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회 자료실

성 보나벤투라 (베네딕토 16세)

Margaret K 2018. 10. 17. 01:09



베네딕토 16세

일반 알현


2010년 3월 10일 수요일, 바오로 6세 홀

성 보나벤투라 (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주에 저는 바뇨레지오의 보나벤투라 성인의 삶과 인품에 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그분의 문학 작품과 교리에 관하여 성찰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보나벤투라 성인의 여러 업적 가운데 특히 그분이 깊은 애정으로 연구하고 공경했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정확하고 충실하게 해석하는 능력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보나벤투라 성인의 시대에 작은 형제회원들 가운데 “영성주의자”로 불리던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열었으며 묵시록에 나오는 “영원한 복음”이 신약을 대체하게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교회가 이제 역사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가 성령에 의해 내적으로 인도되는 자유인의 은사 공동체, 곧 “프란치스코회 영성주의자들”로 대체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사상은 1202년에 사망한 시토회 수도원장 피오레의 요아킴의 저서들에 근거를 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역사의 삼위일체적 주기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구약을 성부의 시대로 여겼고, 그 다음이 교회의 시대인 성자의 시대라고 하였으며, 세 번째 시대인 성령의 시대는 아직 기다리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역사 전체가 진보의 역사로 해석되었습니다. 엄격했던 구약 시대에서, 교회 안에서 다소 자유로워진 성자의 시대,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성령의 시대로 진보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침내 인류의 평화, 민족들과 종교들 사이의 화해의 시대가 됩니다. 피오레의 요아킴은 새로운 시대가 새로운 형태의 수도원 운동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니 일부 프란치스코 회원들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새로운 시대의 창시자로 여기고, 또한 그의 수도회는 더 이상 낡은 구조에 얽매이지 않는 성령의 새 교회를 시작하기 위해 교계적 교회를 뒤로 하고 떠나는 새로운 시대의 공동체, 성령의 시대의 공동체로 여겼던 것도 이해가 갑니다.

따라서 그들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메시지와, 그분이 겸손하게 지녔던 복음과 교회에 대한 충실성을 심각하게 오해할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점 전체를 오류로 물들게 하였습니다.

1257년에 프란치스코회 총장이 된 보나벤투라 성인은, 피오레의 요아킴을 따르는 “프란치스코회 영성주의자들”의 이러한 경향을 지지하는 이들 때문에 자신의 수도회 안에서 커다란 긴장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이들 무리에 대응하여 수도회의 일치를 재건하기 위하여, 보나벤투라 성인은 피오레의 요아킴이 쓴 진본들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책들까지도 공들여 연구하였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습과 가르침을 정확하게 제시할 필요성을 염두에 두면서, 그는 역사의 신학에 관한 정확한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파리 대학의 수도승들에게 행한 담화 모음집인 자신의 마지막 작품에서 이 문제를 실제로 다루었습니다. 이 책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담화를 들은 사람들이 기록해 놓은 것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제목은『육일창조』(Hexaëmeron), 곧 엿새 동안의 창조에 관한 우화적 설명입니다. 교부들은 엿새 또는 이레 동안의 창조 이야기를 세계와 인류의 역사에 관한 예언으로 여겼습니다. 교부들은 그 일곱 날이 역사의 일곱 단계를 상징한다고 보았고, 이것이 나중에는 칠천년 왕국설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마지막 단계인 역사의 여섯 번째 단계로 들어가야 하고, 그 다음에는 하느님의 위대한 안식일이 따르게 됩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창조 이야기에 관한 이러한 역사적인 해석을 매우 자유롭고도 새로운 방식을 통해 하나의 가설로 내놓았습니다. 그는 당시의 두 가지 현상이 역사의 과정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성흔을 받을 만큼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하여 ‘또 다른 그리스도’라고 할 만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습과, 프란치스코 성인과 함께 그때까지 알려진 수도원 운동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가 세운 새로운 공동체. 이 현상은 그 시기에 나타난 하느님의 하나의 쇄신으로서,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했습니다.

