되었을 때, 커다란 실망과 함께 상대에 대한 분노까지 생깁니다.
이렇게 ‘내 편’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무조건 ‘내 편’을 해 줄까요? 부모도 자녀의 ‘내 편’이 안 될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진정한 내 편은 주님뿐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 편’이 많아지길 바란다면서 우리도 누군가의 ‘내 편’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내 편이 많아지길 바란다면, 나 역시 누군가의 내 편이 되어야 합니다.

편안으로 평안을 잃을 것인가?
-전삼용신부-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거행합니다. 만약 천국이 없다면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은 그냥 고통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릴 적 마카오로 가며 수 없는 육체적 고생을 했고 공부하면서 정신적으로 더욱 그러했으며, 부모와 가족의 순교로 마음고생도 이에 못지않았습니다.
사제로 서품되어 조금은 편안하게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겠지만, 순교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대로 김대건 신부님은 높은 벼슬과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는 회유를 뿌리치고 순교의 길을 택합니다. 한순간도 편안해 본 적이 없는 삶이었지만 마지막까지 편안함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은 힘들기만 하셨을까요? 마지막에 조금도 편안하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사실 그동안 충분히 행복했던 것은 아닐까요? 하루의 마지막도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안했을 때 잠이 잘 오는 것이 아닐까요? 종일 쉬고 놀고 방탕하게 살았다면 오히려 불안해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편한 일과 힘든 일, 두 개가 앞에 놓여 있다면 항상 좁고 험하고 힘든 일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사실 편할 때 더 고통스럽습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행복해하십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편안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위해 피를 흘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박해받는 시기에 더 신앙이 강해집니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는 지금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먼 나라 이야기를 넘어서서 ‘왜 그 고생하며 신앙생활을 한 거야?’라며 의아해합니다. 고통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도 가톨릭 국가로서 영국의 심한 박해를 450여 년 받으면서도 신앙을 잘 지켰지만, 소득이 높아지며 편안해진 지금은 다른 유럽 국가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낙태법도 허용되었고 젊은이들은 성당을 떠났습니다. 삶도 신앙도 편안해지려고 하면 죽습니다.
‘쓰레기로 2층까지 꽉 찬 트레시 홈’이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습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이층집 천장까지 쓰레기로 꽉 찬 이 모습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집주인은 왜 쓰레기를 모으는 것일까요? 모두 다 필요하다 생각하니 모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모든 이상한 행위 뒤에는 항상 ‘죄책감’이란 것이 있습니다.
집주인의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여 아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쓰레기를 치울 때 아들은 필요한 것들인데 왜 치우느냐고 짜증 섞인 말까지 합니다.
아버지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고생하면서 성장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때가 되었으면 밖으로 떠밀고 혼자 힘으로 고생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부모가 해야 할 자녀에 대한 의무일 것입니다. 세상에 왜 이런 고통이 있느냐고 말하지만, 고통 없이는 어떠한 성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양팔은 잃었지만 삶은 잃지 않았다’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습니다.
전기 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은 분이 계십니다. 자신이 만든 의수로 자신이 만든 자전거에 폐지를 싣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루를 열심히 일해도 버는 돈은 5천 원 이하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표정은 매우 밝습니다. 집에만 있으라는 말을 뒤로하고 뭐라도 하고 있다는 보람 때문입니다.
그분을 보며 주위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분은 말합니다.
“난 팔을 잃었지 의지까지 잃은 것은 아닙니다.”
따님도 이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같이 다닙니다.
덧글로 달린 몇 개의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팔 두 손 멀쩡하여 지금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 이 두 팔 두 손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힘들다고 엄살떨고 있는 나를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존경합니다.”(Eugene Johns)
“땀 흘려 번 돈 4800원에 저렇게 환히 웃을 수도 있는 모습이 새삼 날 부끄럽게 한다.”(미또)
“아저씨는 대기업의 CEO보다, 빌 게이츠보다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한 어떤 사람보다 위대한 사람입니다. 죄송하고요 감사합니다.”(한휴머)
이분이 인터뷰하실 때 뒤에 성모상이 보였는데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이런 분이 현시대의 김대건 신부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주선에서 오랜 시간 있으면 건강이 좋을까요? 그곳은 기압이 낮아서 몸을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육이 약해지고 골밀도도 약해져서 우주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몸이 망가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힘들지만, 땅을 딛고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야 근육도 생기고 뼈도 튼튼해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약해집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제일 힘드셨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편안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편안함과 싸워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되시었습니다.
