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물

교황 성하의 강론[2019년 5월 5일 주일(부활제3주일)

Margaret K 2019. 5. 10. 20:35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목 방문

불가리아와 북마케도니아

 

거룩한 미사

 

교황 성하의 강론

 

알렉산드르 1세 광장 (소피아)

2019년 5월 5일 주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Christos vozkrese!

 

부활 시기에 여러분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기쁨 안에서 어떻게 이 말로 서로 인사하는지 바라보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우리가 방금 들은 복음 말씀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전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널리 전하라고 하신 이 기쁨에 우리가 잠기도록 돕습니다. 그것은 제자로서의 우리 삶의 부분인 세 가지 놀라운 일들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즉, 하느님께서 부르십니다. 하느님께서 놀라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으로 부르셨을 때 모든 일이 갈릴래아 해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분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 그의 어부로서의 생업을 버리라고 부르셨습니다(루카 복음 5,4-11참고). 이제 그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 후에 스승님께서 돌아 가신 것을 보고 그분 부활의 소식을 듣는 경험을 한 후에 베드로는 자신의 예전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따라 합니다. 즉, “우리도 함께 가겠소”(요한 복음 21,3). 그들은 한 발 뒤로 물러서 간 것처럼 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버리고 떠났던 그물을 집어 듭니다. 고통과 실망의 무게 그리고 배반의 무게가 제자들의 마음을 막고 있는 돌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고통과 죄의식의 짐을 지고 있었고 부활의 기쁜 소식이 그들의 마음에 뿌리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예전으로 돌아가려 하는 유혹이 얼마나 강한 유혹인지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베드로의 그물은 이집트의 고기 가마와 같이 유혹하는 과거에 대한 향수의 상징이고 우리가 버리고 떠나기로 결심했던 것으로 돌아가고 싶어함의 상징입니다. 실패 또는 상처에 직면할 때 때때로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직면할 때도 항상 실망하고 포기하려는 미묘하고 위험한 유혹이 다가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낙담으로 물들이고 좀벌레같이 우리의 희망을 모두 먹어 치우고 마음을 달래는 자기 연민의 감정으로 빠져들도록 우리를 이끄는 심리적 무덤입니다. 그리고 나서 어떤 공동체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믿음이 약화되고 있고 편협함으로 퇴보하고 있는 삶의 음울한 실용주의(복음의 기쁨 83 참고).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고 다시 시작하시고 인내하시며 그에게 오셔서 그를 “시몬아”(요한복음 21,15)라고 부르시는 것이 바로 베드로의 실패의 순간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완벽한 상황이나 마음 가짐을 기다리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창조하십니다. 견디어 내는 모든 남자와 여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기 위해서 그분께서는 문제가 없는 사람들, 실망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리라고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는 일에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 모든 기대를 뒤엎으시고 언제나 새로 시작할 준비를 하시는 사랑의 힘이 그분의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더 깊게 하기 위해서 그분의 영원한 새로움으로 되살아나도록 매일 매일 우리를 부르십니다. 매일 아침 그분께서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를 찾으러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일어나라고, 올려다 보고 우리가 땅이 아니라 하늘 나라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심해의 죽음이 아니라 높은 곳의 생명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부르시고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는 것을 그만두라고 부르십니다(파스카 성야 강론, 2019년 4월 20일). 우리가 그분을 맞아 들일 때 우리는 더 높게 일어나고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로서 더 밝은 미래를 껴안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놀라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놀라움의 주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놀랄 뿐 아니라 놀라운 일들을 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비어 있는 그물을 들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시며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이상한 어떤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낮에 고기를 잡으라고, 호숫가에서 평범한 일에서 꽤 벗어난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한번 더 위험을 무릅쓰라고, 그 누구도 그 어떤 일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하시면서 그들의 갈증을 회복되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놀라움의 주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해왔어”라고 말하는 사고방식 뒤에서 너무나 자주 유혹하는 의심과 불신과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용기로 우리를 채우심으로써 마비시키는 장벽들을 부수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우리의 그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가지고 역사의 바다에 던지라고 하실 때는 언제든지 우리를 놀라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바라보시는 대로 우리 자신의 삶을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삶을 바라보리고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회복될 아들과 딸들을 죄 안에서 바라보십니다. 다시 태어날 형제 자매들을 죽음 안에서 바라보십니다. 다시 활력을 되찾을 마음들을 처참한 고독 안에서 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이 자신의 삶을 바라보기를 두려워하고 그것을 떠안기를 두려워할 때조차도 주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파스카 성야 강론, 2019년 4월 20일)

 

우리는 지금 세 번째 놀라운 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시고 하느님께서 놀라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분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베드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 언어를 배우라고 하십니다. 그분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베드로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너무나 많은 시간을 예수님과 보낸 후에 베드로는 이제 사랑하는 것은 자기자신을 중심에 놓는 것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요한 복음 21,17), 베드로가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약함을 깨닫습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 사랑의 힘에 의지합니다. 마지막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힘의 원천이고 우리는 매일 그것을 다시 확인하라고 요청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모든 부족함과 죄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호출입니다. 우리의 큰 실망과 어려움 중에 하나는 오늘날 하느님께서 사랑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선포하고 증언하는 우리의 방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그분의 이름이 아닌 그런 것이라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사랑 그 자체를 주시는 사랑이시고 부르시고 놀라게 하시는 사랑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기적을 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단지 우리가 그분의 사랑에 이끌리도록 우리 자신을 놓아 두기만 하면 말입니다. 이 축복받은 땅에서 부활을 증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소박한 믿음과 위대한 사랑으로 영감을 받아 참으로 아름다운 걸작들을 창조했습니다. 그들의 삶을 내어 주면서 그들은 하느님의 살아있는 징표들이 되었고 용감하게 무관심을 극복하면서 그리고 그들이 대면했던 근심들에 그리스도의 응답을 주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74 참고). 오늘 우리는 우리의 눈을 들어 주님께서 과거에 해 오셨던 일들을 감사하라고 부르심을 받고 그리고 우리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분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우리의 그물을 던지라고 계속 말씀하시면서 거기에 계실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미래를 향해 그분과 함께 걸으라고 부르심을 받습니다.

 

여기서 나는 내가 나의 최근 권고에서 청년들에게 말했던 것을 반복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젊은 교회, 나이가 아니라 성령님의 은총에서 젊은 교회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 공동선을 위해 힘쓰도록 우리를 이끌고 영감을 주는 사랑을 증언하라고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섬길 수 있게 해 주고 자선과 봉사의 혁명에서 주인공이 되게 해 주고 소비주의와 피상적인 개인주의의 병에 저항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넘쳐 이 도시의 모든 곳에서 복음의 살아 있는 증인이 되십시오(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174-175 참고). 이 땅이 크게 필요로 하는 성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거룩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어떤 활력도 앗아가지 않고 그것은 당신의 생기나 기쁨을 앗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당신과 이 땅의 모든 아들 딸들이 성부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을 창조하셨을 때 염두에 두신 그대로 될 것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32 참고).

 

부르심을 받으십시오, 놀라워 하십시오 그리고 사랑을 위해 파견되십시오!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documents/papa-francesco_20190505_omelia-bulgaria.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