둘째, 신약의 계시를 넘어 완전히 새로운 역사의 시기와 새로운 수도원 운동을 선포한 피오레의 요아킴의 입장에 응답해야 했습니다. 프란치스코회의 총장으로서 보나벤투라는 피오레의 요아킴에게서 영향을 받은 이러한 영성주의적 개념 때문에 수도회가 통치불가능하게 되고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것이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조직을 세우고 교계적 교회, 실제 교회의 현실 속으로 편입되어야 할 실질적인 필요는 신학적인 토대를 요구했습니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다른 이들, 곧 영성주의 개념을 따르는 이들이 신학적 토대를 갖추고 있는 것 같이 주장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둘째, 어쩔 수 없는 현실주의를 고려하면서도 프란치스코 성인의 새로움을 잃지 않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이러한 실질적, 이론적 요구에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여기서 저는 그분의 대답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서 제시하려고 하며, 이는 어떤 면에서는 불완전할 것입니다.

 

1. 보나벤투라 성인은 역사의 삼위일체적 주기라는 개념을 거부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역사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분이시며 세 분의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따라서 역사는 그것이 하나의 여정, 보나벤투라 성인에 따르면 진보의 여정이지만, 그럼에도 하나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마지막 말씀이시며,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내어주시고 표현하시며 모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상의 것을 표현하거나 주실 수 없으십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영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성령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요한 16,15). 따라서 더 숭고한 복음도, 기다려야 할 다른 교회도 없습니다. 그러니 프란치스코회도 이 교회 안으로, 그 신앙과 그 교계적 질서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3. 그러나 이 말은, 교회는 과거에 고정되어 있어서 정적이며 교회 안에 새로움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인은 “그리스도의 일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Opera Christi non deficiunt, sed proficiunt.”)라고, 『세 가지 문제에 관하여』라는 편지에서 말했습니다. 따라서 보나벤투라 성인은 진보의 개념을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교부들이나 당시의 대다수와 비교할 때 새로운 혁신입니다. 교부들과 달리 보나벤투라 성인은 더 이상 그리스도를 역사의 끝으로 생각하지 않고 역사의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역사는 그리스도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면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또한 다음과 같은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는 교부들이 신학의 절대적 정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며, 그 이후의 모든 세대는 단지 그들의 제자들에 불과했습니다. 보나벤투라 성인도 교부들을 영원한 스승으로 인정했지만, 프란치스코 성인의 현상은 그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의 보화는 마르지 않으며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빛이 나타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또한 역사의 모든 시대에 새로움과 쇄신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가 강조했듯이 프란치스코회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사도의 교회에 속하며, 이상주의적 영성주의 위에 세워질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다른 고전적 수도원 운동과 비교하여 이 수도회의 새로움은 유효한 것이며, 지난 번 교리교육에서 말씀드렸듯이 보나벤투라 성인은 파리의 세속 성직자의 공격에 맞서 이러한 새로움을 옹호했습니다. 프란치스코 회원들은 고정된 수도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러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선교적 역동성을 회복시키는 새로운 유연성을 위하여, 수도원 운동의 특징인 정주성을 끊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오늘날에도 제이천년기의 교회의 역사 전체를 점진적 쇠퇴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쇠퇴가 신약 직후 곧바로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일은 뒤로 물러섬이 없으며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Opera Christi non deficiunt, sed proficiunt).” 시토회와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의 새로운 영성, 아빌라의 데레사 성인과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영성 등이 없었다면 교회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일은 뒤로 물러섬이 없으며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Opera Christi non deficiunt, sed proficiunt).”라는 확언은 오늘날에도 적용됩니다. 교회의 일은 앞으로 나아갑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우리에게 엄격한 식별과 건전한 현실주의와 새로움에 대한 개방성의 필요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당신 교회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쇠퇴의 개념이 되풀이될 때, 이러한 “영성주의적 이상주의”의 개념 또한 다시 고개를 듭니다. 실제로,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일부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워졌고, 또 다른 교회가 있으며, 공의회 이전의 교회는 끝나고 전혀 “다른” 교회, 무질서 상태의 이상주의를 갖게 되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교회의 현명한 길잡이였던 교황 바오로 6세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편으로는 공의회의 새로움을 수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죄인들의 교회이며 은총의 자리인 교회의 유일성과 연속성을 수호하였습니다.