편안함에 물들지 맙시다. 마치 개구리가 들어있는 물을 조금씩 가열하면 개구리는 뜨거워지는지도 모르고 죽는 것처럼 편안함은 우리를 알지도 못하게 죽입니다. 자꾸 몸을 불편하게 해야 하고 운동해야 합니다.
신앙도 고난 속에서 더 성장합니다. 하늘에서는 이 세상에서 성장시킨 신앙만큼 상을 받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이나 다른 순교자들을 안됐다고 보지 말고 부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6개월간의 긴 여정 끝에 마카오에 도착해서 세 명의 조선 신학생이 놀랐던 것은 건물이나 전례의 완벽함이 아니었습니다. ‘자유’롭게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만약 지금 교회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면 우리 사회 분위기가 편안함을 선택하여 죽어가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는 하루를 일 년처럼, 하루를 영원처럼 충만히 살아가셨습니다!
-양승국신부-
짧게나마 유학을 끝내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느꼈던 감정이 참으로 비장했습니다. 수도회에서 이토록 좋은 배움의 기회를 주셨는데, 제 마음은 미약하지만 최선을 다해 청소년들을 위한 복음 선포에 매진해야겠다는 열정으로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아마도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사제직을 준비하던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의 마음은 훨씬 더 했겠지요. 신학 과정을 통해 당신이 알게 되고 체험하게 된 이 좋은 주님을, 어서 빨리 고국의 양떼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신학 공부를 마무리한 그는 여러 차례 입국을 시도했지만, 당시 조선 땅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한창이었으므로 그때 마다 좌절을 반복했습니다. 그의 귀국은 자랑스럽고 영광스런 귀국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무슨 대역죄인도 아닌데, 신분도 감춘 채, 마치 간첩처럼 은밀히 다녀야했던 가시밭길 귀국이었습니다.
마치 야행성 들짐승처럼 체포의 위험을 피해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만 조용히 이동해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사람들의 눈에 띌까봐 큰 길로는 못 다니고 숲이 무성한 산길로만 다녔습니다.
이동 중에 며칠씩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탈진해, 죽을 고비도 참 많이 넘겼습니다. 계속된 굶주림과 추위와 피로는 그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시켰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한양에 도착했을 때, 그는 꼼짝달싹도 못할 지경이어서 2주 동안이나 병석에 누워 지낼 정도였습니다.
꿈에 그리던 고국에 입국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환영하기 위해 몰려나온 수많은 교우도, 예쁜 꽃다발도 아니었습니다. 박해자들의 매서운 눈빛과 번득이는 칼날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친의 순교, 그로 인해 혹독한 가난의 고통을 겪고 계신 모친에 대한 소식이 그에게 전해졌습니다.
겨우 건강을 회복한 그는 조선에 성직자들을 모셔오기 위한 계획을 짜고, 교우들을 모아 또 다시 상해를 향한 험난한 여행길을 떠나게 됩니다. 순풍 하루 만에 만난 엄청난 폭풍우에 종선(從船)도 떼버리고, 돛대 두 개도 베어버렸으며, 식량마저 바다로 던져버렸습니다.
돛대도, 돛도, 키도 종선도 없이 기적처럼 황해를 건너가니, 이번에는 해적들이 달려들었습니다. 기적처럼 상해에 도착한 그는 1845년 8월 17일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게 됩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신심 미사를 봉헌하면서 큰 감사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사목적 열정으로 충만했던 사제, 그토록 깊고 확고한 믿음의 소유자였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우리 한국 천주교회 모든 성직자들의 모델이요 이정표, 수호자요 귀감인 것에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동시에 그분과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제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더 이상 혹독한 박해도, 생명의 위협도 없는 지극히 평화로운 이 시대, 복음 선포하기에 너무나 적절한 이 시대, 별 열정 없이, 그저 적당히 살아가는 모습이 송구스러웠습니다.
살아생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지상에서 당신이 머물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열정적으로 사셨습니다. 하루를 일 년처럼, 하루를 영원처럼 충만히 살아가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이 순식간에 닥쳐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의 머릿속과 마음속은 기꺼이 박해를 받고 기쁘게 순교할 각오로 가득했습니다.
