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생각

개똥같은 인생/경포호수

Margaret K 2018. 12. 27. 22:09



개똥같은 인생 신구가 출연하는 ‘장수상회’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연극 중 하나다. 기억을 잃어가는 노부부의 로맨스를 그린 ‘장수상회'는 연일 매진이라 유치원생부터 연인들, 노부부까지 로비는 발 디딜 틈이 없다. 대학로 공연장이 이토록 붐비는 것은 몇 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연극 ‘소’로 데뷔했지만 TV와 영화에도 많은 역을 소화하면서 벌써 55년이 흘러갔지만, 대중들은 과연 그에게서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니들이 게 맛을 알아?’광고와 함께 올봄 TV 프로그램 '윤식당'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신구는 2사 만루처럼 올해도 영화, 드라마, 예능 그리고 CF까지 종횡무진 활동하며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배우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배우로서의 삶이 무엇이냐고 질문 받을 때 그는 ‘개똥같다.’고 답한 것이 의외였다. 아마도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노후연금과 상사도 없기에 장기적으론 꺼리기는 직업이지만 처자식 벌여먹여 살렸기에 좋다는 의미도 분명 포함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왜 그는 하고 많은 말 중에 배우에 대한 정의를 멋지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개똥’이라 했을까. 새삼스레 나는 그 말뜻의 본의가 무엇인지 고민해 봤다. 물론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긍정적 의미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개똥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어쩜 인생은 신구 말처럼 ‘개똥’같이 아무도 내 인생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내 모든 사상은 말 그대로 ‘개똥철학’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지하의 ‘김지하의 옛 주소’ 시를 보면 ‘개똥’이라고 말한 것이 조금 이해는 간다. 김지하는 시를 쓸 때는 목숨 걸었지만, 시간이 흘러 방랑과 감옥의 산을 지나 이윽고 어느덧 신 앞에 앉았는데, 외로움도 후회함도 없는 것을 보고 ‘인생은 참 개똥같다’고 뇌까렸다. 젊을 때 인생은 불가능이 없었다. 중년쯤 되면 나름대로 인생의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 아직까지는 얼마든지 ‘인생은 짧지만 아름답다.’고 시적인 표현을 꺼리지 않는다. 하지만 노년이 되면서 피로함이 쌓이고 육체적 쇠락에 따른 곤고함과 허망함 속에 희끗희끗 죽음을 보면서 그동안 쌓았던 모든 것이 아무 쓸모가 없음을 깨닫고 신구나 김지하처럼 인생을 ‘개똥’으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은 차라리 진정성 있는 인생의 고백이라 여겨진다. 물론 거창한 이력이 있어도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부질없기에 인생을 개똥에 비유했을 지라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적어도 그들은 성실한 인생을 살았기에 그렇게라도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우린 어릴 때부터 ‘성실’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자주 접해왔던가. 그들이 아니라도 나이 들면서 ‘성실’은 생의 바탕이라 여기는 이유가 있다. 성실이란 다른 어떤 인생의 기술보다 진정성 있는 인간이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하지만 성실하게 살면 삶은 고독하다. 고독해도 인생을 길게 보면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물론 안다. 인생은 결국 참고 견디는 자가 끝에 가면 이길 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진정성 있는 인생이 되어가기에 성실을 빼놓고 인생을 논할 수 없게 된다. 배우 신구가 생각하는 연기의 철칙 역시 진실이었다. 장르가 달라도 바탕이 진실이어야 하는 것은 연기에 진실이 없으면 공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식당’에서 아르바이트생 역이었지만 그가 성실과 웃음을 보여 준 것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음을 시청자들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놓치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인생은 연기자처럼 매번 상황이 다르고 감정이 다르고 늘 고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성실하게 어떤 일을 반복하는 사이에 어떤 정형화된 틀이 만들어 지면서 나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지기 때문이다.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 속에서 일을 하면 신선미도 없고 독창성이란 기대하기 어렵다. 아니 일보다도 인생 자체가 재미가 없어진다. 우리가 이런 타성에 젖지 않으려면 어떤 계기를 가져야 하는데 이 일이 쉽지 않다. 그런데 신구는 55년차 배우임에도 배움의 자세로 그러한 타성을 이겨나갔다. ‘나는 이제 게 맛은 알지만 아직도 연기는 모르겠더라.’ ‘빈 깡통이 요란’하다. 그런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신구처럼 매사 배운다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잠은 잘수록 더 졸리지만 배움은 많을수록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얕은 것인지를 알기에 더욱 겸손해진다. 인생엔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순간에 교만이 찾아오면서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은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배움을 멈추지 않는 것은 겸손히 세상의 창을 열어젖히어 나를 알고 이웃을 알고 세상을 알게 되면서 배움의 마지막 과정인 죽음도 이제 피하지 않고 그 날을 생각하며 매사 마음을 담아 살아감을 의미한다. 죄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기생하여 인생을 망가지게 하지만 배운다는 입장으로 모든 일에 적용하니 내일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된다. 인생은 희망이다. 과거가 날 붙잡으려 해도 내가 진정 가야 할 곳을 안다면, 어제에 붙잡히지 않고 오늘은 오늘로써 로또에 당첨된 사람처럼 감격 속에서 지금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설령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서운하고 밉고 때론 원망스럽고 상처받고 내일이 보이지 않음으로 화가 난다고 가시 돋친 무언가를 자꾸만 발길로 차면 나만 아플 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생이란 촛불이다. 꺼질 듯 말듯하나 다시 살아나는 불씨처럼 온갖 아픔과 슬픔이 촛농같이 녹아내릴지라도 내 안에 본능적인 희망이 꺼지지 않기에 아무리 인생이 개똥같을지라도 오늘 최선을 다하며 인생을 배워나간다면 오늘이란 순간은 신구처럼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기에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 2018년 10월 18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 [피러한 두 번째 책/나도 행복할 수 있을까] 인터넷 유명서적, 쇼핑몰, 개인 등 주문가능 사진허락작가:하누리님, 우기자님, 이요셉님

^경포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