4. 이러한 면에서 프란치스코회 총장으로서 보나벤투라 성인은, 하나의 공동체인 새로운 수도회는 미래의 세상을 미리 맛본 프란치스코 성인과 같은 “종말론적 정점”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통치 노선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는 건전한 현실주의와 영적 용기가 이끄는 대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규범”과도 같았던 산상 설교를 최대한 가까이 실현해야 했으며, 그러면서도 죄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인간의 한계를 언제나 명심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나벤투라 성인에게 통치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사고와 기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통치의 뿌리에는 언제나 기도와 사고가 있습니다. 그가 내린 모든 결정은 기도의 빛 안에서 이루어진 사고와 성찰의 결과였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가 총장으로서의 직무에 언제나 함께하였고, 따라서 그는 자신의 통치의 정신을 드러낸 여러 신학적 신비주의적 글들을 썼습니다. 이 글들은 또한 내적으로 수도회를 이끌고자 한 그분의 의도, 다시 말해 명령과 조직으로써만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들을 이끌고 빛으로 깨우쳐 그리스도에게 이끎으로써 통치하려는 뜻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글들 가운데 하나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분의 통치 정신을 담고 있고 개인이나 공동체 모두 따라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는 글로서, 신비주의 관상의 “안내서”라고 할 수 있는 『하느님을 향한 정신의 여정』(Itinerarium mentis in Deum)입니다. 이 책은 매우 영적인 장소인 프란치스코 성인이 성흔을 받은 라베르나 산에서 태동했습니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글이 탄생하게 된 주변 환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하느님께 올라갈 수 있는 길에 관하여 묵상하고 있는 동안, 바로 이곳에서 복되신 프란치스코에게 일어났던 기적, 곧 십자가 형상 안에 날개 달린 세라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 환시에 관하여 묵상하는 동안 나는 그것이 나에게 프란치스코의 황홀경의 관상과 거기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하느님을 향한 정신의 여정』[Itinerarium mentis in Deum], Prologue, 2, in Opera di San BonaventuraOpuscoli Teologici / 1, Rome 1993, p.499).

따라서 세라핌의 여섯 날개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에서 출발하여 세상과 피조물에 대한 관찰을 통하여, 그리고 영혼과 그 능력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인간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위일체와 충만한 일치를 이루도록 점진적으로 이끄는 여섯 단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느님과 이러한 신비로운 친교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하느님께로 가는 영혼의 여정」에서 보나벤투라 성인이 내린 결론을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하느님과의 신비로운 친교) 일어날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가르침이 아니라 은총에, 지성이 아니라 원의에, 학문의 추구가 아니라 기도의 눈물에, 교사가 아니라 배우자에게,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명확함이 아니라 어둠에, 빛이 아니라 불에 물음을 던지십시오. 불은 모든 것을 뜨겁게 달구어 충만한 도유와 뜨거운 애정으로 하느님에게로 보내 줍니다. …… 그런 다음 …… 어둠 속으로 들어갑시다. 걱정과 욕정과 환영에 침묵을 얹읍시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 우리도 필립보와 함께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하고 말할 수 있도록,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갑시다.”(같은 책, VII 6 참조).

여러분, 세라핌 박사인 보나벤투라 성인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거룩한 스승의 학교에서 배웁시다.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울리는 그분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분이 우리 안에 머무실 수 있도록, 또한 우리를 참된 행복으로 이끄시는 거룩한 목소리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깨끗이 씻어냅시다.