착한 목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지니셨던 활활 타오르던 사목적 열정과 어린 양떼를 향한 강렬한 사목적 사랑이 오늘 우리 한국 성직자들에게 선물로 주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영근신부-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대축일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충남 당진의 솔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술라 사이에서 3남매 중 맏아들이셨습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처럼 사위의 밀고로 체포되어, 아들을 국경을 넘겨 보낸 국사범으로서 온갖 잔악한 형벌을 받은 후에 서소문 밖에서 목 잘려 순교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열다섯 살 때, 곧 1836년에 고국을 떠나 중국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셨습니다. 그 후에 여러 차례 입국하고자 시도했다가 실패했으며, 마침내 1845년 1월에 온갖 고생을 겪고 압록강을 건너 입국하셨습니다. 그러나 전교 신부님을 모셔오기 위해, 몸이 불편한 중에도 온갖 고초를 겪으며 다시 상해로 가셔야만했고, 1845년 8월 17일에는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밤낮으로 열심히 사목하던 중 체포되셨습니다. 그는 모진 문초를 받으면서도,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믿음을 잃지 말고 하느님을 섬기며 고통을 참으라는 편지로 격려를 하셨습니다. 1846년 9월 16일, 사제품을 받은 지 1년 1개월 만에 스물다섯 살의 젊은 나이로 참수의 거룩한 순교의 빨마를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1949년에 한국 모든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선정되셨고, 1984년 5월 6일에 성인으로 시성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예수님 때문에” 모진 핍박과 수난 속에서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 하셨습니다. 참으로 살 때나 죽을 때나 오로지 “예수님 때문에”만 살고, “예수님 때문에”만 죽으셨습니다. 마치 사도 바오로의 고백에서처럼, 살아있을 이유도 핍박을 받고 죽을 이유도, 오직 “예수님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성인의 “옥중편지”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고문을 받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이처럼 성인께서는 참으로 “예수님 때문에” 고문을 받으셨고, “예수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성인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랑으로, 오로지 예수님께 희망을 거셨습니다. 그렇기에 핍박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감사까지 드리셨습니다. 참으로, 성인께서는 <제2독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시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하셨다.’(로마 5,2-3).
예수님께서도 바로 이렇게 십자가에서 아버지를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증거는 단지 십자가에서만 있었던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공생활을 통한 일상적인 삶 전부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일상적인 증거의 삶이,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증거”, 곧 우리의 “순교” 역시 우리의 삶의 현장과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연속되는 죽음 속에 자리 잡아야 할 일입니다. 곧 일상의 삶 안에서, 나 자신의 뜻에는 스스로 죽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명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 희망을 걸고서, 매순간을 “순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죽을 몸에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2고린 4,10-11)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주님!
고난과 시련이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되게 하소서.
그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하소서.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의 순간이 되게 하소서.
미움 받고 거부당할 때에도, 박해 받고 배신당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받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조욱현신부-
한국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울술라 사이에서 출생하셨다. 6살 때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시 남곡리의 골배마실로 이사를 하고 1836년 은이공소에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해 12월 모방 나 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니 16세였다.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1845년 1월 조국에 몰래 입국하였다가 다시 4월에 주교와 신부를 영입하기 위하여 10여 일의 항해 후 상해에 도착한다.
1845년 8월17일 상해 근처 김가항에서 페레올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니 한국교회 최초의 사제가 되었고 그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해 10월 12일 주교와 신부를 모시고 충청도 나바위에 무사히 입국하였다. 8개월 동안 국내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중 1846년 6월 5일 몰래 출항하려다 황해의 순위도 부근에서 체포되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참수되어 군문 효수 형을 당하니 그의 나이 26세에 불과하였다. 1925년 비오 11세에 의해 로마에서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서울에서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복음: 마태 10,17-22: 박해를 각오하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싸움을 준비시키신다. 그분 때문에 신앙 때문에 제자들은 부당한 대우와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신다.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17절) 유다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일인 양, 회당에서 그들을 채찍질 할 것이다. 기도와 찬양을 바치고 성경을 읽는 그곳에서 사도들을 처벌할 것이다. 사실 사도들이 겪은 고통은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19-20절)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위안을 주시는 말씀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라고 하셨다. 즉 사도들은 하느님의 영 없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21절) 한 집안의 가족들이 서로 다툴 것이다. 이것은 꼭 가족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은 부모와 친척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에는 사람들이 일치하고 있었지만, 이 믿음 때문에 사악한 믿음과 충돌한다는 뜻이다. 그 사악한 믿음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증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절) 앞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만나게 될 사람들은 아마 이러한 사람들이라고 하시는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시작은 많이 하지만 끝에까지 가는 이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은총으로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끝까지 견디어 낼 수 없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으니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우리의 마지막을 생각하라고 하신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시는 이유이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신앙을 묵상하고 항구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인간의 본 모습을 잘 깨닫고, 알고 사랑한 분이시며, 하느님께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한 죽기까지 효애를 드린 분이시다. 끝까지 항구한 분이시다. 우리도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과 같은 항구한 믿음과 온갖 박해도 이길 수 있는 주님의 은총을 청하도록 하여야 하겠다.

