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샘물

프란치스코 교황님 강론(2018년 3월 31일 성 토요일)

Margaret K 2018. 4. 9. 19:09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index.html

Easter Vigil Mass


 복음 말씀] 제1독서 : 창세기 1,1-2,2

                                          제2독서 : 창세기 2,1-18

                                          제3독서 : 탈출기 14,15-15,1

                                          제4독서 : 이사야서 54,5-14

                                          제5독서 : 이사야서 55,1-11

                                          제6독서 : 바룩서 3,9-15.32-4,4

                                          제7독서 : 에제키엘 예언서 36,16-17ㄱ.18-28

                                          서간 : 로마 6,3-11

                                          복음 : 마르코 복음 16,1-7


우리는 이 예식을 밖에서 밤의 어둠과 추위 속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죽음에서 짓누르는 침묵을 느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알 수 있는 침묵이고 십자가 앞에서 말없이 서 있는 모든 제자들의 깊은 마음을 꿰찌르는 침묵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에서 고통 중에 말없이 서 있는 시간들입니다. 그런 순간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자는 주님 인생에서 그 중요한 십자가의 시간 중에 그의 또는 그녀 자신들의 반응해서 한 행동들을 깨닫고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스승님을 유죄 판결했던 정의롭지 못함 앞에서 그분의 제자들은 침묵했습니다. 스승님께서 견디신 거짓된 증언과 비방들 앞에서 그분의 제자들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주님 수난의 고통과 시련의 시간 동안 그분의 제자들은 그 스승님을 대변해서 말하는 것에 자신의 삶을 던지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극적으로 경험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그분을 부정했을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은 숨었고 그들은 도망쳤고 그들은 침묵했습니다. (요한복음 18,25-27 참고)

 

망연자실하고 무력한 채로 그리고 고통스럽고 낙심시키는 그 수많은 상황들 가운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신할 수 없는 채로 있는 제자들의 그 침묵의 밤입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우리 형제 자매들이 직접 경험하고 있는 정의롭지 못한 모든 것들을 뒤집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게 하고 더 나쁘게는 그렇게 믿게 만드는 상황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에 직면하여 침묵하는 오늘날의 제자들의 침묵의 밤입니다.

 

그것은 기억을 빼앗고 희망을 침묵시키고 “모든 일이 늘 이렇게 되는 법이야”라고 생각하도록 이끄는 참담한 판에 박힌 일상생활에 그들이 빠져 있어서 방향을 잃어 버린 저 제자들의 침묵하는 밤입니다. 그 제자들은 압도되어서 할 말을 잃고 결국 카파야의 다음의 말을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맙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요한 복음 11,50)

 

우리의 침묵 속에서 우리의 매우 강한 침묵 속에서 돌들이 소리치기 시작합니다(루카복음 19, 4)[1] 그리고 역사가 지금까지 들은 가장 위대한 메시지를 위한 길을 깨끗이 하기 시작합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마태오 복음 28,6). 무덤 앞에 있던 돌이 소리 질렀고 모든 이를 위한 새로운 길이 열렸음을 선포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창조 그 자체가 복음의 기쁨을 침묵시키고 억누르려고 해 왔던 모든 것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울려 퍼지게 했습니다. 무덤 앞의 그 돌이 뛰어 오르며 그 자신의 방법으로 찬미와 놀라움과 기쁨과 희망의 노래를 읊조리는 첫 번째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함께하라고 초대 받습니다.

 

어제 우리는 “찔린 이”를 묵상하면서 그 여인들과 함께 했습니다.(요한 복음 19, 36 참조, 즈카르야 서 12, 10). 오늘 그여인들과 함께 우리는 비어있는 무덤을 바라보며 묵상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천사의 말을 들도록 초대 받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오 복음 28, 5-6). 그 말들은 우리의 가장 깊은 신념과 확신들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판단하는 방법들, 특히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들에 틀림 없이 영향을 줄 것입니다. 비어 있는 무덤은 우리에게 도전할 것이고 우리의 영들을 불러 모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게 만들 것이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특히 하느님께서 모든 상황 그리고 모든 사람 안에서 하느님께서 “일어나시고(happen)” 그분의 빛은 우리 삶의 가장 예상치 못한 곳, 가장 숨겨진 곳을 비출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믿도록 용기를 줍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아무도 기다리지 않은 곳에서 부활하셨고 그리고 지금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 구원 사업을 나눌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 - 여인들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그리고 이 힘을 가지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귀함의 길을 발견하고 무엇보다 먼저 창조하는 봉사에 우리의 삶, 우리의 에너지, 우리의 지성, 우리의 애정 그리고 우리의 의지를 놓아 둡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을 지탱하는 메시지이며 이것은 그것을 구체적인 자선의 행위로 바꿉니다. 우리는 얼마나 숭고하게 우리는 우리의 약함이 이 체험으로 기름 부음 받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까! 얼마나 숭고하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되살아 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얼마나 숭고하게 우리는 이 메시지로 근시안적인 우리의 지평이 도전 받도록 하고 새로워지도록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의 희망과 창조성이 그분과 함께 살아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깨달음 속에서 우리 현실의 문제들을 직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부활절을 경축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관습들”에 도전하시면서 그리고 우리를 끝내 마비시키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고정된 방식들에 도전하시면서 끊임없이 우리의 개인적인 역사로 들어 오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믿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경축한다는 것은 우리를 너무나 자주 괴롭히고 모든 종류의 희망을 매장하는 용기 없는 두려움에 대해 예수님께서 승리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무덤 앞의 돌은 이것을 나누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여성들은 이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초대는 여러분과 나에게 전해졌습니다. 우리의 틀에 박힌 일상생활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생활을 다시 새롭게 하고 우리의 결정과 우리의 존재를 다시 새롭게 하라는 초대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 우리가 하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로 그 방향을 가르쳐 주는 초대입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메시지를 나누고 싶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일어나는 사건들 앞에서 단순히 계속 침묵하는 채로 서 있는 것을 더 좋아합니까?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갈릴래아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첫사랑의 장소와 시간으로 돌아가라고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를 따라라.


출처 ; https://www.mariasara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