-오상선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내는 가운데 맞이하는 축일인 오늘, 미사의 말씀은 증거자의 소명을 우리에게 제시하십니다.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마태 10,18)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당신을 따르려면 박해를 각오하라고 이르십니다. 그들이 스승을 만나 들어선 길이 꽃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존 체제의 한계를 뚫고 열린 새로운 길은 반감과 배척을 숙명처럼 넘어야 하지요. 열광 만큼이나 모질고 사나운 기득권자들의 저항을 온전히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20)
사실 적대세력 앞에 서는 순간은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두려움으로 자지러져 있을 수만은 없지요. 복음을 선포하는 이는 기회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호의적인 이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나 칼날 앞에 섰을 때나 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의 영이십니다.
예언자는 주님의 목소리입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부족한 자신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입니다. 예언자가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게 되면 그만 침묵합니다. 말보다 더욱 진한 피로써 주님을 증거하고 소리의 역할을 끝마친 뒤 구원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지요.
제1독서는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힌" 즈카르야의 순교를 보여 줍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2역대 24,20)
당시 임금인 요아스는 여호야다 사제가 아탈야의 유다 왕족 살육에서 건져내어 7세까지 숨겨서 기른 뒤 왕위를 되찾아주고 보필해 준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여호야다 사제가 죽은 뒤 하느님을 배척하고 우상에게 돌아섰지요.
즈카르야는 바로 그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입니다. 그가 전한 이 말씀은 그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지요. 하느님은 그들이 다시 당신께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셨기에 요아스 임금에게 누구보다 충성스러웠던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의 입에 당신 말씀을 담아 보내셨지요.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2역대 24,32)
하지만 우상에게 꽂힌 임금은 하느님을 배반하고 한 인간의 고귀했던 충정조차 외면합니다. 이렇게 즈카르야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구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 못지않게 "환난" 역시 자랑거리라고 이야기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4-5)
스스로 주님의 새로운 길을 박해하던 자였던 사도는 주님의 제자가 된 뒤, 자신에게 닥치는 환난들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아울러 믿음의 동료들에게도 '환난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인내와 수양을 키워 결국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힘주어 증언합니다. 결국 이 희망이 구원과 이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 견디라고 하십니다. 이 "끝"에 다다르기까지 실제적인 고통과 어려움들을 겪어야 하지요. 어쩌면 이 "끝"이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이기에 희망일 겁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명예와 욕망과 목숨까지 바쳐 다다른 "끝"은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와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과 연결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예로서 지금 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에게 구원은 머나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앞당겨 누리는 진복의 삶으로 허락됩니다. 이런 까닭에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이는 환난 중에서도 기쁘고 고통 중에서도 충만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는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직이 주어졌습니다. 이 소명은 주님을 따르는 길이 마냥 '좋은 게 좋은 거'로 희희낙락할 수만은 없다는 걸 실감하게 해 줍니다. 그래도 예언자는 인간적 걱정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설령 반대받는 표적이 되더라도 자기 안에 계신 아버지의 영께서 말씀하시도록 믿음을 부여잡고 견디며, 주님과의 일치의 기쁨을 누리는 존재입니다. 이미 지금 여기서 구원을 누리고 있기에 예언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자라도록 목숨을 바쳐 양분이 되어 주신 김대건 신부님께 한국 교회의 모든 신자들, 특히 모든 사제들을 맡겨 드리며, 우리 모두가 주님의 예언직을 충실히 수행하는 증거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말씀 나누기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축일-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ofmkorea.org)
-김찬선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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